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아브라함아!!” 그러자 아브라함이 “내가 여기있나이다”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놀라운 요구를 하십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가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합니다. 번제로 드리라는 것은 제물의 내장을 다 드러내고 각을 떠서 불에 태워 바치는 제사입니다. 아들 이삭을 그렇게 죽여 불에 태워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이죠. 이삭은 아브라함이 백살, 그의 아내 사라가 90살 때 낳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가장 소중한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이 그것을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것도 아브라함이 직접 아들을 죽여 제물로 바치라는 것이죠.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너무도 잔인한 요구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런 심한 요구를 하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를 1절에 말씀하시죠. 1절에 보시면 하나님이 왜 아브라함을 부르셨다고 했습니까? 예 시험하시려고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가장 소중한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시는 것은 아브라함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죠. 왜 이런 시험을 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브라함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를 알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알게 되는 진리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입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예 하나님은 항상 최우선 순위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을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이 최우선이어야 합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제 딸에게 했는데요, 제 딸이 그럼 아빠 “내가 아주 중요한 시험을 치고 있는데, 갑자기 하나님이 시험을 중단하고 나와라” 하면 어떻게해? 물론 말도 안되는 질문이죠. 하나님이 그런 것을 요구하실 분은 아니지만, 그러나 제가 분명히 대답했습니다. “당장 나와야지”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서 항상 최우선 순위이시고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분이십니다. 눅14:26절에 예수님이 이 우선순위에 대해서 분명히 말씀하시죠.
눅 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기 부모와 처자, 형제, 자매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예수님을 따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씀일까요? 부모님과 아내 자식 형제 자매를 미워하라는 것입니까? 아니죠.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아내를 네 몸처럼 사랑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가르침입니다. 왜 그럼 여기서는 자기 부모 처자 형제 자매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라고 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예수님을 따르는데 그런 것들이 방해가 된다면 과감하게 그것들을 포기해야 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최우선 순위는 항상 하나님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을 온전히 따를 수 있고 그것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는 분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지 아닌지를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럼 왜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다 아시면서 왜 시험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그것을 시험하시는 것은 첫째는 그 시험을 통하여 그 사람을 연단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그 경외의 마음을 밖으로 드러나게 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오늘 우리도 아브라함의 시험 받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된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를 알기 위한 시험은 아브라함만의 시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 시험을 계속 행하십니다. 네가 나를 진심으로 경외하느냐? 왜 하나님은 이 시험을 계속하시는 것일까요? 예 우리로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 제자들은 우리가 절대로 예수님을 버려두고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을 합니다. 그러나 군병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예수님을 체포하자 제자들 모두가 자기 목숨을 살리기 위하여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 버립니다. 제자들 모두가 시험에서 실패하고 만 것이죠. 그러나 그 실패는 제자들의 연단의 과정이었습니다. 나중에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면서 제자들은 진심으로 회개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로 변화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모두가 예수님을 전하다가 기꺼이 자기 목숨을 버립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시험을 통하여서 하나님을 최우선 순위에 두는 성도로 연단시켜 갑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지 세상 것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지 갈등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을 뒤로 하고 세상의 것을 우선순위에 둘 때 우리는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지 못하고 방황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내 생각, 내 형편, 내 욕심 다 내려놓고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게 되고 우리의 믿음은 더욱 견고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을 통해 이루어지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에 올라갑니다. 번제에 쓸 나무는 이삭에게 짊어지게 하고 불과 칼은 아브라함이 가지고 갑니다. 산을 올라가는데, 아들 이삭이 아버지의 마음을 후벼 파는듯한 아픈 질문을 합니다. “아버지!! 왜그러느냐? 불과 나무는 여기있는데 제물로 바칠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이 질문은 아브라함의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하는 질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잘 대답합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하나님이 지시한 곳으로 올라갑니다.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칼로 이삭의 배를 찌르기 직전이죠. 그런데 히브리서에 보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여서 하나님께 번제로 드린 것으로 나옵니다.
