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2022.4.10 주일오전예배설교> 잊을 수 없는 재판 (요19:1-16)

박선준목사 2022. 4. 10. 15:07

  재판정에서 수많은 재판들이 이루어집니다. 하루에도 수십건 수백건의 재판들이 이루어지죠. 여러분 혹시 특별히 기억나는 재판이 있으십니까? 저는 2017310일 오전11시에 있었던 재판이 특별히 기억에 남습니다. 그 재판은 박근혜대통령에 대한 재판이었습니다. 그때 이정미 헌법재판관이 나와서 재판 판결문을 읽는데요,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박근혜대통령이 파면당한 것이죠. 헌정사상 대통령이 파면 당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재판은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주목하였던 특별한 재판이었죠. 그런데 그 특별했던 재판도요 이제는 다 기억에서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파면당해서 감옥에 수감되었던 박근혜씨는 얼마 전에 감옥에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50년만 지나면 박근혜대통령 파면재판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주 소수일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면 다 잊혀져 가는 것이죠. 이 세상 재판이 다 그렇습니다. 당시에는 온 나라를 시끌 시끌하게 했던 재판이라도 세월이 지나면 다 잊혀져 버리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인류 역사상 잊혀지지 않는 재판이 하나 있습니다. 그 재판은 지금으로 부터 2000여년전에 있었던 재판이지만 오늘날에도 수십억명의 사람들이 그 재판을 말하고 있고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시간에 그 재판을 말하려고 합니다. 그 재판은 누구의 재판일까요? 예 예수님에 대한 재판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로마총독 빌라도에게 고소합니다. 빌라도총독이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 라고 묻자, 유대인들은 이 예수란 자는 죽어 마땅한 행악자이기에 이 자를 총독님께 넘기는 것입니다.” 합니다. 그러자 빌라도가 귀찮은 듯이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합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사형시키려고 하는 것이죠.

유대인들이 고발하므로 빌라도 총독은 예수를 심문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 총독은 예수의 죄를 찾아내기 위해 심문을 합니다. 그런데 빌라도의 심문 결과는 예수에게서 아무 죄도 찾을 수가 없다 입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아무 죄없는 예수를 그냥 풀어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가만있지 않고 아주 심하게 반발합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라고 소리칩니다.

빌라도총독은 예수를 데려가 채찍질을 하게 합니다. 이 당시 채찍은 채찍 끝에 날카로운 쇠조각 같은 것이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내리치면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두 대 만 맞아도 기절하는 사람이 있고 또 채찍에 맞다가 죽는 사람도 많았다고 합니다. 빌라도가 아무 죄없는 예수를 데려다가 무서운 채찍으로 때리게 하는 것은 흥분하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려서 그 정도로 재판을 끝내려고 했던 것입니다.

로마군병들은 예수를 데려다가 사정없이 채찍질을 합니다. 예수님의 온 몸은 피투성이가 되죠. 로마군병들은 예수님을 희롱합니다.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서 예수님 머리에 씌웁니다. 그리고 한 손에는 갈대지팡이를 잡게 하고 자색망토를 입힙니다. 군병이 예수님 앞에서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지어다하고 예수님께 경배하는 시늉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손으로 때리고 갈대지팡이르 빼앗아서 예수님의 머리를 후려칩니다. 예수님은 군병들에게 온갖 희롱을 당한 후에 무리들이 모여있는 관정으로 끌려 나아갑니다. 피투성이가 되버린 예수님이 무리들 앞에 나아가자 빌라도가 보라 이 사람이로다합니다. 빌라도는 피범벅이가 된 예수를 보면 사람들의 마음이 누그러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반대의 현상이 나타납니다. 유대무리들은 피투성이가 된 예수를 보고 더욱 흥분하여서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십자가에 못박으소서하고 더욱 소리 지릅니다. 그러자 빌라도가 너희가 직접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합니다.

본문은 빌라도총독이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다라는 말을 한 것을 두 번씩이나 기록하고 있는데요, 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이 예수님의 죄때문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말합니다.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 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은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함이니이다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묻습니다. “너는 어디로부터냐? 그러나 예수님이 아무 대답도 안해주십니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예수를 보고 빌라도 화가난 듯 말합니다.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박을 권한도 있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자 예수님께서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합니다.

빌라도는 예수를 놓으려고 힘을 씁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소리 지릅니다. ”이 사람을 놓아주면 로마황제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합니다. 이 말을 들은 빌라도는 예수를 재판정에 세우고 자기는 재판석 위에 앉습니다. 빌라도가 유대인들을 향해 보라 너희 왕이로다합니다. 이는 유대인들을 조롱하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이 다시 소리칩니다.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합니다. 그러자 빌라도가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이 때 대제사장들이 나와서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합니다. 이 말을 들은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도록 그들에게 넘겨줍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의 재판은 십자가 사형으로 결론이 납니다.

아무 죄가 없는 예수님이 사형 판결을 받은 것이죠. 이 재판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재판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 이 재판은 잊혀지지 않고 계속해서 말해지고 생생히 기억되는 것일까요?

