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선한목자
예수님은 왜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가?
예수님만이 천국의 문이기 때문에
예수님만이 양들위해 목숨을 버리심
예수님이 나를 알고 나도 예수님을 안다.
양은요 반드시 목자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양은 길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디로 가야 쉴만한 물가와 푸른 풀밭이 나오는 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풀한포기 나지 않는 광야 같은 곳에서 양이 목자를 잃어 버리면 그 양은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양은 시력이 좋지 않아서 길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죠. 바로 앞에 것만 보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벼랑 같은 곳에 떨어져 죽기 십상입니다. 그리고 늑대나 이리 표범 이런 맹수에 비해서 느리기때문에 잡혀먹히기가 십상이죠. 목자를 잃고 광야에서 방황하는 양은 결국은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우리 인생이 목자를 잃어버린 양과 같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광야 같은 세상에서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자기가 왜 사는지 알지 못하고 그냥 바로 코 앞에 것만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마치 양이 바로 코 앞에 것만 보고 가는 것처럼, 바로 코 앞에 이득만 잡으려고 가는 것이죠. 지금 자기가 어디를 향해서 가는지 전혀 알지 못한채 가는 것이죠.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벼랑을 만나 떨어져 버리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죠.
이탈리아 우르바노 대학교 현관에는 이런 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그리고 그 다음에는?‘ 여기에 관련된 영상이 있는데요, 잠시 보시고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영상---
여러분 여러분 인생은 지금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왜 사십니까? 내가 지금 어디를 향해서 가는지, 왜 사는지 알지못한다면 여러분은 지금 길을 잃은 것입니다.
솔로몬왕은 이 세상에서 모든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입니다. 솔로몬이 소비한 하루의 음식물은 가는 밀가루 삼십고르, 굵은 밀가루가 육십 고르, 이 밀가루양이 14000명이 먹을 수 있는 밀가루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살지 소가 열 마리, 초장의 소가 스무마리, 양이 백 마리, 그 외에 수사슴,노루, 암사슴, 살진 새들이었더라. 솔로몬의 병거가 1400대였고 마병이 만이천명, 그의 말 외양간 4만채였습니다. 솔로몬왕은 은 금을 돌같이 흔하게 여겼습니다. 그가 쓰는 것은 대부분 금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지혜로 다스리며 육체의 즐거움을 만끽할까 하며 모든 즐거움을 다 누려보려 했습니다. 솔로몬의 처첩의 수는 1000명이 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처럼 인생의 모든 부귀영화를 다 누려본 솔로몬의 고백은 무엇일까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입니다.
여러분 왜 솔로몬은 세상의 모든 부귀를 다 가졌으면서도 인생이 헛되다고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길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왜 사는지, 내 인생이 어디를 향해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죠. 결국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헛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우리 인생이 길을 찾을 수 있을까요? 다시여, 길을 잃어버린 양이 어떻게 하면 길을 찾을 수 있을까요? 예 목자를 만나면 됩니다. 양은 목자만 만나면 방황 끝입니다. 왜요? 목자는 길을 알기 때문이죠. 양을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자를 만나면 방황이 끝나고 진리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럼 여러분 우리 인생을 올바른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는 목자는 누구일까요? 예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12절에 말씀하시죠. “나는 선한목자라” 이 세상에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는 선한목자는 예수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다른 이름은 다 절도, 강도입니다.
그럼 왜 예수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는 선한목자인 것일까요?
그 이유는 한 번 따라 해봅시다. 예수님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천국의 문이기 때문입니다.
목자가 양들을 먹이기 위해 풀밭을 찾아 먼 지역으로 가면 저녁에 들판에서 자게 됩니다. 거기에는 돌담을 울타리로 만든 양 우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우리 입구에는 문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목자가 문이 되기 때문입니다. 목자는 우리 입구에 불을 지펴놓고 거기서 잡니다. 양들이 만약 우리 밖으로 나가려면 반드시 목자를 통과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밖에서 어떤 것이 양 우리에 들어가려면 그것도 목자를 통과해야 하는 것이죠. 목자는 자기 양외에는 어떤 것도 통과시켜 주지 않죠. 이렇게 양우리에서 문은 바로 목자인 것이죠. 다른 문이 없습니다. 만약 다른 데로 양우리에 들어가려는 자가 있으면 다 절도요, 강도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염두하시면서 7절에 보시면 나는 양의 문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내가 문이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런 말씀하십니다. 9절 같이 한번 읽어 볼까요?
