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주일오전설교> 하나님이 함께 하는 인생 (창21:22-34)

박선준목사 2019. 1. 28. 09:10


하나님이 함께 하는 인생

  

  인생을 살다보면 두려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두려움은 가난하거나 약한 사람에게만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은 부자나 강한 자에게도 누구에게나 임할 수 있습니다.

싸움을 잘하는 격투기 선수 중에 아주 강한 추성훈이라는 선수가 있는데요 그렇게 강한데도 그는 늘 두려움을 느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강한 기업이 삼성인데요, 삼성은 아무 두려움이 없을 까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삼성도요 살아남기 위해서 온갖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제품을 개발해야 됩니다. 깜박하면 경쟁사들인 애플이나 하웨이 같은 회사에게 금새 밀려버립니다.

이 세상에서 강한 자나 약한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모두가 두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죠.

오늘 본문에 강한 자가 나옵니다. 그 사람은 그랄 왕 아비멜렉입니다. 그런데 그가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비멜렉은 강한 군대를 소유하고 있는 왕이었습니다. 고대시대 때 족장을 넘어 왕이었다는 것은 그 세력이 강한 것이죠. 아브라함도 그랄지역에 들어갔다가, 그랄 왕이 자기를 죽일까 두려워서 아내를 동생이라고 속이는 일이 발생됩니다. 그랄 왕이 아브라함의 아내를 자기 아내로 삼으려고 데려가죠. 아브라함은 그랄 왕에게 아무 말 못하고 아내를 빼앗겨 버립니다. 다행히 하나님께서 그랄왕 아비멜렉을 침으로 아비멜렉이 두 손들고 아브라함의 아내를 돌려보내죠. 만약 하나님이 간섭하지 않으셨으면 아브라함은 아내를 빼앗기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그랄 왕은 자기가 마음에 드는 여자를 아무나 자기 아내로 데리고 올 수 있는 강한 힘을 소유한 자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절대 권력을 가진 그랄 왕 아비멜렉이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랄 왕 아비멜렉이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 까요? 아브라함입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아브라함이 그랄 왕 아비멜렉이 두려워서 아내를 동생이라고 속이는 일이 발생이 되었는데, 이제는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두려워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찾아옵니다. 찾아와서 우리 앞으로 서로 침범하지 말자는 동맹조약을 맺자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뿐만 아니라 자기 아들, 손자때 까지도 서로 침범하지 말자고 합니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아주 두려워하는 것이죠. 왜 아비멜렉은 왜 이렇게 까지 아브라함을 두려워하게 된 것일 까요? 더군다나 아브라함은 100세가 넘은 할아버지인데, 그 이유는 22절에 나와 있죠.

21:22 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아비멜렉이 군대 장관 비골과 함께 아브라함을 찾아옵니다. 군대장관과 동행해서 왔다는 것은 아브라함과의 만남을 아주 중요시 여겼다는 것이죠.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이라는 존재를 이렇게 중요시 여기고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게 된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 위에 함께 하시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세력이 자꾸만 커지는 것예요, 아브라함이 하는 일들마다 잘되는 것입니다.

아비멜렉은 아마도 이런 아브라함을 견제하기 위해서 여러모로 방해하고 빼앗는 일을 일삼았던 것 같아요.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동맹을 요구하자,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을 합니다. 25절이죠 21:25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고대시대 때 우물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특별히 아브라함이 거한 네게브지역은 비가 잘 오지 않는 가뭄지역으로 우물은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하갈이 아들을 데리고 이 네게브지역 광야로 가다가 마실 물이 없어서 죽을 위기에 처하자 대성통곡을 하기도 했죠. 이처러 우물은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특히 양떼나 가축을 키우는 목장에서 우물을 확보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죠. 우물을 확보함으로 많은 가축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아브라함의 목자들이 확보한 귀한 우물을 아비멜렉의 종들이 강제로 빼앗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것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26절에서는 아비멜렉은 누가 그리했는지 나는 잘 모른다고,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변명하고 맙니다. 여러분 잘못이 드러나면 즉시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미안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라는 말을 잘 못하는 것을 봅니다. 그저 나는 잘 모르는 일이었어,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며 그 위기를 넘기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진정으로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아브라함의 귀한 우물을 아비멜렉 종들이 강제로 빼앗을 일을, 아비멜렉이 분명히 어느 정도는 알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세력이 자꾸만 커져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막고 제압 하려고 해도 아브라함은 하는 일마다 잘되는 것입니다.

우물을 빼앗아서 타격을 입힌 줄 알았는데, 어 며칠 지나서 보니까 저 쪽에서 더 좋은 우물을 파서 물이 콸콸 나오는 것예요, 좋은 푸른 초장은 아비멜렉 양들이 다 차지하고 아브라함 양들은 밖으로 몰아냈는데, 어 또 다른 지역에 더 좋은 초장이 발견되어서 아브라함의 양떼들이 더 많아 지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간혹 있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데, 매번 아브라함이 하는 일들은 형통한 것예요. 이런 것을 보면서 아브라함을 위에 하나님이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을 점점 두려워하게 된 것이죠. 더군다나 아비멜렉은 몇 년 전에 아브라함의 아내를 차지하려고 하다가 하나님의 치심으로 집안 전체에 태에 문이 닫히는 재앙을 경험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직접 보호하시는 아브라함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커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비멜렉은 군대장관 비골을 대동해서 아브라함을 찾아와서 서로 공격하지 말자는 불가침 조약을 맺자고 하는 것입니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 위에 하나님의 보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아브라함을 두려워하여 동맹을 맺는 것은 지혜로운 것입니다. 만약 아비멜렉이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고 아브라함을 계속 못살게 굴고, 아브라함의 것을 강탈하려고 했다면, 아마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을 박살내셨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리 세상이 강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반대로 그리스도인들을 대적하는 무리들은 큰 두려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들 위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두려워 하는 것은 그 아브라함위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두려워할 것이 없고, 그리고 세상은 그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과 하나님이 늘 함께 하고 있음을 믿으십니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43: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너는 내 것이고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니 너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을 보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31:6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

