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2020.3.15 주일오전예배설교> 표대를 향하여 계속 나아가라(빌3:1-15)

박선준목사 2020. 3. 17. 09:52

푯대를 향하여 계속 나아가라

어떻게 푯대를 향해 계속 나아가나?

예수그리스도를 가장 소중히 여기라 

주 안에서 기뻐하라 

 

요즘 코로나바이러스로 참 세상이 어수선합니다. 직장이 폐쇄되기도하고 학교 개학이 연기되고 웬만한 모든 모임은 취소 및 연기되고,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지 않으니 장사가 안되서 많은 소상공인들이 큰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약국 앞에 마스크 사려는 사람들의 긴줄은 마음을 더욱 심난하게 만듭니다. 마트에 갔는데, 라면대에 라면을 한 사람이 두 세트 이상 구매하지 말아달라는 알림 글을 보고 나도 많이 사두어야 하는게 아냐 라는 불안한 마음이 듭니다.

사회 분위기가 어수선하므로 알게 모르게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열심히 살아가려고 하는 의욕도 많이 상실해 보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럴때 일수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은요 더욱 힘차게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떨고 있을 때, 우리는 그들에게 힘내라고 격려하며 힘을 붙돋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 자신이 굳건히 서있어야 하겠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어떤 풍파와 재앙속에서도 굳건히 서있을 수 있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살지만 그러나 저 하늘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 하늘의 푯대를 바라보고 달려가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이 탄 배가 큰 풍랑을 맞아서 여러 날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않고 큰 풍랑가운데 있게 됩니다. 전혀 살아날 소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배안에 탄 모든 사람들은 절망에 빠지고 맙니다. 그런데 그 때 사도바울이 사람들을 위로합니다.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아무도 생명에 손상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나타나서 두려워하지 말라 너와 배에 탄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하고 배에 탄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이 그런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굳건하게 서있을 수 있었던 것은, 풍랑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수선한 세상 바라보지 마시고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침륜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라 저 하늘의 푯대를 바라고 열심히 달음박질 할 때입니다. 오늘 13절 사도바울은 나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오늘 저와 여러분도 저 하늘에 푯대를 바라보며 달려가기를 축복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우리는 저 하늘의 푯대를 바라보며 달려갈 수 있을까요?

이 세상 어떤 것보다도 예수님을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기는 마음 품을 때 우리는 저 하늘의 푯대를 바라보며 달음박질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소망입니다. 우리는 죄로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죽어 심판을 받아 영원한 지옥에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에 우리의 죄가 함께 못박힌 것인데, 여기서 우리의 죄는 바로 우리 자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우리의 죄악된 자아가 함께 못박혀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죽은 예수그리스도를 삼일 만에 다시 부활시키십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속에 바로 우리의 부활도 포함이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었던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아나는 것이죠. 그러므로 예수님은 바로 우리의 생명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은 예수님의 생명으로 다시 부활하게 되는 것이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요 죄의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값을 다 치루어주셨기 때문이죠. 그런데 여러분 놀라운 것은 훗날 인류의 죄를 심판하시는 심판주가 다름아닌 바로 예수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그 분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죄로말미암아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 완전히 막혀있고 우리가 가는 길은 오직 지옥밖에 없었지만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여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는 오직 예수님 밖에 없음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 7,8절에 전에 자기가 소중하게 여기던 것을 이제는 다 해로여기고 배설물처럼 버린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이 예수님을 따라가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살아도 죽어도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위할 뿐입니다.

1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은 내 대신 돌아 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그리스도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나의 목숨도 아깝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자만이 세상의 어떤 유혹과 환난 속에서도 저 하늘의 푯대를 향하여 계속 달음박질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늘의 푯대를 향하여 계속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 까요?

기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의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주 안에서 얻는 기쁨입니다. 세상의 기쁨은 상황에 따라서 변하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 생기면 기쁘지만, 좋지 않은 일이 닥치면 금새 기쁨을 잃어버리는 것이죠. 그러나 주 안에서 기쁨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상황을 초월한 기쁨입니다. 기쁜일이 있을 때도 기뻐할 뿐 아니라 슬픈일이 닥쳐도 큰 환란이 찾아와도 심지어 목숨을 빼앗기는 상황에서 조차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할 까요?

