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2022.7.10 주일오전예배설교> 내 안에 나발을 제거하라 (삼상25:1-28)

박선준목사 2022. 7. 10. 16:01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하자 다윗은 사울을 피해 도망을 다닙니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다윗은 사울왕의 군대장이었는데, 도망자의 신세가 된 것이죠. 그런데 이런 도망자의 신세가 된 다윗에게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다윗의 부하들이 어느새 600명가량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갈멜이라는 곳에 사울을 피해 숨어지냅니다. 그런데 그 지역에 많은 가축을 기르는 큰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양이 삼천, 염소를 천 마리나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나발이라는 자입니다. 나발의 뜻은 어리석은, 미련한 그런 뜻입니다. 왜 나발의 부모는 자기 자식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발은 그 이름 그대로 어리석고 미련한 자였습니다.

3절 끝에 보시면 그는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다 라고 되어있었습니다. 완고하다는 것은 고집이 세고 자기 잘못을 뉘우칠 줄 모르는 그런 자라는 것입니다. 나발은 이렇게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였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의 아내는 아주 지혜롭고 외모도 아름다운 아비가일이라는 여인이었습니다.

나발은 종들을 시켜 양의 털을 깎는 일을 하였습니다. 양털을 깎는 것은 농부들이 농작물을 추수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때는 잔치가 벌어지고 사람들은 즐거워합니다. 나발도 잔치를 크게 배설하고 즐거워합니다.

그런데 다윗의 부하 10명이 찾아옵니다. 이들이 찾아온 이유는 한마디로 먹을 것을 나누어달라는 것입니다. 다윗의 부화들이 먹을 것을 달라고 하는 이유는 그동안 다윗의 군대가 나발의 목장 옆에 진을 치고 있으면서 그들의 울타리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고대시대때는 도적떼 같은 것들이 약탈을 일삼을 때가 많았습니다. 도적떼가 나타나면 목장들은 큰 손해를 보게 되죠. 그런데 다윗군대가 나발의 목장 옆에 있으면서 울타리 역할을 하므로 도적떼나 다른 이방민족이 나발의 목장을 약탈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덕분에 나발의 목장은 아주 평화로운 가운데 양도 잃지 않고 양떼를 잘 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이런 은공을 나발이 알아주리라 생각하고 부하들을 보내어 먹을 것을 얻어 오라고 시킨 것입니다. 다윗의 부하들이 나발에게 와서 다윗의 말을 전합니다.

댁에서 양털을 깎고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댁의 목자들이 우리와 함께 있었는데 우리는 그들을 괴롭힌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갈멜에서 양을 치는 동안 한 마리도 잃지 않았습니다. 그 사실을 댁의 일꾼들에게 물어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이 즐거운 날에 우리가 찾아왔으니 다윗을 당신의 아들처럼 여기시고 저희들에게 먹을 것을 좀 들려서 보내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나발은 다윗의 부하들을 환대하며 그동안 우리 목장을 지켜주어서 고맙소 하며 먹을 것을 왕창 싸주었으면 아주 좋았을 텐데, 나발은 이름 그대로 미련한 자로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도리어 다윗을 모독하는 말을 합니다.

삼상 25:10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삼상 25:11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하며 다윗의 부하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냅니다. 부하들이 가서 나발이 한 말을 그대로 다윗에게 전합니다. 그러자 다윗이 엄청나게 분노하며 말합니다.

삼상 25:21 다윗이 이미 말하기를 내가 이 자의 소유물을 광야에서 지켜 그 모든 것을 하나도 손실이 없게 한 것이 진실로 허사라 그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는도다

삼상 25:22 내가 그에게 속한 모든 남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아침까지 남겨 두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다윗은 그 자리에서 400명의 군사들에게 칼을 차라고 명령하고 그 즉시 나발의 집을 치러갑니다. 다윗의 군대는 여러 시련을 통하여서 아주 단련된 군사였습니다. 나발의 집을 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 것이죠. 이제 잠시 후면 나발의 집은 피바다가 되고 말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 급하게 다윗에게 가서 엎드려 사죄하므로 나발 집안이 피바다가 되는 것을 겨우 막습니다.

