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소망을 가진 자는 어떤 자인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철저한 보호가 있는 자이다. (섭리적 보호)
상이 있는 자이다. (시련을 기뻐하라)
베드로서는 베드로가 죽기 얼마 전에 기록한 서신입니다. 베드로가 AD68년경에 로마에서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있는데요, 베드로서는 AD64년경에 기록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소아시아지역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의 크고 작은 박해들이 계속 있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에서 네로황제의 기독교 대박해가 시작될 무렵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들에게 악을 행한다고 비방을 받고 애매하게 욕을 먹고 부끄러움을 당하기도하고 재산을 빼앗기기도하고 옥에 갇히고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박해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참 어려운 것이죠. 그래서 성도들 가운데 믿음을 부인하고 떠나기도 하고 여러 유혹에 흔들리는 자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베드로사도가 교회들에게 편지를 쓴 것이 오늘 우리가 보고있는 베드로서입니다. 베드로사도가 교회들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당연히 박해로 떨고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어 흔들리지 않고 담대하게 믿음을 지키게 하기 위함이죠.
그래서 베드로사도가 서신에서 줄곧 강조하는 말은 주를 위해 살다가 고난을 받으면 두려워하지 말고 도리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도 보시면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베드로사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를 위해서 살다가 고난을 받으면 도리어 기뻐하라고 말씀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산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산 소망은 무엇일까요? 예 천국입니다. 썩지 않는 하나님 나라가 그들에게 유업으로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4절 같이 읽어 볼까요?
벧전 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한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한 것이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산 소망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뭘 잘해서, 어떤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산 소망이 사람의 어떤 공로나 행위로 주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늘 죄를 짓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행위에 달려있다면 그것은 소망이 아니라 저주요 절망입니다. 그것은 마치 태평양을 수영으로 건널 수 있는 사람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보다 더 절망적인 말입니다. 그런데 너무도 감사한 것은 우리에게 산 소망이 유업으로 주어지는 것은 우리의 어떤 무엇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3절 같이 읽어볼까요.
벧전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이 문장에서 주어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기위해서 어떻게 하셨어요? 예수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는 거듭나서 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산 소망을 갖게 된 것이죠. 그러니까 다 하나님 하신 것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받게 될 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유업은 절대로 변개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원전부터 영원후까지 변함이 없으신 절대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산 소망이 어떤 이유로 취소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임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있는 산 소망은 확실한 소망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죠.
오늘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하늘의 유업인 산 소망을 받은 사람인 줄을 믿습니다.
그럼 산 소망을 받은 자들은 어떤 자일까요?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지금으로부터 2000여년 전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본적도 없고요 또 예수님은 우리 같은 민족도 아니고 코가 큰 백인이고 유대인입니다. 우리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으로 느껴집니다. 그런데 그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죠. 산 소망을 가진 자들이 예수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나 산 소망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믿어 구원받기까지 하나님의 엄청난 역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10절서부터 내용인데요, 먼저 같이 읽어 볼까요?
벧전 1: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벧전 1: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벧전 1: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말이 좀 어려운데요, 간단히 말하면 너희가 받은 구원은 하나님의 엄청난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11절 보시면 너희가 받은 구원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열심히 찾고 깊이 연구하던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열심히 찾고 연구하는 가운데 성령이 그들 속에서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을 것과 그가 뒤에 받을 영광을 미리 알려주셨다는 것예요. 가령 예를 들면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 사실을 알고 이것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 것인지를 알려고 노력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12절에 보시면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을 하나님이 그들에게 계시로 알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예언들은 그 당시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훗날 예수그리스도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이기에 그 예언의 말씀은 바로 오늘날 너희를 위한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확신하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리시고 죽으셨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것이 바로 나의 죄값이었고 나의 죄를 씻기 위한 대속적 죽음인 것을 확신하게 되는 것은 그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단순히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라 구약에서 수천년 동안 여러 선지자들이 예언한 것들이 그대로 성취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예수그리스도께서 그대로 오시고 그 예언 그대로 수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는 것을 보고 아 이 예수는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를 진정한 나의 구원자로 영접함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았고 우리에게 산 소망이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나의 구원을 위하여서 수천년동안 수많은 준비를 하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 앞에 우리는 엎드릴 수 밖에 없고, 자기 목숨까지 버리면서 까지 나를 사랑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나도 이제는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산 소망을 가지게 된 자들은 나의 구원자되신 예수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죠. 만약 내 안에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나에게 산 소망이 있나 의심해 봐야 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 예수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산 소망을 가진 자들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산 소망을 가진 성도는 어떤 자들일까요?
