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주일오전설교> 비천한 자로 오신 예수님 (눅2:1-20)

박선준목사 2018. 12. 17. 15:38

 


세계의 역사 연대표기를 할 때 공통으로 쓰는 연대표기는 BCAD, 기원전과 기원후로 표기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2018년도 잖아요.

2018년 이라는 숫자가 나오게 된 것이 BCAD 연대표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지금은 AD2018년도이죠.


우리나라 역사에서 고구려는 지금으로부터 2055년 경에 세워진 나라인데요, 이것을 표기하기가 애매하잖아요. 이것을 간단하게 기원전37, BC37년에 고구려가 세워졌어 이렇게 표기하는 것이죠.

그럼 기원전 BC 와 기원후AD를 나누는 기준점은 무엇일 까요? 그래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준점으로 해서 BC AD를 나눕니다. 기원전 기원후라는 말은 예수님이 탄생전 예수님의 탄생 후라는 말이죠. 지금이 2018년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탄생한지 2018년이 지났다는 것이죠. 고구려 건국은 예수님이 탄생하기 전 37년 전에 건국이 된 것이죠.

이렇게 예수님의 탄생을 기원으로 보고 역사를 BCAD로 표기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년도 표기는 우리의 과거 역사의 사실을 입증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오늘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탄생의 때를 밝히고 있습니다.

1절에 보시면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되어있습니다. 이 가이사 아구스도는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구스도의 제위 기간은 BC27-AD14년입니다. 그러니까 40년 넘도록 로마 황제를 한 것이죠. 가이사 아우구스는 정치를 잘 했습니다. 그래서 재위시절에 태평성대를 이루는데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아우그스황제가 전국에 호적을 하라 명령을 내립니다. 황제들은 종종 전국의 백성들에게 호적을 신고라하고 명령을 내리는데요, 그 이유는 나라를 재정비하고 또 세금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함입니다. 아우구스도가 전국에 호적을 신고하라고 명령하는데, 기록에 아우구스도가 호적을 신고하라고 한 것이 BC28년이고 그 다음은 BC8년 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1절에 아우구스도가 호적을 하라고 명령한 때는 BC8년 인 것입니다.

그런데 2절에 보시면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구레뇨라는 사람이 수리아지역에 총독 되었을 때를 역사 기록에 찾아보면 AD6년으로 나옵니다. 이렇게 되면 오늘 본문 누가복음의 기록이 맞지않게 되는 것입니다.

가이사 아우구스도가 호적하라는 것은 BC8년이고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된 것은 AD6년 약 14년의 차이가 나버리는 것이죠.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와서 윌리엄 렘지라는 학자에 의해서 비문이 발견되는데, 그 비문에 구레뇨라는 사람은 BC12년 경부터 수리아의 최고사령관으로 지낸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2절에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생겨납니다. 1절에 그 때는 무슨 때를 말하는 것예요. 예수님의 탄생의 때이죠. 그럼 예수님의 탄생의 때는 가이사 아구스도 황제가 호적을 하라고 하는때 인데, 그 때는 BC8년이잖아요, 그럼 예수님은 BC8년에 태어나셨다는 것인가? 그럼 예수님이 BCAD의 기준점이라는 것이 맞지 않잖아요.

그런데 여러부 의문도 풀립니다. BC AD의 표기를 처음 도입해서 사용한 사람은 6세기경에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 라는 로마의 수도원장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을 기점으로 해서 역사의 연도를 새롭게 표기했습니다. 이것이 시발점이 되어서 서구지역에 확산이 되고 전 세계의 공통 연대 표기가 된 것이죠.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는데,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연도 계산을 잘못해서 연도가 4-5년 정도의 오차가 발생합니다. 후대에 와서 이것을 정밀하게 계산해보니 예수님이 탄생 연도가 BC4-5년이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그러나 이것을 고치지 않고 오늘날에도 그냥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탄생한 시기는 정확히 BC5년 정도 되는 것이죠.

