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주보

<주일오전설교> 멀리 내다보는 고수 (창23장)

박선준목사 2019. 2. 11. 12:59





멀리 내다보는 믿음

   

  혹시 바둑을 둘줄 아시나요? 저는 바둑을 둘 줄 모르는데요, 바둑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누가 더 멀리 보느냐에 달려있다고 합니다. 바둑에서 초보자들은 기껏해야 한수 두수를 보는데 고수들은 100수 까지도 내다본다고 합니다. 초보자들은 바로 코앞에 먹을 것이 있으면 덥석 먹어버리는데, 고수들은 먹지 않고 다른 수를 두는 것이죠. 그렇게 하는 것은 더 멀리를 바라보기 때문이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바둑세계에서 고수와 같은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아주 멀리를 바라보며 사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멀리를 볼 수 있는 고수가 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으로 이 세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시는 분이죠. 하나님에게 시간은 의미가 없습니다.

벧후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 천 년 같고 천 년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해 계신 분입니다. 물론 시간을 초월하다는 것이 우리는 무엇인지 알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이 세상의 끝날 까지 다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앞으로 되어 질 것에 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그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앞으로 이루어질 약속을 바라보기에 멀리를 내다보며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멀리까지 내다 볼 수 있는 사람이 고수입니다.

하수하고 고수가 싸우면 누가 이기겠습니까? 예 당연히 고수가 이깁니다. 처음에는 하수가 몇 집 더 빨리 짓는 것 같지만, 나중에 고수한테 모든 집을 다 빼앗겨 버립니다. 고수가 이기는 것은 멀리까지 내다 볼 수 있기 때문이죠.

오늘 저와 여러분은 삶 속에서 멀리까지 내다보며 살아가는 삶의 고수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럼 여러분 어떻게 하면 인생을 멀리까지 내다보는 삶의 고수가 될 수 있을 까요?

한 번 따라합시다. 하나님의 약속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오늘 아브라함은요, 600년 후의 일을 내다보면서 그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아브라함은 600년 후의 일을 내다보면서 행동을 하는 것일 까요? 예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향년 127세를 살다가 헤브론 땅에서 죽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약 100년 정도를 부부로 같이 산 것이죠. 아브라함의 슬픔이 아주 큰 것을 봅니다. 2절에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인데 이것은 사라가 죽자 큰 슬픔 속에서 통곡하며 눈물을 쏟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한 참 슬퍼하다가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찾아갑니다. 헷족속은 오래전부터 헤브론 땅에서 살던 자들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들에게 찾아간 것은 사라의 아내를 매장할 매장지를 구하기 위함입니다. 이 고대시대 때는 주로 동굴 무덤을 썼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사라의 장사를 위해 동굴을 사려고 합니다. 4절에 보시면

23:4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나는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나그네와 거류자는 땅을 살 수 없습니다. 땅을 살 수 있는 자는 헤브론에 사는 시민이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땅을 살 수 없는 자인 것이죠. 그래서 헷 사람들은 아브라함에게 땅을 팔지 않으려고 합니다.

23:6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헷족속은 아브라함에게 아주 깍듯한 존칭을 붙입니다. 그것은 그만큼 아브라함의 세력이 컸다는 것이죠. 그리고 전에 조카 롯이 연합군에게 포로로 끌려갔을 때, 아브라함이 자기가 길리고 훈련된 자 318명과 그 당시 헤브론에 살던 이웃을 동원하여서 연합군을 쫓아가서 연합군을 파쇄시키고 롯을 구출해왔었습니다. 헷사람들은 이런 아브라함의 용맹을 알고 있었고 또 하나님역사로 아브라함이 복을 받는 것을 보고 더욱 아브라함 높이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6절에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십니다. 하고 높이는 것이죠. 그러면서도 헷사람들은 아브라함에게 땅을 팔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라 매장지를 그냥 보기에 좋은 굴을 선택해서 쓰라는 것이죠. 아무도 금할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아브라함은 감사합니다. 하고 아무 묘실을 택해서 사라를 장사지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고 어떻게 서든지 사라의 매장지를 사려고 합니다.

그것도 막벨라 라는 굴을 지명하고 사려고 합니다.

그래서 7절에 보시면 다시 아브라함이 일어나서 헷 족속에게 몸을 굽힙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아주 정중한 태도이죠, 아브라함이 이렇게 정중히 몸을 굽히는 것은 사라의 매장지를 꼭 사려고 하는 간절한 태도입니다. 나그네와 거류민들은 땅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아브라함은 잘 알기에, 아주 정중한 태도록 간절히 부탁하는 것이죠.

