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2020.4.19 주일오전예배설교> 본향을 향한 믿음 (창50장)

박선준목사 2020. 4. 21. 12:03


본향을 향한 믿음


 성도는 내가 본향으로 돌아간다는 믿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여기서 본향은 하나님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결국 하나님에게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습니다라는 표현이 맞는 표현이죠. 이것을 롬 11:36이 말씀해 줍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여러분 내가 하나님에게서 왔고 또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본향으로 돌아간다는 믿음을 갖는 것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데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이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뿌리를 잃게 되고 삶의 목적과 방향을 잃게 되어 방황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내가 어디서 왔고 왜 살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채, 그냥 내 느낌대로 내 생각대로 순간 순간 살다가 이슬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훗날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갔을 때에 무서운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마태25장에 달란트 비유에서 주인이 금 달란트를 종들에게 주고 타국으로 떠나는데, 그 중에 금 한달란트 받은 종이 주인이 준 달란트를 땅에 묻어버립니다. 주인은 그 달란트로 열심히 장사하라고 준 것인데, 종은 주인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 생각대로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둔 것이죠. 나중에 주인이 돌아와 결산을 하는데, 다른 종들은 열심히 장사를 해서 여러 달란트를 남겨왔는데, 이 종은 땅에 묻어두었던 한달란트를 그대로 가져옵니다. 주인은 이 종을 보고 크게 노하여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삶을 살다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면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간다는 이 사실을 분명히 믿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그럼 내가 본향으로 돌아간다는 믿음을 가진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내가 갈 본향을 준비하며 삽니다.

사람들의 삶이 참 바쁩니다. 특히 현대인들은 더욱 바쁜 삶을 삽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고 변화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살아야 하는 것이죠. 그렇지 않으면 금새 뒤처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열심히 살아갑니다. 물론 부지런히 열심히 사는 것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부지런과 열심의 삶이 단지 이 땅에서 잘사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그 삶은 헛된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은 우리의 본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잠시 머물다고 떠나갈 세상이라는 것이죠. 그럼 잠시 머물다가 떠나갈 세상이니까 대충 살라는 말입니까? 천만해 만만해죠, 도리어 반대로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가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서 열심히 사는 것은 저 영원한 본향을 준비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본향으로 돌아간다는 분명한 믿음을 가진 자는, 이 땅에서 살지만 언젠가 돌아갈 본향을 준비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야곱과 요셉이 바로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147세의 나이로 죽은 야곱을 장사지내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애굽땅에서 죽은 야곱을 400KM 떨어진 가나안 땅으로 옮겨서 장사를 지냅니다. 400KM 라는 거리는 오늘날도 멀지만 고대시대 때에는 엄청나게 먼거리입니다. 왜 장지를 400KM 넘는 먼 곳으로 정한것일 까요? 예 그것은 야곱의 유언 때문입니다. 야곱은 죽기 전에 아들 요셉에게 내가 죽으면 나의 시신을 가나안 땅에 묻으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 이유는 가나안 땅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으로 자기 돌아갈 본향임을 분명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애굽에 살면서 자기가 돌아갈 본향을 늘 준비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죽으면서 자기 시신을 400KM나 떨어진 가나안 땅에 묻으라고 유언을 한 것입니다. 당시 애굽의 총리였던 요셉은 자신이 가진 권세로 아버지의 시신을 가나안 땅으로 옮겨와 장사를 지낸 것입니다.

