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이제부터 하나님 말씀대로만 살겠다” 이 마음을 성도는 굳건하게 해야 합니다.
성도가 이 마음을 굳건하게 할 때 그 성도의 삶에 하나님의 평강이 임합니다. 그러나 성도가 이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사라지면서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사는 자기가 어리석어 보이고 불안하게 느껴집니다. 그럼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따르겠다는 마음을 굳게 지키는 것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우리의 마음은 상황에 따라 늘 변화 무쌍하기 때문입니다.
기분이 좋고 내가 뜻한 대로 일이 잘될 때는 하나님을 위해서 목숨도 바치겠다고 하지만 조금만 상황이 어려워지고 기분이 안 좋으면 금방 하나님이 어디있어 하고 하나님을 따르기가 너무 어렵게 느껴집니다.
이런 현상은 사람이면 누구나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강직한 사람이라도 그 마음은 매일 매일 요동칩니다. 그래서 성도는 항상 흔들거리는 마음을 굳건하게 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굳건하게 할까요? 그것은 믿음으로 굳건하게 해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시지만 보이는 만물의 실상임을 증거해 줍니다.
세상의 핍박과 환난이 찾아와서 우리의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릴 때, 믿음으로 우리의 마음을 굳건하게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마음이 아주 강직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 사람이 누구냐면 세례요한입니다.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지냈습니다. 그는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그는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로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세상의 권력자들에게 아부하지 않고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하며 그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헤롯왕도 두려워하지 않고 헤롯왕이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취하는 불법을 행하자 그는 헤롯왕의 잘못을 지적하고 과감하게 책망합니다. 이것으로 세례요한은 감옥에 갇힙니다.
이렇게 세례요한은 세상의 부귀를 따르지 않고 세상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주 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강직한 세례요한도 오늘 본문에 보시면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진짜 메시야가 맞나? 라는 의심이 생긴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래서 제자 둘을 예수님께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라고 묻게 합니다.
왜 강직한 세례요한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일까요? 감옥에 갇혔기 때문에,,,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증거하며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 담대하게 살았지만 그 결과는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은 앞으로 자기가 곧 죽을 것을 예감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동생의 부인 헤로디아의 요구로 목이 잘려 죽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이 감옥에 갇히고 자신이 죽임을 당하고 그런 것 때문에 그가 자기가 살아온 삶에 회의를 느끼고 마음이 흔들렸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두려워하고 자기 몸을 사리는 사람이었다면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살고 권력자들에게 독사의 새끼라 소리치고 심판을 선포하는 일들을 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럼 그런 강직한 세례요한의 마음이 흔들리게 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의 믿음을 약하게 하는 의심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흔들리는 마음은 믿음으로 지키는 것인데 믿음이 약해지니 마음을 지킬 수가 없게 되는 것이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흔들리면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변하는 마음을 붙잡기가 어렵게 됩니다. 그럼 우리는 진리의 길에서 이탈하여서 방황하게 되죠. 자칫 실족하여서 진리의 길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안타깝고 불행한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실족에 대해서 아주 강한 경고를 하십니다.
마태복음 5:29에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라고 말씀하시며
마태복음 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사람이 실족하여 믿음의 길을 벗어나는 것은 아주 큰 불행인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라고 묻자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믿음을 굳게 하여 마음 흔들리지 말고 예수님을 끝까지 잘 따르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세례요한의 믿음이 왜 약해졌을 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참 메시야인가라는 의심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 의심의 마음이 생겨난 것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예수님의 행보에서 자기가 기다리는 메시야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기다리는 메시야의 모습은 무엇보다도 공의로 심판하는 메시야였습니다.
눅3:7 요한이 1)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눅3: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그런데 예수님에게는 이런 강력하게 심판하는 메시야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도리어 예수님은 관용하시고 가난하고 힘없고 병들고 그런 무리들과 주로 어울려 다니시며 세상의 불의한 권력자들을 방관해 버리듯이 내버려 두십니다.
세상 권력을 심판하는 심판의 메시야하고는 거리가 먼 것이죠. 그래서 세례요한의 마음에 예수가 하나님이 보낸 메시야가 맞나? 라는 의심이 생기면서 믿음이 약해진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에 대한 의심이 생기면 믿음이 약해집니다.
사실 세례요한이 알고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은 세상을 심판하실 심판 주가 맞습니다. 그는 불꽃같은 눈으로 이 세상을 공의롭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심판의 때가 은혜의 때였습니다. 세례요한 때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훗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재림하실 때 세례요한이 말하던 대로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임을 확증해 주기 위해 자기가 행하는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어쫓고 하는 것들이 다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의 성취임을 말씀해주십니다.
