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2020.9.27 주일오전예배설교>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하라(벧후1:1-11)

박선준목사 2020. 9. 28. 03:57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어떻게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나?

힘써 신의 성품에 참여해야 한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으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택하셔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첫 출발점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지 않고 택하시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었던 것이죠. 우리는 죄가운데에 세상에서 방황하다가 멸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선을 행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으로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출발점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출발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예배의 자리에 나온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부르시고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써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 전에는 세상 사람들과 같이 살았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살아가야 하는 것이죠. 그러려면요 나는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임을 확고이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너도 우리처럼 살아야 돼!! 살아남고 싶으면 따라와하고 계속 미혹하고 압박을 가하기 때문입니다. 악한 마귀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망해!!” 라고 속이려 드는 것이죠. 그때, 우리는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원수 마귀는 떠나가라 하고 물리쳐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은 멸망할 세상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죠? 예 예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이죠. 7:13에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고 들어가는 자가 많다 했습니다. 이 세상은 멸망할 세상이라는 것이죠.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내가 다시 오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시 올 때는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산자들입니다. 절대로 죽은 자들을 따라가서는 안되는 것이죠. 우리는 이 세상은 멸망 받을 세상임을 명심하고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이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시고 택하셨음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나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의 믿음을 굳건하게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날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굳건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예 믿음대로 살아야 합니다. 야고보서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했습니다. 믿음이 있다하면서 믿음대로 살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죽는다는 것이죠. 믿음은 반드시 행함으로 나타나야 산믿음이 되는 것이죠. 믿음대로 살 때 우리의 믿음은 더욱 굳건해지는 것입니다.

마태6장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리라 했습니다. 그럼 믿음을 가지고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월급100만원을 받았습니다. 집세20만원내야하고 전기세 물세 주민세도 내야하고 기름도 채워넣어야 하고 쌀도 사야하고 반찬도 사야하고 옷도사야 하고 이발도 해야되고 자동차도 고쳐야하고 쓸데가 엄청 많습니다. 그런데 월급 받자마자 하나님께 드릴 것부터 구별하는 것입니다. 십일조10만원 감사헌금5만원 정도 구별하고 나머지 85만원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채워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는 것입니다. 아 그런데 놀랍게도 한 달을 살고 났는데, 5만원이 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채우심을 체험하는 것이죠. 그럴 때 우리 믿음이 굳건해 지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신다 하고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렇게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을 점점 닮아가게 됩니다. 부부가 서로 닮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왜냐하면 매일 매일 만나고 서로 대화나누고 그러다보면 말도 생각도 행동도 비슷해지는 것이죠. 그와같이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면 어느순간 우리의 생각도 말도 행동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죠.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죠. 이것을 오늘 본문에서 4절에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벧후 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재림할 것이라는 약속이죠.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실 것을 믿고 이 썩어질 세상을 따르지 않고 오직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사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것을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점점 닮아가는 것이죠. 그럼 하나님의 성품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을 5절 서부터 설명에 놓았습니다.

벧후 1: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벧후 1: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벧후 1: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믿음, ,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인데요, 이 성품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성품을 나의 성품으로 만들어 가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점점 하나님을 닮아가게 되고, 내가 하나님께 부르심과 택함을 받은 자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 결코 자동적으로 되지 않습니다. 5절에 보시면 너희가 더욱 힘써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려면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가만히 자연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베드로 사도는 벧전 2:11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히브리서12:4 피흘리기 까지 죄와 싸울 것을 말씀합니다. 예수님도 9:23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려면 더욱 힘써야 합니다.

처음에 하나님의 성품으로 믿음이 나옵니다. 믿음은 처음에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나의 모든 죄가 씻겨졌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요 계속 자라가야 합니다. 이 믿음이 성숙해 가는데 덕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제가 예전에 교회 청년부 회장을 맡았는데요, 그때 제가 믿음이 뜨겁기만하지 덕을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믿음이 연약한 청년들을 쉽게 정죄하고 저의 방식만을 고집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청년들과 약간의 충돌이 있었죠. 믿음에 덕을 갖출 때 그 믿음이 좀 더 온전해지는 것이죠. 그래서 베드로전서55절에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라고 말씀합니다. 덕을 갖춘 믿음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서, 베려하고 또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덕에 지식이 필요합니다. 이 지식은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에 대한 통찰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덕을 베푸는데 그것이 무분별해지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지식입니다. 그래서 늘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을 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지식에는 절제가 더해져야 합니다. 지식이 높고 하나님의 뜻에 대한 통찰력이 생기면 방종을 떨기가 쉽습니다. 가령 우상의 제물을 먹는데, 음식은 더러운 것이 아님에 대한 지식이 있어서 자기는 그 음식을 먹는데 아무런 꺼림이 없습니다. 자기는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에 꺼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나의 형제가 우상제물을 먹으면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형제를 위해서 나도 먹지 않는 것이죠. 이렇게 지식에 절제가 더해질 때 보다 더 온전케 됩니다.