그런데 또 한가지 맞지 않는 것은 아우구스도가 호적을 명한 것은 BC8세기 경인데, 예수님의 탄생은 BC5년경이고 맞지 않네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도 쉽게 풀릴 수 있습니다. 이 고대시대 때 로마라는 나라는 엄청난 영토를 가진 나라로써 호적을 조사하는데 수년이 걸리는 것은 다반사였습니다. 그러므로 아우구스도가 호적을 하라고 명령이 떨어진 뒤 3년정도가 지나서야 나사렛에 사는 요셉과 마리아는 호적을 신고하러 가게 된것이죠.

그러니까 누가가 기록한 1절에 가이사 아우구스도 황제가 호적신고를 명령한 때와 2절에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었을 때가 일치하고 그리고 예수님이 탄생하신 때가 일치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21,2절의 이 기록은 결코 누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 그대로를 기록한 것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누가가 가이사 아우구스도가 전국에 호적을 명령한 것을 기록한 이유는 예수님이 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게 되었는 지를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을 잉태한 처녀 마리아는 나사렛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약혼자 요셉도 나사렛 사람입니다. 이 둘은 정혼한 상태로 법적으로는 부부지간이지만 아직 동침을 하지 않은 법적 부부지간의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아직 처녀인 마리아가 성령에 의해서 예수그리스도를 잉태하게 됩니다. 남편 요셉은 아내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조용히 정혼을 파기하려고 하지만 천사가 나타나 해명함으로 요셉은 처녀이면서 임신을 하게 된 마리아를 아내로 데려옵니다. 이들은 나사렛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탄생은 베들레헴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700여년전에 미가선지자가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했기 때문입니다.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베들레헴에서 영원히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나온 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는 예언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그리스도를 잉태한 마리아는 나사렛에서 살고 있는 것이죠.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는 145KM 정도 떨어진 꾀 먼 거리인 것입니다. 가평에서 천안까지 거리입니다. 자동차를 타고 가도 2시간 넘게 걸리는데, 걸어서 가려면 성인 남자 걸음으로도 4일은 가야 하는 거리입니다. 산달이 다된 나사렛에 사는 마리아가 145KM 떨어진 베들레헴에서 아기를 낳게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마리아가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된 일일 까요? 예 호적을 등록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남편 요셉은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다윗이 고향 베들레헴으로 가서 호적신고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때 요셉은 혼자만 가서 호적신고를 해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를 데리고 간 것은 처녀가 임신하였기에 많은 눈총이 있고 또 마리아가 남편과 떨어지지 않기를 원해서 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임신을 하고 있는 마리아를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가게 된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나사렛에 사는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으로 가게된 이유는 표면적으로 들어난 것은 호적신고 때문이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700여년 전에 미가선지자가 예언한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역사 주관자는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가이사황제가 호적신고를 하라고 명령한 것은 나라를 정비하고 세금을 더 거두들이려는 것이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게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이 가이사의 마음을 주관하여서 호적신고를 하게 한 것이고. 그로 인해 임신한 마리아가 나사렛에서 145KM 이동해서 베들레헴에 가서 아기를 낳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바로 그 때 마리아가 해산할 날이 찹니다.

2: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여기서 차서는 가득하다. 충만하다 그런 의미로 해산 날이 꽉 찼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엔 의학기술이 아주 발달되어서 초음파로 아기의 형태를 다 볼 수 도 있고 상태도 다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아기가 언제 나올지는 예상을 잘 못합니다. 어떤 아기는 10달을 꽉 채우지 않고 나오는 아기도 있고 어떤 아기는 10달이 좀 넘어서 나오는 아기도 있습니다. 아기가 정확히 언제 나올지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고대시대때는 더했겠죠. 그런데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도착하였을 때, 바로 그 때 마리아의 배에서 진통이 온 것입니다. 6절에 보시면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해산 날이 꽉찼다는 것입니다. 뱃속에 아기가 이제 막나오려고 한다는 것이죠.