요셉도 그 아버지 야곱처럼 본향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처음 이스라엘민족을 애굽으로 이주시킬 때 부터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의 거주지를 정할 때, 애굽민족과 섞어지 않고 또 이스라엘이 애굽을 빠져나갈 때 아주 용인한 땅인 고센 땅에 머물게 합니다. 그리고 요셉은 80여년을 애굽에서 살다 죽지만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민족이 반드시 본향인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애굽에서 살지만 언제나 본향으로 돌아갈 준비하며 살았습니다. 그가 죽을 때도 유언을 남기는데, 훗날 이스라엘민족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땅으로 갈 때 반드시 자기의 유골을 가지고 가서 가나안 땅에 묻으라고 합니다. 이 유언대로 요셉이 죽은지 400여년 후에 하나님의 권능으로 이스라엘민족이 애굽을 빠져나와서 가나안 땅으로 가게 되는데, 이 때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챙겨서 애굽을 빠져나옵니다. 결국 요셉의 유골은 가나안 땅에 묻히게 되죠. 이렇게 된 것은 요셉이 본향으로 반드시 돌아간다는 확신으로 본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여러분 본향으로 돌아간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어디있든지 본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며 살게 되어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참 많습니다. 베트남, 네팔, 필리핀, 인도 등등 그런데 이 노동자들은 하나 같이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나라에서 집사고 땅사고 그럴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월급을 타면 최소한 자기생활 할 것만 사용 하고 나머지는 본국으로 보낸다든가, 아니면 돈을 차곡 차곡 모으는 것이죠. 그리고 어느 정도 돈이 모아지면 그것을 가지고 자신의 가족들이 있는 본향으로 가는 것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믿음의 성도들도 우리가 돌아갈 본향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본향을 어디입니까? 예 하나님아버지가 계신 저 영원한 하늘나라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저 영원한 하나나님 나라를 준비하며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이렇게 좋은 날씨에 어디 놀러가지 않고 이 예배당에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도 저 하늘의 본향에 대한 준비인 것이죠.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비웃음을 당해도 계속해서 담대하게 예수님을 전하는 것도 저 하늘의 본향에 대한 준비인 것이고, 한 달 월급 받아서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기도 빠듯한데, 그 월급에서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구별하여서 하나님께 예물로 올려 드리는 것도 저 하늘의 본향을 향한 준비인 것이죠. 세상은 향락으로 자신의 육욕을 채우지만, 우리는 성결을 지키며 피흘리기까지 죄와 싸우는 것도 저 하늘의 본향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은 결국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잠깐 지나가는 정류장에 불과한 것입니다. 내가 영원히 거할 본향은 하늘이 있다는 것이죠. 우리는 우리가 거할 영원한 본향을 준비하며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복된 인생이고 보람된 삶입니다. 잠깐 지나가는 이 땅을 마치 본향으로 생각하고 이 땅에 초점을 맞추어 산다면 그 인생은 헛된 것입니다. 127편에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며 늦게 누으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한 것은 본향을 생각하지 않고 썩어질 이 땅만을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삶이 끝나버릴 때, 우리의 모든 수고가 헛된 것이 되버리는 것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가야할 본향이 저 하늘임을 믿으시고 저 하늘의 본향을 준비하며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성도가 이 땅에서 하늘의 본향을 준비하며 살아갈 때 여러 어려움들을 만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하늘을 바라보지 않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찬 세상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하늘의 본향을 바라보며 살려고 할 때 세상으로부터 멸시와 핍박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본향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성도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따라합시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이 세상을 완전히 주관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이 섭리 가운데 일어난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섭리를 벗어나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죠.

왜그러냐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 모든 만물은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아까 롬 11:36 말씀이죠.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모든 만물이 하나님 손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섭리를 믿기 때문에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거나 교만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닥치더라도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일어나는 것임을 믿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다시 전진하는 것이죠. 반대로 일이 술술 잘풀리고 성공하더라도 그것이 내가 잘나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로 된 것임을 믿기에 교만하지 않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며 겸손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이죠.

오늘 본문에 요셉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죽자 요셉의 형들이 큰 근심에 빠집니다. 아버지가 죽었으니 이제 요셉이 우리들을 미워하여 전에 우리가 행한 모든 악한 일에 대해서 복수하지 아니할 까하고 걱정합니다. 형들이 행한 악한 일은 요셉이 17살 때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여서 노예상인에게 팔아버린 사건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였지만 형들은 요셉을 가차없이 노예로 팔아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요셉이 들판에서 짐승에게 잡혀먹혔다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그런 죄악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이죠. 그러나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은 그런 형들의 죄악을 완전히 용서합니다. 요셉이 형들의 죄악을 완전히 용서할 수 있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요셉이 하나님의 섭리를 알지 못했다면, 그의 형들은 진작에 없애 버렸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죽자 형들은 불안합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요셉이 아버지를 보고 참았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요셉이 자기들을 다시 미워하여 복수하면 어떻게 하나!! 그래서 요셉의 형들은 요셉에게 말을 전합니다. 당신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전에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습니다. 부디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의 죄를 용서하소서 이 말을 들은 요셉은 자기가 형들을 이미 완전히 용서한 것을 알지 못하는 형들을 불쌍히 여겨 웁니다. 그리고 요셉의 형들이 또 직접 찾아와서 요셉 앞에 엎드려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요셉은 그런 형들을 향해서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여 하였으나 하나니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신 것입니다. 형님들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시오.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합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기에게 행한 악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처단해야 할 악이지만 그러나 그들의 죄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원수까지도 용서하는 것이죠.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기 때문입니다. 형들이 자기를 노예로 판 것도 하나님의 섭리였고 또 노예로 애굽에 팔려왔지만 자기가 애굽의 총리의 자리까지 오른 것도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믿는 것입니다. 요셉의 애굽의 총리가 됨으로 7년 대 흉년을 이겨낼 수 있게 됨으로 요셉을 통하여 애굽의 모든 백성들 뿐만아니라 주변에 수많은 생명들을 살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의 가족들도 살 수 있게 된 것이죠. 요셉은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섭리에서 일어난 것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형들의 죄를 용서할 뿐만아니라 자기가 총리가 되었다고 거드름을 피우거나 교만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평생 자기에게 주어진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늘 겸손하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요셉은 죽을 때까지 애굽에서 그 명성이 떨어지지 않고 요셉은 자기 아들의 3대손까지 보고 숨을 거둡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또 교만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본향을 바라보며 사는 자는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굳건히 믿습니다. 하나님이 결국 나를 본향으로 인도할 것을 믿는 것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는 가야할 영원한 본향이 있습니다. 내가 갈 본향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 열심히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본향을 바라보며 살아갈 때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섭리가 우리를 완전히 지켜주고 영원한 본향으로 인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