23:8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23:9 그가 그의 밭머리에 있는 그의 막벨라 굴을 내게 주도록 하되 충분한 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 당신들 중에서 매장할 소유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하매

그러니까 막벨라 굴을 내가 충분한 가격을 주고 살테니 그 굴의 주인인 에브론에게 말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헷족속 사람들 중에 당사자인 에브론이 앉아있었던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나와서 헷족속들이 듣는 데서 말합니다.

23:11 내 주여 그리 마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내가 그 밭을 당신에게 드리고 그 속의 굴도 내가 당신에게 드리되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에게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매장할 굴만 주는 것이 아니라 굴을 둘러싼 밭까지도 준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파격적인 조건이죠. 그런데 에브론이 속으로는 딴 생각을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땅을 무상으로 준다고 말하는 것은 다른 헷족속 사람들을 듣게 하기 위한 인사치레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나그네인 아브라함에게 땅을 팔지 않는 것이 규율이기 때문에 자신이 규율을 어기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기 위함인 것이죠. 그러면서 에브론의 속 마음은 땅을 비싼 가격에 팔기를 원합니다. 그의 속샘은 금방 드러납니다. 에브론이 무상으로 밭과 굴을 준다고 하자

아브라함이 또 백성들 앞에서 몸을 굽힙니다.

23:13 그 땅의 백성이 듣는 데서 에브론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하건대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 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

그러자 에브론이 슬며시 땅 값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돈을 굳이 주지 않아도 된다고 인사치례 말을 합니다.

23:15 내 주여 내 말을 들으소서 땅 값은 은 사백 세겔이나 그것이 나와 당신 사이에 무슨 문제가 되리이까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땅 값을 말하고 그거 주지 않아도 됩니다 이건데요, 이 말은 땅값을 내고 사라는 것이죠

그러자 아브라함이 에브론이 밭과 굴을 팔려고 한다는 것을 금새 눈치 채고 은400세겔을 주고 밭과 굴을 사서 사라를 장사지냅니다.

23:16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따라 에브론이 헷 족속이 듣는 데서 말한 대로 상인이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그런데 여러분 은 사백세겔은 너무 비싼 가격입니다. 400세겔은 4600그람의 무게로 은 1200돈의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장정노예가 20세겔 인데, 장정노예 20명을 살 수 있는 값입니다. 에브론은 마치 땅을 무상으로 줄 것처럼 말하지만 땅 값을 아주 비싸게 부르며 그것을 파는 것이죠. 에브론이 땅값을 아주 비싸게 불렀는데, 아브라함은 아무소리 안하고 그 즉시 은400세겔을 달아서 에브론에게 줍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까지 땅을 살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 까요? 사랑하는 아내의 장사를 성대히 치루어 줄려고-- 아닙니다. 지금 아브라함은 짧게는 약600년 후의 일을 내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 땅이 이방인들의 땅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한 약속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언젠가 하나님이 이 가나안 땅을 자기 후손들에게 줄 것을 분명히 믿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땅을 훗날 주실 것을 믿었다면 굳히 비싼돈 주고 땅을 살필요가 있나? 라는 의문이 듭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이 없네, 하나님이 주실 것을 믿고 가만이 있으면 되는데-- 그런데 여러분 아브라함이 사라의 매장지를 살려고 하는 것은 불신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들려준 예언 때문일 것입니다. 그 예언은 15장에 나와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400년 동안 이방인의 땅에 들어가 괴롭힘을 당한다는 예언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그 이방 나라를 징벌하시고 다시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약속의 땅으로 이끄신다는 것이죠. 아브라함은 이 하나님의 예언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죽음을 보면서 자신도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을 것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은 자기 자손들이 이방나라에 들어갔다가 다른 곳으로 흩어지지 않고 약속의 땅으로 모여 들게 하기 위해서 굳이 값을 주고 땅을 사서 아내를 장사지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땅은 하나님이 주시기로한 약속의 땅임을 후손들에게 알리는 믿음의 표시인 것입니다.

이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200여년 후에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 때에 이스라엘백성들은 애굽나라에 들어갑니다. 야곱은 애굽에서 죽는데요, 야곱의 유언이 무엇이냐면 자기가 죽으면 자기 뼈를 자기 조상들의 무덤인 막벨라굴에 묻어달라는 것입니다. 이 유언대로 당시 애굽의 총리였던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시신을 가지고 400키로 떨어진 헤브론 막벨라 굴에 장사를 지내죠. 여러분 요셉이 아버지 시신을 막벨라 굴에 묻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 까요? 예 이곳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의 땅이라는 믿음을 확고히 하는 것이죠. 아브라함의 믿음이 200년이 넘은 요셉에게 그대로 전수되는 것입니다.

