죄를 마음에 새기지 말라
죄를 처음 져지를 때는 심장이 벌렁 벌렁하고 마음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러다가 걸리는 거아냐, 하나님께 큰 벌 받으면 어떡하나? 아휴 다음부턴 하지 말아야지, 이런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죄를 계속해서 반복해서 짓게 되면 두려움이 없어지고 아주 대범해 집니다. 그리고 더 큰 죄악도 서슴없이 져지르게 되죠. 양심의 가책이 없어지는 것이죠. 마음이 딴딴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를 오늘 1절에 보시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의 제단 뿔에 새겨졌거늘”
죄가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었다는 것은 지울 수 없는 상태로 기록된다는 것이죠. 금강석 끝 철필로 죄가 마음에 새겨졌다는 것입니다. 죄가 마음에 아주 깊이 새겨진 상태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죄를 짓는데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는 상태가 된 것이죠.
여러분 어쩌다가 유다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죄가 새겨지게 된 것일 까요?
그것은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죄는요 누구나 다 짓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이 부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렘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우리의 심령은 죄로 다 부패되어있기에, 우리는 언제든지 죄를 지을 수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 마음에 탐욕이 생기면 그것을 차지하고자 하는 탐심에 빠져 버립니다. 탐심에 빠지면 그것이 이미 죄를 지은 것이다 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다윗 왕이 저녁에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봅니다. 다윗 마음속에 이웃의 여자를 탐내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다윗이 탐심에 사로잡힌 것이죠. 다윗왕의 마음은 온통 그 여자를 갖고 싶다는 것으로 꽉 차버립니다. 이 상태까지 왔으면 다윗은 이미 간음죄를 져지른 것입니다. 저 여자 누구냐? 하고 다윗이 신하에게 묻습니다.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가 아닙니까~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라고 했는데, 다윗은 가서 데려 오라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야는 전쟁터에 나가서 집에 없는 상태였습니다. 결국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을 져지르고 말죠.
우리는 이 사건을 보고 다윗은 아주 나쁜 사람으로 정죄할 수 있지만, 그러나 여러분 우리도 다윗왕과 같은 절대 권력을 갖게 되면 얼마든지 그런 죄악을 져지를 수 있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육신의 정욕으로 부패되어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의 삶 속에서 죄를 하나도 짓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것은 이 다음 우리가 영화로운 존재로 변화되어 천국에 들어가서나 가능한 것이죠. 죄로 부패된 우리들은 매일 매일 크고 작은 죄를 져지르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가 우리 마음에 새겨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죄가 우리 마음에 새겨지지 못할 까요? 그것은 회개입니다. 죄를 져질렀으면 그 즉시 회개하고 그 죄에서 돌이켜 합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다가 나의 부끄러움을 가리려고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했어요. “아 내가 거짓말을 했네!” 깨달았을 때 어떻게 해야합니까? 예 그 즉시 하나님께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전화를 하든지 아까 내가 부끄러워서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했다고 사실은 이러 이러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죄를 회개할 때 그 죄는 우리 마음에 새겨지지 않고 지워질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러나 여러분 죄를 회개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버리면 점점 그 죄가 우리 마음에 깊이 새겨지게 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거짓말하는 것이 입에 붙어 버립니다. 거짓말을 하면서도 전혀 얼굴색 변하지 않고 양심의 가책도 없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금강석 끝 철필로 죄가 마음에 새겨지는 것이죠.
여러분 이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사 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회개하지 않을 때, 우리는 결국 하나님과 단절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이죠. 죄를 져지르기 전에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열심히 찬양하고 기도하고 울기도하고 뜨겁게 예배했는데,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으면 그 모든 예배의 감격이 상실되어 버립니다. 기도도 찬양도 외식이 되어버리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죠. 하나님과는 점점 멀어지고 마음은 죄로 딴딴해지고 강퍅해지는 것이죠.
여러분 이렇게 유다의 마음에 지울수 없는 죄가 새겨지면서 유다가 행하는 악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 까요?
