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보다 더 큰 하나님의 은혜
콩가루 집안이 있습니다. 한 남자가 부모님과 상의도 없이 한 여자를 강압적으로 취하여 결혼을 해버립니다. 결혼해서 아들을 셋을 낳는데, 첫째 아들이 커서 결혼을 했는데, 이 아들이 악을 많이 져지름으로 죽어 버립니다. 둘째 아들도 또 악하여서 죽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도 먼저 세상을 떠납니다. 그런데 정말 어처구니 없는 것은 첫째 아들 며느리가 가문의 씨를 받기 위해서 창녀로 변장하여 시아버지를 유혹해서 시아버지의 씨를 받아 아들을 낳습니다. 완전히 콩가루 집안이죠.
그런데 이 콩가루 같은 집안이 성경에 나옵니다. 그 집안은 다름아닌 유다집안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유다지파는 어떤 지파입니까? 예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서 가장 힘도 쎄고 머리 역할을 했으며 특히 다윗왕이 나온지파로 왕족 지파입니다. 더나아가서 메시야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이 지파에서 나오셨습니다. 이런 거룩한 지파가 위로 족보를 찾아 올라가 보면 완전히 콩가루 집안이었다는 것입니다.
유다는 아주 총명한 사람으로써 말도 잘하고 리더쉽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유다의 형제가 11명이 있는데, 유다는 4번째임에도 형제들을 이끄는 리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유다 집안이 콩가루 집안이 되어 버립니다. 그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1절에 보시면 유다가 형제들을 떠나 아둘람 사람 히라를 가까이 했다 했습니다. 어느 정도 성인이 되어서 집을 떠난 것이죠. 그런데 유다가 집을 떠나가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이방족속들과 가까이 지냅니다. 그리고 거기서 이방 여자를 만나서 결혼을 해버립니다. 이것은 부모님과 상의도 없이 갑작스레 결혼을 해버린 것으로 보여집니다.
창 38:2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 이 표현은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서 결혼한 것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딸을 보고 좋으니까 데리고 가서 동침한 것입니다. 정식적인 절차를 무시해버리고 육신이 끌리는대로 여자와 동침하고 부모와 상의도 없이 아내로 맞이한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가 취한 이 여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가나안족속의 여자였다는 것입니다. 이 여자 이름도 성경은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이라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가나안족속은 아주 성적으로 문란하였는데,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 유다도 젖어서 자신의 정욕이 끌리는대로 행하는 것이죠.
이것은 유다의 죄입니다. 유다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써 하나님을 믿는 여자와 가정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유다는 자신의 정욕을 절제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구했어야 하는 것이죠. 그것이 하나님이 뜻이죠. 유다의 증조할아버지인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방여인과 통혼을 금했고, 할아버지인 이삭도 이방여인과 결혼하지 말 것을 말했습니다. 아버지 야곱도 800km 나 떨어진 외삼촌집에가서 믿음의 여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유다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믿음의 여인중에 아내를 취하려고 했어야 하는 것이죠.
그러나 유다는 자신의 정욕을 따라 아내를 취하여 결혼을 해버립니다. 이 유다의 죄로 유다 집안은 큰 재앙이 닥칩니다.
먼저는 그의 아들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악한 아들로 장성했다는 것이 재앙입니다.
자녀의 교육은 엄마의 영향이 아주 큰데, 엄마가 하나님을 경외할 줄 모르니 그 자녀들도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불신의 사람으로 큰 것입니다. 유다는 세 아들들을 두는데요, 첫째는 엘이고 둘째는 오난 셋째는 셀라입니다.
첫째 엘이 장성해서 결혼을 시키는데, 역시 이방여인 다말이라는 여자와 결혼을 시킵니다.
그런데 이 엘이 얼마나 악했으면 7절에 보시면 하나님이 그의 악함으로 그를 죽였다라고 되어있습니다. 고대시대때는 형이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기업을 세우기 위해서 그의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이하여서 동침을 함으로 자식을 낳게 하여서 그 형의 기억을 잇게 해줍니다.
이것을 계대 결혼이라고 하는데요, 만약 형의 기업을 잇기 싫어서 결혼을 거부하는 형제가 있으면 사회적으로 심한 비난을 받게 됩니다.