그런데 나발은 이런 상황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왕처럼 잔치를 배설하고 부어라 마셔라하고 있습니다. 나발은 이름 그대로 어리석고 미련한 자였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이 나발과 같은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나발임을 말씀합니다.

3: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3: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3: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가 다 어리석고 미련한 나발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나발은 왜 이렇게 어리석은 자가 된 것일까요?

그 이유는 먼저 그가 재물의 욕심에 사로잡혀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세상 재물 욕심에 사로잡히면 상황인식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철저하게 눈과 귀가 가려지는 것이죠. 내가 누구인지, 지금 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알지 못한채 바로 코 앞에 이득만을 추구하며 살게 됩니다.

예수께서 마태6장에 이런 말씀하십니다.

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이 세상의 삶의 목적이 이 땅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돈 많이 벌고 높은 자리 올라가고 출세하는 것이 나의 삶의 목적이 되면 그 사람의 눈과 귀는 다 가려집니다.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에는 소홀하게 되고 오직 이 땅에 자기의 영광을 위해서 보물을 쌓는데 모든 힘을 쓰게 되는 것이죠. 고대시대때 그 당시 최고의 부자였던 욥이 고백하죠.

1: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우리가 이 세상 올 때 알몸으로 왔고 또 돌아갈 때도 알몸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욕심을 부려도 단 하나도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 세상에 자기 보물을 쌓으려고 하는 자는 나발과 같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나발이 자기의 목에 칼날이 날아오고 있는데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 땅에 자기 보물을 쌓는 자는 자기 앞에 영원한 멸망이 있다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늘에 자기 보물을 쌓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으면 그것은 어느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으며 그것은 영원히 남는 것입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 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예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돈을 벌고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모두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입니다. 10:42에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작은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떠주는 것도 결단코 상을 잃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사는 삶은 단 하나도 헛된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 삶은 다 하늘에 나의 보물이 되어 쌓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수입이 생기면 이것은 내거니까 나를 위해서만 써야해 이런 생각을 버리십시오. 이 세상에 내 것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 몸도 내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가 가진 재능, 재물, 무엇이든 우리 스스로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하나님 뜻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수입이 생기면 먼저 하나님께 드릴 것을 구별하십시오. 성경은 크게 십일조와 감사예물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가난한 이웃과 나누십시오. 가난한 이웃과 나눔의 지혜로는 정기 후원을 신청하는 것입니다. 요즘에 여러 NGO단체에서(기아대책,월드비전,유니세프,국경없는 의사회 등등) 가난한 이웃을 위해 여러 구제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곳에 정기적으로 후원을 신청을 하는 것입니다. 저희 가정 같은 경우는 월드비전에서 연결 시켜준 엘사바도르에 하손과 가나에 이씨프 라는 아이들을 돕고 있는데요. 이들을 재정적으로만 돕는 것이 아니라 매일 이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영적 육적으로 돕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입니다. 이런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재물의 욕심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발은 다윗의 부하들이 먹을 양식을 나누어 달라고 했을 때, 이렇게 말합니다.

삼상 25:11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내가 어찌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고기를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하며 박대하는 것을 봅니다. 나발은 모든 것이 내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나누고 베푸는 삶에는 인색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는 왕처럼 잔치를 배설하며 호화롭게 살지만,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인색한 것이죠.

