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주일오전설교> 믿음으로 자신을 지키라 (창19:30-38)

박선준목사 2018. 12. 31. 16:23


 

 오늘 본문 말씀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결말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그 결말이 좋지 않습니다.

롯은 처음에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삼촌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 때는 롯의 상황이 좋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아브라함과 롯의 소유가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소유가 많아 지다보니 아브라함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는 일이 발생합니다. 우물에서 양들에게 물을 먹일 때, 푸른 초장에서 양들을 먹일 때, 서로 자기 양들을 먼저 챙기다 보니 다툼이 일어나는 것이죠. 소유가 많아지면서 한 지역에서 아브라함과 롯이 함께 사는 것이 좁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롯은 각각 분가하기로 결정을 합니다. 이렇게 분가해서 살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롯이 어렸을 때야 삼촌 따라다니며 살았지만 커서는 따로 나가서 자기 집을 세워나가야 하는 것이죠.

부모와 자식도 마찬가지죠. 자식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 각각 따로 나가서 살아야죠. 물론 장자가 부모를 모신다지만,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거의 부모와 자식들이 따로 떨어져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커서 나가서 살면 잘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이 좋습니다. 잘 안되면 가슴이 아픈 것 입니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장성해서 따로 나가서 살면 걱정이 됩니다. 잘 살아야 할 텐데--- 딸을 시집 보내면서 남편하고 싸우지 말고 남편에게 사랑받으며 자식들 잘 낳고 잘먹고 잘 살기를 바라죠. 아들이 직장 생활 별탈없이 잘 하고 가정을 잘 건사하며 살기를 바라는 것이죠.

그러나 잘 못산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부모님의 마음은 무척 아프실 것입니다.

저도 제가 이 사역자의 길을 걸으니까 부모님이 걱정이 많으십니다. 더군다나 제가 가평에 와서 개척교회 한다니까 더 걱정이 되셔서 ---- 아버지하고 통화하면 야 너 먹고는 사냐? 어려우면 말해늘 그런 말씀 하시죠.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가 눈동자처럼 지켜주고 계시죠.

오늘 아브라함의 곁을 떠나는 롯도 잘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아브라함의 마음이 기쁜 것이죠.

아브라함과 롯은 아주 오랫동안 함께 살았습니다. 롯의 아버지 하란이 일찍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롯은 삼촌인 아브라함과 어렸을 때부터 같이 주욱 살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아주 소중히 여기는 삼촌이었습니다. 훗날 롯이 엘람 왕에게 포로가 되어서 끌려가는데, 이 때 아브라함이 자기 목숨을 생각하지 않고 그 즉시 엘람왕을 쫓아가서 엘람왕을 쳐부수고 롯을 구출해왔습니다. 그 정도로 롯을 아끼고 사랑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롯과 헤어지면서 무척 서운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롯이 잘 살아갈 수 있을 까? 걱정도 많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롯과 헤어질 때 롯에게 먼저 땅을 선택하는 우선권을 줍니다. 롯이 잘 되기를 바라는 아브라함의 배려이죠. 아브라함은 롯이 떠나가서 잘 살기를 무척 바랬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기대와는 달리 롯은 잘되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은 성경에서 나타나는 롯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그 마지막 모습은 실패의 모습입니다. 롯은 모든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어 죽고 딸 둘과 겨우 몸만 피신하여 산에 동굴에 숨어있는 처량한 신세가 됩니다.

우리는 롯의 이 마지막 모습을 살펴보면서 왜 롯은 이런 실패의 인생을 살게 되었는가를 살펴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와 같은 전철을 걷지 않기 위함입니다.

그럼 롯은 왜 그런 실패의 인생이 되었을 까요?

 

먼저 롯이 이런 인생을 실패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안목의 정욕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롯에게 땅을 선택할 우선권을 주는데, 롯은 땅을 선택할 때 그저 육신의 눈에 보기에 좋은 땅을 선택합니다. 롯이 택한 땅은 소돔과 고모라의 지역이었습니다. 이 땅은 눈으로 볼 때는 에덴동산 같이 아주 좋아 보이는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습니다. 롯이 이런 죄악의 땅을 택하게 된 것은 그저 자기 눈에 보기에 좋은 대로 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땅이 영적으로 선하냐 악하냐 그런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얼마나 물이 많고 땅이 비옥하고 살기가 좋으냐 이런 육신적인 것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느 땅을 선택하느냐는 앞으로 롯이 잘되느냐 못되느냐의 정말 중요한 결정인데, 롯은 이런 중요한 결정을 하는데,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 어디로 가야 할 까요? 하고 하나님의 뜻을 묻는 그런 지식이 그에게 없었던 것입니다. 그저 자기의 육신의 생각에 좋은대로 결정해서 간 것입니다.

