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2021.7.25 주일오전예배설교> 위에 것을 찾으라(골3:1-17)

박선준목사 2021. 7. 26. 12:52

위의 것을 찾으라

땅에 속한 존재가 아니라 위에 속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땅에 지체를 죽이라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로 살라

 

금요일에 금요기도회 마치고 나면 밤11시쯤 되는데, 집에 가려고 복도에 나오면 복도현관 모기장에 온갖 벌레들이 붙어있는 것을 봅니다. 밝은 불빛을 보고 몰려온 것이죠. 벌레들은 특히 나방 같은 벌레는 밝은 빛을 향해 돌진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도요, 끊임없이 빛을 향해 나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어둠에 속한 자들이 아니라 빛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5: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어떻게 성도는 주 안에서 빛이 된 것일까요? 전에는 어둠이었는데 빛이 된 것입니다. 어둠은 빛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어둠인 우리가 빛이 되었다는 것은 완전히 새것으로 바뀌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어떻게 어둠이었는데 빛으로 바뀌어 버린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2000여년 전에 아무 죄없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은 바로 세상 죄를 짊어지고 죽으신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으로 세상 죄의 댓가를 대신 치루신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 자들은 모든 죄가 사함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를 믿어 죄사함을 받은 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죽은 예수그리스도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3일만에 부활시키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님 혼자만의 부활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예수님과 함께 죽은 모든 자들의 부활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믿음으로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이고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산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살았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부활생명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어요. 그럼 어디 있을까요? 예 하늘에 있습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3절이 설명하고 있죠.

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했는데 언제 죽었죠? 2000여년 전에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이 주어졌죠. 그 예수님의 부활생명이 우리에게 주어졌는데 그런데 그 부활생명이 지금 어디에 감추어져있다구요? 예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죠. 지금 예수그리스도는 어디계십니까? 1절 끝에 나와있죠.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저 하늘의 하나님 보좌우편에 앉아 계시죠. 그런데 우리의 생명이 저 하늘에 감추어져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 세상에서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똑같이 죽습니다. 병들고 늙고 그러다가 죽는 것이죠. 그러나 믿는 자들은 결코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요? 믿는 자들의 부활생명이 하늘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죠. 그럼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있는 부활생명은 언제 나타날까요? 예 그렇죠. 우리 구주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죠.

3: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믿는 자들의 부활생명도 나타난 다는 것입니다. 그 때 믿는 자들의 무덤이 열리면서 죽었던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입고 부활생명으로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의 생명이 저 하늘에 감추어져 있는 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요 이 땅에 것을 추구하지 말고 저 하늘의 것을 추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1절에 보시면

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위의 것을 찾으라 할 때 찾으라는 현재 명령형입니다. 성도는 이 땅에서 살면서 위의 것을 계속 찾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 하늘에 생명이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죠.

 

그럼 어떻게 위에 것을 찾으며 살아갈까요?

땅의 지체를 죽여야 합니다. 땅의 지체를 죽이라는 말은 나를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런 비슷한 말씀을 하셨죠.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왜 자기를 부인하라 자기를 죽이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그래야만 예수님을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빛이 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둠이거든요, 그래서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려면 어둠을 버려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5절에 아주 단호하게 땅에 지체를 죽이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5절 같이 읽겠습니다.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는 과거형입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였다입니다.

과거형을 쓴 것은 성도의 죄악된 자아는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는 죄에 대해서 이미 죽은 자들인 것이죠. 그러나 현재적으로 성도는 아직 죄악된 육신을 그대로 가지고 있죠. 그래서 죄와 싸워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성도가 죄와 싸울 때 나는 이미 죄에대해서 죽은 자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싸우는 것입니다. 날마다 죄악된 자아를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 죽이라는 표현은 아주 과격한 표현인데요,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왜 이렇게 과격한 표현을 쓰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지 않으면 위에 것을 찾아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땅의 지체를 철저하게 죽여야 우리는 새 사람으로 위에 것을 찾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날마다 죽여야할 땅의 지체 다시 말해 우리의 옛적 자아는 무엇일까요? 그것을 5절부터 말씀하는데요. 5절 보시면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하나로 말하면 육신의 정욕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음란은 혼외정사 같은 불법적인 성관계를 말하는 것인데, 더나아가서 마음으로 음욕을 품는 것 까지 말하는 것입니다. 나머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이것은 다 음욕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써 우리 인간이 얼마나 성적으로 타락되어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리고 탐심은 우리 내면안에 있는 모든 욕심을 다 가리킨다 하겠습니다. 탐심은 곧 우상숭배니라 했는데, 이 탐심에 사로잡히면 그 탐심이 하나님이 되기 때문입니다. 가령 돈에 대한 탐심에 빠지면 돈이 그 사람의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음란에 대한 탐심에 빠지면 음란이 그 사람의 신이 되는 것이죠. 명예에 대한 탐심에 빠지면 명예가 그 사람의 신이 되는 것입니다. 권력이면 권력이 신이 되는 것이죠. 이런 음란을 비롯한 각종 탐심은 우리 내면에 다 있습니다. 그런데 6절에 보시면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탐심을 날마다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5장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있나니 라고 말씀하시죠. 심령이 가난해야 하나님을 섬길 수 있고 위에 것을 찾을 수 있기 대문이죠. 성도의 몸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인 것을 잊지 말고 음란, 탐심을 끊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8절에서는 이웃과의 단절을 말씀하고 있는데요, 원래 하나님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도록 창조하셨는데, 인간이 죄로 타락하면서 이웃과의 관계가 끊어졌고 더나아가서 원수의 관계가 되어버렸습니다. 8절에 보시면

