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2021.12.12 주일오전예배설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 (창39장)

박선준목사 2021. 12. 15. 14:54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는 어떤 자인가?

시련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찾아내는 자

하나님을 바라보며 죄의 유혹을 물리치는 자

하나님 앞에서 성실히 일하는 자

 

요셉은 어린 나이에 엄청난 시련을 당합니다. 형들에게 버림을 당하고 노예로 팔려서 타국으로 끌려갑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곱게 자란 요셉이었는데, 형들의 시기로 하루 아침에 노예가 되어 타국으로 끌려갑니다. 아버지와 생이별을 하고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고 평생을 타국에서 노예로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이런 어마 어마한 시련은 이제 17살 먹은 요셉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온실 속에서 곱게 자란 화초가 갑자기 추운겨울 허허벌판에 버려진 것과 같은 것이죠. 그 화초는 어떻게 될까요? 곧 죽기 쉽겠죠. 아버지 품속에서 곱게자란 요셉이 갑자기 버려져 노예가 되어 버렸는데, 그 가혹한 노예생활을 견뎌낼 수 있을까요? 105:18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아마도 요셉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형들을 원망하며 슬퍼하다가 자포자기 하는 인생이 되기 쉬운 것이죠. 그러나 요셉의 인생은 결코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1절에 노예상인들이 요셉을 애굽으로 데려가자 바로왕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이라는 자가 노예요셉을 노예상인들에게 삽니다. 그런데 2절에 보시면 요셉이 어떤 자가 되었다고 합니까?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집에 있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요셉이 형통한 자가 되었다는 것이죠. 3절에 보시면 주인이 요셉이 하는 모든 일들이 형통한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주인을 열심히 섬기자 주인이 요셉을 그 집의 모든 소유물을 관리하는 가정 총무로 세웁니다. .

화초가 추운 겨울 허허벌판에 버려지고 사람들의 발에 밟혀, 이제 완전히 죽은 것으로 알았는데, 땅 속 깊은 곳에서 뿌리를 내리며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있었던 것이죠. 봄이오자 그 화초는 싹을 돋아내며 가지를 뻗치며 아름답게 자라있는 것이죠.

어떻게 극심한 불행 가운데 있던 요셉이 형통한 자가 된 것일까요? 따라합시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형통한 자가 된 것은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기 때문인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이런 형통의 복은 요셉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누구든지 다 형통한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형통한 자가 될 줄을 믿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형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어떤 시련이 와도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요셉과 같은 혹독한 시련을 만날 수 있습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반을 당하기도하고, 사업에 실패하여 감당할 수 없는 빗을 지기도 하고, 고칠 수 없는 질병에 걸리기도 하고, 취업시험에 떨어지기도 하고 누구하나 위로해주는 사람도 없고 어디 도움을 요청할데도 없는 그런 막막한 상황이죠. 그런데 여러분 낙심하기 전에, 절망하기 전에 그런 상황에서도 나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여전히 흐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 하나님의 은혜에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감사를 잃어버리고 불평하고 신세나 한탄하고 절망하고 낙심에 빠져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는 배은망덕입니다. 우리 인생은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의 조건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현재 살아있다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나라는 존재는 있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송명희라는 시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태어날 때 의사의 실수로 뇌성마비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집은 그녀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가난한 집이었습니다. 그녀는 일곱 살까지도 누워만 있다가 업으면 머리가 등 뒤로 고꾸라져 허리가 빠지고 목이 꺾일 듯한 고통을 느꼈다고 합니다. 점점 자라면서 송명희씨는 자신의 삶을 저주하며 하나님과 어머니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불쑥 어머니에게 대들었습니다. “엄마는 애기를 자연 유산도 잘하면서, 왜 난 이렇게 났어? 나도 그렇게 유산해 버리지 왜 이렇게 나은 거야?” 하며 자신의 삶을 저주했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비관하던 그녀가 16살 되던해 197910월 어느날 저녁 어느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송명희씨는 자기가 죄인 것을 깨닫고 통곡을 하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저는 죄인입니다.” 그 후부터 송명희씨는 성경을 읽고 또 읽고 또 읽기 시작했고 하루에 다섯 시간 동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얼마 큰지를 깨달아 갔습니다. 송명희씨는 자신이 깨달은 말씀을 노트에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때마다 하나님은 그에게 시를 불러주셨고 시를 쓰게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 누구도 나와 말하지 않았고 아무도 나에게 성경을 알려주지 않았지만 주님이 함께 하셨고 주님이 하나하나 알려주셨다.”

송명희시인이 지은 시중에 라는 시가 있는데요. 읽어드릴께요.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송명희시인은 불행한 모습으로 태어났지만 그러나 결국 자신에게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한 것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은혜는 계속해서 흐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어떤 시련이 오더라도 아무런 희망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여전히 나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도록 힘써야 합니다.

노예로 팔린 요셉이 절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그 상황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은혜를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 시련 속에서 불평과 원망의 말을 버리고 도리어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런 요셉과 하나님은 항상 함께 하셨고 그의 삶에 형통의 복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어떤 시련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며 전진하는 자, 바로 그 사람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이고 하나님이 그 사람을 반드시 형통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떤 시련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여 감사하며 계속 전진해 나가는 사람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형통한 사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형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하나님을 바라보며 죄의 유혹을 물리치는 자입니다. 요셉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형통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죄의 유혹을 물리쳤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시련을 극복하고 보디발 장군의 집의 모든 소유물을 관리하는 가정 총무자리에 올랐습니다.