이런 롯의 인생이 잘 될 수 있을 까요? 결코 잘 될 수 없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극에 달하므로 하나님이 이 소돔과 고모라 땅을 유황과 불로 완전히 멸망시켜 버립니다. 이로 말미암아 소돔에서 살던 롯은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을 잃습니다.

다행히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 롯을 미리 피신시킴으로 롯과 그의 가족은 목숨은 겨우 건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안목의 정욕을 따라 가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야 합니다.

아무리 화려해보이고 많은 이득이 있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대치되면 따라가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려면 늘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을 따라 가야 합니다.

 

그리고 롯이 실패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면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 말씀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데, 롯은 그 말씀을 듣고는 이게 그런가 또 의심이 생겨서 머뭇거리고 상황 따라 감정 따라 말씀을 변경하며 움직이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롯에게 찾아와서 이제 곧 소돔성이 멸망 한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19:13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 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롯은 이 소식을 듣고 급하게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찾아가 멸망의 소식을 전합니다. 그러나 사위들은 그 소리를 농담으로 여깁니다. 믿음이 없는 사위들을 내버려두고 롯은 곧바로 가족들을 데리고 소돔을 떠나야 하는데, 롯은 머뭇거립니다. 동이 틀때까지도 집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19:15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르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19:16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천사들이 손을 잡고 끌고 가니 그제서야 길을 떠나는 것이죠. 이렇게 롯은 말씀을 즉각적으로 따르지 않고 자꾸 머뭇거립니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천사가 롯을 성밖으로 끌어내고 또 재촉하며 말합니다.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을 면하라 합니다.

그럼 롯은 곧바로 산으로 도망해야 하는데, 롯은 또 머리를 굴립니다.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19:19 주의 종이 주께 은혜를 입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에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19:20 보소서 저 성읍은 도망하기에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를 그 곳으로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읍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도시 생활에 익숙했던 롯이 산으로 도망하라는 천사의 말을 작은 소도시로 바꾼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말씀을 그대로 따르기 보다는 자꾸 머리를 굴리고 자기의 형편과 사정에 따라서 타협하는 태도는 아주 나쁜 태도입니다.

하나님이 소득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였으면, 말씀 그대로 소득의 십일조를 구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머리를 굴리고 타협하면 골치 아픕니다. 십일조 다드리면 나는 뭐 먹고 사나? 십일조 너무 많잖아, 이십분의 일만 드리지, 삼십분의 일만 드리지 그렇게 자기 형편대로, 감정대로, 상황 따라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몸에 배어버리면 그 사람은 계속해서 말씀 그대로를 따르지 않고 자기 임으로 신앙생활하는 잘못된 길을 가게 됩니다.

롯이 바로 그렇습니다. 롯이 작은 소도시에 가서 피신하겠다고 하니까 천사 속히 그리로 도망하라고 합니다. 롯이 말하는 성읍을 멸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롯을 살리기 위한 배려인 것이죠. 그래서 롯은 작은 성읍인 소알로 피신해서 들어갑니다.

그런데 소알로 피신해 가는 중에 그만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봄으로 소금기둥이 되어 버립니다. 이는 천사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그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이죠. 말씀 그대로를 따르지 않는 것이죠.

아내를 잃고 롯은 두 딸과 함게 소알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롯은 소알에 머물지 못하고 산에 올라가 굴에 들어가 피신합니다. 그 이유는 30절 보시면 두려움 때문입니다.

19:30 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 거주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하였더니

아마도 소돔과 고모라 지역이 멸망하면서 지각이 흔들리고, 뜨거운 화염의 기운이 소알에 까지 미침으로 롯은 소알도 멸망할 것 같은 두려움에 소알에 머물지 못하고 결국 산에 올라 동굴로 피신하는 것이죠. 이것도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 변경해 버리는 롯의 모습입니다. 분명히 천사가 소알은 멸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천지가 진동하며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면서 아마도 롯은 소알도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소알을 빠져나와 산으로 피신을 간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지 못하고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이리 흔들 저리 흔들 거리는 롯의 삶은 하나님의 축복받는 복된 삶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상황이 좀 어려워져도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롯의 삶이 실패한 것은 그가 낙심하였기 때문입니다.

