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2020.8.23 주일오전예배설교문> 거룩한 제사장(벧전3:1-12)

박선준목사 2020. 8. 23. 15:27

거룩한 제사장

어떻게 거룩한 제사장의 삶을 살아가나요?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귀중히 여기라

영혼 구원에 초점을 맞추라

 

성도는 현재 나의 삶이 하나님 앞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성도의 삶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산 제물로 영적예배입니다. 성도의 삶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라구요. 그래서 성도는 모두가 거룩한 제사장들입니다. 성도는 각자 거룩한 제사장으로 자신의 삶을 산 제물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예배죠.

 

그럼 우리는 어떻게 거룩한 제사장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까요?

한 번 따라 합시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귀중히 여기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룩한 제사장으로 살아갈 때 아내와 남편과 관계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남편과 아내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잘 이루어질 때 그 밖에 모든 관계도 잘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죠.

남편과 아내의 만남으로 생겨나는 것이 가정입니다. 그것을 창2:24이 말씀합니다.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서 여자를 만나 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데 그것이 바로 가정이죠. 그래서 가정에서 가장 핵심은 남편과 아내의 한 몸 됨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각각의 인격을 가지고 있지만, 한 몸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몸이라는 것은 단순히 남자와 여자가 육체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둘은 한 몸이 되었지만 그러나 온전한 한 몸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그것을 고전1:10절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는데요, 이 말씀은 교회의 하나됨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교회도 그리스도안에서 한 몸이거든요, 그래서 고전1:10을 남편과 아내의 한 몸됨에 대한 교훈으로 사용해도 무방합니다. 고전1:10은 교회의 한 몸됨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전 1: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하나됨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막상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게 되면 서로의 다른 면들이 많이 발견되죠. 그래서 서로 갈등하고 그러다가 싸움도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한 몸입니다. 두 사람은 한 몸으로써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으로 온전한 한 몸을 이루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거룩한 제사장으로써 하나님께 드릴 아주 중요한 영적 예배인 것이죠.

그럼 남편과 아내가 어떻게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으로 온전한 한 몸을 이루어 갈 수 있을까요? 오늘 1절에 보시면 아내들에게 이렇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오늘 1절에 보시면 아내들아 이와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아주 명령이 단순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남편이 잘해주면, 남편이 옳은 길로 가면, 남편이 성실하면 남편에게 순종하라 그런 것이 아니라 남편이 잘났든 못났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1절을 다시보면 아내들아 이와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했는데 여기서 이와같이는 앞에 2:18절에 종들이 주인에게 순종하는 것같이입니다. 2:18절 보시면 종들아 범사에 두려움으로 주인에게 순종하라 했는데, 관용을 베풀고 선한 주인에게만 그렇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까다로운 주인에게도 순종하라 여기서 까다로운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자기 기분대로 해하고 그런 무례한 주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다로운 주인일지라도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아내들아 자기 남편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특히 남편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불신자라도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 거룩한 제사장으로써의 삶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왜 하나님은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일 까요? 그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의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엡5:22절서부터 잘 설명해 놓았죠. 말씀 읽으면

5: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5: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5: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그러니까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은 남편은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의 질서입니다. 그것을 무시하고 아내가 남편을 주관하려고 하고 남편을 무시하고 자기가 머리가 되어서 가정을 이끌고 나가려고 하면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남편과 아내가 온전한 한 몸을 이루는데 심각한 문제가 발생이 됩니다. 그것은 몸이 머리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몸이 머리의 지시를 받지 않고 도리어 몸이 머리를 주관하려는 것이죠. 그럼 질서가 깨지게 되고 혼란만이 가득할 뿐입니다. 가정에서 머리는 남편인 것이죠. 아내는 남편의 결정에 순종해야 하고 그것을 열심히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가정에 질서가 세워지고 남편과 아내는 한 마음 한 뜻으로 온전한 한 몸을 이루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 몸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바로 그것이 아내의 거룩한 제사장적 삶인 것이죠.

