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자가 되라
어떻게 거룩한 자가 되나?
육체의 사욕을 제어하라
거짓없이 형제를 사랑하라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는요 대속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대속이라는 말은 남의 죄를 대신 받는 것을 말합니다. 예전에 왕궁에서 왕자가 잘못을 져지르면 왕자를 차마 때릴 수 없잖아요. 그래서 왕자대신 매를 맞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 사람이 왕자의 죄를 대속하는 것이죠. 왕자는 이 사람의 대속함을 받아서 죄의 형벌을 받지 않게 되는 것이죠.
이와같이 성도들도요, 대속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원래는 죄인들이죠. 죄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고 형벌을 받아야 할 자들인데, 대속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럼 어느 누가 우리 같은 죄인들의 죄를 대속해 준 것일까요? 예 예수님이시죠.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어떻게 되셨죠? 예 십자가에 피흘려 죽임을 당하셨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은 바로 이 세상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죽음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살과 피를 가진 인간이시지만, 한 가지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죠? 예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다는 것이죠. 아무 죄없는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피흘림을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값이 치루어 졌습니다. 우리 18,19절을 읽어볼 까요?
벧전 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벧전 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예수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씻어주시기 위해 피흘려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우리의 더러운 모든 죄가 씻겨지고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써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거룩하다라는 것은 세상과 구별되다라는 말입니다. 성도는 세상 속에서 살지만 그러나 죄악된 세상에 물들지 않고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바닷물이 짭니다. 그러나 바다에 사는 물고기는 짜지 않습니다. 짠 바닷물이 물고기 몸으로는 침투해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죠. 그와 같이 성도들도 죄악된 세상에서 살지만 그러나 세상에 물들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삶의 방식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삶의 방식입니다. 그런데 그런 삶의 방식은 헛된 것이며 무가치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18절에 그것을 말씀합니다. 18절 말씀 보세요.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여기서 행실을 생활방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조상이 물려준 세상의 생활방식이란 것이 헛된 생활방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의 생활방식이 아무 쓸데없는 무가치한 생활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왜 성경은 이 세상의 생활방식을 무가치하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예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이죠. 이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세상인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세상은 헛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마태복음7장에 이 세상의 넓은 길은 멸망을 향해 간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헛된 행실을 따르지 말고 세상과 자기를 구별하며 거룩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그럼 성도는 이 세상에 어떻게 거룩한 삶을 살아갈 까요?
육체의 사욕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14절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벧전 1: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여기서 사욕이라는 말은 충동, 욕망, 갈망이란 뜻인데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때에 따르던 충동이나 욕망을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안에 육적인 욕망들이 그대로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육적인 욕망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육적인 욕망이 사라지고 거룩해진다면 왜 목사들의 성적 타락의 사건들이 종종 터지겠습니까? 육적인 욕망은 예수님을 믿어 거룩한 성도가 되어도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죄로 타락한 육체를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중에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는 이 타락한 육체가 거룩한 육체로 바뀌어질 것입니다. 그때는 지금과 같은 육적인 욕망들이 다 사라져 버리고 성도들은 영화로운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는 우리 안에 끊임없이 육체의 욕망들이 꿈틀 거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계속해서 육체의 욕망들을 제어해야 합니다. 그래서 13절 말씀을 보면
벧전 1: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는 것은 늘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으라는 것이죠. 근신도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것으로 늘 긴장의 끈을 놓치않고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요 우리 속에 자꾸 솟아나오는 육체의 욕망은요, 우리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습니다. 산속에 들어가서 30년 도를 닦고 나오면 제어할 수 있을까요? 30년이 아니라 300년 도를 닦아도 우리 힘으로 안됩니다.
그럼 어떻게 육체의 욕망을 제어해 나갈 수 있을 까요? 예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만 우리는 육체의 욕망을 제어하고 거룩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성령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으로써 성도들 안에 항상 함께 계시면서 성도들이 거룩해지는 것을 돕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성령님의 인도를 따르면 육체의 욕심을 버리고 거룩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계시기에 우리와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거룩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대화를 나눕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흉을 보기 시작합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다른 사람의 흉을 보고 비판하는 것을 중단하라는 감동을 주십니다. 그때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흉보는 입을 닫을 때 성령께서 우리 입술을 지켜주십니다. 그러나 성령을 소멸하고 계속해서 흉을 보면 어느새 우리의 마음과 입에 마귀가 역사하게 됩니다. 여자에 대한 음욕이 일어납니다. 성령께서 속히 음욕을 버리라고 감동하십니다. 그 성령의 인도를 따르면 성령께서 음욕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내 힘만으로 음욕을 제어할 수 없지만 성령이 도우시면 제어할 수 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장군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영이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장사가 잘되어서 주일 예배도 빼먹으며 돈을 벌고 싶습니다. 그때 성령께서 장사 그만두고 예배드리러 가라고 감동하십니다. 그때 속히 다 내려놓고 예배드리러 갈 때, 우리는 세상과 구별되고 거룩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님은 모든 삶 속에서 우리를 거룩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성령을 소멸하지 않고 성령을 따르려고 하면 성령님께서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죄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잘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인도를 잘 따르려면 평상시에 잘해야 합니다. 평상시에 잘한다는 것은 매일 매일 기도와 말씀으로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성령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말씀을 읽으면 성령님의 뜻을 더 잘 알게 됩니다. 그래서 매일 매일 기도와 말씀으로 깨어있는 사람은 성령님의 인도에 민감하게 됩니다.
작은 성령의 감동도 놓치지 않고 따르게 되는 것이죠. 점점 성령의 사람이 됩니다. 그럼 그 사람은 점점 죄를 이기는 힘이 강해지고 세상 어딜가든지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대속을 받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들입니다. 타락한 세상속에 살지만 그러나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매일 매일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써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거룩을 이루어가는 아주 중요한 것이 있는데요, 그것이 무엇이냐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산 옮길만한 믿음이 있고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것이 왜 이렇게 중요하냐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요일4:8
요일 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죠. 수십년동안 교회를 다녀도 교회 안에 형제 자매들과 교제도 없고 관심도 없고 그저 나혼자만 예배드리며 교회생활을 해왔다면 그 사람의 신앙생활은 마치 수박 겉만 핧은 것입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형제 자매를 진정으로 사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22절에 서로 뜨겁게 사랑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벧전 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에게 유익을 먼저 구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유익이 되면 관심을 갖고 나에게 별로 이득될 것이 없으면 관심이 없다면 그 관심과 사랑의 표현은 거짓인 것이죠.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상대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요, 자신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내려오신 것은 순전한 사랑이죠. 십자가는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우리를 위한 주님의 진실된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그 거짓없는 사랑을 받은 우리들도 이제 우리의 형제 자매를 거짓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형제 자매를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매일 매일 기도시간에 나의 형제 자매를 위해서 기도를 시작해보십시오.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형제 자매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불어 넣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형제 자매를 보면 먼저 인사하고 부족한 것이 보이면 돕는 것이죠. 그런 거짓없는 사랑이 싹이 돋우어 지면 우리는 어느새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는 자로 성숙해 갈 수 있습니다. 롬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진정으로 나의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거룩을 온전히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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