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복음은 없음
오늘 설교제목이 다른 복음은 없다입니다. 그럼 성경이 말하는 복음은 무엇일 까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나의 의지나 공로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복된 소리, 복음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사람이 구원받으려면 욕심을 버려야 되고, 마음을 똑바로 먹어야 하고, 게으름을 피우면 안되고, 착한 일을 3000번 이상 해야하고, 거짓말을 하면 안되고, 율법을 지켜야 되고 등등 사람의 노력이나 공로가 있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면 그것은 복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자가 있으면 “아 이거 거짓선생이구나” 하고 그 사람을 즉시 멀리하십시오. 그의 가르침은 결국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게 하는 이단 괴수입니다. 죄인인 인간은 자기의 노력이나 공로로 절대로 자신의 죄를 씻을 수 없으며 자기 영혼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결국 죄가 드러나 죄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지옥에 떨어질 뿐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사도바울은 자기가 전하는 복음외에 다른 복음은 없다고 말합니다. 만약 자기가 전하는 복음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일지라도 그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을 8,9절 두 번씩이 강조합니다.
갈 1: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저주를 받을지어다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며 자신이 전하는 복음외에 다른 복음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은혜라는 말은 좋은 선물이라는 것이죠. 선물은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죠. 그냥 값없이 받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물이 가치가 없는 하찮은 것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죠. 여러분도 누구에게 선물을 주는데, 하찮은 것을 줍니까? 그렇지 않죠. 좋은 것을 주죠. 내가 먹을 것은 좀 싸구려를 사더라도 선물을 줄 것은 값이 나가고 좋은 것으로 하죠.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주시는 구원의 선물은 너무 너무 너무 좋은 것이죠. 이 구원의 선물은 값으로 따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왜 이 귀한 구원을 우리에게 값없이 선물로 주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구원의 값을 치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각자 구원의 값을 치르라고 하면 아무도 구원에 이르를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곳은 지옥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값을 대신 치르시고 그 구원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서 어마 어마한 댓가를 치루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치루신 댓가는 무엇일까요? 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이시죠.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아버지의 하나 밖에없는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영원전부터 하나님아버지와 하늘 영광가운데 계시던 분인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서 이 땅에 사람으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의 선물인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은 이 죄악된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하기위하여 자기의 몸을 내주셔야만 했습니다.
갈 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하나님께 나와 예배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대속물이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 죄를 씻기 위한 속죄의 죽음이었던 것입니다.
구약시대때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죄를 씻기 위하여 속죄의 제물로 어린양 같은 짐승을 가지고 나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짐승 머리에 손을 얹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이 짐승에게 자신의 죄를 전가시키는 것이죠. 그리고 그 짐승을 죽여 속죄의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럼 그 사람의 죄는 씻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짐승의 피가 사람의 죄를 절대로 씻어 주지 못합니다. 어떻게 사람의 죄를 짐승 따위가 대속할 수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시대 때, 이 짐승의 피로 사람의 죄를 씻는 이 제사를 하나님이 받으신 것은 그 속죄의 짐승은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짐승의 제사를 받으신 것은 훗날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을 염두해두셨기 때문인 것이죠.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의 죄값을 치루기위해 자기 몸을 속죄의 제물로 내놓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모든 죄사함을 받은 것이죠.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같은 죄인이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은 예수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자기 몸을 내어 주셨기 때문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한번 따라합시다. 내가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여러분 우리를 구원하는 이 복음은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죄인들을 구원하는 이것은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들은 사람의 지혜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철저히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수많은 선지자를 보내어 오실 예수그리스도를 예언하게 하였고, 예수그리스도는 예언 그대로 이 땅에 오셨고 그 예언 그대로 이 땅에 사시다가 예언그대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죽은 예수그리스도를 삼일만에 부활시킴으로 복음을 완성하셨습니다. 이제는 그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은 누구나 다 구원을 받게 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그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줄을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어야겠다고 결단하기 전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갈 1: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
하나님은 이미 창세전에 나를 택하셨고 때가 되어 나를 부르신 것이죠. 그 부름속에 예수님을 믿고 구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은 것은 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나의 구원은 사람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된 것입니다. 나의 구원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너무도 큰 복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이 절대로 흔들릴 수 없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나의 구원이 나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그 구원은 늘 불안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언제나 변하기 때문입니다. 기분이 좋고 내가 잘한다고 느껴질 때는 나는 천국갈 수 있어,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셔 그렇게 생각이 들것입니다. 그러나 기분이 나쁘고 어떤 죄를 져지르면 나같은 것이 무슨 천국야, 하나님이 나를 싫어하실 거야, 하며 늘 구원이 흔들리는 것이죠. 나의 구원이 나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구원받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며 늘 불안과 염려가 가득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구원은 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우리는 내가 구원받았나 안받았나 이런 것을 가지고 염려할 필요가 전혀없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구원은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이 없으신 절대자시라는 것이죠. 그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자기 아들을 피흘려 죽게하심으로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 자녀 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시고 너는 내 아들야 너는 내 딸야 그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느 누가 변개할 수 있습니까?
내가 잘났든 못났든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만원짜리가 꾸겨지든, 발에 밟히든, 물에 적셔지든 어떤 상황에서도 만원인 것처럼, 내가 하나님의 자녀됨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에게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주셨기 때문이죠.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 곧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이심을 믿습니까? 정말 믿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향해서 너는 내 아들야 딸야 그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어느누구도 변개할 수 없습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내가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갖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은 나는 천국에 간다는 확신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확신이 있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대학후배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을 갔었는데요, 대학후배에게는 어머니를 이제 이 땅에서 보지 못한다는 슬픔이 있었지만, 그러나 그 후배마음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쳐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저 천국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교회의 권사님으로써 평생을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사셨기에. 지금 어머니가 예수님과 함께 저 천국에 계심을 확신하는 것이죠.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으면 자기도 저 천국에 갈 것이고 거기서 어머니를 만나 영원토록 살 것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나의 구주이심을 믿으시죠? 내가 가는 이 길에 우리 주님이 항상 함께 하시고 이 길이 바로 천국가는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쳐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사도바울은 갈라디아교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을 것을 축복합니다.
갈 1:2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갈 1: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런데 이 당시 아시아의 여러 교회들은 결코 평안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면 세상으로부터 여러 핍박을 받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 자신도 복음을 전하다가 수많은 고난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너희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너희에게 기쁘고 좋은 일이 있을 때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쁘든 슬프든 어떤 상황에 처하든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한다는 것이죠. 이것은 세상의 모든 상황을 초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데살로니가5장은 이렇게 말하죠.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모든 상황을 초월하여 기뻐하고 감사하라는 것이죠.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것이죠? 그것은 내가 구원받았다는 확신에서 주어지는 것이죠. 구원의 확신은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넘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의 구원을 확신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또하나의 현상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죠. 내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신 것임을 알기에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요,
그래서 사도바울은 나의 나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고전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내가 구원받은 것,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뿐만아니라 나의 삶 전부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는 죄인이었습니다. 아무런 소망이 없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피흘려 죽으심으로 나의 죄값을 치루어주시고 죄와 사망에서 나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나의 삶 속에 항상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나의 삶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일 뿐입니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살지 않습니다. 나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계실 뿐입니다. 나의 삶 전부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릴 뿐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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