이렇게 일이 잘되고 형통할 때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대적마귀가 넘어뜨리려고 늘 기회를 엿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악한 마귀가 요셉을 무너뜨리려고 공격을 가합니다. 그것은 요셉의 왕성한 청년의 정욕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이 당시 요셉의 나이가 27살 정도 되었는데, 한참 정욕이 왕성한 때이죠. 요셉이 가정총무가 되어서 집안에 모든 일들을 다스리는 일을 하는데, 언제 부터인가 심상치 않은 눈초리로 요셉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보디발장군의 아내입니다. 주인의 아내가 요셉의 잘생긴 외모를 사모하게 되어서 요셉에게 추파를 던지며 유혹을 하는 것이죠.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을 하다가 동침을 하자고 청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의 집요한 유혹은 계속됩니다. 10절에 보시면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동침할 것을 청하였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장군의 아내는 상당한 미인이었을 것입니다. 이 여인의 유혹은 혈기왕성한 청년 요셉에게는 아주 매혹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이 여인의 집요한 유혹을 물리쳐 냅니다.

39: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그런데 어느날 마귀가 요셉을 무너뜨리려고 총공격을 합니다. 요셉이 일을 하러 집에 들어갔는데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요셉은 이상히 생각했지만 개의치 않고 자기의 일을 봅니다. 요셉이 일에 집중하는데, 어느새 장군의 아내가 나타나 아마도 요셉을 뒤에서 안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여인이 요셉의 몸을 만지며 옷을 잡고 나와 동침하자 하는 것입니다. 이 순간 요셉이 육신의 정욕에 자기를 맡기고 여자와 동침을 했다면 요셉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막히고, 요셉의 형통의 삶도 중단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즉시 여인이 잡고 있던 자기의 겉옷을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 버립니다. 여인은 요셉에게 무시를 당한 것에 앙갚음을 하기 위해 비명을 지르며 저 히브리 종이 나를 겁탈하려고 나에로 들어왔다며 누명을 씌웁니다. 여인은 요셉을 옷을 가지고 있다가 남편이 돌아오자 당신이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내가 소리를 질렀더니 옷을 내버려두고 도망을 쳤어요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주인은 심히 노하여 요셉을 잡아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에 가둡니다.

요셉은 장군의 집을 다스리는 가정총무에 까지 올라갔다가 하루아침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죄수가 되어 버립니다. 요셉의 형통이 중단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코 중단된 것이 아니죠. 요셉이 감옥에 들어온 것은 형통을 향해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는 여기서 왕의 술맡은 관원장을 만나게 되고 그 술맡은 관원장을 통해 바로왕 앞에 서게 되어, 왕의 꿈을 해석해 줌으로 애굽의 총리에 자리에 오르게 되죠. 요셉의 형통은 계속 진행중이었던 것이죠. 요셉이 이런 형통의 길을 계속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그가 죄의 유혹을 물리쳤기 때문이죠. 요셉은 어떻게 혈기왕성한 청년이면서 그 매혹적인 여인의 유혹을 단호하게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여인이 요셉에게 동침하자고 유혹하자 9절에 보시면 요셉이 이런 말로 거절합니다.

39: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요셉은 자기가 죄를 짓는 것이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임을 말합니다. 이것은 그의 삶이 하나님 앞에 있다는 사실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죄를 져지를 수 없는 것이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여인이야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육신의 쾌락을 서슴없이 져지르지만, 요셉은 지금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시는 하나님 존전 앞에 있기에 결코 죄를 따를 수 없는 것입니다. 죄를 물리치는 것이죠. 여러분 대적마귀는 우리를 어떻게서든지 넘어뜨리려고 우리의 가장 약한 것을 공격합니다. 우리가 돈에 약하면 돈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가 음욕에 약하면 음란으로 유혹하고 우리가 명예욕이 강하면 거짓과 불법으로 명예를 쉽게 얻으라고 유혹합니다. 여러분 나의 삶이 하나님 존전 앞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내가 죄를 지을 때 그것은 곧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내가 늘 하나님 존전 앞에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요셉처럼 죄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형통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형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하나님을 바라보며 성실히 일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청지기적인 자세를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청지기적인 자세로 일한다는 것은 내가 지금 하는 일은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일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에 인정받고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일하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기 위해 일하는 것이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내가 하는 모든 일들에 하나님의 복이 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요셉이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였다 하였습니다. 3절에 보시면 주인 보디발이 요셉이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함을 보았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요셉을 집의 모든 일을 관리하는 가정총무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5절에 보시면 요셉이 가정총무되어서 집의 모든 일을 다스리는 때부터 주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복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왜 요셉이 하는 모든 일에 복이 임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5절에 나와있죠. “하나님이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하나님이 요셉을 위하여 복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요셉이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부어주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요셉이 하나님을 바라보며 성실히 일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보나 안보나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맡겨주시는 일을 하는 것이기에 늘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했던 것입니다. 이런 요셉의 태도는 어딜 가서나 마찬가지입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지만 감옥안에서도 요셉은 성실하고 정직하였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간수장이 요셉에게 일을 맡기는데 22절에 보시면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다 하였습니다. 나중에 요셉이 애굽나라의 총리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며 성실히 일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요셉이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이 복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디서 무슨 일을 하시든지 간에 이 일은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일이다 라는 생각을 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성실하게 정직히 일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십시오. 그럼 여러분들이 하는 일들마다 하나님의 복이 부어질 줄을 믿습니다. 바로 그런 사람과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형통의 복을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형통한 사람은 어떤 시련이 와도 거기서 하나님 은혜를 찾아내고 감사하며 시련을 극복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죄의 유혹을 물리치는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서 성실히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되셔서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형통한 사람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