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믿음의 자리를 지키라
어느 자리든지 좋은 자리를 차지하면 대부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오랫동안 있습니다. 장사꾼이 자리를 잡고 장사를 하는데, 장사가 쏠쏠히 잘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10년이든 20년이든 그 자리에서 계속 장사를 합니다.
직장도 마찬가지죠. 안정되고, 일의 강도도 감당할 만하고, 보람도 있고, 그러면 그 직장 잘 옮기지 않죠. 누가 나가라는 말 안 하면 은퇴할 때까지 있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자리가 무슨 자리인 줄 아십니까? 믿음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자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자리입니다.
왜 믿음의 자리가 가장 좋은 자리일까요?
그 자리는 하나님이 완전하게 지켜주시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여기서 야곱은 믿음의 자리에 앉아있는 자를 말합니다. 믿음의 자리에 있는 자를 하나님이 완전하게 지키신다는 것이죠.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하고, 불 가운데로 지날 때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믿음의 자리에 앉아있는 야곱을 완전하게 지키시는 것이죠?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믿음의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는 것이죠. 아무도 그를 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를 완전하게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완전하게 지켜주시는 믿음의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인 줄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드리는 예배의 자리가 믿음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나오는 것은 아무나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믿음의 사람만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22: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예배에 오라고 청하였지만 오직 택함을 입은 자들만 나와 예배의 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예배의 자리에 앉아있는 것은 여러분은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세상 어떤 것도 우리를 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택함받은 성도는 이 세상에서 믿음의 자리를 잘 지켜나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핍박이나 환난이 닥치고 미혹 같은 것이 밀려오면 믿음의 자리에서 떠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성도가 믿음의 자리를 떠나면 어떻게 될까요? 예 불행해 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완전하게 지켜주시는 최고로 좋은 믿음의 자리에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자리를 떠나는 순간 그 사람은 자기의 힘으로 살아야 합니다. 자기 힘으로 자기의 안위를 지켜야 하고 자기 힘으로 자기의 모든 필요도 채워나가야 합니다. 그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지는 은혜와 평강을 잃고 수고와 슬픔이 가득할 뿐입니다.
오늘 본문 룻기에 보면 유다 땅에 큰 흉년이 들어서 베들레헴에 사는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이방 땅인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합니다. 거류는 잠시 머무는 것이죠. 처음에 이들은 흉년을 피해서 잠시만 모압에서 머물다가 흉년이 지나면 다시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방 땅인 모압에 그냥 정착해 버립니다. 2절 끝에 보시면 “살더니” 이 표현은 모압에 정착을 한 것입니다.
고대시대 때 자기가 살던 곳에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떨어지면 고향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해서 사는 경우는 종종있는 현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멜렉은 그렇게 하면 안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엘리멜렉이 살던 베들레헴 땅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믿음의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엘리멜렉이라는 뜻은 “하나님은 왕이시라” 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엘리멜렉 부모의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그의 부모는 믿음의 자리에 있던 자들이었던 것이죠. 그 부모의 신앙으로 엘리멜렉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고, 믿음의 자리에 있게 된 자인 것이죠.
그런데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하나님이 왕이라는 엘리멜렉이 믿음의 자리인 베들레헴 땅을 떠나 이방 땅인 모압으로 가버린 것입니다. 엘리멜렉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하나님의 보호를 믿지 못하고 눈앞에 보이는 이득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엘리멜렉은 베들레헴에서 많은 땅을 소유한 재력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는 땅을 다 팔고 많은 재산을 가지고 모압으로 가면 편안히 살 것으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죠. 엘리멜렉이 베들레헴에서 평안히 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진 재물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와 은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자리를 떠나는 순간 하나님의 보호와 은총이 사라지고 그는 험한 세상에서 수고와 슬픔의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엘리멜렉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인 베들레헴을 떠나 이방 땅인 모압으로 가자 그때부터 그의 인생은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가 믿음의 자리를 떠나 세상을 향해 나가면 어떻게 될까요? 예 하나님의 징계가 임합니다.
엘리멜렉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임합니다. 어떤 징계가 임하였을까요? 죽음입니다.
하나님이 엘리멜렉을 데려가십니다. 엘리멜렉이 죽자 그의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 말룐과 기룐이 남습니다. 나오미는 두 아들을 위해 모압의 여자 중에서 며느리로 삼습니다.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이고 또 다른 며느리는 룻입니다. 그런데 거기 거주한 지 십 년쯤에 두 아들인 말론과 기룐이 죽습니다. 남편이 죽어 슬펐는데, 남은 두 아들마저 죽었으니 나오미에게는 엄청난 슬픔인 것이죠. 베들레헴에서 가지고 왔던 재산도 다 없어진 것으로 보여집니다. 21절에 보시면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나오미는 자기 집에 이런 불행이 온 것은 하나님의 징계였음을 고백합니다. 13절 중간에 보시면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믿음의 자리를 떠나 세상을 향해가면 하나님의 보호와 은총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징계가 임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려움이 찾아오고 환난이 오더라도 하나님이 있으라고 한 믿음의 자리를 지키십시오. 그럼 어느새 그곳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넘쳐 납니다.
