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2022.6.26 주일오전예배설교> 그리스도의 생활 원리 (골3:15-25)

박선준목사 2022. 6. 29. 12:54

그리스도인의 생활 원리

우리 삶의 터전을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가정이고 또 하나는 직장이죠. 여기서 직장이라고 하면 꼭 회사에 나가서 일하는 것만 아니라, 각자 자기가 하는 주된 일을 말합니다.

여러분 가정생활, 직장생활을 잘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안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가정생활과 직장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요? 그 정답은요 하나님 말씀대로 하면 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가정생활을 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직장생활하면 우리의 삶은 반드시 승리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만드신 세상이고 또 하나님 말씀으로 다스리시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결국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 말씀만이 남고 말씀만이 이루어질 뿐입니다. 말씀이 바로 진리인 것이죠. 그래서 우리의 모든 생활의 원리는 말씀에서 나와야 합니다.

어떻게 나의 가정생활을 해나갈까? 그 원리를 어디서 찾습니까? 하나님 말씀입니다. 어떻게 직장생활을 잘해나갈까? 그 원리를 어디서 찾아요? 예 하나님 말씀입니다. 우리 모든 삶의 원리를 하나님 말씀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은 올바른 길을 걷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서 벗어난 생활은 잘못된 것입니다.

65절에 보시면 사람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하나님이 한탄하셨다 되어있는데요, 그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악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악하다고 하시는 것일까요? 그 당시 사람들은 다 도둑질하고 살인 강간 그런 계획만 세웠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노아시대 그 당시 사람들이 계획한 것은 오늘 우리와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17:27에 나오죠.

17: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그들이 계획한 것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악한 것입니까?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들이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악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왜 하나님은 그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는 것을 악하게 보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그들의 생활의 원리가 하나님 말씀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자기를 위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그들의 생활원리는 하나님 말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서 나온 것일 뿐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땅에서 잘먹고 잘살수 있을까?” 하며 가정생활을 하고 직장생활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들의 계획을 악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세상 모든 사람도 다 그와 같은 생활원리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그런 생활원리 즉 오직 자기를 위하는 생활원리를 가지고 가정생활과 직장생활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럼 어떻게 생활해야 해요? 예 하나님 말씀이 가정생활을 어떻게 하라고 하는가? 직장생활을 어떻게 하라고 하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생활의 원리를 말씀에서 찾고 그것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생활하라고 하실까요?

한 번 따라합시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의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우리의 생활 속에 평강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평강은 어떤 평강에요? 예 그리스도의 평강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의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강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평강은 어떤 평강일까요?

이 평강은 먼저 이 세상에서 어떤 핍박과 환난을 당해도 흔들리지 않는 평강입니다.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유지되는 평강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예수님이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이 무엇일까요?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입니다. 이 말씀은 내가 죽음을 이기고 살아났다. 이 세상에 너희를 해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마가4장에 예수님이 바닷가에서 무리들을 가르치신 후 날이 저물 때 제자들에게 저 건너편으로 가자 하십니다. 그래서 배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큰 광풍이 일어나 물결이 배를 덮쳐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됩니다. 제자들은 이제 우리는 죽었구나하고 공포에 질려있는데, 그런데 예수님이 배 뒤쪽에서 주무시고 계신 것입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웁니다.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일어나셔서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더러 잔잔하라 하시니 방금전까지 죽일 것처럼 달려들던 바람과 파도가 그치고 잔잔해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꾸짖으십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으냐 하십니다.

예수님이 광풍 앞에 평강을 잃어버린 제자들을 꾸짖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하시는 것이죠. 내가 함께 배를 타고 있는데, 무엇을 염려하느냐 왜 무서워하느냐하시는 것이죠. 부활하신 예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여러분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마시고 예수님이 주시는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주장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생활하라고 하실까요?

가정을 잘 세워나갈 것을 말씀하십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근본적인 터전입니다. 가정은 우리의 삶에 기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우리의 가정을 잘 세워나갈 까요?