여러분 내 것이란 것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예수그리스도께서 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까? 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그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사망에서 구원을 받아 새로운 생명을 얻은 우리들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값으로 구원을 받아 생명을 얻었는데, 어떻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내것을 주장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평생 값아도 갚을 수 없는 빗진 자일 뿐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나의 삶을 기꺼이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삶을 살 때 우리는 눈이 열려지게 됩니다. 내가 어디서 왔고 왜 살고 또 어디로 가는지 알게 되어서 우리 안에 있는 나발의 미련함을 벗어 버리게 됩니다. 자기를 위하여 하늘의 보물을 쌓는 복된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발은 왜 이렇게 어리석은 자가 된 것일까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발은 자기의 양이 삼천이요 염소가 천마리가 된 것이 자기가 노력해서 자기 힘으로 이룬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바로 나발의 생각인 것입니다. 이런 미련한 생각에 사로잡힐 때 감사가 사라지고 만족이 사라지고 평안이 사라지고 기쁨도 사라집니다. 이 사람은 자기 능력과 자기 힘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감사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코 만족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화장실 하나있는 집에 살때는 화장실 두 개있는 집으로 가면 좋겠다 하지만 막상 두 개 있는 집으로 가면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더 넓은 집으로, 마당이 있는 집으로, 별장도 있으면 좋겠다, 빌딩하나 가지면 만족하겠다 하지만 결코 만족이 없습니다. 그리고 내 힘으로 살기 때문에 늘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가진 재물, 명예, 권력 이런 것을 자기 힘으로 지켜나가야 하니까 늘 불안한 것이죠. 어떤 도둑놈이 우리 집을 털면 어떻게 하지, 집안에 곳곳마다 보안 설치하고 그것도 불안해서 경호원을 두고 결코 그 삶에 평안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럼 자연히 기쁨이 사라지는 것이죠.

우리 안에 있는 이 나발, 미련은요 자기 힘으로 이 세상을 살아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사실 나발이 양 삼천 염소 천을 이루며 살 수 있었던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군대가 나발의 목장 옆에서 울타리가 되어줌으로 나발의 목장은 도적떼의 침입을 받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발은 그 은혜를 알지 못했습니다. 자기가 잘나서 자기가 잘해서 목장이 잘된 것으로만 생각하는 것이죠. 그래서 다윗에게 감사할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은혜를 알지 못하는 미련한 나발은 결국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도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담이 되어주시고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감사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나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릴 때 우리의 삶에는 범사에 감사가 넘치고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속에 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평안을 잃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이죠.

내 힘으로 살아가야해 이것은 나발의 생각입니다. 내 힘을 빼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을 고백하십시오. 그것이 진리이고 그것이 지혜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안에 제거해야 할 나발은 내가 직접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나발의 모습이 놀랍게도 오늘 본문에서 다윗에게서 나오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골리앗을 물리치고 언제나 믿음으로 살던 다윗인데 그 다윗에게서 나발의 미려한 모습이 나오고 있습니다.

나발이 다윗의 청을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다윗을 비웃었다는 소식이 들려지자 다윗이 어떤 반응을 보였죠. 예 자기 부하 400명에게 즉시 칼을 차라 명하고 나발을 죽이러 가는 것입니다. 나발뿐만 아니라 나발에 속한 모든 남자를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자기의 손으로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 것이죠. 이것은 결코 지혜가 아닙니다. 그럼 원수는 어떻게 갚는 것이 지혜입니까? 예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나발이 나를 무시하고 나를 비웃었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 것이죠. 하나님 저 나발이 저를 무시하고 저를 비웃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옵소서. 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원수 갚는 것입니다.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이 말씀은 원수를 용서하라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에 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같은 죄인을 위해 죽으시고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주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겨드릴 때, 우리는 진정으로 승리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다윗이 칼을 들어 나발 집안에 남자들을 다 쳐 죽였다면. 다윗은 평생 뼈를 깎는 후회를 했을 것입니다. 그 피흘림에 대한 가책 이 평생 그를 괴롭혔을 것입니다.

다행히 지혜로운 여인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 중간에 나서서 다윗의 화난 마음을 풀어주고, 직접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게 해주죠. 그래서 다윗이 원수 갚는 것을 중단하고 그냥 돌아갑니다.

아비가일이 나중에 남편 나발이 술이 깬후에 다윗이 우리를 죽이려 했다는 일을 말하자 나발은 낙담하여 몸이 돌같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10일일 지난후 하나님이 나발을 치심으로 나발이 죽습니다. 하나님이 원수를 갚으신 것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하고 누군가로부터 욕을 먹고 비웃음을 당해도 직접 내가 원수를 갚으려 덤벼드는 것은 미련한 것입니다. 그때는 즉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인도해주세요. 그럴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있는 미련한 나발을 잘 제거하셔서 복되고 승리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