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주일설교> 나를 완성하시는 하나님 (창세기20장)

박선준목사 2019. 1. 14. 17:52


  인생은 미완성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맞는 말입니다. 어느 인생도 완성을 이룰 수 없습니다.
어느 날 우리의 호흡이 멈추어서 숨이 끊어질 날이 올 것인데요, 그 때 우리의 모습은 분명히 미완성의 모습으로 끝날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완성을 이루고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미완성인 모습으로 우리 인생은 끝날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완성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이진관이라는 가수가 인생은 미완성이라는 노래를 불렀어죠.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마는 편지 그래도 우리는 곱게 써가야해” 이 가사처럼 우리 인생은 미완성으로 결국 끝나지만 그러나 우리는 계속 완성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그럼 인생의 완성을 이룬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 까요?
그것을 알려면 인간의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창조주께서 왜 인간을 만드셨는지? 내가 왜 존재하는지, 왜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사는지를 알아야 우리는 완성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가령 배를 만든 다고 합시다. 나무를 베고, 그 나무를 크기에 맞게 자르고 대패로 곱게 다듬고 망치로 못을 박고, 역청을 칠하고 돛을 만들고 등등 그런데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모르는 거예요. 지금 내가 만드는 것이 짐승들이 사는 헛간을 만드는 지, 집에서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인지, 농사일을 할 때 쓰는 어떤 기구인지, 목적을 모르면 나무를 베고 자르고 대패질을 하고 역청을 바르고 그런 일이 완성을 이룰 수 없는 것이죠. 그냥 뭔가 바쁘기만 하고 의미를 알지 못하는 것이죠
그러나 내가 만드는 것이 물에 띄어서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배이다 라는 목적을 알면, 모든 활동들이 의미를 찾게 되어지는 것이죠. 왜 톱질을 하고 망치질을 하고 대패질을 하고 역청으로 칠하고 그런 활동들의 의미를 분명히 알게되어서 완성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것이죠. 드디어 배를 만들어서 물에 띄었습니다. 배가 물에 뜨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배에 올라 탑니다. 그런데 배가 가라앉지 않는 것입니다. 드디어 배가 완성이 된 것이죠.
이와 같이 사람도 인생의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왜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셨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삶의 모든 활동들의 의미를 알게 되어지고, 인생의 완성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이 그저 아무 의미없이 그냥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하는 것이 아닌 것이죠. 오늘도 맛있게 밥을 먹고 열심히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예배를 드리고 그래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이죠. 그것들은 모두가 우리 인생의 목적을 완성해 가는 과정인 것이죠.
그럼 인생의 목적은 무엇일 까요?
예 하나님의 영광이죠. 우리 인생은 인생을 창조하신 창조주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나님께 영광이 인생의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자신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 때 우리는 완성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은 우리 평생에 이루지 못합니다.
현재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죄인인 인간은 결코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 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죄의 종이 되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자기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뿐입니다.
여러분 자기를 위해서 사는 삶의 모든 활동은 다 헛된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어떤 의미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목적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저 등따지 배부르고 나만 행복하면 그게 최고야 그러나 그것은 참 행복도 아니고 그저 썩어지고 다 죽을 것일 뿐입니다. 인생의 목적을 알지못하고 방황하다가 그냥 죽는 것입니다. 너무도 허무한 인생인 것이죠. 그러나 정말 무서운 것은 그 후에는 영원한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를 씻고 인생의 목적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후 5: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함을 압니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은 삶의 목적을 분명히 알기에, 완성을 향해 가야 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우리 삶의 모든 활동은 완성을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그 완성은 무엇이죠? 하나님의 영광이죠. 나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까지 우리는 계속 변해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 완성은 우리 평생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여전히 죄성이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이 완성은 훗날 우리가 천국에 가는 그날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 자신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먹고 자고 일하고 놀고 우리의 모든 삶이 다 하나님의 영광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점점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으로 변화되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평생 가야 하는 길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의 완성을 이루어 갈 수 있을 까요?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을 까요?