눅7: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 700여년 전 사람인 이사야 선지자가 메시야에 관해 예언한 것입니다.
사26: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2)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3)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
사35:5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자기가 맹인의 눈을 뜨게 하고 못 걷는 자를 일으키고 귀먹은 자를 듣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고 이런 일을 한 것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야의 일을 성취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야가 바로 자기임을 밝히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이 세상을 구원한 구원자이심을 믿습니까? 확실히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든지 이 세상을 죄의 멸망에서 구원하실 분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밖에 없음을 확신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예수그리스도만을 따라가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세례요한의 질문에 답을 주시자 그 답을 가지고 세례요한의 제자들을 자기 선생에게 갑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세례요한을 칭찬하십니다.
세례요한을 어떻게 칭찬하시냐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라고 물으며 세례요한이 어떤 자임을 말씀합니다.
24 요한이 보낸 자가 떠난 후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25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26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훌륭한 자니라
너희가 세례요한을 보려고 광야로 나갔는데, 세례요한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는 세상 바람이 부는대로 이리 흔들 저리 흔들거리는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그런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 너희가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이들은 세상의 부귀를 좇아 다니는 것을 말합니다. 세례요한은 그런 자가 아닌 것이죠. 세상의 부귀영화 같은 것을 따르는 자가 아니었죠.
세례요한은 어떤 자로 칭찬하십니까? 선지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선포하는 선지자 그런데 세례요한은 구약의 어떤 선지자보다도 더 훌륭한 자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세례요한이 구약의 선지자보다 더 훌륭한 자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가 가진 인격이나 능력이 구약의 선지자들보다 더 뛰어나다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앎이 구약의 어떤 선지자보다 더 크다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28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요한이 구약의 선지자보다 훌륭하심을 칭찬하시고 28절에 보시면 그 세례요한보다 더 훌륭한 사람들을 말씀합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있는 자들입니다.
2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시니
여기서 하나님 나라에 있는 자는 오늘날 세례요한 이후 신약시대의 모든 성도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오늘 바로 우리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들이 세례요한보다 강하고 담대하고 인격이 훌륭한 가요? 그렇지 않죠. 그런 차원에서 크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요한보다 크다라고 하신 것은 요한 보다 우리가 더 잘 났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앎이 더 크다는 것을 말합니다.
세례요한은 구약에 이사야의 예언 죽은 자가 살아나고, 맹인이 눈을 뜨고, 못 듣는 자가 듣고, 못 걷는 자가 걷고 그런 메시야의 예언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 것을 직접 본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그 예언의 성취를 보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확신을 갖고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그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죽기까지 하나님을 따라 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신약의 성도들에게는 세례요한에게 열린 계시보다 훨씬 많은 계시가 열렸습니다. 어디까지 하나님의 계시가 열렸습니까? 예 세상 끝날까지이죠. 그러니까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시가 신약의 성도들에게는 다 열려진 것입니다.
세상의 창조서부터 세상 끝날까지 모든 계시가 열려서 신약의 성도들은 예수그리스도의 고난과 대속의 죽음, 부활, 승천, 보좌우편에 앉아 중보하심, 성령강림, 땅끝까지 복음 전파, 말세의 징조, 예수님 재림하셔서 죽은 자와 산자를 심판하시고 새하늘과 새 땅의 삶 이런 세상을 향한 모든 계시가 열린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 열릴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없습니다. 신약성도는 계시의 열림으로 세상 끝을 보고 사는 자들로써 이런 차원에서 세례요한 보다는 모두가 다 큰 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의심은 믿음을 갉아먹는 독약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열려진 계시 즉 예수그리스도만이 유일한 메시야이시고 진리임을 확신하고 믿음을 굳건히 해야 합니다.
세례요한은 아직 계시가 열려지지 않은 부분으로 오해함으로 의심이 생겨 잠시 믿음이 흔들렸지만, 우리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모든 계시가 다 열렸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를 정확하게 바라보고 우리 마음이 흔들릴 때 믿음을 확고히 하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 담대하게 전진해 가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어떤 환난이고 박해가 있더라도 흔들리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기분, 감정,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내가 가는 이 길 예수그리스도의 길만이 진리이고 승리의 길임을 확신하십시오, 계속 믿음으로 전진하는 자는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눅7:23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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