그것은 기쁨의 이유가 늘 변하는 이 세상에 있지 않고 언제나 변함없으신 하나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사도바울은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을 잃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3: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주 안에서 기뻐하라!! 말을 반복해서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기뻐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하는 일이 잘안되고, 병에 들고,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요즘 같이 코로나 같은 재앙이 임하고 이런 상황에서 주 안에서 기뻐하라라라고 말하기 힘든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은 주안에서 기뻐하라라는 말을 또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 이 글을 쓰는 사도바울의 입장도 결코 기뻐할 상황이 아닙니다. 지금 사도바울은 로마감옥에 갇혀있는 상태입니다. 사도바울의 삶에 기쁨이 넘쳐나는 일들이 많아서 주안에서 기뻐하라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도리어 사도바울의 삶에 극심한 환난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고후 11:23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고후 11: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고후 11: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고후 11: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고후 11: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런 상황에서도 사도바울은 너희가 기쁨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기쁨을 잃지 말라는 것은 주님을 계속해서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우리는 금새 주안에 기쁨을 잃게 됩니다. 주님이 아니라 이 세상을 바라보면 더 이상 주님 안에 기쁨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기쁨이 참 기쁨인 것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은 예수님을 떠나서 세상을 향해 가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여러분 세상은요 우리에게 절대로 참된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헛될 뿐입니다. 솔로몬은 이 세상이 줄 수 있는 모든 기쁨을 다 누려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헛되고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다 였습니다.

참 기쁨은 오직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도들이 세상에 나가서 예수님을 전하다가 붙잡혀 옵니다. 데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도를 전하지 말라고 했는데 또 전했다고 위협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채찍으로 친 후에 놓아주는데요,

5: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주님 때문에 살이 찢어지고 고통을 당했는데, 도리어 주님의 이름으로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자가 되었다고 기뻐하였다는 것이죠.

주님을 바라볼 때 우리 안에는 이 세상의 모든 상황을 초월한 기쁨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을 따르다가 어려움에 부딪치고 환란을 받을 때, 지금 내가 가는 이 길이 진리의 길이고 이 길 끝에는 우리 주님이 계시다라는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훗날 주님께서 나의 눈물을 다 닦아주실 것이고 나에게 의의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을 생각하면 너무도 기쁜 것이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16:3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지금 주님 바라보고 가는 이 길은 승리가 보장된 길이라는 것이죠. 이미 우리 주님께서 승리하셨기에, 그 주님을 바라보고 따라가는 자들은 승리자들 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14절에 자기 앞에 상이 있음을 말합니다.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예수님이 부르신다는 것이죠. 바울아 나를 따라오너라, 바울아 이리오렴, 너를 위해 상을 준비해 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훗날 주님이 자기에게 주실 상을 생각하며 기쁨을 잃지 않고 달음박질 했던 것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이 상은 사도바울에게 만 아니라 사도바울처럼 하늘의 푯대를 바라고 끝까지 달음박질 하는 자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나의 가는 이 길 끝에 상을 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시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도 기쁘지 않습니까? 기쁘고 기쁜 것이죠.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해가시면서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세상 끝날 까지 내가 너와 항상 함께 하리라여러분 지금 우리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혼자가는 고독한 길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이 철저하게 우리를 보호하고 계시고 때를 돕는 은혜를 주시고 늘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어디가 아프고 어떻게 힘들고 무엇이 문제이고 여러분의 모든 형편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시니 얼마나 기쁘고 좋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주 안에 기뻐하십시오. 그리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마시고 저 하늘의 푯대를 향해 달려가십시오.

요즘같이 모두가 어려워 할 때, 여러분은 일어서십시오.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밝게 인사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도 좋은 하루되세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힘내세요. 코로나가 아니라 코로나할아버지가 와도 우리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오늘도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 바라보시고 기쁨으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