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설교] 믿음으로 가는 가장 좋은 길 (창16:1~6)

박선준목사 2018. 10. 30. 12:14


    

길을 갈 때는 올바른 길을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속력이 빠르다고 해도 그 길이 방향이 잘못된 길이면 목적지에 도착하기 어렵습니다. 가평에서 서울 가려고 하는데, 원주로 가는 길로 가면 속력을 내며 낼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이죠.

그러나 올바른 길을 잘 선택하면 속력이 느리더라도 그 길로만 잘 따라가면 조만간 곧 도착합니다.

우리 인생의 길을 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빨리 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길로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차분하게 올바른 인생길을 뚜벅 뚜벅 걸어가는 사람은 결국은 목적지에 잘 도착하여 승리합니다.

그럼 우리 인생길에서 올바른 길을 어떻게 알 수 있을 까요?

우리가 길을 갈 때 어떻게 올바른 길을 찾아가죠. 예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아 가죠. 예 요즘에는 네비게이션 따라 가죠. 네비게이션도 다 지도를 따라 가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 길에서 지도의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인생의 지도입니다. 지도를 보지 않으면 금방 길을 잃게 됩니다. 그와 같이 우리 인생의 지도인 하나님 말씀을 보지 않으면 우리는 금새 내 인생의 길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갈 때 우리는 올바른 길을 갈 수 있고 우리 길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려면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없고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그 말씀을 따를 수 없습니다. 오직 이 말씀이 진리이고 생명이며 하나님 말씀임을 믿을 때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일 수 있고 그 말씀을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 밖에는 없습니다. 믿음을 가진 성도들만이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따라 갈 수 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따라 올바른 인생길을 걸어가시는 복된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다가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중에 몇 가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서 알아가기를 원합니다.

 

먼저는 조급해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조급함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물론 상황이 급하고 위태롭고 여러 정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조급함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조급함에 빠지면 올바른 길을 벗어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따르기 보다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울왕이 사무엘 선지자와 몇날 몇시에 만나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밖에는 블레셋군인이 쳐들어 오는 것입니다. 블레셋 군인들이 점점 가까이 오자 사울왕은 조급해집니다. 사무엘과의 약속시간이 거의 가까이 되었는데, 사무엘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왔느냐? 아지 안왔습니다. 사울왕은 끝내는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가 제사장도 아니면서 그냥 제사를 드리고 전쟁에 돌입해 버리죠. 나중에 사무엘이 와서 이런 사울왕을 책망하며 앞으로 왕의 날이 얼마 되지 못할 것을 말하죠.

이와 같이 여러분 조급함에 빠지면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게 됩니다. 이 조급함은 불신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자신의 안전을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가 조급함에 빠집니다. 왜냐하면 아기가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셔서 그 약속을 믿고 가나안 땅에 들어왔는데, 아기가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가나안 땅에 온지 10년이 지나가는데 아기가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10년이 지나면서 아브라함은 85세가 되고 사라는 75세의 나이가 됩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이 어떤 남자로써의 기능을 잘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또 사라도 이제 여자로써 경수가 끊겼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15장에 보시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십니다. 그 때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나에게 아들을 주시지 않아서 양아들인 엘리에셀을 나의 상속자로 삼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될 것이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에 밤중에 밖으로 불러내어서 하늘에 있는 별들의 수를 셀 수 있느냐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십니다. 이 때 아브라함이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습니다. 이 일이 15장에 있었던 일인데, 이 일이 있은 후에 16장에서 보시면 어찌된 일인지 사래가 인간적인 방법을 씁니다. 자신의 여종 하갈을 남편에게 주어서 그에게 자식을 갖게 하는 것이죠.

16:2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아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네 몸에서 너의 상속자가 날 것이라고 하셨는데, 사라가 틀림없이 그 말씀을 아브라함을 통해 들었을 것인데, 난데 없이 사라가 자신의 여종을 남편에게 들여보내어 자식을 가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고대시대에는 축첩제도가 일반적인 것이었습니다. 본처가 자식을 갖지 못하면 첩을 가져서 그 대를 이어가는 것이죠. 여종이 남편에게 들어가서 자녀를 가지면 그 여종의 주인이 그 자녀를 자기 자식으로 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종이 자녀를 낳았다고 해서 본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적인 방법으로는 아무 하자 가 없는 것이죠.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말씀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행동은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15:4 네 몸에서 날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본처인 사라를 통해서 하나님이 상속자를 삼겠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라는 그만 조급함으로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죠. 사실 이 고대시대 때 여종을 통하여 씨를 얻는 경우는 많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갈을 취함으로 하갈이 임신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임신을 한 하갈이 교만해 집니다. 아기를 갖지 못하는 사래를 멸시합니다.

하나님 말씀 듣지 않을 때 성도는 세상으로 멸시를 받는 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사래는 남편에게 이 일을 고하고 호소를 합니다.

16:5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16:6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어쨌든 이 일로 하갈이 임신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태어나는 이스마엘이죠.

이스마엘이라는 존재는 하갈의 조급함에서 나오게 된 존재입니다.

물론 하갈은 자신이 잘못한 것을 인식하고 다시 말씀으로 돌아오지만 그러나 그 조급함의 결과물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스마엘은 이삭과 대결의 존재로 잡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약속의 자녀와 함께 할 수 없다 하여서 이스마엘을 쫓압냅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을 큰 민족을 이루는 조상이 되고 그 후예들은 오늘 날에도 대적이 됩니다. 그들이 이슬람이 이스마엘의 후예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약속의 자손이 이삭이 아니라 이스마엘이라고 합니다.

사라의 조급함에서 나온 결과물이 오늘 까지 영향을 미치는 거시죠.

조급함을 버려야 합니다. 자신의 안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라는 자신의 안위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망신당하고 평생 아기 없이 살아도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데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다가 조심해야 할 것은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라가 조급함 속에 하갈을 통해 자기가 자식을 갖겠다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이것은 단호하게 잘랐어야 합니다. 여보 무슨 소리요. 하나님이 당신과 나 사이에서 자녀를 준다고 약속하셨소. 우리 기다립시다. 하나님이 아기를 주실 것이죠. 설령 주시지 않더라도 나는 평생 아기 없어도 괜찮아요.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단호하게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있어서는 단호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두고 자신의 죽음을 이야기 하셨을 때, 베드로가 예수님은 절대 죽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고 말씀하시자 예수님이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단호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말씀을 믿음으로 붙잡고 따라가시기를 바랍니다.

늘 기도하시고 늘 말씀을 가까이 하시며 깨어있으십시오,

조급함이 왔을 때 물리치고 세상이 타협하자고 할 때 단호하게 끊어 버리십시오.

늘 하나님 말씀대로 사셔서 늘 올바른 길을 걸으셔서 승리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