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2022.12.4 주일오전예배설교> 죄를 다스리라 (창4:1-17)

박선준목사 2022. 12. 5. 04:13

너는 죄를 다스리라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다시 에덴동산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들은 곧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1절에 보시면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라고 되어있는데, 여기서 동침은 알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냥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부터 아담은 하와를 지식적으로 알았지만, 그러나 여기서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이것은 새로운 경험으로 아내를 알게 된 것을 말합니다. 이 동침으로 하와가 임신을 하게 됩니다. 하와의 배가 불러오는 것이죠. 이것은 아담과 하와 입장에서는 너무도 신기하고 놀라운 것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처음 경험해보는 일이기 때문이죠. 인류 역사에서 첫 출산이죠. 때가 되어 하와의 뱃속에서 아기가 나옵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 아기 이름을 가인이라고 짓습니다. 가인이란 뜻은 얻었다라는 뜻입니다. 이들은 무엇을 얻었다는 것일까요? 한 사람을 얻은 것이죠. 그런데 그 한 사람은 누굴까? 1절을 다시 보시면

4: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고합니다.

그런데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이것은 의역이고요, 이것을 직역하면 내가 여호와를 얻었다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가인을 낳고 이 가인을 하나님과 같은 특별한 분으로 본 것입니다. 이 아이와 하나님을 동등한 분으로 본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본 것은 이 아이가 자기들을 다시 에덴동산으로 돌아가게 해줄 수 있는, 하나님이 전에 말씀하셨던 그 여자의 후손, 즉 메시야로 본 것입니다.

이렇게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간절히 원했고, 하와가 여자의 후손을 낳았으므로 이제 곧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진 것이죠. 그러나 이들의 기대는 허사였죠. 이 아기는 여자의 후손으로 메시야가 아니였을 뿐만아니라 오히려 인류를 멸망으로 이끄는 후손이 됩니다. 하와는 가인의 출산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자식을 낳습니다.

둘째로 낳은 아기는 아벨이었습니다.

성경은 특별히 첫째인 가인과 둘째 아벨에 대해서 말합니다.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가 기른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제물을 삼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만 받으시고 가인과 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십니다.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왜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만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는 것일까요?

아벨의 제사는 짐승을 죽이는 피의 제사였고 가인의 제사는 피없는 농산물이었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의 제사는 희생제사가 아닙니다. 이것은 감사의 제물을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러므로 목동인 아벨이 자기가 기른 양새끼로 제물 삼아 제사를 삼고 가인은 자기가 농사해서 얻은 소산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제물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히11:4을 참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아벨의 제사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인 이유는 어떤 제물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믿음은 삶의 태도와 직결됩니다. 아벨은 하나님을 믿었기에 평상시에 하나님 앞에서 성실히 살았을 것입니다. 제물을 드릴 때도 온 정성을 다하여 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가인은 그러지 못한 것이죠.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에 믿음이 없는 가인에게 하나님은 없는 것처럼 여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마음 내키는대로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도 정성을 다하여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형식적이고 사람들의 눈을 의식한 겉치레로 드렸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도 마찬가지죠.

지금 이 예배가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것임을 믿는 사람이라면 온 정성을 다하여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가수들이나 연기자들이 카메라 앞에 섰을 때, 온 힘을 다해 노래를 부르고 연기를 합니다. 그런 것은 지금 내가 하는 것을 많은 사람이 보고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고 이 예배를 하나님이 받고 계신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온 마음을 다하고 온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예배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저 앞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의 눈이나 살피고 몸뚱아리는 예배당에 앉아 있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 있을 것입니다.

아벨과 가인이 드린 제사는 감사의 제사로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여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 제사는 하나님께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제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아벨은 자기가 기른 양들이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임을 알고 하나님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제물을 드린 것이죠. 그러나 가인은 자기가 드리는 제물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나의 노력으로 얻게 된 소산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 없고 오로지 자기 의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존경과 감사가 없이 형식적으로 제물만 덩그러니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이런 불성실한 제물을 하나님은 당연히 열납하지 않으시는 것이죠.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만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자, 가인의 안색이 변합니다.

안색이 변하다얼굴을 떨어뜨렸다. 이것은 깊은 실망감입니다. 이런 실망감은 그의 마음에 분노를 일으킵니다. 그는 분노와 실망감을 억제하지 못한다. 그것은 동생에 대한 질투심에서 기인한 것이다. 가인이 얼굴을 숙이고 분노에 이글거리고 있자

하나님이 가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가인의 삶이 선하지 못하였음이 드러난 것이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았던 이유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자신의 잘못을 전혀 생각지 못합니다. “내 제물이 뭐가 부족해서 왜 아벨의 제물만 합격이고 내 제물은 불합격이지하며 도리어 너무 억울해 합니다. 자신의 제물이 불합격한 것으로 인해 가인은 깊은 실망을 느끼고 그 실망은 분노를 일으킵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아벨에 대한 증오심으로 변합니다. 나는 실패하고 아벨은 성공한 것에 대해서 질투심이 그 마음을 지배해버린 것이죠.

