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주일오전설교>믿음의 확신을 가지라(창26:1-25)

박선준목사 2019. 3. 18. 18:27


믿음의 확신을 가지라


    


오늘 본문에 이삭이요, 어정쭝한 믿음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확실한 신앙의 모습이 아니라 믿는 것 같기도 하고 믿음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어정쭝한 모습입니다. 이런 어정쭝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믿음의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지켜주실 거야!! 이런 확실한 믿음이 있으면 확실히 믿음의 길을 갈텐데, 하나님이 지켜줄 수 있을 까? 하고 확신이 없으면 확실한 믿음의 길을 가지 못합니다. 믿음의 길을 가다가도 약간 어려움이 닥치면 금새 흔들리고 믿음의 길을 벗어나기가 십상이죠.

믿음이 성숙하면 성숙 할수록 어정쭝한 믿음의 모습은 사라지고 확실한 믿음의 길을 걷게 됩니다. 손해를 보고 핍박을 받고 박해를 받아도 목숨을 빼앗겨도 믿음의 길을 뚜벅 뚜벅 걸어 갑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교회 안에 어정쭝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닥치면 믿음의 길을 계속 걷지 못하고 세상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죠.

오늘 본문에 이삭에게 어려움이 부딪칩니다. 이삭에게 닥친 어려움은 가뭄입니다. 1절에

26:1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이삭 때 흉년을 말하는데,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임한 흉년과 이삭에게 임한 흉년은 한 100년 정도의 차이가 나는데, 100년 전의 흉년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아마도 아브라함때 임한 극심한 흉년과 같은 흉년이라고 그런 것 같습니다.

오늘 날에도 극심한 흉년이 닥치면 뉴스에서 50년만에 임한 극심한 흉년입니다. 그런 식으로 말하잖아요. 그와 같이 아브라함때 와 같은 극심한 흉년이 이삭때 닥친 것이죠.

흉년이 닥치자 이삭이 그랄 땅으로 거처를 옮겨 갑니다. 그런데 그랄 땅은 블레셋 땅입니다. 그 왕은 아비멜렉입니다. 이런 모습은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도 그랬습니다.

아브라함도 흉년이 들자 그랄 땅으로 갔었습니다. 그랄 지역은 풍성한 곡창지대가 있는 땅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그랄 땅은 잠시만 머물고 그랄 땅을 거쳐서 애굽으로 가려고 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애굽은 나일강이 흐르고 있어서 가뭄이 닥쳐와도 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극심한 가뭄이 들면 많은 사람들이 이 애굽땅으로 갑니다. 그러나 애굽은 우상이 가득한 우상숭배의 도시이죠. 애굽은 믿음을 잃게 하는 장소인 것이죠. 어렵더라도 믿음을 장소를 떠나지 않는 것이 복입니다. 그런데 이삭이 그랄 땅을 거쳐서 애굽으로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이삭에게 나타나서 말씀 하십니다.

26: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26:3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26: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하나님이 흔들리는 이삭을 붙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삶이 어렵더라도 믿음의 장소를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땅을 지키면 너와 네 자손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을 이삭에게 들려주시면서 이삭이 흔들리지 않고 약속에 땅을 지켜나갈 것을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겨나는 것이죠. 우리 주변에도 이렇게 믿음이 약하고 흔들리는 지체가 있으면 믿음의 확신이 있는 사람들이 꼭 붙잡아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을 해야 합니다. 약속의 말씀을 들려주고 말씀에서 확신을 얻게 해주는 것이죠. 기도하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고요. “하나님이 지켜주실 거야, 어렵더라도 하나님을 예배하러 가자, 믿음으로 예배의 자리를 지키면 하나님이 반드시 책임지실 거야 14:12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라고 말씀하셨어

하나님이 이삭에게 애굽으로 가지 말라 하시자 이삭이 애굽으로 내려가려는 마음을 포기합니다. 이것은 아주 잘 선택한 것입니다. 만약 이삭이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고집했다면 이삭은 애굽에 가서 크게 깨져서 돌아왔을 것입니다. 100여년전에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갔다가 큰 고생을 하고 부랴 부랴 가나안 땅으로 다시 돌아왔었죠.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은 신앙을 잃어버릴 수 있는 아주 위험한 곳입니다. 어렵더라도 믿음이 잃기 쉬운 곳은 가지 말고 믿음의 장소를 지키면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이삭이 하나님 말씀을 따라 애굽에 내려가지 않고 순종을 하기는 하는데, 그 순종이 어정쭝합니다.

