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 2025.4.13 주일오전예배설교 >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눅23:26-38)

박선준목사 2025. 4. 13. 14:49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왜 나와 나의 자녀를 위해 울라고 하시는가?

심판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의 길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 길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복이 있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할 것은 지옥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육체가 죽음도 슬프고 두렵지만 그러나 정말 우리가 두려워하고 슬퍼해야 할 것은 내가 지옥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실 때, 그 모습은 너무도 비참해 보였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완전히 버림당했고 이제 끝난 것으로 보였습니다. 밤새도록 온갖 희롱을 당하고 머리는 가시관이 씌어져 찢기어졌고 몸은 채찍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모든 체력이 고갈되어서 걸을 힘도 없는 상태이죠. 이런 상태에서 20kg 정도 되는 나무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야 하는 것이죠. 군병들이 억지로 예수님 어깨에 나무를 짊어지게 하지만 아마도 예수님이 일어나지 못한 모양입니다. 일어나면 다시 넘어지는 것이죠.

이런 예수님을 보고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무리가 있었습니다. 이 여자들이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것은 예수님이 너무 불쌍했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버림당하고 피투성이가 되어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그의 모습은 너무도 불쌍해 보이는 것이죠. 여자들은 예수님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기 위해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여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예수님은 왜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는 것일까요? 예 그것은 지금 내가 당하는 고통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이 너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당하고 이 십자가의 고통보다 더 무섭고 큰 고통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예 그로부터 35년 정도 후에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 성이 완전히 훼파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때 수년 동안 로마의 공격을 받은 예루살렘 성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부모가 자녀를 잡아 먹는 일도 벌어지고 결국 성벽과 성전이 다 무너져 버리고 로마 군인들이 유대인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아주 잔인하게 죽이는데 임신한 여자의 배를 갈라 죽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하신 것은 그런 로마의 무서운 침공을 염두해두신 것도 있지만, 그러나 예수님이 궁극적으로 울라 하신 것은 마지막 심판 때 지옥에 던져질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울라는 것이죠.

지옥의 고통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지 29절에 보면 날이 이르면 사람들이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날이 이르면은 세상 끝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말합니다. 이 날에는 자식이 없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 자식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30절에도 지옥의 두려움을 말합니다.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지옥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지옥에 가는 것보다 산에 깔려 죽는게 낫다는 것이죠. 산사태가 나서 자기를 덮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옥의 고통이 얼마나 무서운 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은 지옥을 만드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지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곳인지를 잘 아시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9: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2)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예수님은 지옥은 불이 꺼지지 않고 활활 타오르는 아주 뜨거운 곳이라고 말씀하십니다.

9: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21:8 --- 모든 자(죄인)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1624절에 지옥에 떨어진 부자가 이렇게 애원합니다.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아주 뜨겁고 목이 몹시 마른데 물 한 방울도 얻을 수 없는 곳이죠. 그런데 정말 무서운 것은 그런 고통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고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고 소망과 희망이 전혀 없고 오직 절망만 있는 곳입니다. 마태25:30에 절망의 지옥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왜 종은 바깥 어두운 데서 슬피 울며 가는 것일까요? 그것은 모든 소망의 기회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주고 간 달란트를 가지고 열심히 장사를 했어야 했는데, 장사는 안 하고 주인의 달란트를 그냥 땅에 묻어버리고 자기 욕심을 따라 헛된 일만 하다가 세월을 다 보내버리고 주인 앞에 선 것이죠. 주인은 주인이 준 달란트를 그냥 땅에 묻어버린 종을 꾸짖으며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는 것입니다. 종은 지옥에서 통곡 하며 이를 갈며 후회하는 것이죠. “왜 내가 달란트를 땅에 묻어버렸지, 왜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았지하고 이를 갈며 후회하는 것이죠. 그러나 아무리 이를 갈고 후회해도 지옥에서는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지옥은 절망만 있는 것입니다.