3: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3: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분함은 마음에 품는 불쾌한 감정노여움은 남을 해하려고 하는 독한 마음여기까지 오면 실제로 이웃을 직접적으로 해할 수 있는 것이죠. 악의는 나쁜 행위라고 할 수 있고 비방은 헐뜯고 상대를 모독하는 것이죠. 너희 입에 부끄러운 말이란 욕하고 상스럽고 더러운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보호나 이득을 위해 서슴없이 거짓을 말할 때가 많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데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셨죠?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하나님아버지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아 새로운 생명을 얻은 자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날마다 이웃을 미워하려고 하는 우리 자아를 죽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기로 결단해야 합나다. 내 유익을 먼저 생각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예수님을 따를 수 있고 위의 것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땅의 지체를 죽여야 합니다. 그래야 위에 것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위에 것을 찾는 삶을 살려면 내가 아니라 예수님으로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17절에 말씀을 합니다.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무엇을 하든지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는 것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라는 것입니다. 왜요? 우리는 예수 안에서 죽었고 또 예수 안에서 산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예수그리스도가 사는 것입니다. 이제 성도는 예수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머리는 예수그리스도세요. 몸이 머리의 지시를 따르듯이 성도는 머리이신 예수그리스도만을 따라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이 어디있습니까? 예 저 하늘에 예수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로 사는 성도는 긍휼의 마음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여기서 긍휼의 마음은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을 보면 마음 아프게 생각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신 것도 이 세상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 때문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을 불쌍히 여기신 것입니다. 이런 긍휼의 마음을 품을 때 자비를 베풀 수가 있습니다. 자비는 자격없는 자에게 베푸는 하나님의 은혜인데, 우리 모두는 죄로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자들이었는데,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내심으로 우리가 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인 것이죠. 우리는 그 하나님의 자비로 산자들로써 이제 우리도 이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이 세상에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는 언제나 겸손해야 합니다. 성도의 겸손은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아는 것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깨닫고, 또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임을 철저히 인식함으로 겸손한 것입니다. 그래서 겸손한 성도는 매사 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자입니다. 그리고 성도가 믿음이 성숙해가면 온유해 집니다. 온유해진다고 해서 약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외유내강과 같이 겉으로는 부드럽지만 내면은 강건한 것이죠. 마치 야생마를 길들일 때 처음에는 자기 마음내키는데로 날뛰지만 기나긴 훈련을 통해 길들여지면 마부를 오랫동안 태우고 달려도 꺼떡하지 않는 아주 강한 말이 되죠. 이렇게 믿음이 성숙하여 온유하며 강건한 성도에게 특징이 있는데요, 그것은 오래 참음입니다. 이 오래 참음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오래참음은 잘못한 사람에 대하여 쉽게, 성급히 보복하지 않는 자기 억제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악한 세상에 대해서 오래참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도 자기를 욕하고 비웃고 채찍으로 때리고 십자가에 못박고 멸시하는 자들에 대해서 오래참으시고 끝까지 용서하십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이니이다성도들도 행악을 져지르는 자들에 대해서 원수 갚는 것은 다 하나님께 맡기고 용서하고 오래참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70번에 7번까지 용서하라, 이것은 오래참으며 끝까지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성도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셨기 때문이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은 것이죠. 이제 그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긍휼이 여기고 자비를 베풀며 겸소한고 온유와 오래참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그리스도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로 사는 성도가 잃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면 평강입니다. 15절에 보시면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하였습니다. 성도의 평강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였고 이웃과 단절된 관계였는데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막힌 담이 무너지고 화평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고 성도들과 한 몸이 되었습니다. 이 평강의 관계는 어느 누구도 깨드릴 수 없습니다. 성도는 예수그리스도로 하나된 이 평강을 힘써 지켜나가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찬양하며 한 몸된 것을 힘써 지켜나가야 합니다.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의 생명이 저 하늘에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이제는 땅에 것을 생각하지 말고 위에것을 생각하여서 점점 예수그리스도로 충만된 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