26: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하셨는데, 여기서 내가 너에게 지시하는 땅이란 블레셋 땅인 그랄이 아닙니다. 어떤 신학자는 네게 지시하는 땅에는 그랄 땅도 포함된 것이라고 말하는 신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애굽에 내려가지 말고 그랄 땅에 머무르라고 하신것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그것은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은 블레셋땅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입니다. 그래서 뒤에 가면 그랄에 머물렀던 이삭은 브레셋 사람들에 의해 강제적으로 쫓겨가 결국 가나안 땅 브엘세바에 가서 정착하고 맙니다.

하나님이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라하였으면 이삭은 흉년의 어려움이 있지만 그랄에서 나와서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주신 가나안 땅에 가서 머물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이 그냥 어디에 머물렀다?? 26:6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

그것도 그랄왕인 아말렉이 사는 성 근처에서 머뭅니다. 애굽으로는 내려가지는 않았지만 하나님 말씀에 확실히 순종하지 못하고 어정쭝한 태도를 취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신앙이 어정쭝하면요, 세상을 두려워하게 되고 세상으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합니다. 이삭이 그랄 땅에 거주해서 사는데요, 그랄 사람들이 이삭의 아내 리브가에 대해서 묻습니다. 저 규수는 누구요? 그러자 이삭이 리브가가 아리따움으로 리브가를 아내라고 하면 그랄 사람들이 자기를 죽일 까 두려워 합니다. 그래서 내 누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이 아버지 아브라함이 지은 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믿음이 어정쩡할 때 그런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믿음이 약하고 어정쩡하면 세상을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이 그랄에 오랫동안 머무는데, 어느날 이삭이 아내 리브가를 껴안는 것을 브레셋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 봅니다. 그리고 이삭을 불러다가 그 여자가 네 아내 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그러자 이삭이 내 아내라 하면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 누이라 했습니다. 그러자 아비멜렉이 네가 어찌 이렇게 행하였느냐 만약 내 백성중에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하였으면 너 때문에 우리가 죄를 지을 뻔하였도다 하면서 이삭을 야단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분 성도가 신앙이 확실하지 않으면 도리어 세상으로부터 책망을 듣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교회 답지 못하고 성도가 성도 답지 못할 때,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뭇매를 맞는 것을 종종 봅니다. 세상이 교회보다 더 의로운 것입니다. 너무 부끄러운 것이죠.

블레셋왕 아비멜렉이 이삭보다 더 의로운 것입니다. 아비멜렉왕은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이삭이나 그의 아내를 범하는 자는 죽이라라 말씀 합니다.

이삭이 염려했던 염려는 쓸데없는 염려였던 것이죠.

그리고 여러분 믿음이 어정쭝하면 하나님의 복도 어정쭝하게 받습니다.

이렇게 해서 리브가가 이삭의 아내임을 밝혀지고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며 사는데요,

그런데 하나님이 이삭에게 물질적인 복을 주십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를 짓는데, 그 해에 백배의 소출을 거둡니다. 13절에 보시면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왕성하여 라는 말은 점점 갈수록 그런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삭이 형통하도록 계속해서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그랄에 머무는 단시간 내에 큰 거부가 됩니다.

이제는 흉년으로 걱정 안해도 되는 것이죠.

하나님이 물질을 복을 주셔서 거부가 되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람들은 누구나 이삭처럼 이런 물질의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복은 어정쭝한 복입니다. 왜냐하면 이 물질의 복 때문에 이삭에게는 또 다른 근심이 생겨납니다. 그것은 블레셋 사람들의 위협입니다.

이삭이 블레셋땅에 들어와서 거부가 되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좋아하겠습니까?

블레셋사람들이 시기가 가득하여 도끼 눈을 뜨고 이삭을 봅니다.

26:14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26:15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물이 귀한 지역에서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다는 것은 전쟁 도발이고 강탈 행위입니다. 추방을 명령하는 것이죠.

26:16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이삭은 양을 키우는 자로 농사가 낯설었을 텐데, 그래도 부지런히 온갖 고생을 해서 땅을 경작하고 많은 소출을 거둔 것인데, 죽도록 경작해놓은 땅 다 내려놓고 떠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블레셋 왕이 떠나라고 하니 떠나야지 어떡합니까? 그래서 17절 이삭이 떠납니다.

26:17 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

이번에는 이삭이 그랄 성읍지역을 떠나서 골짜기로 들어가 장막을 치고 거기서 거류하는데, 거기서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었던 우물들을 다시 다 팝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들이 그 우물을 다 매운 것입니다. 그것은 그 땅이 자기의 소유임을 확실히 하게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이 골짜기에서 살아보려고 그 우물을 들을 다시 판 것입니다. 파니까 다행히 물이 콸콸 나온 것입니다. 26:19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그런데 샘 근원을 얻으니까 어떤 일이 발생되었습니까? 예 이번에는 그랄 목자들이 와서 이 우물은 우리 거야 하며 다투는 것입니다.