형 엘이 자식이 없이 죽음으로 둘째인 오난이 형수와 결혼을 하여서 형의 기업을 잇게 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오난이요, 아주 이기주의자입니다. 그래서 형의 기업을 잇는 것을 싫어합니다. 형수가 아들을 낳으면 그 자식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회적인 비난이 두려워서 억지로 형수 다말과 계대 결혼을 하는데요, 그런데 이 오난이 형수와 동침을 하는데, 형의 기업을 잇지 못하도록 일부러 땅에 설정을 해버립니다. 9절에 보시면 중간에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라고 기록되어있는데, 이것은 한 번만 형수에게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들어간 것인데, 번역을 “형수에게 들어갈 때마다”로 해야 합니다. 형수에게 들어갈 때마다 일부러 땅에 설정해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죄악입니다. 오난은 오직 자기 욕심만 채우는 이기주의자였던 것이죠. 10절에 이런 오난 역시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유다는 장성한 두 아들을 잃는 큰 재앙을 맞습니다.
유다집안에 이런 재앙이 임한 뿌리에는 유다의 죄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막내 아들인 셀라가 하난 남았습니다. 셀라는 아직 나이가 어린 아이입니다. 그러나 셀라가 성인으로 자라면 셀라도 다말에게 들어가서 형의 기업을 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유다는 다말에게 셀라가 장성할 때까지 너는 친정집에 가 있어라 합니다. 그런데 유다는 마지막 남은 아들 셀라도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나하여 셀라를 다말에게 보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유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의 죄악입니다.
얼마 후에 유다에게 또 슬픔이 찾아 옵니다. 그것은 아내였던 수아의 딸이 죽은 것입니다. 아내를 먼저 보내고 유다는 슬퍼합니다.
슬픔의 기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양의 털깎는 때가 되어서 유다가 딤나라는 지역으로 갑니다.
양의 털을 깎는 것은 곡물로 따지면 추수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1년 동안 양을 키워서 살을 찌우고 그 털을 깎고 새끼를 치고 잔치집 같은 분위기입니다. 아마도 유다의 기분도 상기되고 포도주로 취해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유다가 집으로 돌아가려고 에나임이라는 성문을 지나는데, 성문에서 어떤 여자가 유다에게 손짓을 하는 것입니다. 가뜩이나 아내를 잃고 외로웠던 유다였는데, 여자가 유다에게 손짓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남자들에게 몸을 파는 창녀로 보였습니다. 유다는 손짓하는 창녀를 보고 몸이 후끈 달구어져서 아무런 저항도 없이 창녀를 따라갑니다. 여러분 창녀에게 정신이 팔려 따라가는 남자를 잠언에서는 소가 도수장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인 것같다라고 정죄하고 있습니다.
창녀가 유다에게 묻습니다. “무엇을 주고 나에게 들어오려느냐” 그러자 유다가 “염소 새끼를 주리라” 합니다. “염소새끼를 줄 때까지 담보물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유다가 담보물로 무엇을 줄까 하니, 당신의 도장과 끈과 당신 손에 있는 지팡이를 내놓으라고 합니다. 유다는 그것을 속히 주고 창녀에게 들어갑니다. 관계를 가진 후 유다는 떠나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것은 유다의 죄입니다. 간음이죠.
그런데 여러분 놀라운 사실은 이 창녀는 바로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었던 것입니다. 며느리인 다말은 시아버지가 셋째 아들 셀라가 장성할 때까지 친정집에 가서 있으라고 해서 셀라가 장성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어린 셀라가 장성하려면 적어도 한 10년은 있어야 하는데, 다말은 시아버지의 약속을 믿고 셀라가 장성한 때를 기다린 것이죠. 그런데 셀라가 장성했는데도 시아버지에게서 아무 소식이 없는 것입니다. 유다는 며느리와 약속을 아예 잃어버렸거나, 지킬 생각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시아버직에게 다말은 큰 분노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다말이 보통여자가 아닙니다. 시아버지가 양털을 깎으러 딤나로 왔다는 소식을 듣고 과부의 옷을 벗고 면사포를 얼굴을 가린채 에나임 성문 입구에서 시아버지가 올 때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다말의 목표물은 오직 시아버지 유다입니다. 유다가 나타나자 그녀는 창녀인척 하여서 시아버지를 유혹한 것입니다. 그리고 시아버지와 관계를 가져 씨를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아주 가증스러운 죄악입니다. 간음죄와 근친상간의 죄입니다. 레20:12에 시아버지가 며느리와 동침하는 것은 가증스러운 것으로 둘 다 반드시 죽이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유다집의 수치스런 사건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유다의 집안에 이런 해괴한 재앙들이 닥친 것의 뿌리에는 유다의 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죄의 길을 자꾸 가면 하나님의 무서운 징계가 임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을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며 말씀을 따라가는 자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늘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는 복있는 사람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왜 성경은 이 수치스런 유다의 죄를 이렇게 드러내는 것일 까요?