그러려면 우리 자신이 철저히 깨어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깨어있지 않으면 금새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이 되지 못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고 교회 권사고 장로고 목사일지라도 깨어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에서 멀어지고 인생을 방황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아브라함이 바로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가 이제 99세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와 24년 정도 되었습니다. 그동안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으로 점점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밖에 하늘의 별처럼 네 자손을 많게 하고 너로 큰 민족을 이룰 것을 말씀해주시면서 하나님의 마음 속에 믿음을 불어넣으셨고, 또한 아브라함도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그것이 하나님께 의가 되었습니다. 한 번은 동방연합군이 쳐들어와 소돔에 있는 조카 롯을 포로로 끌고 갑니다. 그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그 즉시 동방연합군을 쫓아가서 연합군을 쳐부수고 조카 롯을 구해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의 대범함을 보여주었습니다. 또 하나님이 아브라함99세에 나타나셔서 너에게 내년 이 맘쯤에 사라가 아기를 낳을 것을 말씀해주십니다. 그러면서 할례를 행할 것을 명령합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체없이 자기서부터 자기 집에있는 모든 남자들은 다 할례를 받게 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100세에 아들을 낳을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느 정도 이제 믿음이 자라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된 듯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아브라함이 오늘 본문에 시험에 들고 있습니다. 현실에서 어려움이 닥쳐오자 아브라함의 믿음은 금새 흔들리고 그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에서 멀어져 버리고 맙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시험에 든 것은 그가 깨어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아무리 믿음이 좋고 말씀을 많이 알아도 깨어있지 않으면 금새 시험에 걸려 넘어진다는 것입니다.

깨어있지 않으면 금새 나타나는 현상이 무엇이냐면 말씀에 벗어납니다.
생각이 말이 행동이 말씀에서 벗어납니다. 
오늘 1절에 보시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가나안 땅을 떠나는 것을 봅니다. 1절에 보시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여기서 거기서는 아브라함이 한 20여년 동안 머물던 헤브론 땅입니다. 헤브론 땅은 하나님 약속하신 땅 가나안 땅에 속하는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그 약속의 땅 헤브론을 벗어나 네게브 땅으로 내려 간 것입니다. 그가 왜 헤브론 땅을 떠나 더 남방지역인 네게브 땅으로 옮겨갔는 지는 정확히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헤브론에 철기를 쓰는 헷사람들이 내려오면서 그들을 피해 남방 네게브 땅으로 내려갔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보고 그 영향으로 내려 갔을 것이라는 신학자도 있습니다. 어쨌든 아브라함이요, 약속의 땅 헤브론을 벗어나 네게브로 떠나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네게브로 갔다가 아브라함이 정착했습니까? 아닙니다. 1절 보시면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그랄 땅에 들어가 거류한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말씀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입니다. 그럴 땅은 하나님이 주시겠다는 약속한 가나안 땅에 속한 땅이 아네요. 블레셋에 속한 땅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까? 매일 매일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고 계십니까? 만일 말씀 볼 시간이 없고 말씀을 볼 마음이 없다면 지금 당신은 깨어있지 못한 것입니다. 그럼 인생은 계속 방황하게 됩니다. 인생의 완성을 향해서 부지런히 나가야 하는데,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죠.

또 깨어 있지 않으면 나타나는 현상은 생활의 염려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헤브론 땅을 벗어나 네게브로 가서 잘 정착해서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1절 보시면 네게브 땅으로 옮겨갔다가 어떻게 되었어요?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였더라 했습니다. 거류라는 표현은 눌러 앉았다 그런 뜻이 아니라 잠시 머무는 정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왜 네게브에서 그랄로 옮겨갔는지 또 정확한 이유는 나와있지 않지만, 짐작은 할 수 있습니다. 네게브지역은 아주 강수량이 적은 지역입니다. 그러므로 아마도 그가 가뭄 때문에 그랄로 옮겨간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니까 그가 약속의 땅을 버리고 이방땅인 그랄로 들어간 것은 생활의 염려때문인 것이죠.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 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깨어있지 않으면 우리는 금새 생활의 염려에 빠져서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나라는 안중에 없게 되는 것이죠. 먹고 살기 위해서 예배를 폐하고 기도와 말씀을 삶을 중단해 버리는 것이죠. 완성을 향해 나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깨어있지 않으면 나타나는 현상이 사람을 두려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권력, 보이는 세력, 힘을 두려워하는 것이죠.