박근혜 대통령 파면 재판은 정말 충격적인 재판이었지만 기억에서 사라져 점점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재판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 모든 재판들은 다 기억에서 사라져 가는데, 왜 예수님의 재판은 잊혀지지 않고 생생히 기억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의 재판은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재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 재판들은 나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기에 다 기억에서 사라져 가는 것이죠.

 

그럼 예수님의 재판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은 바로 나의 죄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으려고 하였지만 아무 죄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자기가 총독이니까 예수를 풀어 줄수도 있고 십자가에 못박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자기의 권세를 과시하듯 말합니다. 10절에 내가 너를 놓아 줄수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수 있는 권세가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11절이죠.

19: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을지, 풀어줄 지는 빌라도총독 너의 권세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힐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빌라도 보다 훨씬 위에있는 권세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그 위의 권세는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예 하나님이죠. 모든 권세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일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주지 않을 것을 작정하셨다면 아무도 예수님을 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이기로 작정하셨다면 아무도 예수님을 풀어줄 수 없는 것이죠. 그 사실이 12절서부터 전개되는 상황을 보면 알 수 있죠. 12절에 보시면 빌라도가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애씁니다.

19: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빌라도가 예수를 풀어주려고 하는 것은 예수는 아무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섬뜩한 말까지 들어서 그의 피를 자기 손에 묻히는 것을 꺼리는 것이죠. 그러나 빌라도의 의도대로 되지 않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를 풀어주려고 힘쓰자, 유대인들이 소리를 지르면 빌라도총독을 압박합니다. 13절에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이 말은 빌라도총독을 꼼짝 못하게 하는 말입니다. 자기를 왕이라고 하는 예수를 풀어주는 것은 로마황제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라는 것이죠. 당시 빌라도는 황제의 눈치를 상당히 살피는 상황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황제에게 잘못 보이면 총독 옷을 벗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자기의 약점을 찌르며 공격하는 유대인들이 미워서 그들을 조롱하기 위해 예수를 가리키며 말합니다. “보라 너희 왕이로다합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일제히 없애 버리소서 없애 버리소서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그러자 빌라도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하자 대제사장들이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하자 빌라도는 재판석에 앉아서 예수의 사형을 언도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도록 넘겨줍니다.

결국 빌라도의 의도대로 되지 않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게 된 것이죠.

여러분 누구에 의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게 된 것이죠? 빌라도, 유대인들 아닙니다. 위의 권세죠. 즉 하나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은 아무 죄없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그의 죽음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은 그의 죄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죄가 없는 분이세요. 그것은 세상 죄, 바로 저와 여러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입니다. 이것을 대속이라고 말하죠. 대신 죄를 속한다라는 말이죠. 이것을 갈라디아서1:4이 말하죠.

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하나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시는 것은 그로 하여금 이 세상 죄값을 대신 치르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죄인으로 정죄된 이 재판은 바로 나의 죄가 정죄되는 재판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바로 나의 죽음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받은 이 재판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죄에 대한 재판인 것이죠. 그래서 이 재판은 잊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해서 말해지고 기억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판이 왜 계속 말해지고 기억될 수 밖에 없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죄값이 얼마나 처참한 것인지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온 몸은 채찍으로 갈기 갈기 찢겨집니다.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서 머리에 씌웁니다. 가시엉겅퀴는 인간의 죄로 땅에 임한 저주의 상징입니다. 예수님이 가시관을 쓴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음을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홍포를 입히고 로마군인들이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하며 손으로 때리고 갈대지팡이로 머리를 후려치고 침을 뱉는 등 온갖 조롱을 합니다. 그리고는 예수의 손과 발에 대못을 박아 십자가에 못박습니다. 신명기에 사람이 나무에 달려 죽는 것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것임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힘을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힌지 6시간 만에 숨을 거두시는데 숨을 거두시기 직전에 엘리 엘리 라마 사막다니를 외치십니다. 이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 저주를 받은 것이죠.

예수님이 이런 저주를 받는 것은 바로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가 져지른 죄에 대한 형벌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당하신 십자가 형벌을 바라보며 나의 죄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고 철저히 회개하며 이제는 죄와 싸우며 죄를 버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모든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지 않고 자기를 위하는 모든 것이 죄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게 하려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자기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죽었습니까? 바로 나의 죄 때문입니다. 이제는 결코 그 죄를 또 먹고 마실 수 없는 것입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죄를 버리며 이제는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번 주부터 고난주간입니다. 예수님이 오늘 주일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왜 예루살렘성에 오셨습니까? 예 십자가에 못박하시기 위함입니다. 그것은 순전히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한 예수님의 희생이었습니다. 이 고난주간에 나를 위해서 고난 당하신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에 조금이나마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특별새벽기도회에 나오셔서 엎드려 기도하시고 할 수 있다면 금식도 하시면서 예수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사형선고를 받은 이 재판은 바로 우리 죄의 정죄이며 우리 죄의 비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 끝날까지 이 재판은 사람들 사이에서 말하여 질 것이고 생생히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