그럼 남편의 거룩한 제사장적인 삶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내를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벧전 3: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아내를 귀하게 여겨야하는 것은 무엇보다 아내는 나 보다 더 연약한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남자도 질그릇으로 연약한 존재이지만 그러나 여자는 남자보다 더 연약합니다. 남자보다 신체적으로 약하고요, 정서적으로도 상처받기가 쉽습니다. 말한마디도 함부로 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깨지기 쉬운 물건을 다룰 때는 어떻게 합니까? 아주 조심 조심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다루잖아요. 남편이 아내를 대할 때도 그와 같이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들이 아내를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잘 보이려고 간이라도 내어줄 것처럼 대하다가 결혼하고 나서 세월이 지나면서 아내를 함부로 대하는 것이죠. 그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 끝에 보면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아내를 함부로 대하는 남편은 기도가 막힌다는 것입니다. 기도가 막힌다는 것은 무엇일 까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자꾸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남편의 신앙이 마치 벌레 파먹듯이 황폐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와 가장 가까운 아내를 멸시하고 아내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깊은 신앙인으로 자라갈 수 있을 까요? 하나님은 결코 만홀이 여김을 당하시는 분이 아니죠. 하나님은 그 사람 마음의 중심을 다 보고계십니다. 가장 가까운 아내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이 어떤 누구를 소중히 여길 수 있겠습니까? 모두가 외식이고 가식일 뿐입니다. 그 사람의 기도는 막힐 수 밖에 없습니다. 시편66:18절에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가증스럽게 여기시고 듣지 않으십니다. 그 영혼은 철저히 자기 죄를 회개하고 아내를 올바르게 대할 때 비로써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회복될 것입니다. 5:25

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남편들이 아내 사랑하기를 예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편은 아내를 죽기까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처음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느끼는 에로틱한 사랑의 차원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는 아가페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아내는 하나님이 나에게 짝지어주신 짝으로 이 세상에서만 같이 지내는 사람이 아니라 저 하늘 나라에서도 영원토록 함께 지낼 영원한 동바자임을 알고 남편은 아내를 내 몸처럼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남편과 아내는 온전한 한 몸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 앞에 남편의 거룩한 제사장적인 삶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거룩한 제사장의 삶을 살아갈까요?

한 번 따라 하겠습니다. 우리의 삶의 초점이 영혼구원에 맞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데, 우리는 그들을 단순히 육체로만 대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영혼으로 대해야 합니다. 영혼으로 대한다는 말은 죄와 사망에서 구원할 자로 대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남편과 아내가 온전한 한 몸을 이루어가야 하는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무슨 문제냐면 남편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 결코 한 몸을 이루어 갈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특별히 베드로사도가 바로 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베드로가 사역했던 로마에는 믿지 않는 남편을 가진 여자 성도가 많았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전에는 우상을 숭배하던 여자들이었는데,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죠. 남편은 여전히 믿지 않고 여자들은 신앙을 갖게 된 것이죠. 이 여자 성도들은 영적인 눈이 열려져서 믿지 않는 남편이 가는 길이 잘못된 것을 아는 것이죠. 그럼 이 여자들은 남편을 어떻게 대해야 되느냐인 것이죠. 1절에 보시면

벧전 3: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하나님을 믿지 않는 남편에게 믿는 아내들은 어떻게 대하라는 것입니까? 예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순종을 하는데 더욱 잘하라는 것입니다. 왜 믿지 않는 남편에 더욱 잘하라고 하는 것일 까요? 예 그 남편을 구원 받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1절 끝에 보면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남편이 구원을 받는데 아내의 행실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지않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뭔가 다르지 않나 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안보는 것 같지만 다 보고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니까 좀 더 정직할 거야, 성실할거야, 온유할 거야 등등 그런 기대가 있죠. 그런데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오히려 싸납고, 정직하지 않고 성실하지도 않으면 세상 사람들은 상처를 받습니다. 기대를 하면 실망도 크잖아요. 다른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하면 그러려니 하는데,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잘못하면 실망을 하는 것이죠. 그래서 믿는 사람들의 삶이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그들을 전도하는데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데 남편은 늘 아내를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2절에 보시면

