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수요설교> 말씀선포(요나3장)

박선준목사 2018. 11. 1. 11:01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세상에 선포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로 어떻게 선포될 까요? 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에게 임합니다. 그럼 그 사람은 그 말씀을 세상에 그대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세상에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져 왔습니다. 구약시대 때는 주로 선지자들을 하나님이 세우셔서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게 하셨고 오늘 날에는 특별히 성령께서 각 성도 안에 내주해계셔서 성령의 인도 가운데 하나님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에 붙들린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서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고 증거합니다.

구약시대 때나 오늘 날 신약시대 때나 하나님 말씀이 임한 사람을 통해 말씀이 선포됩니다.

오늘 31절에 요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3:1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그런데 몇 번째로 임하였다고 했습니까? 예 두 번째로 임하였다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이 두 번째로 임하였죠. 예 요나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이죠.

요나서1:1 하나님의 말씀이 요나에게 임했습니다. 왜 임한 것입니까? 예 그 말씀을 니느웨에 가서 선포하라고 주신 것이죠. 그런데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 전하기를 싫어해서 다시스로 도망가 버렸죠. 도망가다가 풍랑을 만나고 바다 물고기 뱃속에 3일 밤낮 갇혀서 거의 죽을뻔했는데, 회개함으로 살아나죠.

회개한 요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임한 것이죠. 그래서 1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라고 하신 것이죠.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는 것은 그 말씀을 나 혼자만 알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을 세상에 전하라고 주신 것예요. 성령님께서 말씀을 전하라고 감동을 주시면 즉시 입을 열어서 말씀을 증거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입을 열지 않고 계속 성령을 소멸하면 하나님의 징계가 우리에게 임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위해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실 때, 많은 백성들이 나와서 예수님을 환호하며 호산나를 외칩니다.

19:38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19:39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19:40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이렇게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에 선포되는 것은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만약 내가 하나님 말씀 선포를 거부하면 하나님은 또 다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회개시키시고 다시 요나에게 말씀을 주어 말씀을 선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결국 요나는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 말씀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여러분은 그 즉시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의 사람이 되어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선포할 때 꼭 알아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먼저 말씀을 선포하는 목적입니다. 왜 하나님이 세상에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실 까요?

그 이유는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나를 니느웨에 보내어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게 합니다. 4절에 요나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가요?

3:4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멸망할 것이라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이죠.

그런데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 심판의 메시지를 하게 하는 이유는 니느웨를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니느웨를 구원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해야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죄의 심판이 있음을 선포하고 이 죄악된 세상은 결국 멸망당할 것을 알려야 합니다. 그 멸망은 영원한 지옥의 형벌입니다. 이런 무서운 심판을 선포하는 것은 심판이 임하기 전에 속히 회개하고 구원을 받으라는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세상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 선포해야 합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으면 복음 전파는 무거운 짐이고 부담스러운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자원하는 마음이 아닌 억지로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 됩니다.

오늘 요나가 바로 그런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요나의 마음 속에 니느웨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없었습니다. 회개하고 니느웨에 와서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지만 그러나 요나의 마음속에는 니느웨에 대한 미움의 마음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가 멸망당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니느웨에서 말씀을 선포하였지만 충분히 하지 않습니다. 니느웨 성읍은 큰 성읍이라 삼일을 걸어야 겨우 다 도는 성읍인데, 요나는 4절에 보시면 하루동안만 다니며 외칠 뿐입니다. 이런 태도는 니느웨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만약 사랑의 마음이 있었다면 요나는 일주일 한달을 더 전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마음이 없기에 복음 전하는 그 자체가 짐이고 부담인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는 하나님 말씀을 곳곳마다 다니며 전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의 태도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분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서 자기의 목숨까지 버리셨습니다. 그 분이 자기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어주신 것은 그 분의 마음속에 우리를 향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세상에 전할 때 그 영혼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그 마음으로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 긍휼의 마음, 그 사랑의 마음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만일 우리 마음에 그 사랑의 마음, 긍휼의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복음 전파에 충실 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요나처럼 삼일 길을 걸어야 할 성읍을 하루만 전하고 마는 것이죠.

그러나 정말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 말씀을 세상에 전하는데 온 힘을 쏟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 말씀이 잘 전파가 되기만 하면 내 몸을 관제로 드려도 좋다라고 합니다. 즉 나는 죽어도 좋다는 것이죠. 사도바울이 이런 마음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은 사도바울의 마음 속에 영혼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뜨거운 사랑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혼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뜨거운 마음을 품을 때에 우리는 힘써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복음 전파자가 되는 것이죠, 하나님은 그런 전파자를 통하여 더욱 하나님 말씀 전하게 하시고 그를 통하여 많은 생명이 구원을 받도록 역사하십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쓰임 받으시는 복된 말씀 전파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가 말씀을 전할 때 꼭 알아야 할 사항은 말씀 그대로를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그대로 선포해야 합니다.

복음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반대로 말하면 주 예수를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나가서 그대로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선포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그대로 선포해야 합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이 죄의 심판을 말하고 지옥을 말하면 싫어합니다. 어떤 사람은 욕을 해댈 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피를 흘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서 그대로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요나가 니느웨에가서 하나님 말씀 그대로 전하고 있습니다.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선포한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멸망입니다.

3:4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여러분 니느웨는 어떤 성읍입니까? 그 잔학무도한 앗수르의 수도입니다. 이 잔인한 이방 성읍에 들어가서 그 성읍의 멸망을 선포하라는 것이 요나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순종하기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이방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니느웨가 멸망할 것이라고 떠들어대면 누가 좋아 하겠습니까? 아마도 쥐도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하기 쉽상인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선포하다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예레미야도 멸망을 선포하다고 갖은 핍박과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아마도 요나는 순교의 각오를 가지고 니느웨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는 가서 하나님 말쓰그대로로 선포한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요나의 선포를 듣고 니느웨에 대각성 회개가 일어납니다.

말씀 그대로 선포할 때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그대로 가서 선포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회칠한 무덤이라 하시면서 그들의 심판을 그대로 말씀 하십니다.

23: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3: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말씀을 그대로 선포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역사는 회개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핍박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 반응이 회개이든 핍박이든 우리의 사명은 하나님 말씀그대로 가서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받지 않으면 그대로 심판이 임합니다. 그러나 받고 회개하는 자들을 구원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