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 마음은 무엇인가?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
다른 사람의 일을 돌보는 마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
부모가 자녀들에게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자녀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시집, 장가가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 자기 자녀가 불행하게 살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7:9에 예수님이 말씀하시죠.
마 7: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마 7: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마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어떤 악한 자라도 자기 자식만큼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도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얼마나 원하셨던지 하나님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아낌없이 내어주셨습니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아끼지 않으신다는 것이죠. 그런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명령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겸손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겸손해야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겸손한 마음을 잃어버리면 불행해집니다.
왜 겸손하면 행복하게 되는 것일까요? 겸손은 화목을 이루게 하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마음을 가진 가정은 화목하게 됩니다. 가족 간에 화목하면 자연히 행복하게 됩니다. 남편과 아내가 화목하고 부모와 자식이 화목하고 형제들끼리 화목하고 그러면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죠. 그래서 잠언17:1에 이런 말씀이 있죠.
잠 17:1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좀 가난하더라도 그 가정이 화목하면 행복한 것이죠. 그러나 아무리 돈이 많고 좋은 집에 살아도 화목하지 못하면 불행하다는 것이죠. 그런데 화목을 이루는데 아주 중요한 마음이 무엇이냐면 바로 겸손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겸손하라고 명령하십니다. 5절 말씀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너희 안에 어떤 마음을 품으라고 합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는 것이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예 겸손의 마음이죠.
예수님을 보고 겸손의 왕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이신데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십니다. 예수님의 이 겸손의 왕의 모습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해서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실 때 나타나죠.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그때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종려나무를 흔들며 예수님의 입성을 환호합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이런 모습은 마치 승리의 왕을 맞이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실 때 무엇을 타고 들어가냐면 나귀 새끼를 타고 들어가십니다. 보통 왕은 백마를 타고 들어가는데 예수님은 나귀새끼를 타고 들어가시죠. 예수님은 진정한 유대인의 왕이시오, 만왕의 왕이신데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시는 것이죠. 이는 스가랴선지자가 예언한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함이었죠.
슥 9:9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이는 예수님이 자기가 겸손한 왕으로 온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죠. 예수님의 겸손은 모든 것을 비우심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비우셨죠? 그것은 자신의 신성을 비우심입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임을 부인하신 것입니다. 6절에 보시면 예수님은 하나님 본체라고 말씀하는데 하나님이 본체라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이죠.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로써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시지만 그런데 동등됨을 취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실 뿐만아니라 예수님은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는 것입니다. 종의 형체는 사람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은 자신의 신성을 중단한 것입니다. 그리고 연약한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더나아가서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죽임당하십니다. 하나님이신 분이 인간되셔서 자기의 목숨을 내어주신 것이죠.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비우심이요 겸손인 것이죠. 예수님의 이 겸손으로 하나님과 우리가 화평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명령하십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왜 하나님이 이런 명령을 하신다구요? 예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과 같은 겸손의 마음을 품으셔서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겸손의 마음은 어떤 마음을 말하는 것일까요?
한 번 따라 합시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우리 속에는 나를 높이려고 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이 본성은 인간이 죄로 타락하면서 생겨난 죄의 본성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보다 내가 더 높아지려고 합니다. “내가 너보다 더 잘났어” 성도들의 본이 되어야 할 목사들 사이에서도 이런 마음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내가 너보다 목회 잘해, 우리 교회가 너네 교회보다 더 커, 내가 너보다 설교 더 잘해, 내가 너 보다 성경 더 많이 알아” 등등 물론 겉으로 말안하지만 그러나 내면 깊은 곳에서 “내가 너보다 더 잘났어” 이런 외침이 계속 메아리처럼 울립니다. 이런 마음을 오늘 본문 3절에 보시면 ‘허영’ 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허영은 망상, 착각, 자만 그런 의미로서 이것은 자기를 높이려고 하는 헛된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은 하나되지 못하게 하고 갈등하게 하고 결국 다툼을 일으키게 합니다. 이런 다툼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사이가 있죠. 부부사이죠. 부부는 가장 가깝고 늘 보는 사이이기 때문에 이런 다툼이 자주 일어나죠. 니가 잘났냐, 내가 잘났냐 하며 서로 자기가 잘났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려고 하죠. 그러다가 결국에는 다투게 되는 것이죠. 그럼 가정에 화목이 사라지게 되고 결국에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허영의 마음 “내가 너보다 잘났어” 이런 마음을 철저히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이 허영의 마음을 버리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의 본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도 모르게 “내가 너보다 잘났어” 하며 나를 높이려고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 허영의 마음을 버리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죄인임을 깨닫는다는 것은 나는 옳지 않다. 나는 잘나지 않았고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자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는 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왜 죽으셨죠? 예 바로 나의 죄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 죽으신 것은 바로 나의 죄를 짊어지고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내가 죄인을 분명하게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십자가 앞에서 나는 옳아, 나는 잘났어, 절대로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십자가는 바로 나의 죄를 위한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으셨다면 내가 죽어야 하고 나는 영원히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한 죄인일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나는 죄에서 해방을 얻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죄인이 아니요, 의인이 된 것이죠. 그러므로 나라는 존재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나의 잘남, 나의 의 이런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나의 나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랑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나는 아무것도 자랑할 거이 없는 죄인일 뿐임을 알게 되는 것이죠. 그 때 우리는 진심으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내가 죄인임을 철저히 인정하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의 마음을 가질 때, 우리의 삶에 점점 다툼이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을 이기려하고 상대방보다 내가 더 높다는 우월감 같은 마음을 버리기 때문이죠. 그리고 도리어 상대방을 나보다 더 높이 여기고 그를 인정해주고 그의 뜻을 따르고 섬겨주기 때문이죠. 다툼이 사라지고 상대방도 나를 존중하고 인정해주게 됩니다. 그럼 그 가정에 화목이 흐르고 어느 순간 행복이 찾아오게 되죠. 여러분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 십자가 바라보며 나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남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는 겸손의 마음을 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럼 겸손의 마음은 어떤 마음을 말하는 것일까요?