26: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억압,강탈하다)이라 하였으며

우물을 파는 얼마나 힘들고 어렵습니까? 그런데 그랄 사람들이 덤벼드니 할 수 없이 물러나야지 어떻게 합니까? 여기는 그랄 땅이고 그랄 사람들이 더 힘이세고 사람 수도 훨씬 많은 데, 할 수 없이 양보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삭이 더 물러나와서 또 우물을 팝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그랄 사람들이 더 악랄하게 달려듭니다. 그래서 21

26: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적대감)라 하였으며

싯나라는 뜻은 적대감이라는 뜻으로 원수같이 악의적으로 달려들어서 우물을 빼앗은 것입니다. 힘이 약한 이삭은 어쩔 수 없죠. 만약 싸움을 벌였다가는 피흘리게 되고 어쩌면 몰살할 줄도 모르는 것이죠.

우리나라 기업들이 중국 같은데서 장사를 하면 나중에 나갈 때는 아무것도 못가져 나옵니다. 다 빼앗기고 빈손으로 나가야 하는 그런 경우인 것이죠.

하나님이 물질의 복을 주시는데 그것이 도리어 근심의 원인되고 괴롭게 하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결과를 생겨난 것은 이삭이 어정쭝한 믿음의 태도를 취했기 때문입니다. 애굽으로는 가지 않았지만 어정쭝하게 그랄에 머문 것입니다.

하나님이 애굽에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하였을 때, 과감하게 그랄 땅을 떠나 다시 가나안 땅으로 갔어야 했던 것입니다. 만약 이삭이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고 가나안 땅으로 갔더라면 아무 근심거리가 없는 것이죠. 그 땅에서 농사를 지어도 하나님은 백배의 소출을 얻게 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우물을 팠어도 샘의 근원을 찾아 내었을 것입니다. 그럼 거기서 하나님이 주신 복은 고스란히 이삭의 것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다른 민족에게 위협도 당하지 않고 평안하였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정쭝한 신앙의 태도를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한 발은 세상에 두고 한 발은 하나님께 두고 적당히 신앙생활 하려는 것은요 결과적으로 자신을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굶어 죽어도 확실하게 신앙생활을 하겠다 하고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의 삶을 살면요,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참된 평안을 얻게 됩니다.

이삭이요, 그랄 사람들에게 또 쫓겨나 좀 더 멀리 나와서 우물을 파거든요, 이번에는 어떻게 되었을 까요? 예 다투지 않았습니다. 그랄 사람들이 이제 더 이상 뭐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우물 이름을 르호봇이라 했습니다. 르호봇이란 장소가 넓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삭이 이 우물을 얻고 우물의 이름을 르호봇이라고 하고 이런 고백을 합니다.

26: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넓은 공간)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이제 하나님이 우리를 번성하게 하실 것이다 이 고백하죠. 이삭이 이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이 이 고백을 하고 나서 르호봇에 거주하지 않습니다.

26:23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아니 왜 이제 그랄 사람들이 뭐라고 하지도 않고 이제 여기 정착하면 되겠구만, 왜 브엘세바로 올라가는 것일 까요? 예 그것은 이제 이삭이 어정쭝한 믿음을 버리고 하나님을 확실히 믿는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랄지역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환경을 의지하지 않고 이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확실한 믿음인 것이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농사도 백배로 거둘수 있고, 우물도 다른 사람은 평생에 한 번 팔까 말까한 우물도 얼마든지 팔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브엘세바로 가는 것이죠.

이삭이 브엘세바로 가니까 어떤 일이 일어났어요, 예 그 밤에 하나님이 이삭에게 나타나십니다.

26: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그러자 이삭이 그곳에서 무엇을 쌓습니까? 그곳에 제단을 쌓고 제단을 쌓았다는 거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이삭의 신앙이 어정쭝한 신앙에서 확신의 신앙으로 바뀐 것이죠. 이삭은 브엘세바에 장막을 칩니다. 그랬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무엇을 얻었다 했습니까? 예 우물을 팠더라, 여러분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입니다.

확실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 하나님이 반드시 보호하고 지키시고 책임지십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 하였습니다. 십자가에서 받을 고통과 하나님과 단절의 아픔을 겪어야 하는 것이 너무나도 큰 고통이셨던 것이죠. 예수님이 그 고통의 마음을 가지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확고한 마음을 가지시죠. 나의 원대로 하지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옵소서, 그리고 제자들에게 보라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하시면서 가시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 어려움이 찾아와 고민이 될 때,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어정쭝한 태도를 버리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대로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살려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