아브라함이 헷족속이 두려워 헤브론 땅을 떠났다면 그것이 하나님 보다는 사람을 두려워한 것이죠.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랄 땅에 들어와서 사람이 두려워서 거짓말을 합니다. 자기의 아내를 아내라고 하지 않고 누이라고 그랄 땅 사람들을 속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한 것은 그랄 사람들이 아내로 인해 자기를 죽일 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창 20:11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그런데 이런 아브라함의 걱정은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왜냐하면 현재 사라의 나이는 89세의 할머니이기 때문이고요, 또 그랄왕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이 사라를 자기 아내라고 했으면 그를 빼앗아올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사라를 남편이 없는 누이라고 이야기 하는 바람에 아비멜렉이 사라를 아내로 데려오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사람을 두려워하면 시험에 들고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는데, 도리어 세상 사람들에게 꾸지람을 듣고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려 버리는 일들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을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은 지요? 그렇다면 깨어있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두려워 하면 우리는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 수 없습니다. 늘 사람에 눌려서 사람따라가고 사람비위 맞추는데 바쁠 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하고는 멀어지는 것입니다. 헛된 인생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잠 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깨어있어야 합니다.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늘 말씀을 가까이 하고 혹시 내가 생활의 염려에 빠져 하나님의 영광과는 상관없이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하지는 않는지, 또 사람을 두려워하여 사람에게 잘보이려고 하고 사람의 인정을 갈구하고 있지는 않는 지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충성하십시오.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이 있더라도 모두가 나를 버리고 떠난다고 해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리라 다짐하십시오. 그럴 때 우리의 삶을 점점 완전을 이루어가는 복된 삶이 될 줄을 믿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완성을 이루어 가기위해서 반드시 깨어서 기억해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따라합시다. "내 인생의 완성은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을 온전케 해나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항시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내어 맡기는 것을 말하며 늘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가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설혹 우리가 깨어있지 못해 시험에 들고 넘어지고 쓰러져도 하나님은 나를 온전케 해나가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온전케 하십니다. 이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아브라함은 방황하고 실수하고 넘어졌습니다. 아내를 아내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그랄왕 아비멜렉에게 빼앗긴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브라함의 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여년 전에 아브람함이 가나안 땅에 처음 왔을 때 그 때도 가뭄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가죠. 거기서 아브라함은 애굽 사람들이 두려워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이 때도 바로왕이 사라를 아내로 취하려 했다가 하나님이 바로왕을 치심으로 아브라함은 구원을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나서 또 그랄 사람들이 두려워 아내를 누이라 속이는 죄를 져지르는 것입니다.
이런 실수와 죄를 져지르는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벌하지 아니하시고 도리어 또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으로 구원해 내십니다.
그랄왕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자기 아내로 취하려고 왕궁으로 데리고 오자 그날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나타나셔서 네가 아브라함의 아내를 데려왔으니 “너는 죽을 것이다” 라고 말씀 하십니다. 당장 사라를 돌려 보내라고 하십니다. 만약 돌려보내지 않으면 너 뿐만 아니라 너에게 속한 자가 다 죽으리라 하십니다. 이 말을 듣고 아비멜렉은 큰 두려움 가운데 그 즉시 아브라함을 불러서 왜 네 아내를 누이라 속였느냐 하면서 아내를 돌려 보냅니다. 그리고 은 천을 주고 가축도 주면서 돌려 보냅니다. 이 일을 통하여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절대적 주권의 하나님이심을 다시 한 번 체험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연약함 속에 져지른 죄악을 도리어 하나님의 권능을 보이시는 기회로 삼으셔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더욱 성숙시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더욱 완성시켜 나가신 것입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이삭이 생겨납니다. 하나님은 독자 이삭을 갖기전에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삭을 가질만한 믿으로 성숙시키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우리 인생의 완성은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이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힘으로 우리를 완성해 나가는 것이라면 그것은 믿을 것이 못되고 뻔에 뻔자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기 우리의 온전함은 반드시 이루어짐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나의 약점을 이용해서, 나의 연약함, 나의 실수, 나의 넘어짐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나의 온전함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완성케 하시기위하여 자기의 아들을 아낌없이 내어 주셨습니다. 자기 아들을 내어주신 분이 어찌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완전하게 하시려고 아무것도 아끼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내 위에 계심을 확실히 믿으시고 담대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점점 온전한 자로 변화 되어져 갈 것입니다.
빌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