이것도 하나님이 타이밍을 맞추어서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예수그리스도가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임신한 마리아가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천천히 왔다면 한 일주일은 걸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는 도중에 빨리 아기가 나왔다면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나온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될 수 없는 것이죠. 또 늦게 나와도 안되죠, 그렇게 되면 호적신고를 마치고 돌아가는 중에 아기가 나온다면 그것도 하나님 말씀이 성취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반드시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해산날이 꽉 차서 아기를 낳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해산한 날이 꽉 찬 것은 하나님의 주권가운데 이루어진 것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 우연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만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시면 마리아가 아기를 낳았는데, 그곳은 방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첫 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했습니다. 그곳은 짐승들이 잠을 자는 헛간이었고 아기가 누운 곳은 짐승들이 밥을 먹는 여물통이라는 사실입니다.

왜 막 태어난 예수그리스도는 강보싸여서 짐승들의 밥통아니 구유에 뉘여있는 것일 까요?

그 이유가 7절에 나오죠.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여관이라고 했는데 이 여관은 오늘 날 같이 손님들을 받기 위한 전문적인 그런 여관이 아닙니다. 이 당시에는 여유있는 집에서는 손님들이 오면 대접하기 위해서 방을 하나씩 준비했습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사랑채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예수님이 유월절만찬을 하기 위해서 제자들을 보내어 방을 구하게 하는데, 그 때 한 집에 다락방에 올라가서 그 장소를 마련하는데, 바로 그런 방인 것입니다.

요셉은 아기가 나오려고 산고의 고통을 겪는 아내를 방으로 인도하려고 급하게 이 집 저 집을 두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방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호적을 하러온 다른 사람들로 다 차있었기 때문이죠. 여러분 요셉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답답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한 상황이었겠습니까? 이러다가 길 바닥에서 아기가 나올 판인 것이죠.

그러다가 누군가가 짐승들이 자는 헛간이라도 괜찮겠소 하는 것입니다. 예 거기라도 괜찮습니다. 하고 마리아를 헛간으로 데려가 거기에 눕혔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마리아는 짐승들이 사는 헛간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낳게 되고 어디 뉘일 자리가 마땅치않아서 짐승들이 먹이를 먹는 구유에 뉘이게 된 것입니다. 하늘에 보좌에 앉아계시고 하늘의 모든 영광위에 계시던 존귀한 성자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셨는데, 어떤 왕궁이 아니라 짐승이 사는 헛간에서 태어나시고 누울자리가 없어 구유에 누우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렇게 상황이 급박게 돌아가 겨우 헛간에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아기 예수를 낳고 그를 강보에 쌓아서 구유에 뉘인 것, 이렇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왜 따뜻한 방으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요셉과 마리아를 헛간으로 인도하셔서 그곳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낳게 하시고 그를 강보에 싸 구유에 눕게 하신 것일 까요?

그 이유는 예수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비천한 자로 오심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이 세상의 섬김을 받게 하려고 보내신 것이 아네요. 도리어 세상을 섬기게 하려고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끊임없이 세상을 섬기셨고 그 분은 자기 목숨까지도 세상을 위하여 내어 주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비천한

존재로 오실 것을 700여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는 그것을 예언합니다.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53: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 예언대로 예수그리스도는 이 땅에 비천한 자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8절서 부터도 보시면 천사가 이 소식을 목자들에게 가서 알려 줍니다.

저녁에 되어서 들판에서 양 떼를 지키고 있는 목자들에게 나타나서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합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합니다. 그러면서 수많은 천사들이 나타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목자들은 베들레헴으로 뛰어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어있는 아기를 찾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서 자기들이 들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해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돌아갑니다.

목자는 천한 자들에게 속합니다.

여러분 천사들은 많은 사람들 중에 왜 천하디 천한 목자들에게 나타나서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처음으로 알려 주는 것일 까요? 비천하자로 오심이죠.

 

이것은 예수그리스도가 비천한 자로 오심은 바로 이 세상에 비천한 자들 위해 오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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