요 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요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은 내가 문이라 하시면서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꼴을 얻는다는 것은 생명을 얻는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나의 목자로 삼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는 구원을 받고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생명은 단순히 100년도 살지못하고 죽는 그런 거 말고요, 영원한 생명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자기가 천국의 문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시고 우리 모두는 천국 문인 예수님을 통과해서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문을 통과하느냐 못하느냐가 성공과 실패가 될 수도 있고 사느냐 죽느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요즘 참 취업의 문이 좁습니다. 2020년 상반기 공기업들 취업경쟁률 몇 개 살펴보면요,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863:1(1명 채용, 863명 지원)
코레일 유통(주) 595:1(4명 채용, 2,380명 지원)
전략물자관리원 506:1(1명 채용, 506명 지원)
중소기업은행 77:1(250명 채용, 19,298명 지원)
한국특허전략개발원 77:1(2명 채용, 153명 지원)
한국산업은행 72:1(50명 채용, 3,576명 지원) 등등 공기업 취업을 하려면 평균 200:1 경쟁을 뚫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경쟁을 뚫고 들어가는 사람은 그런대로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좁은 취업의 문을 통과하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꼭 취업을 해야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취업 안하고 장사를 해서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요 우리가 반드시 통과해야 할 문이 있습니다. 그 문은 무슨 문일까요? 예 천국문입니다. 천국문을 통과하는 자는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며 살지만, 천국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자는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천국문을 통과하느냐 못하느냐는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열쇠를 누구 가지고 있다구요? 예 예수님이 가지고 계시다구요. 왜요? 예수님이 천국의 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떤 사람만이 천국을 통과할 수 있을 까요? 한번 따라합시다. “예수님의 양만 통과합니다” 예수님의 양이 아닌 자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천국문이신 예수님이 통과시켜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를 도무지 모르겠구나. 불법을 행하는 자야 내게서 떠나가라” 천국문이신 예수님은 오직 자기 양만을 통과시키십니다.
그럼 예수님의 양은 어떤 사람을 말할까요? 예 예수님을 나의 목자로 삼고 오직 예수님만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양은 목자를 만나면 방황 끝입니다. 양은 목자만 따라가면 모든 것을 다 얻게 됩니다.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 안전한 우리로 인도를 받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선한목자는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왜 예수님만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선한 목자이실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11절에 예수님이 말씀하시죠.
요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예수님은 선한목자로써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목숨을 버리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양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아까 영상에서 보셨듯이 사람은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먹고 높은 명예를 쌓아고 결국은 죽을 수 밖에 없습니가. 그런데 죽은 후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예 죄의 심판이 있습니다. 여러분 누가 우리를 심판할까요? 예 창조주 하나님이시죠. 하늘과 땅과 바다와 이 세상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심판하십니다. 그때 죄를 가지고 그분 앞에 나가는 자는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지옥에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자가 없습니다. 모두 죄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지옥에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죠.
마치 사람들은 길을 잃은 양과 같습니다. 바로 코 앞에 이득을 잡기 위해 달려갈 뿐입니다. 지금 자기 앞에 끝을 알 수 없는 벼랑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채 달리는 것이죠. 어느순간 벼랑이 눈앞에 보이면 그때는 늦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길 잃은 인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시려면 자기의 목숨을 버리셔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죄의 삯이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꺼이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세상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은 이 세상 죄를 대속하는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이 세상 죄값이 치루어졌습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자는 모든 죄가 사함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예수그리스도를 삼일만에 다시 부활시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모든 죄가 사함을 받을 뿐만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다시말해서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 예수님을 나의 목자로 삼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양들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양들을 아시기에 그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십니다. 길 잃은 양은 목자를 만나면 그 순간 방황이 끝나는 것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참 목자는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나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나를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나의 목자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이 나의 목자이심을 믿고 그분을 따르면 예수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완전하게 책임지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목자는 자기 양을 책임집니다. 삯군은 목자가 아닙니다. 삯군이 양을 치는 목적은 자기 받을 삯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선한목자는 오직 양을 위할 뿐입니다. 늑대나 이리같은 것이 나타나면 삯군은 자기 양이 아니기에 양을 버리고 달아나버립니다. 그러나 선한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립니다. 우리 예수님은 자기 목숨보다 양들을 더 사랑하시는 선한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이 나의 목자이심을 믿고 따르는 자들은 예수님이 그 인생을 완전하게 책임지십니다.
예수님은 자기 양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떤 형편에 있는지 다 아십니다. 어디가 아프고 어떤 위험에 있고 무엇이 필요하고 다 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시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내 인생이 선한목자이심을 믿으시고 예수님께 여러분 인생을 완전히 의탁하시고 이제는 내 생각 내 고집 다 내려놓고 오직 나의 목자되신 예수님만 따라가십시오. 그럼 우리는 길을 잃지 않게 됩니다. 늘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걷게 될 줄을 믿습니다.
시 23: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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