1절에 보시면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그들의 마음 판 새기고 또 어디에 새겼다고 했어요? 그들의 제단 뿔에 새겨졌거늘 했습니다. 여기서 제단은 복수로 우상들의 제단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상 제단의 뿔에 죄가 새겨졌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이것은 철저한 우상숭배를 말하는 것입니다. 유다가 우상숭배에 완전히 빠졌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기록한 예레미야는 요시야왕 13년부터 예루살렘이 멸망 직후까지인데, 이 때 이스라엘에 우상숭배가 아주 심했습니다. 나라가 망하는 길로 가면서 우상들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요시야왕이 종교개혁을 하지만 그 때 뿐이고 요시야가 죽고 나서 우상숭배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이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민족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이 임재하는 곳이요, 놀라운 기적들을 엄청나게 많이 체험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세상의 우상숭배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에스겔8장에 보시면 이 당시 이스라엘이 얼마나 우상에 찌들려 있었는 지를 말해줍니다. 에스겔8:3에 에스겔이 환상중에 이끌려서 예루살렘의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문에 이르는데 거기에 질투의 우상이 자라잡고 있었다 합니다. 여기서 안뜰은 성전 안뜰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전안에 우상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것이죠. 이번에는 에스겔이 뜰문으로 갔는데 거기에 구멍이 있습니다. 그 때 음성이 들리는데, 에스겔아 담을 헐어라 하십니다. 그래서 에스겔이 담을 헐었더니 거기에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들이 벽에 그려져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거기에 70명의 장로들이 우상 숭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북문에 가서 보는데 거기에서 여인들이 앉아서 담무스를 위해 애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성전 안뜰로 들어가니 성전 문과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25명이 하나님의 성전을 등지고 동쪽 태양에게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우상숭배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서 버젓이 져질러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완전히 상실해 버린 것이죠.
어쩌다가 하나님의 거룩한 선민이었던 이스라엘백성들이 이런 우상숭배에 빠지게 된 것일 까요? 그것은 이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죄악이 마음에 새겨졌기 때문입니다.
우상은 사람들을 미혹하는 힘이 있습니다. 우상을 보고 있으면 뭔가 신비롭게 느껴지고 내 소원을 이루어 줄 수 있을 것 같고 그런 미혹의 영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상을 보면 미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그런 마음이 생겼을 때, 그 즉시 죄를 회개하고 버렸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우상을 쳐다보고 또 쳐다보고 집에다가 우상을 가져다 놓기도하고 한 것입니다. 처음 미혹이 느껴졌을 때,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했다면 하나님이 그 우상이 헛된 것임을 알게 해주셨을 것입니다. 영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나는 것이죠.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았고, 결국 미혹의 영이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그 죄가 점점 깊어지자, 거룩한 성전에서도 아무런 가책도 없이 우상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금강석 철필로 죄가 제단 뿔에 새겨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죄가 금강석 철필로 마음에 새겨지면 자기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자녀들도 망하는 길로 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유다의 죄가 철필로 마음에 새겨지니까 그 자녀들도 그 죄를 그대로 이어 받는 것을 봅니다.
렘 17:2 그들의 자녀가 높은 언덕 위 푸른 나무 곁에 있는 그 제단들과 아세라들을 생각하도다
이것은 완전히 불신집안이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36장에 쌍둥이 야곱과 에서가 나오는데, 에서가 한 동안은 야곱과 고향인 헤브론에서 같이 지냅니다. 그러다가 에서와 야곱의 가축 떼가 많아지면서 더 이상 같이 지낼 수 없게 됩니다. 이 때 에서가 다른 지역으로 가는데요, 에서가 선택한 땅은 하나님이 주시기로 한 약속의 땅 가나안을 벗어납니다. 에돔이라는 땅으로 거버립니다. 에서는 땅을 선택할 때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신의 육신의 눈에 보기에 좋은 대로 택해서 간 것입니다. 에서는 에돔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의 토착민과 혼합되면서 온갖 우상을 숭배에 빠지게 됩니다.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고 결국 에서는 에돔족속이라는 완전히 이방족속이 되어 버립니다. 더나아가서 에돔족속은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대적이 되어버립니다.
여러분 이렇게 우상숭배에 빠지면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고 결국은 그 자손들도 우상숭배자가 되고 완전히 불신자의 집안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유다에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심판이 쏟아집니다. 그것은 멸망입니다.
렘 17:3 들에 있는 나의 산아 네 온 영토의 죄로 말미암아 내가 네 재산과 네 모든 보물과 산당들로 노략을 당하게 하리니
렘 17:4 내가 네게 준 네 기업에서 네 손을 뗄 것이며 또 내가 너로 하여금 너의 알지 못하는 땅에서 네 원수를 섬기게 하리니 이는 너희가 내 노를 맹렬하게 하여 영원히 타는 불을 일으켰음이라
대적이 와서 모든 것을 다 강탈해 가고 죽이고 포로로 다 끌고 가버린다는 것입니다.
