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함이 많은 이
많은 죄를 사함 받은 이
아낌없는 헌신
요즘은 사람들이 다 마스크를 쓰고 다닙니다. 마스크를 안쓰고 다니는 것이 이상한 사람입니다. 이런 광경은 3년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만약 타임머신이 있어서 3년 전 2018년 전의 사람이 2021년으로 곧바로 와서 이 세상을 본다면 깜짝 놀랄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마스크를 다 쓰고 다녀요” 하고 도저히 이해를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코로나라는 이 특수한 상황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에도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행동을 하는 여자가 나타납니다. 이 여자는 동네 사람들이 죄인으로 여기는 여인입니다. 아마도 이 여인은 창녀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통 유대 사회에서 여자를 죄인이라 부를 경우 그것은 곧 창녀를 가리키는 표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죄인인 이 여인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바리새인 시몬이라는 사람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벌어졌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대부분 예수님에 대해 적대적이었습니다. 어떻게 서든지 예수님의 말과 행동에서 흠을 찾아내어 예수님을 깎아내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런 바리새인의 집에 예수님이 초대되었다는 것은 특이한 것이죠. 아마도 시몬은 바리새인이지만 그래도 예수님에게 호의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같습니다. 아니면 반대로 예수님의 흠을 찾아내려고 악한 의도를 가지고 예수님을 초대한 것일 수 도 있죠. 성경은 그런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고요,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바리새인의 집에 식사초대를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초대에 아무 의심없이 응하십니다. 예수님이 오시니까 여러 사람들이 모여 들었을 것입니다. 또 시몬의 동료들인 다른 바리새인들도 식사에 함께 참여했겠죠.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식사자리에 앉으시는데요,
죄인인 여자가 예수님이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유대인들은 창녀를 죄인으로 여기고 아주 혐오하였습니다. 더군다나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선생으로써 겉으로는 아주 거룩을 중요시 여기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창녀를 아예 죄인으로 정죄하고 부정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죄인인 여인이 바리새인의 집에 예수님이 와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향유를 담은 옥합을 가지고 바리새인의 집을 찾아갑니다.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고 혐오하는 바리새인 집에 이 여인이 찾아 들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주저함 없이 바리새인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식사하시려고 앉아있는 예수님 뒤에 가서 섭니다. 예수님 뒤에서 선 여인의 눈에는 갑자기 폭포수 같은 눈물이 줄줄 흐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의 눈물이 예수님에 발에 뚝뚝 떨어져 예수님 발이 눈물로 젖습니다. 여인은 자기의 눈물로 젖은 예수님의 발을 자기의 머리카락을 풀어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습니다. 그리고 그 발에 입을 맞춥니다. 이것은 보통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건조한 지역으로 대부분 센달을 신고 다닙니다. 오늘날 같이 아슬팔트 같은 것이 깔려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흙이기에 낮에 길을 다니다보면 발이 자연스럽게 흙먼지 더러워집니다. 그래서 보통 집 마당에는 물항아리가 놓여져 있습니다. 왜 있을 까요? 예 씻고 들어오라고, 집에 들어가기 전에 밖에 먼지로 더워진 발을 닦고 들어가는 것이죠. 그런데 부자집에는 이 발을 닦아주는 종이 있었습니다. 발을 닦아주는 종은 종들 중에서도 가장 낮은 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주 귀한 손님이 오실 경우, 아주 높은 관리나 유명한 랍비 같은 사람들이 올경우에는 그들을 극진히 섬긴다는 의미로 주인이 직접 손님의 발을 닦아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흙먼지로 더러워진 예수님의 발을 이 여인이 닦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기의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는 것이죠. 그것도 모자라서 여인의 예수님의 더러운 발에 자기의 입을 맞추고 있습니다. 여인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가지고 온 향유옥합을 열어서 아낌없이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붓습니다. 여러분 향유는 아주 비쌉니다. 요12장에 마리아가 향유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발에 다 부었을 때, 그 향유의 값어치를 삼백데나리온이라고 가룟유다가 말하죠. 삼백데나리온이면 오늘날 돈으로 치면 2000만원이 넘는 돈입니다. 이런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 발에다가 다 붓는 것이죠. 이런 행동은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지켜보던 바리새인 시몬이 마음속으로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왜냐하면 죄인인 여자가 발을 만지는데도 가만히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 선지자라면 부정한 여인인줄 알고 여인을 금했어야 하는데 예수님은 그렇지 않는 것이죠.
예수님은 왜 여인을 그대로 놔두시는 것일까요? 여인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알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상황을 알면 온 세상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는 것을 이해할 수 있죠. 그러나 코로나 상황을 알지 못하면 사람들이 마스크는 쓰고 다니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죠., 그와 같이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 지를 아시기에 자기를 만지는 것을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시몬에게 이 여인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시는데 한가지 비유를 들어 설명하십니다.
한 주인에게 빚을 진진 자 둘이 있는데,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데나리온의 빚을 졌다. 그런데 빚진 자들이 빚을 갚을 힘이 없어서 주인이 둘 다 빚을 없었던 것으로 해주었다. 시몬아 네 생각에는 둘 중에 누가 더 주인을 사랑하겠느냐?
그러자 시몬이 “제 생각에는 빚을 많이 면제 받은 사람이 주인을 더 사랑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네 판단이 옳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은 시몬과 여자를 비교하면서 설명을 하십니다. “시몬아 네가 이 여자를 보았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왜 이 여자는 시몬보다 훨씬 더 예수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를 예수님은 사랑함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시몬에 비해서 이 여인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여인은 예수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것이죠.