이런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두려울 것이 없어!! 하고 담대한 마음이 들지만 그러나 또 막상 두려운 현실이 부딪치고 현실에서 문제가 발생이 되면 우리는 금새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망각하고 두려움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두려움에 빠져서 하나님 바라보지 못하고 세상의 헛된 것을 의지하려고 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어리석음에 빠져도요, 우리가 걱정하지 않을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면 우리의 삶을 대적에게 내어주고 실패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떠나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내가 너와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28: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13:5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 하시는 것은 아브라함이 잘하고 있기 때문일 까요?

아닙니다. 지금 아브라함이 그랄 땅에 들어온 것은 전적인 아브라함의 실수였습니다. 그는 약속의 땅을 버리고 인간적인 생각에 그랄 땅에 들어온 것입니다. 들어와서 그랄 사람들이 두려워서 아내를 동생이라고 속이는 죄까지 져지르죠. 이 죄로 아브라함은 아내를 자기 눈 앞에 그랄 왕에게 빼앗기는 수치를 당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버리셨을 까요?

천만합니다. 하나님은 도리어 아브라함의 아내를 데려간 아비멜렉을 치십니다. 하나님이 치시자 아비멜렉은 그 즉시 아내를 돌려주죠 그뿐 아니라 은 천개에다가 가축과 종들까지 딸려서 보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절대로 버리지 않으십니다. 아브라함을 지키고 보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을 절대로 버리지 않으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고 떠나간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약속을 어기시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절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공의의하나님이시기 때문이죠.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죠. 하나님이 하실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하죠. 그것이 바로 거짓말입니다. 6: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만일 하나님이 자신이 세운 약속을 어긴다면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속성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하늘이 없어지고 땅이 없어질 지라도 일어날 수가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공의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분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버리고 떠나신다면 그것은 자신의 아들인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헛된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것이죠. 자기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내어주면서 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라면 무엇을 아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아끼지 않으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시고 또 앞으로 영원까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감정이나 기분에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열심히 살 때는 성령이 충만하여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확신하여 담대함으로 가득찹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고 성령의 충만을 잃으면 우리는 금새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지 않는 것 같고 심지어는 나는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 같은 느낌까지 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럴 때 여러분 큰 소리로 선포하십시오. “원수 마귀는 떠나갈 지어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나를 절대로 떠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신다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신건지, 안계신 건지 느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중요합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이 약속을 붙잡고 담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약속을 붙잡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전진해가면 이 세상이 우리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는 너무도 약하고 보잘 것 없습니다. 가진 것도 별로 없고 무슨 권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감사하고 기뻐하며 친절하고 정직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은 우리를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보이는 힘으로 따지면 정말 두려워 할 사람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나이가 100세가 넘은 노년이고 아브라함에게 무슨 군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가축떼를 기르는 목장주인 것이죠. 아브라함은 매일 밤마다 혹시 다른 족장들이나 왕들이 쳐들어와서 우리 양떼를 강탈해 가면 어떻게 하지? 하고 두려워 해야 하는 것이죠.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무 두려움이 없고, 정작 군대를 거느리고 있는 그랄왕 아비멜렉이 두려움에 빠져있는 것이죠.

그 이유는 영적인 눈으로 보면 금새 알 수 있죠. 아브라함위에는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아비멜렉위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보호가 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은 모든 일에 형통하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보호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늘 무엇을 먹을까 마실 까 걱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그런 걱정을 안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하루라도 더 돈을 벌기 위해서 주일이고 뭐고 없습니다. 열심히 일할 뿐입니다. 그런데 믿는 자들은 주일이면 모든 하던 일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피 같은 돈을 헌금으로, 그것도 최소 소득의 십분의 일을 교회에 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늘 자기는 먹고 사는데 허덕이고 삶 속에 풍성함이 없는데, 믿는 사람들은 뭔가 풍성한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왜 우리와 함께 하실 까요?

왜 우리의 삶을 항상 지켜주시고 때를 돕는 은혜를 주시고 큰 위험이 오면 피할 수 있게 해주시고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을 형통케 하실 까요?

우리가 등따시고 배부르게 살기 위해서요.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부요케 하시는 목적은 단순히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인 것입니다.

고전 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고전 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 1: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약할 때 강함이 되시는 하나님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철저히 지켜주시고 보호하십니다. 우리가 그것을 그대로 믿고,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죠.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하나님은 그 아브라함을 통하여 세상의 왕인 아비멜렉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만드시는 것이죠.

 

아브라함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을 봅니다. 아비멜렉과 동맹을 맺어 평화협정을 맺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우물을 빼앗지 않는다는 맹세도 받아내어서 브엘세바라 명합니다. 이것은 우물의 맹세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세상을 믿지 않습니다. 세상은 언제든지 그 약속을 어길수 있기 때문이죠.

아브라함은 하나님만을 믿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아빌렉이 동맹을 체결한 후 떠나가자 그곳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불렀다 했습니다.

21: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이것은 아브라함이 이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살든지 여러분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뢰하고 하나님만을 따라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