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에게 주의 날이 도둑같이 임하지 못하는 이유는?
깨어있기 때문에
서로 붙잡아 주기 때문에
낮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에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주의 날 할 때, 주는 특별히 예수그리스도를 염두해둔 말입니다. 구약에서는 주의 날을 여호와의 날로 표현하였습니다. 구약에서 말씀하는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의 진노의 날, 슬픔의 날, 멸망의 날을 말합니다. 몇 구절 읽어드리면
사 13:6 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
사 13:9 보라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이르러 땅을 황폐하게 하며 그 중에서 죄인들을 멸하리니
욜 1:15 슬프다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
습 1:14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슬피 우는도다
이렇게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날로 땅이 황폐하고 용사들이 슬피 울며 죄인들이 멸망을 당하는 멸망의 날입니다. 그런데 이 구약의 여호와의 날을 신약에서는 오늘 본문처럼 주의 날로 표현하였습니다. 여기서 주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예수그리스도를 염두해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나 빌립보서에 보면 주의 날을 그리스도의 날, 예수그리스도의 날로 표현했습니다. 여러분 왜 신약에서는 구약의 여호와의 날을 그냥 여호와의 날이라고 표현하지 않는 것일 까? 아니면 하나님의 날 이렇게 표현하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신약에는 여호와의 날, 하나님의 날 이런 표현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단지 주의 날, 그리스도의 날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 신약에서는 주의 날, 그리스도의 날로 표현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멸망의 날에 주 예수그리스도가 다시 오심이 구체적으로 계시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구약에서 말하는 멸망의 날인 여호와의 날은 우리 주님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대적하는 모든 세상을 멸망시키시며 죽은 자와 산 자를 심판하시는 날인 것입니다. 그것이 2절에서 나오는 주의 날입니다.
그런데 이 주의 날이요, 도둑 같이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도둑 같이 이른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예 도둑이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주의 날도 언제 임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뜻이죠. 예수님 자신도요, 그 날은 나도 모른다라고 말씀하셨어요.
마 24:36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 즉 세상이 끝나는 날이 정확히 언제 올지는 알지못하지만 세상 끝나는 날이 가까이 되었다는 징조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1절에 보시면
살전 5: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때와 시기라고 했는데요, 이 때와 시기는 모두 주님이 오시는 날, 그 때와 시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때와 시기를 복수로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복수로 쓰는 것일까요? 그것은 종말의 날이 단 한 사건으로 오지 않고 다양한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이루어질 것을 암시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아무런 변화도 없다가 갑자기 예수그리스도께서 쾅하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여러 가지 징조의 사건들이 벌어진다는 것이죠.
오늘날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이 돌고, 지구의 온난화로 기후 이상 변화가 곳곳마다 일어나고, 이것으로 인해 인류 대재앙이 예고 되고 있습니다. 지진이나 기근은 전에보다 더욱 많아졌고 강력해졌습니다. 인류의 과도한 물질주의로 인해 환경의 파괴가 엄청납니다. 하나님이 만드시 남성과 여성의 창조의 질서가 무너지고 동성애의 합법화가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이 핵을 가지고 으르렁거리고 있고,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사랑이 식고 극도로 이기적이며, 바른 교훈은 듣지 않습니다. 절대적 진리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자기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두고 각자의 소견을 따라 갑니다. 그 어느 때 보다 이단들과 거짓선생들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런 세상의 모습들이 말세의 징조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징조들을 보면서 믿는 자들은 주의 날이 가까이 왔음을 인식하고 더욱 깨어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신의 세상은 이런 말세의 징조가 아무리 강하게 오더라도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는 것입니다. 주의 날, 세상 끝날, 예수가 다시 온다고 그런게 어디있어, 내일도 태양은 뜰거고, 세상은 계속될 거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은 결코 멸망을 피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말세의 징조를 보여주어도 그들은 그것이 말세의 징조인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죠. 안전하다, 평안하다 하는 것이죠. 그런데 언제까지나 이런 세상이 계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날 갑자기 멸망의 날이 임할 것입니다. 그때는 아무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주의 날, 멸망의 날은요,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성도는 밤에 속하지 아니하고 낮에 속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4,5절인데요,
살전 5: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살전 5: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한다는 것예요. 왜냐하면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않고 빛의 아들이고 낮에 속한자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낮에 속한 성도들에게는 멸망의 날이 도둑같이 임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깨어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도둑이 주로 언제 들어오죠. 예 밤이죠. 왜 밤에 들어옵니까? 예 밤에는 모두가 잠을 자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낮에는 들어올 수 없죠. 왜요? 다 깨어있기 때문이죠. 식구들이 다 깨어있어요, 아빠는 마당에서 정원 관리하고 있고 엄마 부엌에서 밥하고 있고 큰애는 공부하고 있고 작은 아이 둘은 자기들끼리 놀고 있고 할머니는 방에서 티브이보고 계시고 그럼 여러분 이 집에 어떻게 도둑이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깨어있으면 도둑이 임할 수 없죠.
