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그리스도의 피로 속량하신 은혜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습니다. 입춘이 지났으니까 봄에 벌써 들어선 건가요. 따뜻한 봄이 오면 땅속에 묻혀있던 식물들이 싹을 돋우며 땅위로 올라오겠죠. 봄이 지나면 무더운 여름이 오고 또 여름이 지나면 선선한 가을이 되고 가을이 지나면 또 겨울이 오겠죠. 이 순환은 단 한번도 쉬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봄여름가을겨울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 하나님이 이 세상을 불쌍히 여기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이 끝날 때 봄여름가을겨울의 반복도 멈추게 될 것입니다.
이 계절의 순환은 노아의 홍수 이후에 시작된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이 극도로 심해지면서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은 노아 한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노아와 노아 가족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을 물로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십니다. 노아로 하여금 큰 방주를 짓게하였는데 길이가 150m, 너비는 25m, 높이는 15m 정도되는 큰 방주를 만들게 하였습니다. 노아가 그 방주를 완성하는데는 100년이 넘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방주가 완성되자 하나님이 노아와 노아식구들을 비롯해서 각종 동물 암수 2쌍씩을 방주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늘에 창을 열고 땅의 깊음의 샘을 터뜨려서 40일 동안 밤낮으로 쉬지 않고 비가 오게하여서 온 세상을 물러 덮어버리십니다. 높은 산들이 다 물에 잠겼다 하였습니다. 이 홍수로 인해 땅에 코로 숨쉬는 생물은 다 죽었습니다. 이때 인류가 멸망해 버린 것이죠. 1년여 정도가 지난 후에야 물이 빠지고 땅이 드러나서 노아와 노아식구들은 방주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노아는 밖으로 나와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정결한 짐승을 제물로 삼아 번제의 제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이 제사의 향기를 받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노아에게 약속을 주십니다. 그 약속이 무엇이냐면 다시는 이 세상을 물로 멸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악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세상을 멸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의 증표로 무지개를 구름 속에서 보여주십니다. 인류는 무지개를 기억하면서 비가 아무리 와도 안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 하나님이 세상을 물로 멸망시키지 않으신다고 했지. 하며 불안에 떨 필요가 없는 것이죠. 하나님이 인류에게 무지개 언약을 주신 것은 이 세상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이때부터 봄여름가을겨울이 반복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창8:22에 하나님이 말씀하시죠.
창 8: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봄여름가을겨울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아!! 하나님이 아직까지 이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계시구나” 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봄여름가을겨울이 언제까지 계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까지 계속된 다고요? 땅이 있을 동안이죠. 땅이 없어지는 날, 봄여름가을겨울의 순환도 멈추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럼 땅이 없어지는 날은 언제일까요? 예 이 세상 끝날이죠. 계21:1 사도요한이 세상 끝날 땅이 없어진 것을 환상가운데 보죠.
계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땅이 없어지면 봄여름가을겨울의 순환은 멈추고 이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는 무지개언약이 종료되는 것이죠. 그것은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이 끝난다는 것입니다. 긍휼이 끝나면 진노의 심판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아무리 죄를 사해달라고 빌어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땅이 있고 계절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서 “아 하나님이 아직까지 이 세상을 불쌍히 여기시는 구나” 라는 사실을 알고 속히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긍휼의 때이기에 회개하면 삽니다. 그러나 돌이키지 않고 “땅이 없어진다구, 말도 안돼, 어떻게 땅이 없어질 수 있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겨울이 오는 것이지 어떻게 계절이 멈춰 말도 안돼. 심판 같은 것이 어디있어??” 하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어느 날 갑자기 땅이 없어지고 계절이 멈추고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아무리 후회하고 통곡해도 소용없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멸망당하고 말 것입니다.
노아시대 때도 하나님이 세상을 물로 쓸어버리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오직 노아만 믿었습니다. 노아는 믿음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자기 집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았던 사람들은 모두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아직까지 땅이 있고, 계절이 돌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이 계속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지금이 바로 은혜의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나오면 모든 죄가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죄인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오면 죄사함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느 법정에서도 어떤 재판관도 죽을 죄를 져지른 죄인이 회개한다고 해서 그 죄를 없었던 걸로 해주지는 않습니다. 약간의 감형은 있을 수 있겠죠. 사형이라면 무기징역 정도로~~ 그것도 엄청나게 관용을 베푼 것이죠. 그런데 사형인데 무죄를 선고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누구든지 자기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오면 하나님이 그 죄를 없었던 것으로 해주고 그 사람을 죄인이 아니라 의인으로 여겨 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은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단지 죄를 회개한다고 그 사람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불법을 져지르는 것일까요? 절대 그럴 수 없죠.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불법을 행한다면 그것은 자기를 부정하는 것인데, 그런 일은 하나님에게서는 있을 수 없는 것이죠. 그럼 어떻게 하나님은 죄를 회개하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없는 것으로 해주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죄의 값을 치루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죄의 값을 치루셨을 까요?
예 하나님은 자기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죄의 값을 치루게 하셨습니다. 그는 세상의 죄값을 치루시기 위해서 인간이 되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자하나님이시지만 저 하늘에 모든 영광을 내려놓으시고 이 낮고 낮은 땅에 오셔서 마리아라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의 몸에 잉태되어 이 세상에 아기로 태어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그러나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신 것이죠. 그런데 우리와 한가지 다른 점은 그 분은 죄가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담의 원죄로 말미암아 죄인으로 태어나지만 예수님은 원죄없이 태어나신 것이죠.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으로 태어나신 것은 세상의 죄값을 치루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에 속량이라고 합니다. 7절 말씀 같이 읽어봅시다.
엡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속량이라는 말은 전쟁에서 포로를 구원할 때 어떤 댓가를 주고 구원해 오는데 그때 쓰는 말입니다. 종종 무슬림의 알카이다 같은 곳에서 사람들을 납치하잖아요. 그때 그들이 요구하는 몸값을 주고 그 포로를 구원해 오는 것이죠. 그와같이 이 세상 사람들은 죄로 말미아아 죽을 수 밖에 없는데, 하나님이 그들을 속량하신 것이죠. 속량하기 위해서는 죄값을 치루어야 합니다. 그런데 죄의 값이 무엇입니까? 예 죽음이죠. 예수그리스도는 이 세상을 속량하려면 죽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피흘려 못박혀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 예수그리스도의 피는 바로 우리의 죄값인 것입니다. 아무 죄없는 예수그리스도가 세상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값이 치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7절 다시보면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의 피는 이 세상 모든 죄를 사하는 보혈의 피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모든 죄가 사함을 받습니다.
아직 땅이 그대로 있고 계절이 반복해서 돌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긍휼을 베풀고 계시다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속히 자신의 죄를 가지고 예수그리스도께 나와야 합니다. 그럼 모든 죄가 씻어지고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죄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죄에서 구원을 받는 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값을 치루시고 우리를 속량하신 분은 예수그리스도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시 34:22 여호와께서 그의 종들의 영혼을 속량하시나니 그에게 피하는 자는 다 벌을 받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께 피하는 자들은 다 벌을 받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 종들의 영혼을 속량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죄값을 치루시고 속량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고전15장에 고전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이것은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입니다.
인간의 죄악은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을 만큼 크고 흉악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죄악보다 커서 그 죄를 제거하시려 자기 아들을 내어주시기까지 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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