하나님은 이런 가인의 상태를 아시고 하나님이 경고하십니다.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분노의 마음을 버리지 않고 계속 가지고 있으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는 이 상태는 맹수가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서 먹이 앞에서 웅크리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죄가 너를 원하나했습니다. 죄가 가인을 집어 삼키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런 의미입니다. 마치 맹수가 먹잇감을 간절히 원하는 것과 같은 것이죠.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죄는 우리를 집어 삼키기를 아주 간절히 원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죄의 유혹을 받고 있습니까? 미움, 증오, 탐욕, 음욕, 여러분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죄에게 잡아 먹히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죄에게 잡아먹히지 않도록 경고 하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죄를 다스리라 함은 죄를 물리칠 뿐만아니라 선을 행하는 대로 나가라는 것입니다.

속히 동생 아벨에 대한 질투의 마음을 버리고 너의 죄를 회개하고 악한 행실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아벨에 대한 질투의 마음을 버리지 않습니다. 결국 질투는 아벨을 없애버리고 싶은 증오심으로 발전하죠. 이 상태까지 왔으면 죄가 이미 가인을 삼키워 버린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일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라고 말씀하죠.

8절에 보시면

4: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하였습니다. 아벨을 아무도 없는 들로 불러낸 것이죠. 그리고 가인은 자기 동생 아벨을 쳐 죽입니다.

죄가 가인을 완전히 집어 삼키워 버린 것입니다. 이후로 가인은 완전히 죄의 종이 되어버립니다.

4:16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아담도 에덴에서 쫓겨났는데, 쫓겨난 땅에서 가인이 범죄하자 그곳에서 또 쫓겨 난 것입니다.

가인은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자가 되는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아벨을 죽인 가인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묻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하나님께 오리발을 내밉니다.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오리발을 내미는 가인에게 하나님은 가인이 자기 죄를 숨길 수 없도록 확실한 증인을 불러내십니다. 그 증인은 아벨의 피를 받은 땅입니다.

4:10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4: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4: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사람이 아무리 자기 죄를 숨기려고 해도 절대로 숨길 수 없습니다. 먼저 피해를 당한 자들의 소리를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네 아우의 핏 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피해자들의 핏 소리를 다 듣고 계시는 것이죠. 그리고 그 피를 받은 땅이 너를 저주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죄는요 단 한 개도 숨길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나는 은밀하게 죄를 짓고 있다고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그 죄는 먼저 하나님이 아시고 온 천지가 다 알고 증거자들이라는 것이죠.

여러분 죄의 유혹이 왔을 때, 지금 하나님과 온 천지가 나를 보고 있다는 그 사실을 기억하고 속히 죄를 다스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범죄하면 당신의 죄는 온 세상에 다 드러나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고 그 죄에 대한 처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죄에대한 합당한 벌을 내리신다.

4: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4: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첫째 저주는 가인이 밭을 갈아도 땅이 소출을 충분히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죄를 범하는데 땅이 저주를 받는다. 아담때도 그랬는데 가인의 경우가 더 심화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담의 경우는 땀을 흘리면 식물을 먹을 수 있는 정도 였다. 그러나 가인의 경우는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다

둘째 저주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도망자의 생활을 말한다. 땅에서 추방되어 방랑자가 된다는 것이다. 아담도 에덴에서 쫓겨났는데, 쫓겨난 땅에서 가인이 범죄하자 그곳에서 또 쫓아내신다.

 

4:13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4: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4: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4:16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4:17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가인은 유랑을 해야 하는데, 유랑을 하지 않습니다. 성을 쌓고 에덴 동쪽 놋 땅에 정착해 버립니다. 이것은 육신적으로는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합리적이고 안전하고 편안한 것 같지만 그러나 가인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가인이 하나님이 주신 저주대로 계속해서 유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인이 하나님께서 자기가 져지른 죄에 대해 주신 형벌입니다. 가인은 유랑하며 자신의 죄를 돌이키고 회개해야 하는 것이죠.

그러나 가인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결국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죄가 가인을 완전히 삼키워 버린 것이죠. 가인은 이제 하나님께 제사도 드리지 않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으며 오직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완전 불신자의 길을 갑니다.

 

여러분 죄가 문 앞에 엎드려 있습니다. 속히 죄를 다스려야 합니다. 혹시나 죄를 다스리지 못해 범죄하였더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그때라도 즉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면 하나님이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죄를 지어 하나님의 징계로 가인처럼 땅의 저주를 받고 도망자처럼 유리하며 방랑하는 벌을 받았더라도 그때라도 속히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면 됩니다. 그럼 하나님이 반드시 다시 회복시켜주십니다. 그리고 다시 죄를 다스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힘차게 살면 됩니다.

죄가 문 앞에 엎드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