벧전 3: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남편이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아내들은 믿지 않는 남편을 구원하기 위해서 삶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자로써 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사도는 믿음의 아내들에게 온유하고 정숙한 마음으로 정결한 삶을 살 것을 말씀합니다. 3,4절보시면

벧전 3:3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벧전 3: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아내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음이 온유해집니다. 전에는 바가지를 박박 긁고 대들고 성을 내고 그랬는데, 이제는 순종적인 아내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에 그렇게 좋아하던 금목걸이, 금반지 그런 사치품들을 멀리하고, 전에는 매일 아름다운 옷입고 머리를 화려하게 하고 그런데 정신이 팔려있었는데, 이제는 검소하고 정숙하고 자기 외모는 단정하게만 하고 남편을 챙기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침 일찍 나갈 때, 따뜻한 밥상을 차리고 남편이 입을 옷, 양말, 속옷 깨끗이 빨아서 챙겨놓고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푹쉴수 있도록 집을 깨끗이 정리해 놓는 등등 아내로써 성실한 내조를 하는 것이죠. 그렇게 아내가 하나님 앞에서 헌신적이고 정숙하고 성결한 삶을 살아갈 때, 남편은 그것을 보고 하나님께 마음 문 열기가 쉬워지는 것이죠.

이렇게 여러분 성도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절제하고 헌신하고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헌신적인 삶의 모습을 보고 불신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마음문 열기가 쉬워지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아내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더욱 강퍅해질 수 있습니다. 아내를 오히려 핍박할 수 있는 것이죠. 특히 본문의 고대시대에서는 아내는 남편의 종교를 따라야 하거든요. 그리고 아내의 위치는 남편의 소유물정도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가 자기의 종교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믿지 못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 것이죠. 아내가 교회를 나가겠다고 나가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아내가 나가야 겠다고 하면 폭력까지 써서 나가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내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오늘 베드로 사도는 5,6절에 보시면 하나님께 소망을 둔 여러 믿음의 여인들을 말하며 두려워하지 말 것을 말씀합니다.

벧전 3: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벧전 3: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참 믿음의 딸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편의 박해 핍박이 있을 경우를 염두해두고 하는 말씀을 보여집니다. 그 때 아내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무리 위협하고 강하게 나올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담대함을 잃지 않고 계속 선을 행하면 믿음의 딸로 승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한 제사장적인 삶인데요. 악을 선으로 이기는 삶입니다. 9절에 이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

벧전 3: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남편이 욕을 하고 핍박을 하면 도리어 남편의 복을 빌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나를 핍박하는 상대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그 영혼은 불쌍한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저 영혼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알지 못한채 멸망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저 영혼을 불쌍히 여겨주세요. 저 영혼의 영적인 눈이 열려서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게 하소서 기도하는 것이죠. 그렇게 할 때 그 영혼도 복을 받을 수 있겠지만 누구보다도 기도하는 자신이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를 해하는 자를 도리어 축복할 때 하나님의 은혜 충만히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번 해보십시오. 여러분의 삶 속에서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여러분을 핍박하는 원수가 있거든, 하나님 앞에 그 영혼을 위해서 기도해보십시오. 그럼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은 불신의 남편을 구원하려고 하는 아내의 기도와 헌신과 담대함을 보시고 남편을 구원에 이르도록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남편에게 믿음이 들어가면 그 가정은 온전한 한 몸을 이루어가는 거룩한 제사장적인 가정이 되겠죠.

이렇게 성도가 불신의 영혼들을 구원하는데 삶을 드릴 때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사장적인 삶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