하나님의 철저한 보호가 있는 자들이다.
벧전 1: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하늘에 산 소망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의 철저한 보호를 받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기까지 하나님은 이들을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철저하고 완전하게 보호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이 완전히 보호하신다 해서 마치 온실 속의 꽃처럼 외부의 어떤 해도 당하지 않도록 외부의 해로부터 완전히 차단하는 그런 보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세상의 박해와 핍박을 받는 가운데서의 보호입니다.
마치 노아 홍수때, 노아가 만든 방주가 온 세상이 물에 잠겨서 망망 대해를 둥둥 떠다니는 것과 같은 것이죠. 망망 대해에서 엄청난 파도와 바람과 해일 속에 방주는 금새라도 깨어지고 부서질 것 같은데 1년여 동안 방주는 깨어지지 않고 엄청난 바람과 파도를 견뎌냅니다. 그런데 방주가 망망 대해속에서 안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방주가 튼튼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가 그 위에 있었기 때문이죠. 창8:1절이 말하죠.
창 8: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하나님이 방주를 기억하셨다는 것입니다.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방주는 먼지보다도 더 작은 존재인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의 눈은 그 방주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파도가 거세고 바람이 휘몰아쳐서 방주를 이리 저리 흔들어도 결코 방주를 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이 보호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죠.
그와같이 성도들도 이 땅에 어떤 박해와 핍박을 당해도 결코 세상이 성도들을 해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이 보호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죠. 하나님은요 우리의 실수할 것까지도 이미 다 아시고 대비책을 마련해 놓고 계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따르다가 실수하고 넘어져도 아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기도하고 다시 일어나 걸어가면 됩니다.
사탄은 성도들을 넘어뜨리려고 갖은 술수를 다 쓰고 공격합니다. 그러나 어떤 박해를 당하고 시련을 만나도 두려워할 필요없습니다. 하나님이 완전히 보호하십니다.
그런데요 하나님의 완전한 보호를 위해서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완전하게 지켜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담대하게 나아가는 것이죠. 거기서 성도는 하나님의 완전한 보호를 체험하게 됩니다.
다윗이 거인 골리앗과 싸우러 나아갈 때,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갈 때 승리하는 것입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다윗은 이 믿음으로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이겼던 것입니다. 만약 다윗이 골리앗의 큰 체구를 보고 믿음을 잃어버리고 두려워서 벌벌 떨었다면 손에 있던 물맷돌을 힘차게 던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럼 골리앗에게 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믿음이 세상을 이긴다고 말씀하십니다.
요일 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그리스도를 믿으십니까? 우리에게는 산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저 하늘을 유업으로 이어 받을 자들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어떤 무엇도 끊어 놓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완전히 보호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산 소망을 가진 자들은 어떤 자들인가 하면 하늘의 상을 받을 자들입니다. 베드로사도가 줄곧 말하는 것이 주를 따르다가 고난을 당하면 도리어 기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업을 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정직하게 했기 때문에 물질적으로 큰 손해를 보았습니다. 그러면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세상에 나아가서 예수님을 전하였는데 세상 사람들로부터 욕을 얻어먹고 멸시를 당했습니다. 그러면 도리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날 적그리스도가 예배당에 들어와서 총구를 머리에 대고 예수를 믿지않는다고 하면 살려주고 믿는다고 하면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 그때 내가 주를 위해서 죽을 수 있게 된 것에 대해서 기뻐하며 기꺼이 주를 위해 죽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베드로사도는 너희가 주를 따르다가 고난을 당하면 도리어 기뻐하라고 말하는 것일 까요? 예 그것은 하늘의 산 소망이 있는 자들에게 그 고난은 하늘의 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벧전 1: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불같은 시련이 닥쳐왔을 때 성도가 그것을 믿음으로 통과하면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에 날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굳센 믿음은 금보다 더 귀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처럼 이 땅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 땅에 살지만 저 하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이 땅에 보화를 쌓는 자들이 아닙니다. 저 하늘에 보화를 쌓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저 하늘에 쌓는 보화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고 도둑이 틈을 탈 수 없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는 모든 것들이 저 하늘에 쌓이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마태10장42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그네에게 냉수 한그릇 주는 것도 하늘에서 결단코 상을 잃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는 저 하늘에 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이 땅에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살아도 주를 위해 사시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으십시오. 이 다음 저 하늘에서 모두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라고 주님께 칭찬듣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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