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는 어떤 자인가?
자족하기를 배우는 자
예수님 권세로 사는 자
돈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멋있는 집을 짓고 좋은 자동차를 타고 큰 빌딩도 지을 수 있습니다. 돈이 있으면 무수한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돈의 능력은 정말 대단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시대를 물질만능 시대라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면 영생이죠. 아무리 돈이 많아도 돈이 영생을 주지 못합니다. 죽을 수 밖에 없죠.
그런데 오늘 본문에 바울은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돈이 많은 사람은 절대 아닙니다. 그럼 바울은 돈도 없으면서 어떻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여기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는 예수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그리스도께서 내게 능력을 주시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어떤 믿지 않는 집 아들이 교회를 열심히 다닙니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아들에게 “아들아 교회에 가면 떡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뭘 그리 열심히 다니노” 했답니다.
그런데 오늘 바울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은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 떡도 나오고 밥도 나오기 때문입니다. 모든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에 다니는 것이 밥을 먹기 위해서 떡을 먹기 위해서는 아니죠.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 떡 문제 밥 문제 즉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여러분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요? 여러분이 교회에 열심히 다닌다고 해서 목사인 제가 월급을 주는 것 아니잖아요. 도리어 예배시간에 헌금을 드리잖아요. 교회로부터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돈을 내는데 어떻게 교회를 다니면 떡 문제 밥 문제가 해결 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이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잘 예배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은 그 농사가 잘되게 하나님이 이른비와 늦은비를 적당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직장 다니는 사람은 직장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고 사업하는 사람들도 사업을 잘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라는 사람들이 이 진리를 믿지 못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먹을 까 무엇을 마실 까 염려하며 자기 힘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되어서 하나님을 소홀히 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일에 정신이 팔리게 되죠. 내 힘으로 나의 먹을 것 입을 것을 해결한다고 생각하게 되면 하나님이 별로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란 존재는 잠시 내 마음이 불안할 때 내 마음에 평안이나 주는 정도의 쉼의 도구 정도밖에 안되는 것이죠. 그 사람에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삶에서 아주 미비한 한 부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의 먹을 것 입을 것 다 채워주시는 분임을 확실히 믿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온 힘을 쏟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기 때문이죠. 하나님이 삶에서 최우선 순위가 되는 것이죠.
오늘 본문에 바울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자기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공급자임을 믿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11절 서부터 보시면 바울은 자기는 어떤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합니다. 자족이란 스스로 만족하는 것을 말하죠. 1000만원이 있으면 1000만원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10만원이 있으면 10만원으로 만족하고 1000원이 있으면 1000원으로 만족하고 돈이 한푼도 없으면 없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족입니다. 11절부터 보시면
빌 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빌 4: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바울은 어떤 형편에서도 비천에 있든지 풍부에 있든지 배부르든지 배고프든지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합니다.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 그것은 하나님이 나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신다는 분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나가서 일을 해서 10만원을 손에 쥐었습니다. 그럼 그 10만원은 하나님이 공급하신 것입니다. 그 10만원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족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필요를 채워주신다는 믿음은 결코 머리로만 아는 것으로는 가질 수 없습니다. 반드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채워주심을 직접 체험하고 경험하는 가운데 생겨나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이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라고 말하는 것은 그가 그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채우심을 수십번 수백번 경험하므로 알게 된 비결인 것입니다. ]
지금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혀있는 상황입니다. 이제 일을 할 수도 없고 누구의 도움을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죠. 감옥에서 바울은 생활하는데 큰 고초를 겪어야 하는 것이죠. 여러분 감옥에서도 돈이 필요합니다. 감옥가면 먹을 거 입을 거 생활에 필요한 거 다 나오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감옥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소한 생명을 연장할 만큼의 식사는 나오지만 그 외에 모든 것은 자기가 다 사서 써야 합니다. 속옷, 치약, 칫솔, 몸이 아프면 자기 돈 가지고 치료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감옥에서도 돈이 없으면 무척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런데 바울은 2000여년 전 고대시대 때 감옥인데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런데 감옥에서도 하나님이 자기의 모든 필요를 채우심을 고백합니다. 빌립보교회에서 보낸 에바브로디도가 찾아 온 것입니다. 에바브로는 빌립보교회의 담임목사라고 할 수 있는데 그가 빌립보교회에서 보내준 헌금을 가지고 바울을 찾아온 것입니다. 이 빌립보교회의 도움으로 바울은 자신의 삶이 풍부해졌음을 말합니다.
빌 4: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바울은 빌립보교회가 자기의 모든 필요를 채우게 된 것을 하나님이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빌립보교회가 바울에게 보낸 헌금은 바로 하나님의 공급하심이었다는 것이죠.
“아!! 하나님 살아 역사하시는구나, 하나님이 나의 모든 필요를 알고 계시고 나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시는 분이구나 할렐루야” 하며 하나님의 채우심을 체험하므로 확신을 갖게 된 것이죠. 그것이 바로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할 수 있는 비결을 배운 것입니다. 바울은 이제는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그런 것 걱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이 공급자심을 알기 때문에,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라고 말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나의 삶을 온전히 바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높은 명예와 많은 부를 가질 수 있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그는 배설물처럼 그것을 버립니다. 바울이 세상의 부와 귀를 버린 것은 그것들이 예수그리스도를 위하는데 방해거리가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는데 자신의 삶을 바칩니다. 바울이 그렇게 온전히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신의 삶을 바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공급자임을 믿은 것이죠.
먹고 사는 문제에 얽메이지 않게 되자 그는 자유롭게 예수그리스도만을 위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마태6장에 말씀하시죠.
마 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마 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 6: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이 너희 먹을 것 입을 것 다 주실 것이니까 너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온전히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는 것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공급자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는 삶을 사십시오. 그럼 여러분의 모든 삶의 필요를 하나님이 채우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럼 바울처럼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하는 것을 배우게 되어서 여러분도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될줄을 믿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실제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어떻게 모든 것을 할 수 있죠? 예 예수님이 그런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내게 능력을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죠.
여러분 바울이 나는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한 것은 하나님이 나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신다는 의미이지만 더나아가서 나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나의 힘이나 능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한다면 그것은 내 능력이 미치는데 까지만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죠.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자는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하기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죠. 내게 능력주시는 자는 바로 예수그리스도시죠. 예수님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하면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입니다.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직장에서 팀장이 되어서 어려운 일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왜요? 내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으로 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두려움들을 내어버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해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삶은 하나님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나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십계명중에 4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온전히 지키라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6일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 안식일인즉 아무일도 하지 말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푹 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쉬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심에 대한 고백입니다. 7년 때 되는때는 안식년이라고 해서 1년을 농사를 짓지 말고 땅을 놀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먹고사나요? 하나님이 안식년 전해 그 다음해에 먹을 것까지 소출을 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임에 대한 고백입니다.
수입에 십일조를 드리는 것도 그런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모든 삶의 공급자이며 나는 하나님 은혜로 사는 삶임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더 좋은 것들로 채우심을 맛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분 하나님의 주시는 능력으로 살기에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능력이 아니라 능력을 주시는 예수그리스도로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십시오 그럼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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