그런 것처럼 성도들은 낮에 속한 깨어있는 자들이기에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깨어있다는 말은 주의 날을 늘 준비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성도들은 결코 멸망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밤에 속한 세상은 주의 날을 깨어서 준비하지 않고 잠자고 있는 것이죠. 도둑같이 주의 날이 임하면 아무도 피하지 못하는 것이죠.
그럼 주의 날을 깨어서 준비하는 성도는 어떤 자들일까요?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는 자들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이 세상이 밤에 속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 잠자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뇨,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데요, 돈을 벌기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 참 많습니다. 부지런히 성실히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잠자는 자요 어둠에 속한 자라고 말합니다. 왜요? 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모든 활동들이요, 이 땅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이 세상에 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어둠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보다는 이 세상에서 잘먹고 잘사는데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이죠. 이렇게 세상에 빠지면 그 성도는 깨어있지 못하는 것이죠. 잠자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깨어있다 라는 것은 무슨 일을 하더라도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는 것입니다.
저희 집이 3층짜리 빌라입니다. 저희는 2층에 사는데요, 며칠전에 1층 사시는 아주머니가 하수관이 막혀서 다른 데로 흘러내려간다는 것예요. 그런데 6개월전에 막혀서 30만원 주고 뚫은 것이 거든요, 그 전에도 몇차례 뚫었습니다. 그런데 또 막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하수관의 구조가 잘못되어서 막히는 것이다. 그래서 땅을 깊이 파서 하수관을 수리해야 한다는 판단이 서는것예요. 그럼 비용이 얼마나 드나? 비용이 많이 들텐데~~ 기술자는 누구를 부르나?? 등등 머릿속이 막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저의 모든 신경이 거기에 다 쏠리는 것예요. 그런데 그 때 제가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야 하는 시간이었거든요, 그런데 기도와 말씀에는 마음이 안가고, 하수구 뚫는 일에 마음이 쏠리고 그것이 더 중요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예요. 그 때 저의 마음 속에 마6:33말씀이 생각이 나더라구요.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아 내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야지, 하면서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당장에 집으로 뛰어가 하수구 뚫는 일에 참견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마음을 고쳐먹으니까 다시 기도하고 말씀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더라구요. 충분히 기도하고 충분히 말씀보고 나중에 집에 갔는데, 일이 진행되는데, 전혀 지장이 없고 일이 아주 잘 진행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깨어있지 않으면 급박한 세상의 흐름에 빠져서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뒷전으로 미루어 버리기가 너무 쉬운 것이죠.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그런 것들이 미련해보이고 세상의 것들이 더 크게보이고 중요하게 보이는 것이죠.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지 못하고 이 땅에서 잘먹고 잘사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점점 기도와 말씀이 멀어지면 그 사람은 점점 세속화되는 것입니다. 경건은 그저 모양만있고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일주일에 한번 교회는 나온다고 하지만 나머지 삶은 불신자들과 같이 시집가고 장가가고 먹고 마시고 세상 것에 초점을 맞추어서 사는 것이죠. 주의 날이 곧 온다 그런데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이 땅에서 잘먹고 잘사는데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그는 낮에 속한 자가 아니라 밤에 속한 자인 것이죠. 그는 깨어있는 자가 아니라 잠자는 자인 것입니다.
