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행하다가가 낙심하지 않으려면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라
자기 일에 힘을 다하라 – 하나님께 영광을 위하여
사랑하는 여러분 선을 행하기를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선이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삶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입니다. 모태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고 어머니 배에서 응애하고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단 한 번도 놓치지 않고 우리의 호흡을 지키시고 계십니다. 지금 내가 숨을 쉬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살게 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삶은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닙니다. 아무런 목적도 없고 뜻도 없는 삶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삶은 분명한 목적과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그럼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예 선을 행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여기서 선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죄로 타락한 세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보이는 것을 따라가는 세상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그것을 요한일서2:16절이 말합니다.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그래서 이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본능은 이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려면 내 속에 있는 이런 세상의 욕심들을 계속해서 버려야 합니다. 보이는 세상을 따르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하나님이 세상의 주인이시고 진리이심을 믿어야 하는 것이죠. 그래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따라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보이는 세상을 그냥 따라 갈 수 밖에 없죠.
오늘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이 예배의 자리에 모인 줄을 믿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내 마음대로 살아서는 안되죠. 반드시 우리 인생의 주인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려고 하면 세상과 계속 충돌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하다가 어려움이 부딪쳐서 낙심하고 포기합니다. 그리고 세상 따라서 그냥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복된 것이 아닙니다. 어렵더라도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시죠. 그렇다면 낙심하지 말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우리가 낙심하지 말고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잘 따라 갈 수 있을 까요?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의지를 가지고는 결코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공급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에게 기도를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1절에 보시면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달라고 부탁합니까? 1,2절 같이 읽어봅니다.
살후 3:1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살후 3:2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우리가 데살로니가 지역에서 예수님을 전할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던 것처럼, 다른 지역에 가서 예수님을 전할 때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해달라고 기도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한 사람들의 핍박에서 우리를 지켜달라고 기도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우리가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 뜻을 잘 따를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사도바울이 기도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일까요? 예 기도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엡6장에 이런 말씀을 전합니다.
약 5:16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이 기도의 힘을 받아서 사도바울은 우상숭배와 음행이 가득한 도시 고린도지역에 들어가 사역을 하는데, 거기서 우상을 숭배하던 수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고린도교회가 생겨나게 됩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계속해서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곳곳마다 복음을 전파하여 여러 교회를 세우고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합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의 고백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끝까지 잘 따르려면 기도는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요, 어떤 어려움이 부딪쳐오고 세상이 아무리 핍박하더라도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 뜻을 따릅니다. 왜냐하면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계속 만나기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열심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을 행하다가 이세벨이라는 악랄한 왕비의 핍박에 두려워서 막 도망칩니다. 엘리야는 너무 너무 지쳐서 일어날 힘도 없고 하나님께 죽기를 간구하는데요, 그런데 그렇게 지쳐있고 낙심에 빠져있는 엘리야가요, 다시 회복되고 강성케 됩니다. 그가 그렇게 회복된 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 엎드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있는 엘리야를 하나님이 어루만지시고 회복 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분 기도하는 사람은요, 넘어졌다고 하더라도 다시 일어납니다. 왜요?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회복시키시고 힘주시고 일으키시는 것이죠.
여러분 혹시 하나님의 뜻을 따르다가 어려움에 부딪쳐서 지쳐있는 분이 있습니까? 계속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하나? 아니면 세상을 따라가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또 엎드리십시오.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의 지친 영육을 강건케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 엎드려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다가 낙심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계속해서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계속해서 십자가를 바라보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5절 같이 읽겠습니다.
살후 3:5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너희가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한다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는 바로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은 바로 나를 위한 것입니다. 나 때문에 예수님의 손과 발이 못에 박힌 것입니다. 나 때문에 예수님의 몸이 채찍으로 갈기 갈기 찢겨진 것이고 나 때문에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관이 박혔고 나 때문에 예수님이 조롱과 멸시를 당하셨고 나를 위해 예수님이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나를 위해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버리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시는 것일까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예수님이 못박힌 십자가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다가 어렵고 힘들게 느껴질 때, 우리는 나를 위한 십자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사랑하셨지? 나를 위해 어떻게 인내하셨지?
자기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내어주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 살이 찢어지고 모든 피를 흘려 죽어 가면서도 끝까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신 예수님!!
기쁘나 슬프나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걸어가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면 물질적으로 많은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세상 사람들에게 너 혼자 잘났냐 하고 비웃음과 욕을 얻어 먹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까지 버림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그리스도를 배반할 수 없습니다. 내 목숨을 빼앗긴다고 해도 우리는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어느 누가 나를 위해 죽어줄 수 있습니까? 나를 위해 자기의 생명을 주신 분은 나의 주 예수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유일하신 나의 길이시고 진리이시고 생명이십니다. 이 세상 모두가 나를 버린다고 해도 나는 결코 예수님을 배반할 수 없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끝까지 나를 위한 십자가 바라보며 예수님 따라 가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고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수많은 고난 속에서도 사도바울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갑니다. 결국 그는 로마감옥에서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감옥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딤후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사도 바울이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계속해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가 가야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고 우리의 길을 막아도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시고 다시 일어나 끝까지 주님 따라가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낙심하지 않고 주님이 뜻을 잘 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여기서 일은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말합니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직장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은 정직하고 성실하게 장사를 해야 하고요, 가정 주부는 가정을 돌보는데 부지런해야 합니다. 하던 일을 은퇴하고 집에서 노년을 보내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규모있게 보내도록 더욱 깨어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성도는 열심히 일하는 자입니다. 결코 게으른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렇다고해서 쉬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쉴때는 푹쉬어야죠. 쉬는 것과 게으름은 다른 것입니다. 게으르다는 말은 무질서하다, 무책임하다와 같은 말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에 세상이 말세라고 해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일할 필요 없다고 떠들어대며 성실히 일하는 사람의 마음에 바람을 불어 넣는 자들이 있는가 봅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자들을 멀리하고 떠나보내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살후 3:6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살후 3:11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살후 3:12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10절에는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아주 엄히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일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직업은 귀천이 없습니다.
만약 내가 청소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그럼 꼼꼼이 할 수도 있고 대충 할 수도 있습니다. 꼼꼼이 하면 시간도 오래걸리고 힘이들죠, 그러나 대충하면 금새 끝내고 쉴수 있습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예 힘이 들더라도 꼼꼼이 해야 합니다. 화장실청소 매뉴얼대로 하나부터 열까지 성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그렇게 성실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일하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일이라는 믿음이죠. 그렇게 하나님 바라보고 사람이 보나 안보나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해나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끝까지 잘 따를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런 성실한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성실함을 통해서 불신의 세상 가운데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죠.
성도는 성실이 몸에 붙어야 합니다. 자기 일에 성실하려면 집중해야 합니다. 여기 저기 다니며 다른 사람 일에 참견하고 이러쿵 저러쿵 할 시간이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자기일에 성실 할 때, 우리는 끝까지 충성을 다할 수 있습니다.
할 일이 없다고 시간을 낭비하면 우리의 삶은 무질서하게 됩니다.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서 열심히 살아가십시오. 그럼 어느 순간 주님이 여러분 앞에 서계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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