먼저 권위가 잘 세워져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에서 권위는 아내의 머리는 남편이라는 것입니다. 즉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복종은 절대로 강압적인 복종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발적인 복종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마치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처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인도하는 곳은 어디든지 따라갑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복종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가정에 세워주신 권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내의 머리로 남편을 세우셨습니다. 아내가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고 잘 따르고 도울 때 그 가정에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임하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아내가 남편의 권위를 무시하고 남편을 주장하려고 하면 그 가정에 평강이 깨어지게 됩니다. 권위가 무너지면 가정 뿐만아니라 어떤 공동체든 제대로 설 수 없습니다. 아내는 하나님이 남편을 자기의 머리로 세우셨음을 인식하고 그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아내의 머리라고 해서 남편이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남편의 머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남편의 머리는 누구일까요? 예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남편은 오로지 예수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가정을 이끌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리고 늘 기도하는 자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아내와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남편이 예수그리스도를 따르고 아내가 남편을 따르고 그럴 때 그 가정은 올바르게 세워지고 그리스도의 평강을 지켜나갈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가정을 잘 세워나가려면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듯이 그렇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교회를 위하여 어떻게 하셨죠? 예 자기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교회를 위하여서 자기의 모든 것을 내어주신 분이십니다. 남편도 아내에게 이와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즐겁게 해주어야 합니다. 아내의 행복을 위해서 남편은 부지런히 힘써야 합니다. 집안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음식 만드는 것도 돕고 아내와 함께 외식도 하고 아내가 원하는 것을 되도록 최대한 들어주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아내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아내를 무시하는 남편은 자기를 무시하는 것이고 자기 몸을 해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아내를 괴롭게 하지 말라라고 명령하고 있는데요. 이것은 아내 사랑의 최소한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괴롭게 하지 말라는 것은 짜증나지 않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언제 남편이 아내를 짜증나게 할까요? 아내의 입장을 베려하지 않고 남편이 자기 위주로 가정을 이끌고 나갈 때입니다. 아내와의 소통이 무척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결정권을 남편에게 주셨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아내를 남편을 돕는 베필로 세우셨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도움을 받을 때 비로써 온전하게 가정을 세워나갈 뿐만아니라 사회생활도 더욱 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은 아내와 끊임없이 소통해야 합니다. 여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늘 아내의 생각을 물으며 거기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내를 돕는 배필로 주셨기에 아내의 도움을 잘 받는 남편은 점점 온전해지고 하나님의 뜻을 잘 알게 됩니다. 그러나 아내를 무시하고 아내의 말을 듣지 않는 남편은 아내의 도움을 받지 못하여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늘 부족하여 잘못된 길로 가기가 쉽상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하나님이 아내를 나의 돕는 자로 보내신 귀중한 배필임을 알고 늘 소통하며 사랑해야 합니다. 

이렇게 남편이 아내를 내 몸처럼 사랑하고 아끼고 베려할 때 남편과 아내는 온전한 한 몸됨을 이루어가게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자녀는 부모님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여기서 순종하다의 의미는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라 하였던 것에 비해 더 강제적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수평적 관계에서 아내가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것인데요, 그런데 자녀와 부모는 수평적 관계가 아닙니다. 부모는 자녀위의 존재로 하나님이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는 부모를 하나님처럼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님이 말씀하시면 결코 가벼이 여겨서는 안됩니다. 부모님의 말이 곤란하지 않고 불편하지 않을 경우에만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20절에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에서 모든 일이란 부모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힘이 들고 자기의 뜻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나의 관심분야가 아니더라도 그것이 어떤 것이든 거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할 때 그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공경하는 자식들에게 하나님이 약속을 주십니다.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다는 것은 네가 하는 일들이 형통케 되는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자녀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여 자극시키지 말라는 것인데요, 그러려면 부모가 자녀의 상태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자녀의 상태를 잘 파악하려면 부모는 자녀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의 말을 들으려면 같이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특히 아비들, 일이 바쁘다고 자녀와 만남의 시간을 갖지 않으면 점점 자녀와의 소통이 어렵게 됩니다. 일과를 마치면 곧바로 가정으로 돌아와 가정을 지켜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의 말을 잘들어줄 때 자녀는 부모에게 자기를 나타나게 되고 말하게 됩니다. 만약 부모가 자녀에게 무엇을 하라고 요구만하고 자녀의 말을 듣지 않으면 그 자녀들은 부모에게 마음을 닫고 자기를 나타내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자녀를 노엽게 하기가 쉽죠. 하나님이 우리의 말을 언제나 들어주듯이 자녀의 말을 잘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해야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가족이 같이 모여 찬송부르며 말씀을 읽고 나누고 암송하고 하는 가정예배는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고 자녀들과 얼굴을 맞대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죠.

이렇게 하나님 말씀의 원리를 따라 가정생활을 해나갈 때 그 가정은 올바로 세워져 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생활하라고 하실까요?

자기 일에 성실할 것을 말씀합니다.

3: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자기 일을 해나갈 때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라합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며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잘보이려고 일을 하며 사람이 안볼 때는 불성실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보든 안보든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게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성실함의 본을 한 사람 꼽으라면 요셉을 말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보디방 장군의 노예로 팔려왔는데요, 그는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게 일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고 그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복이 임하였죠. 보디발 장군은 요셉위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요셉을 가정 총무로 세워서 집안의 모든 일을 다 맡기죠. 요셉이 감옥에 들어갔을 때도 요셉은 간수장에게 신임을 얻어 죄수이면서 다른 죄수를 관리하는 일을 합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도. 애굽왕은 하나님이 요셉위에 함께 하심을 보고 나라의 살림의 전권을 요셉에게 맡기는 것을 봅니다. 요셉이 그런 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요셉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성실히 일하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 앞에서 성실히 일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시면서 복을 주실 줄을 믿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를 따라 생활해나가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이 다음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귀한 상을 내려 주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