이 여인은 어떻게 예수님을 사랑함이 많게 된 것일까요?
그 이유는 빚을 많이 졌기 때문입니다. 50데나리온 빚을 면제 받은 사람보다 500데나리온 빚을 면제 받은 사람이 더 많이 주인을 사랑하듯이 이 여인은 500데나리온의 빚과 같은 많은 죄를 져지른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요 이 여인은 죄가 많은 여자였습니다. 자기 몸을 파는 여자로 간음을 져지르며 그것으로 생활해 나가는 여자입니다. 동네사람들은 이 여자를 아주 혐오하고 죄인으로 정죄합니다. 예 이 여자는 정죄 받아야 될 큰 죄인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만 큰 죄인인가요? 이 여자만 500데나리온 같은 큰 빚은 진 사람인가요? 그렇지 않죠. 창녀가 이 여자만 있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른 창녀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창녀들만 죄인입니까? 이 창녀를 찾는 남자들도 동일한 큰 죄인이 아닐까요?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은 자도 간음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음욕을 품은 적이 한 번도 없으신가요? 성경은 말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고 말씀합니다. 이 창녀만이 500데나리온의 큰 빚은 진 죄인이 아니라 바리새인 시몬도 500데나리온의 큰 빚을 진 죄인이고 우리 모두도 다 큰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모두가 다 큰 죄인들인데 왜 시몬은 예수님을 조금 사랑하고 이 죄인인 여인은 예수님을 많이 사랑하는 것일까요? 시몬은 발씻을 물도 주지 않았는데, 이 여인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작시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고 입을 맞추고 그 발에 자신의 귀중한 향유를 아낌없이 다 쏘다 붓는 것일까요? 왜 이 여인인 이렇게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일까요?
죄가 많아서요, 예 맞죠. 그러나 바리새인인 시몬이나 우리 모두도 다 큰 죄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여인은 시몬보다 훨씬더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일까요?
자신이 큰 죄인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은 아마도 원래는 자기가 큰 죄임을 알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서슴없이 몸을 팔고 쾌락을 즐기며 살았던 것이죠. 그럴 때는 죄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이죠. 죄를 져지르지만 그것이 죄인지도 모르고 죄를 먹고 마시며 사는 것이죠. 이것은 이 여인 뿐만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눈을 뜨고 살아가면서 수많은 죄를 먹고 마시며 삽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자기가 큰 죄인임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자신이 죽을 수 밖에 없는 큰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 여인이 어떻게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되었는지 성경이 말하지 않기 때문에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 한가지는 예수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이 여인은 자신이 얼마나 더럽고 추악한 죄인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를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둠 가운데 있을때는 자기의 더러움을 알지 못했는데, 빛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여인의 더러운 죄들이 다 드러나 버리는 것입니다. 그때 여인은 자신이 죽을 수 밖에 없는 큰 죄인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여인은 예수님 앞에서 아까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적셨던 것처럼 펑펑 울면서 지난날의 자신의 죄악된 삶을 처절하게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마치 눅18장에 자신이 죄인임을 철저하게 깨달은 세리와 같은 것이죠.
눅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이 때 예수님은 이 세리가 의롭다 여김을 받았다고 하십니다.
여인이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철저히 자신의 죄를 회개하였을 때, 예수님은 여인에게 너의 죄가 사해졌노라 라고 말씀 하셨을 것입니다.
48절에 보시면 모든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은 다시 이 말씀을 여인에게 하십니다.
눅 7: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이렇게 하시는 것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여인의 죄가 사해졌음을 알리고 또 여인에게 죄사함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여인은 자신은 구제 받을 수 없는 죄인인줄 알았는데 예수님이 자기의 죄를 용서하여 주심에 너무 너무 감사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자를 보시고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라고 말씀하시자 그 소리를 듣고 있던 사람들이 속으로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만이 이 여자의 죄를 사하실 수 있는 분이죠.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제 이 여자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것이기 때문이죠.
물론 이 여인은 예수님이 자기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것 까지는 알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자기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는 메시야이심을 믿었던 것입니다. 늘 창녀라는 꼬리표를 달고다니며 죄의 짐에 눌려있던 여인이었는데, 예수님을 만남으로 그 모든 죄의 짐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여인은 이런 죄사함의 은총받고 너무 너무 감사하여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바리새인의 집이지만 아무 주저함 없이 예수님을 찾아 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서 눈물로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닦고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붓는 일을 하였던 것입니다. 나의 죄를 사여주신 주님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것이죠. 그것은 자신의 큰 죄를 사하여주신 주님의 큰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인 것이죠.
여러분 이 여인처럼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임을 깨닫고 그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한결같이 이 여인과 같은 반응을 보입니다. 나의 죄를 씻어주시고 사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모시고 이제는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건강과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드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50절에
눅 7: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이것은 여자의 믿음을 칭찬하고 계신다. 세상 사람들이 너를 뭐라고 공박하더라도 너는 믿음 안에서 확고하게 서라 그리하면 확실한 구원에 이를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나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신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그 믿음을 확고히 하시고 이제는 이 여인처럼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사십시오. 예수님을 더 많이 사랑하시고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높여드릴 까,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까 어떻게 하면 예수님처럼 살까를 고민하며 날마다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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