그 당시 유다만 이런 죄를 져질렀을 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지파에서도 이런 죄악이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똑같은 것은 아니겠지만 이방여인과의 통혼, 자녀들의 악, 기업을 잇지 않으려는 이기주의, 약속을 어김, 근친상간의 죄, 그러나 성경은 다른 사람들의 죄는 말하지 않고 유다의 이 수치스런 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죠. 그 이유는 유다지파는 하나님의 구속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지파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조국법무부장관 때문에 아주 소란스러운데요, 다른 정치인들의 가족은 조국법무부장관 가족 같은 죄를 져지른 사람이 없을 까요?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조국의 가족의 죄를 밝힌다고 혈안이 되어있는 것일 까요? 예 조국법무부장관이 차지하는 사명, 사법개혁이라는 사안이 아주 중차대하기 때문인 것이죠. 마찬가지로 유다는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이루는 핵심 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유다 지파에서 다윗왕이 나옴으로 유다지파는 이스라엘의 왕족인 것이죠. 그리고 더욱 중요한 유다 지파에서 인류를 구원할 예수그리스도가 나오기 때문인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왕이 되면 족보를 기록할 때 자기 허물은 덮고 좋은 것만 부각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그 죄를 하나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십니다.
왜 그렇게 하시는 것일 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계보가 거룩의 역사가 아니라 은혜의 역사임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유다에게서 왕족이 나오고 세상을 구원하는 메시야가 나오는 것은 유다지파가 거룩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는 것입니다.
도리어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죄가 많은 곳에 더 넘쳐납니다.
지금 유다 집안은요, 죄로 말미암아 완전히 쑥대밭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두 아들이 죽고 아내도 먼저 세상을 떠나고 며느리가 시아버지와 관계를 갖는 등 너무 부끄러워서 말하기 어려운 것이죠. 유다 집안은 다시 회생 될 수 있을 까? 그 당시 사람들이 “유다 집은 패가망신” 했어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회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죠.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요, 회복 될 수 있습니다.
죄가 비록 우리를 파멸로 끌고 갈만큼 강력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죄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그래서 죄로 파멸되어 도저히 회생 불가능해보여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유다가 창녀와 관계 갖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창녀가 자기의 물건들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유다는 급히 친구를 불러서 양 새끼를 주면서 가서 창녀에게 주고 자기 물건을 받아 가지고 와달라고 부탁합니다. 아마도 친구는 1절에 아둘람 사람 히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친구가 에나임 성문에 갔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창녀를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에게 물으니까 여기는 창녀가 없느니라 그러는 것입니다.
친구는 유다에게 와서 창녀를 찾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한 3개월 정도 지났는데,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와서 “당신의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므로 임신하였느니라” 합니다. 여기서 행음하였다는 것은 매춘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유다는 진노하여서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합니다. 보통은 돌로 쳐죽이는데, 불사르라고 한 것은 그 만큼 유다의 노가 극심했음을 말해줍니다.
사람들이 가서 다말을 불사르기 위해 끌어내는데요, 다말이 끌려나갈 때 사람을 보내어 시아버지에게 이 물건의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했음을 알립니다. 25절 읽읍시다.
창 38:25 여인이 끌려나갈 때에 사람을 보내어 시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나이다 청하건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 한지라
유다가 그것을 알아보고 엄청난 충격에 빠지면서 유다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녀가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녀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유다는 자신의 잘못을 그대로 인정하고 이 모든 것이 자기의 책임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 유다는 다말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다 했습니다.
유다는 자신의 죄를 자백한 것이죠.
이런 유다집에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집니다. 그것은 다말 잉태함으로 유다의 장자의 계보를 이은 것입니다. 다말은 베레스와 세라라는 쌍둥이를 낳게 되는데, 이들을 통하여 구속의 계보가 이어져 가게된 것입니다. 베레스의 계보를 통하여 다윗왕이 나오고 훗날 예수그리스도가 나오죠. 롬5:20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치니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상한 갈대 도 꺽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혹시나 여러분의 삶에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습니까? 어떤 재앙이 임했습니까? 큰 시련 가운데 있습니까?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완전히 회복될 뿐만아니라 더 크게 번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시며 자신을 성결케 하십시오. 반드시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