히 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사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죽여 번제로 드리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칼을 높이 들어 이삭의 배를 찌르려고 하는 순간 하늘에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급하게 아브라함을 부르는 소리가 납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칼로 아들 이삭을 찔러 죽인 것은 아니었던 것이죠. 그러나 히브리서는 아브라함이 아들이 이삭을 번제로 드렸다고 말하는 것은 아브라함이 아들을 죽이려고 시늉만 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아브라함은 아들을 죽이기로 작정을 하고 칼을 들어 찌르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린 것으로 받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시험에 통과한 것이죠.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시험에 통과하자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는 것을 봅니다. 먼저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는데 한 숫양이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 숫양은 하나님이 이삭을 대신하여 미리 준비해 놓으신 번제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숫양의 죽음 이후로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짐승들이 제물로 드려집니다. 그런데 그 짐승 제물은 오로지 한 사건을 계시하는 것일 뿐이죠. 어떤 사건이죠? 예 예수그리스도. 바로 아무 죄없는 예수그리스도가 세상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입니다. 그 숫양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상징하는 것이죠.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므로 인해, 시험에 통과하므로 인해 그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 은혜를 체험한 것이죠. 그리고 아브라함이 시험에 통과하므로 인해 하나님이 복을 부어주십니다. 16절 서부터 보시면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행한 이 시험은 그 정도가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어떻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그것도 아버지가 자기 손으로 난도질을 하여 번제로 드리게 합니까? 이것은 너무 심한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고전10:13에 나와있죠.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셔서 결국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렇게 심한 시험을 하신 것은 아브라함이 그 시험을 감당할 믿음의 수준에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25년여 동안 아브라함은 계속해서 믿음의 연단을 받고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결국 독자 이삭을 바치는 시험까지도 받을 만한 믿음의 수준에 이른 것이죠. 그리고 결국 통과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들을 향한 하나님의 연단도 계속될 것입니다. ”네가 나를 진심으로 경외하느냐?“ 하나님이 그 시험을 계속해서 하시는 것이죠. 그 시험을 우리가 잘 통과할 때 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이고, 우리의 믿음은 더욱 견고케 될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 하나님의 시험을 잘 통과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어떻게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시험을 잘 통과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항상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갓이스소굿 올더타임! 하나님은 우리가 착하고 잘할 때만 좋으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잘되고 성공할 때만 좋으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실수하고 죄를 지어 넘어지고 쓰러져도 여전히 좋으신 하나님이시고 우리가 사업에 실패하고 병들고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바로 이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가뭄이 들자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그곳에서 그는 자기 아내를 동생이라고 속이는 일을 져지릅니다. 그 이유는 아내를 자기 아내라고 하면 이방 사람들이 자기를 죽일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이죠. 이 일로 인해 아브라함은 애굽 왕에게 자기 아내를 빼앗길 위기에 처합니다. 애굽왕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와 동침을 하려는 밤에 하나님이 애굽왕을 꾸짖으시고 아내를 아브라함에게 돌려보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본처인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약속하셨지만, 10년이 넘도록 사라에게서 아기를 가지 못하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사라의 몸종인 하갈에게 들어가 아들을 낳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이루어가십니다. 아브라함이 99세때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내년 이 맘 때에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 합니다. 아브라함은 내 몸도 늙었고 사라는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죽은 몸임을 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믿지 못합니다. 그러나 정말 1년이 지난 후에 아브라함100세 사라90세때 사라가 아들 이삭을 낳습니다. 아브라함은 매번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쓰러졌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오래참으시고 아브라함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결국 그와의 약속을 이루어가시는 것이죠.
아브라함은 이런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은 언제나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 말씀에도 그대로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선하게 인도하실 것을 믿었던 것이죠. 여러분은 하나님이 항상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십니까? 아멘이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지만, 사실 하나님은 이삭 대신 자기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제물로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이삭 대신 죽은 뿔에 걸린 숫양은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죠. 그런데 죽어야 할 이삭은 바로 죄인인 우리 모두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죽어야 하는데,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우리를 대신하여 제물로 내어주신 것이죠.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으로 우리는 살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죄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할 수 있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임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자기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아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해가 안되더라도 상황이 어렵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아브라함처럼 그대로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시험을 잘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을 때, 그 즉시 순종하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순종은 미루면 시험에 들기가 쉽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너무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그 즉시 순종할 때 시험을 잘 통과할 수 있게 됩니다. 2절을
창 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여기서 키포인트는 ”여호와께서 이르시되“입니다. 누가 말씀하신 것이라구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죠.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말씀임을 알고 어떻게 했을까요? 즉시 순종했습니다. 3절 같이 읽어 볼까요?
창 22: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아브라함이 언제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으로 갔습니까? 그 다음날 아침 일찍입니다. 즉시 순종한 것입니다. 만약에 아브라함이 마지막으로 이삭하고 일주일간 여행갔다가 와서 번제로 드릴께요, 그렇게 했다면 아마도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냐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닐지 몰라, 어떻게 하나님이 사람을 번제로 드리게 할 수 있어, 하나님도 내 형편을 다 아실 거야 하며 이 핑계 저 핑계대며 결국 이삭을 바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이삭을 데리고 출발한 것입니다. 아마도 사라에게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땅으로 가는데 3일이 걸렸습니다. 3일이라는 시간은 아브라함의 마음을 변하게 하는데 충분한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리아 땅으로 정하신 것도 3일의 여정 가운데 아브라함의 마음을 시험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오직 앞에 모리아 땅만 보고 전진합니다. 모리아 땅에 도착하여 두 종을 산 밑에서 기다리게 하고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는 것이죠. 이런 아브라함의 즉시적인 순종이 시험을 통과하는 중요한 비결입니다.
누가복음17장에 보시면 한 마을에 문둥병자 10명이 있는데, 예수님이 멀리서 지나가는 것을 보고 문둥병자들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라고 소리칩니다. 그때 예수님이 가서 너희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라 합니다. 그래서 이 문둥병자들이 제사장에게 자기 몸을 보이려고 무작정 갑니다. 성전까지 가는데 3,4일은 걸릴 겁니다. 그런데 이들이 길을 가다말고 자기몸이 완전히 치유된 것을 깨닫습니다. 문둥병자들은 자기 몸을 완전히 나은 것을 알고 너무 좋아서 각자 길을 갑니다. 그러나 한 문둥
눅 17: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눅 17: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눅 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눅 17: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눅 17: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시험에 통과한 사람은 10사람 중에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즉시 가서 감사하였기 때문인 것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뜻임을 깨달았을 때 결코 순종을 미루지 마십시오. 그것이 잘 이해가 안되더라도, 순종하기가 부담스러운 것이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 즉시 순종하십시오. 그럼 시험에 통과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의 복이 여러분의 삶에 넘쳐나게 될줄을 믿습니다.
시험에 잘 통과하려면
하나님은 항상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을 때, 그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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