아들들이 죽고 나오미는 모압 땅에서 두 며느리와 함께 살아 가는데, 고향 땅인 베들레헴에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여 양식이 풍성하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나오미는 그 소식을 듣고 고향 땅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나오미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려는 결단입니다. 실패한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가는 것은 너무 부끄러운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결단한 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다시 입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아무리 실패했어도 그때라도 나오미처럼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됩니다. 믿음의 자리로 돌아오면 다시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져서 회복됩니다.
나오미가 고향 땅으로 돌아가는데, 두 며느리도 함께 갑니다. 그런데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지금까지 나와 함께 해준 것 고맙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좋은 남편들을 주셔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며느리들이 소리를 높여 울면서 ”아닙니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합니다. 그러자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나에게는 너희에게 대를 잇게 해 줄 다른 아들이 없다. 나는 늙어서 이제 남편을 갖지 못할 것이고 가령 남편을 가져서 아들을 낳는다고 하더라도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그때까지 남편없이 어찌 지내겠느냐, 내 딸들아 하나님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 때문에 너희가 이렇게 된 것이 너무 마음이 아프다, 이제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삶을 살거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며느리들이 소리 높여 다시 울더니 한 며느리 오르바는 시어머니에게 입맞추고 떠나갑니다.
그런데 또 한 며느리 룻은 시어머니를 붙잡고 떠나가지 않습니다. 그러자 나오미가 룻에게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그러자 룻이 시어머니에게 ”어머니 저에게 어머니를 떠나 돌아가라고 강권하지 마십시오. 저는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하나님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기고 더 내리시기를 원합니다.
나오미는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칩니다.
며느리 오르바는 시어머니 곁을 떠나 자기 백성에게로 자기 신에게로 돌아갔고, 며느리 룻은 시어머니를 끝까지 붙잡아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룻은 왜 시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따라 가는 것일까요? 시어머니 따라가 봐야 이득될게 없잖아요? 늙은 시어머니 모시고 살아야 하고 시어머니 밑에 있으면 다른 남자와 결혼도 못하고 평생 생과부로 지내야 할 것 같은데, 시어머니에게 재산이라도 많이 남아있으면 괜찮은데 남아있는 재산도 없고 룻이 일해서 시어머니를 먹여 살려야 하는 암담한 상황인 것이죠.
그런데도 룻은 왜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시어머니 곁을 지키는 것일까요?
예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입니다. 룻은 시집와서 하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자리는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모시는 것임을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하나님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기고 더 내리시기를 원합니다.”
룻은 자기 믿음의 자리를 굳게 지킨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의 자리를 굳게 지킨 룻은 잘 되었을까요? 불행하게 되었을까요? 당연히 잘 되죠.
하나님이 믿음의 자리에 있는 룻을 완전하게 지켜주셨죠. 룻은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나오미와 아주 가까운 친척 보아스의 밭에 열심히 일하다가 보아스에게 인정을 받습니다. 시어머니를 버리지 않고 시어머니를 끝까지 돌보는 아주 착하고 신실한 여인으로 인정을 받죠. 그리고 시어머니인 나오미가 지혜롭게 두 사람을 만나게 하여 보아스가 나오미의 기업을 물고 룻을 아내를 맞이합니다. 보아스와 룻 사이에 아들이 태어나는데 그 이름은 오벳인데,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습니다.
결국 룻은 믿음의 자리인 시어머니 곁을 지키므로 다윗왕의 증조 할머니가 된 것이죠.
여러분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믿음의 자리를 지키면 하나님이 반드시 지켜주십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라는 죽음의 길에서도 십자가를 피하지 아니하시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못박혀 죽음으로 자기 믿음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죄값이 치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그를 3일만에 다시 부활시키셔서 예수그리스도는 사망 가운데 있는 인류를 구원하는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죄사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이 끝까지 자기 믿음의 자리를 지키셨기 때문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있으라고 하시는 믿음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십시오.
여러분이 지켜야 할 여러분의 믿음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 십일조의 자리, 전도의 자리, 봉사의 자리, 섬김의 자리 등등
믿음의 자리를 지키는 여러분은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이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믿음의 자리를 지킨 여러분을 완전하게 지켜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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