절제에는 인내가 더함을 말씀합니다. 절제는 많은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훈련은 많은 어려움과 시련이 동반됩니다. 그 때 인내가 필요한 것이죠. 사도바울이 전도를 할 때 사십에 감한 매를 5번 맞고 태장에 3번 맞고 돌에 맞고 추위 굶주림 강에 위험, 도적의 위험 등등 여러 어려움을 만납니다. 그런 것을 견디어 낸 것은 절제에 인내가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인내에 경건을 더해야 합니다. 경건은 겸손하게 하나님을 예배함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죠. 사도바울이 그런 엄청난 환란을 인내함으로 잘 이겨내었습니다. 그런데 이겼을 때 교만하기 쉬운 것이죠. 내가 견뎌냈어, 그러나 사도바울은 모든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나의 나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인내에 경건을 더한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어려움을 잘 극복하였을 때, 경건을 잃어 그만 교만에 빠지기가 너무 쉽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경건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렸다면 그것이 형제사랑으로 까지 흘러가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아주 열심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합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마가를 용서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전도여행 중에 마가가 훌쩍 떠나버렸기 때문이죠. 그러나 나중에 사도바울이 믿음이 더 성숙하였을 때, 마가를 용서할 뿐만아니라 마가를 아주 귀한 동역자로 받고 사랑으로 대하는 것을 봅니다. 내 옆에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가 어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형제의 허물을 덮고 잘못을 용서하며 이해하고 섬기고 사랑하는 형제우애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형제우애는 차별이 없고 조건없이 이웃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확장되어 가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을 죽기까지 사랑하여주신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이제 내가 이 세상을 품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나를 미워하고 핍박하더라도 나는 세상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기를 날마다 힘써야 합니다. 믿음, ,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 이 하나님의 성품을 나의 성품으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써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할 때 우리는 점점 예수그리스도를 깊이 깊이 알아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 안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신앙의 열매들이 맺혀지게 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중요시 여기며 사시나요? 우리 인생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나의 성품으로 만들어 가는 사람이 진정한 성공하는 사람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고 명예가 높아지고 인기가 많고 그런 것을 성공했다고 말하는데요, 그런데 여러분 그런 것들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높은 명예를 얻고 인기가 많아도 그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실패한 것입니다. 9절에 보시면

벧후 1: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이런 것은 신성한 성품, 하나님의 성품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맹인이라는 말은 영적인 눈이 캄캄해진 것입니다. 지금 자기가 어디를 향해서 가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 많은 사람이 추구하며 가는 길은 문이 크고 그 길이 넓은데 그 끝은 멸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가 지금 멸망을 향해 가면서도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없는 것이죠.

양은 시력이 나쁘다고 합니다. 그래서 양떼들이 우르르 달릴때가 있는데, 앞에 양이 뛰니까 뒤에 양도 그냥 뛰는 것이죠. 시력이 좋지 않은 양은 앞에 무엇이 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 것이죠. 그런데 뒤에서 따라오니까 무작정 뛰는 것이죠. 그러다가 앞에 벼랑이 있는데 그것을 보지못하고 뛰는 것입니다. 무조건 달리던 양들은 다 같이 추락하는 것이죠. 이와같이 세상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채 무조건 성공을 향해 달음박질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품에 관심이 없는 자들은 눈이 어두워져서 지금 자신들 앞에 벼랑이 있는데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지 않는 자는 예수그리스도의 피가 나의 모든 죄를 씻으셨다는 그 구속의 은총을 잊어버리고 죄를 또 먹고 마시며 죄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삶에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만 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날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우리 눈이여 밝아집니다. 내가 누구인지 지금 내가 어디에 서있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 분명히 알게 되어서 올바른 푯대를 바라고 달음박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는 점점 하나님을 닮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닮아 갈수록 우리는 내가 하나님의 진짜 자녀라는 사실을 더욱 확신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택하셨음을 굳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는요, 세상에 어떤 핍박과 유혹이 오더라도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큰 해를 당할 것을 성령이 증언하시고 예언자들이 예언을 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적극적으로 만류합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21:13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하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갑니다. 그가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날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여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확신하십시오. 그럼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영원한 나라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벧후 1: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