주의 날, 곧 멸망의 날이 닥치면 결코 피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야 합니다. 직장을 다니든지, 장사를 하든지, 노동을 하든지, 운동을 하든지, 놀러를 가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을 하는 첫 번째 이유는 항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에게 주의 날이 도둑같이 임하지 못하는 이유는 성도는 서로 붙잡아 주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붙잡아 주는 것은 깨어있는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살전 5: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권면이라는 말은 곁으로 부르다 그런 뜻인데,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것이죠 그러면서 서로의 덕을 세워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동체로 있을 때 생겨나는 새로운 유익입니다. 1+1 이 단순히 2가 아닌 것이죠. 1+1이 10이 되는 것이죠.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함께 예배하며 서로 안부를 묻고 성도의 교제를 나눌 때, 그것이 서로를 깨워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교회를 세워놓고 가셨습니다. 교회는 단수가 아닙니다. 교회는 복수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자들의 공동체입니다. 다시말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모임이죠. 그렇다고 단순히 예수 믿는 자들이 모였다고 해서 다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형성이 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직분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직분은 교회를 형성하는 뼈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사, 장로, 집사 이런 직분자들이 뼈대를 이루어 세워진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직분자들을 통해서 교회를 든든히 세워나가시죠. 목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선포되고 가르쳐지게 하고 장로들은 교회를 말씀으로 치리해나가고 집사들은 말씀을 따라 섬기고 봉사하며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워가는 것이죠.
여러분들은 제가 성령안에서 준비한 말씀을 예배때 마다 들으며 자신을 깨우며 덕을 세워나가죠. 그런데 목회자인 저는 그 말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더욱 깊이 알아가고 깨어있게 되는 것이죠. 집사들은 교회 안에서 열심히 성도들을 섬기며 봉사합니다. 그 섬김을 통하여 많은 성도들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많은 유익을 얻습니다. 만약 교회 청소를 한다면 그 집사들의 봉사를 통하여 많은 성도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기쁨으로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집사들은 그 봉사와 섬김을 통하여 자신의 덕을 세워갑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지고, 오래참음과 온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음 등 여러 성령의 열매들이 맺혀져 가는 것이죠.
장로들은 교회를 치리해야하는 자로써 자신이 먼저 항시 본되야 합니다. 자신의 삶이 잘못되어있으면서 어찌 교회 성도들을 치리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장로들은 더욱 겸손하고 섬김의 자리에서 성도들의 본이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그 장로들을 통해 건강한 교회로 잘 세워져가게 되죠.
이렇게 교회가 든든히 서가려면 모든 성도들이 자기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헌신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을 깨우는 것입니다.
11절에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 세우라 했는데요,
이것은 현재 동사 명령형입니다. 피차 권면하라!! 서로 덕을 세우라!! 이겁니다. 현재형이라는 것은 계속 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도는 서로 붙잡아주며 서로 깨워주기 때문에 주의 날이 도둑같이 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주의 날이 도둑같이 임하지 못하는 것은 성도는 낮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의 날 즉 멸망의 날이 성도들을 덮칠 수 없는 것입니다.
밤에 속한 세상은 멸망을 피할 수 없지만, 낮에 속한 성도에게는 멸망이 임할 수 없습니다.
낮에 속했다라는 말은 구원 받은 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요 이미 구원을 받은 자들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멸망이 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성도들은요,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작정하시고 세상으로부터 불러낸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은 성도들과 영원히 함께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멸망의 날이 성도들에게는 절대로 임할 수 없는 것이죠. 주의 날에 성도들은 담대하게 죄의 심판대를 통과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멸망이 임할 수 없다고 해서 이제 성도들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겠네 라고 생각하면 큰 오해입니다. 도리어 반대입니다. 우리는 낮에 속한 자들이기에 깨어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기에 주의 날을 더욱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은 이 세상에서 살지만, 그러나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남의 백성이고 낮에 속한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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