롯은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서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서 굴속에 들어가 거주합니다. 그런데 여기 굴속에서 범죄가 일어납니다. 그 범죄는 근친상간의 죄입니다.

큰 딸이 작은 딸에게 말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될 사람이 이 땅에 없으니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합니다.

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큰 딸이 아버지와 동침을 합니다. 그런데 33절에 보시면 그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그 다음날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어제 밤에는 내가 아버지와 동침했으니 오늘 밤에도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네가 들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합니다. 그 날 밤에 작은 딸이 일어나 아버지와 동침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 딸들이 자녀를 낳는데요,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고 합니다. 이는 모압의 조상이되고요, 모압이라는 뜻은 아버지로부터 라는 뜻입니다.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서 이름을 벤 암미라 하는데 이는 암몬의 조상이 됩니다. 벤암미라는 뜻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두 딸은 아들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근친상간의 수치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두 딸이 이런 죄를 과감히 범하는 것은 타락할 대로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두 딸의 행동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전혀 믿지 않는 불신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롯의 인생이 실패했다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롯의 인생을 실패라고 말하는 것은 롯이 모든 재산과 명예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굴속에서 살게 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보고 실패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롯의 인생이 실패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두 딸들이 아버지와 동침함으로 롯의 집안이 완전히 이방족속의 조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압과 암몬족은 이스라엘을 계속 대적하는 대적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방해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넘어뜨리려고 하는 사탄의 종이 되어버린 것이죠.

롯은 그 영혼이 구원 받았느지 못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 롯의 집안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의 집안되고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대적자가 되었다는 것이 그의 실패인 것입니다.

그런데 왜 롯의 인생이 이렇게 실패가 되어버렸습니까?

그것은 그가 낙심하였기 때문입니다. 롯은 술독에 완전히 빠져 버립니다. 롯은 왜 인사불성의 상태에 이르도록 술을 마셨을 까요? 예 두 딸이 술을 권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것은 롯이 자신의 삶을 비관하고 자포자기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롯은 평생 자기가 쌓아온 모든 재산과 명예를 하루 아침에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아내마저 갑작스럽게 잃는 큰 슬픔을 겪습니다. 이제 어디 거처할 데가 없어서 산에 올라와 굴속에 들어와 사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롯은 낙심한 것입니다. 그리고 될대로 되라식으로 술을 부어라 마셔라 하며 술에 빠져 자기에게 닥친 이 현실을 피해보려고 한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롯의 두 딸은 근친상간의 죄를 범하게 되고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불신의 씨가 딸 몸속에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만약 롯이 깨어있었다면 이런 일은 발생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든 재산을 다 잃고 아내마저 잃어서 마음이 무척 아프지만 그러나 롯은 자신과 두 딸의 목숨을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낙심에 빠져 술취하는 것이 아니라, 굴속에서 눈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목숨을 구원하여주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롯을 선하게 인도하실 것을 믿고 또 길을 가야 하는 것이죠.

욥은 롯보다도 상황이 훨씬더 좋지 않았습니다.

욥도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을 다 잃습니다. 그리고 10명의 자녀도 다 잃습니다. 욥의 몸엔 악창이 생겨서 온 몸이 고름 투성이가 됩니다. 욥의 아내는 하나님을 욕하라고 하고 욥의 곁을 떠납니다. 욥은 철저하게 망합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 앞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 고통의 상황에서 욥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나와 탄식하며 부르짖으면 때로는 하나님께 원망도 하지만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놓치 않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런 욥을 축복하시고 전 보다도 갑절의 은혜를 누리게 하시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상황이 안좋고 어려워지더라도 세상 사람들처럼 자포자기하고 낙심에 빠져서 될대로 대라 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는 절대로 우리를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28: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잘되고 기쁠 때문 우리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슬프고 환란의 상황에서도 우리 주님은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시기를 바로고 계십니다.

롯과 같이 모든 재산 다 잃고 배우자 까지 사별을 하고 동굴과 같은 곳에서 살게 되는 상황이 우리에게 닥쳐와도 우리는 거기서 하나님을 찾고 또 하나님의 인도를 구해야 합니다. 그럼 하나님은 반드시 피할 길을 주시고 우리를 다시 소생케 하여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