이 예언대로 결국 바벨론이라는 대적이 이스라엘에 쳐들어와서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이고 예루살렘을 완전히 훼파하고 모든 것을 강탈하고 남은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갑니다. bc586년에 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도 얼마든지 우상숭배에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은 부패되어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말고 보이는 우상을 하나님보다 높이기가 너무 쉽습니다. 고대시대때에 우상들이 참 많아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버리고 보이는 우상을 숭배하기가 너무 쉬웠습니다. 오늘 날에는 물질만능 시대로 돈이 하나님처럼 여겨집니다.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나를 지켜 줄 것이라고 착각에 빠지기가 너무 쉬운 것이죠. 이런 죄악이 점점 마음에 새겨지면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힘이 없는 분으로 여겨지고 보이는 돈을 의지하고 그것을 숭배하며 살게 됩니다. 여러분 거기에는 저주 밖에 없습니다. 돈은 절대로 우리에게 참된 소망을 줄 수 없습니다.
렘 17: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는다라는 것은 돈과 같은 보이는 세상의 힘을 하나님처럼 높이고 그것을 의지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는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6절에
렘 17:6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사막의 떨기나무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존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막의 떨기나무는 아무런 열매를 맺지못합니다. 마치 오늘날 생존을 위해서 급급해 하며 사는 현대인들과 같습니다. 그들은 먹고 살기게 바쁘기에 삶 속에서 창조주 하나님께 원하시는 열매를 하나도 맺히지 못합니다. 평생 하나님 앞에 악한 존재로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은 결국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허무이며 결국 절망밖에 없는 것입니다. 13절도 같이 읽읍시다.
렘 17:13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된다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 까요?
예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죠. 여러분 흙위에 여러분의 이름을 기록해 보십시오. 그것이 얼마나 가겠습니까? 금새 지워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그들은 그 존재 자체가 영원히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지옥 불에 뗄감으로 던져지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끝까지 경외하는 자는 영원한 합니다. 그들은 영원한 생명책에 기록되어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고 보존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자들은 사막의 풀과 같이 아무런 소망도 없고 결국 사라지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자신을 의탁하는 자는 소망이 넘쳐납니다. 마치 물가의 심은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쳐서 아무리 더위가 올라오고 가뭄이 들어도 그 잎이 청정하고 결실을 맺는 것처럼 소망이 넘쳐난다는 것입니다.
렘 17:7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렘 17:8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되어서 이름이 영원토록 지워지지 않고, 언제나 푸르고 많은 열매를 맺혀 하나님께 영광되는 복된 사람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럼 복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죄가 새겨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작은 죄악이라도 그냥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제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1907년에 평양에 회개운동이 일어났었는데, 그 때 많은 사람들이 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런데 식사시간이 되어서 줄을 서서 밥을 먹는데, 주먹밥인가, 흰죽인가 그랬답니다. 한 사람에 한 덩이씩 먹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하도 배가 고파서 밥을 타다가 재빨리 먹고 또 줄을 서서 밥 한 그릇을 더 먹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집회에 들어가 말씀을 듣는데, 회개의 영이 임하는데 이 사람이 앞에 나와서 엉엉 울면서 자기가 밥 한 그릇 더 먹었다고 시인하고 대성 통곡을 하면서 가슴을 치며 회개하였다고 합니다. 밥 한 덩이 더 먹은 것 아무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죄임을 깨달아졌을 때, 회개한 것이죠. 이 사람의 회개로 많은 사람들도 회개하게 되었고 엄청난 성령의 역사들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할 때, 우리는 그 죄에서 돌이키게 되고 그 죄가 더 이상 우리 마음에 새겨지지 않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의 심령은 죄에 더욱 민감하게 되고, 작은 죄에도 가책을 느끼고 죄를 점점 멀리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진심의 회개는 우리를 점점 죄에서 이기게 해줍니다. 처음에는 10번 중에 9번 죄에게 진다면 회개하면 8번 지고 또 회개하면 5번만지고 또 회개하면 10번 중에 두 번만 지고 결국은 죄를 완전히 끊게 해줍니다. 그러니까 회개는 점점 우리를 거룩하게 해주는 거룩의 도구인 것이죠. 우리가 회개할 때 하나님은 그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게 하십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과 더욱 깊은 교제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 전부를 하나님께 완전히 의탁하는 믿음에 까지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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