다른 사람의 일을 돌보는 마음입니다. 겸손의 마음을 가진 자는 자기 일만 돌아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도리어 자기의 안위보다는 다른 사람의 일을 돌보는데 더욱 힘쓰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돌보는 마음은 사랑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긍휼히 여기는 것이죠. 상대방의 필요를 채우며 어려워하는 점이 없는지를 살피며 섬기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잘 도우려면요 다른 사람의 필요를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이 눈은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질 때 그런 눈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 눈이 열리면 상대의 필요를 알게 되고 돌봄을 잘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것은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돌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한 마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겸손한 마음이 없으면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지배하고 군림하려고만 들 것입니다. 약한 자는 강한 자를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이죠. 그러나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되면 약한 자를 불쌍히 여기게 되고 약한 자가 잘 설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것입니다. 때로는 자기를 희생하면서 까지 약한 자를 돕습니다.
하나님은요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라는 것으로 가득합니다.
시 46: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 115:10 아론의 집이여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시 121: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도움이 되어주실 수 있는 것은 먼저 하나님이 강한 자이시기 때문이고 그리고 하나님이 겸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돕기 위하여 저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시고 이 낮고 낮은 땅에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어주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한없이 낮아지시고 우리를 도우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죠. 죄에 빠져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없이 자기를 낮추시고 우리를 돕는 것이죠. 이렇게 겸손의 마음은 사랑과 긍휼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겸손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 뿐만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을 돌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겸손의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일을 돌보면요, 하나님이 그 사람을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잠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겸손한 마음으로 약한 자를 돌볼 때 하나님이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고 갚아주십니다. 그래서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나누고 베푸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복을 점점 더 많이 받게 됩니다. 그래서 그의 삶 속에 하나님으로 인한 행복이 넘쳐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럼 겸손의 마음은 어떤 마음을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면 마음이 겸손해야 합니다. 마음이 교만한 자는 결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교만한 자는 목이 뻗뻗해서 자기 고집대로 자기 마음대로 하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뿐만아니라 듣지도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여러분 목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목사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목사 나보다 세상 물정 몰라, 목사 나보다 나이가 어려, 목사 아는게 나보다 없어, 목사 현찮아 그렇더라도 목사가 하는 말을 겸손한 마음을 받고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백성들 앞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을 때 바리새인 대제사장 서기관 사두개인 이런 유대지도자들은 예수님을 거부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배운 것도 없고 가난하고 볼품이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예수님이 유대지도자들의 죄를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유대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무시하는 거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예수님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도 받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일까지 행하게 된 것이죠.
이렇게 교만한 마음을 가지게 되면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철저하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낮추어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이 땅에서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다고 죽임당하셨는데,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 말씀에 그대로 복종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자기를 대적하는 자들을 멸하실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있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번도 자기의 뜻을 내세우지 않으십니다. 오로지 하나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십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이죠.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은 자기를 부인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비우고 부인하는 것이 겸손의 마음입니다. 여러분 겸손의 마음을 가진 자는 결코 자기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철저하게 자기를 비울고 그대로 복종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겸손하게 하나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면요, 하나님이 그 사람을 높이십니다. 하나님이 죽기까지 하나님 말씀에 복종하셨던 예수님을 높이십니다. 어떻게 높이시는 지 9절 서 붙어 읽어 보겠습니다.
빌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빌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자기를 비우십시이오, 자기를 부인하십시오, 겸손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십시오. 그럼 때가 되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
'설교 강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2.4.3 주일오전예배설교> 주 안에 서 있으라 (빌4:1-9) (0) | 2022.04.03 |
---|---|
<2022.3.20 주일오전예배설교> 예수의 일에 힘쓰라 (빌2:19-30) (0) | 2022.03.20 |
<2022.3.6 주일오전예배설교>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라 (빌1:12-30) (0) | 2022.03.06 |
<2022.2.27 주일오전예배설교> 시작하신 이가 이루심 (빌1:1-11) (0) | 2022.02.27 |
<2022.2.20 주일오전예배설교> 영적인 눈을 여소서 (엡1:15-23) (1) | 2022.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