이런 지옥의 고통을 아시는 예수님은 자기를 위해 우는 여자들을 향해서 너와 너의 자녀를 위해 울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고 비웃고 조롱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34절에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예수님의 이 기도는 그냥 겉치레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러 나오는 통곡의 기도입니다. 왜 예수님은 자기는 십자가에 손과 발이 못 박혀 죽어가면서 도리어 자기를 비웃고 조롱하고 해하는 무리를 위해 기도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저들은 영원한 지옥에 던져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들에게 임할 지옥 심판은 자기가 지금 당하는 고통보다 훨씬 더 크고 무서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31절에 이런 말씀하십니다.

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푸른 나무인 예수님이 지금 당하는 십자가 고통보다 마른 나무인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임할 지옥심판은 훨씬 무섭고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저들이 지옥에 떨어지지 않게 하기위해 죽어가면서도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도 사람들을 지옥에 보내지 않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비웃고 조롱하며 예수님의 겉옷과 속옷을 서로 가지려고 제비를 뽑아 나누어 가집니다. 지금 이들은 욕심에 눈이 어두워져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남들이 예수님을 욕하니 같이 욕하고 예수님의 옷을 하나라도 더 가져가면 나에게 이득이 되는 것만 생각할 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뜻 이런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나를 높이고, 나의 즐거움 나의 욕심만을 생각할 줄 아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놓고 예수님의 옷을 서로 가지려고 다투는 군인들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의 모습이고 나의 자녀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런 우리들이 갈 곳은 영원한 지옥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죽어봐야 안다고 하는데,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기 욕심을 따라 사는 자들은 지옥에 갑니다.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여러분 나의 영혼을 위해 나의 자녀들의 영혼을 위해 울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말씀을 따르지 않고 나의 정욕을 위해 살고 있다면 나의 영혼을 위해 통곡해야 합니다. 내 자녀가 예배 나오지 않고 세상에 빠져있다면 나의 자녀를 위해 통곡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영적인 눈이 열려지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사람들이 자기 욕심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가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나에게 주어진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 물질, 건강, 재능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은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런 은사를 맡겨주신 것일까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열심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죄로 말미암아 눈이 어두워져서 자기에게 주어진 것들을 오로지 자기를 위해서만 사용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들을 땅에 묻어버리는 것과 같이 미련한 것입니다. 훗날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바깥 어두운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현재 우리의 심령은 죄로 부패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직 나만을 위해 살려는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합니다. 이런 나 자신을 버리기 위해 우리는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서 죽었습니까? 나의 죄 때문입니다. 내가 죽어야 하는데 예수님이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이제 내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나옵니다. 그 사람은 구레네 사람 시몬입니다. 시몬은 시골에서 오는 사람이었는데,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완전히 탈진하여 십자가를 짊어지지 못하자 로마군인이 길을 가던 구레네 시몬을 붙잡아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짊어지기를 꺼리는 십자가, 창피해 하는 십자가를 진 이 사람을 하나님은 높여주고 계십니다. 복음서 기자들이 그의 이름과 가족 관계를 자세히 기록하는 것은 그가 나중에는 예수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처음에는 억지로 십자가를 짊어졌지만 나중에 영적인 눈이 열려지자 자발적으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십자가와 떨어져 있을 때는 자기만 위하는 그저 썩어질 아무것도 아닌 구레네 사람 시몬이었는데, 십자가를 짊어졌을 때 그의 존재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최대의 가치를 발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십자가의 길은 부끄러워 보이고 실패자가 가는 길처럼 보이지만 이 길만이 승리의 길이고 참으로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나의 영혼이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부끄러워하여 십자가를 벗어버리고 세상 길로 가려고 할 때, 나의 영혼을 위해 우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자녀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끄러워하고 세상을 흉내 내며 살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통곡하시기를 바랍니다.

천하를 얻는다고 해도 내 목숨을 잃는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 세상의 삶은 잠깐입니다. 잠깐 배부르게 살다가 영원한 지옥에 떨어진다면 그것은 불행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욕을 먹고 비웃음을 당하고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손과 발이 못 박혀 피흘려 죽으신 것은 우리를 지옥 보내지 않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나의 유일한 자랑이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여러분 세상에 나아가서 크게 외치십시오.

예수그리스도는 세상을 구원할 구주이십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세상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으며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님 믿고 구원 받으세요.

날마다 십자가 짊어지고 예수님 따라가십시오. 그리고 날마다 나의 영혼과 나의 자녀들과 이 세상에 모든 영혼들을 위해 우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