훗날 요셉도 애굽에서 죽는데요, 요셉의 유언도 무엇이냐면 이스라엘백성이 이 애굽땅에서 나갈 때 자기 유골을 가져다가 저 약속의 땅에 묻어달라는 것입니다. 그 후 이스라엘백성들은 400여년간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게 되죠. 그리고 예언대로 하나님의 강력한 권능으로 이스라엘백성은 애굽에서 나오게 되죠. 이 때 모세가 이스라엘백성을 데리고 나오는데요, 모세가 나오면서 빠뜨리지 않고 가지고 나온 것이 무엇일 까요? 얘 요셉의 유골입니다. 유골을 애굽에서 가지고 나와서 약속의 땅에 묻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600년 후의 일을 믿음의 눈으로 내다본 것입니다. 그리고 에브론에게서 막벨라굴과 밭을 산 것입니다. 에브론은 터무니 없이 비싸게 400세겔을 불렀지만, 그러나 아브라함에게는 그 땅의 가치는 400세겔 아니 4000세겔 보다 더 가치있는 땅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에브론이 부르는 대로 다 주는 것이죠.

에브론은 아주 장사수완이 뛰어난 고수였습니다. 헷사람들에게는 자기가 규율을 잘 지키려고 땅을 그냥 주려고 했다는 것을 알리면서, 또 아브라함에게 큰 인심을 쓰는 것처럼 하면서 땅 값은 아주 비싸게 받아 챙기는 13조의 수완을 발휘한 것이죠. 그러나 아브라함은 훨씬 고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땅을 삼으로 자기 자녀 손들에게 이 땅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임을 확실히 표시할 수 있게 되었고, 훗날 이 가나안 땅 전체는 아브라함의 자손의 소유가 되는 것이죠. 헷족속들은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예수님께서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밭의 땅속에 보화가 묻혀있는 것을 발견한 농부는 자신의 전 재산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사는 것입니다. 밭의 주인이 아무리 밭의 값을 비싸게 부르더라도 사는 것입니다. 왜요? 보물을 발견했기 때문이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썩어질 땅에서 썩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나라라는 보화를 발견한 자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바로 눈앞에 이득을 추구하며 살지만 그러나 우리 믿는 자들은 그것보다 훨씬 가치있는 것을 추구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사도바울은 전에 자기가 추구하던 것을 이제는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합니다.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예수그리스도라는 저 하늘의 보화를 발견한 사도바울은 평생을 달음박질 하였습니다.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그리고 그가 로마감옥에 갇혀 죽을 날이 얼마남지 않았을 때 그는 고백합니다.

딤후 4: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딤후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사도바울은 인생의 고수였습니다. 그는 이 땅에 삶을 살면서 저 하늘의 푯대를 바라고 달음박질 함으로 하늘의 영원한 의의 면류관을 받은 것이죠. 그런데 그는 이것은 자기에게만이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라 말합니다. 이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저 하늘의 보화를 발견하고 기꺼이 자기의 삶을 주를 위해 살다가 떠나갔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사도바울과 같이 영원한 의의 면류관을 받은 줄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십시오. 하나님이 약속은 이 세상 어떤 것 보다도 확실한 것입니다. 아브라함 처럼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으면 우리의 눈도 저 멀리를 내다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겨납니다.

그런 안목이 생겨나면 세상 사람들처럼 바로 앞에 이득을 따라서 이리 저리 방황하는 삶을 그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의 때를 기다리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서 기꺼이 나의 삶을 내어줄 수 있게 됩니다. 지금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없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더라도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전진하십시오.

아브라함도 평생을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지만 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어온지 60년이 넘어도 땅 한평 차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이 땅이 이방인들이 차지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 땅은 머지 않아 나의 자손들이 차지할 땅임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확증하기 위한 표시로 에브론에게 비싼 값을 치르고 밭과 막벨라굴을 사서 아내 사라를 거기에 장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23:20 이와 같이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이 헷 족속으로부터 아브라함이 매장할 소유지로 확정되었더라

이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대로 이루어지게 되어,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차지했으면, 이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어 열국의 아비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아브라함이라는 이 믿음의 조상을 통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도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의 안목으로 먼 곳을 내다보며 살아서 복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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