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주일오전설교> 중생의 씻음 (딛3:3-)

박선준목사 2019. 3. 12. 13:47




중생의 씻음

어떻게 이웃을 미워하는 마음을 극복할 수 있나요?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한다

내가 죽었음을 기억한다

하늘에 상속자임을 기억한다

 

우리들 마음에는 내 이웃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아뇨 저는 저의 이웃을 미워하지 않는데요,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에게 하나님과 이웃을 미워하는 본성이 있음을 말합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인 3절에 나와 있습니다. 3절에 보시면

3:3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끝에 보시면 악독과 투기를 일삼는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느나 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3절에서 말하는 사람은 무슨 교도소에 갇혀있는 특별한 죄인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악독과 투기를 일삼는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라는 것입니다.

저는요, 제가 제 이웃 교회의 목사님들을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요, 사랑하지 않더라구요, 도리어 미워함을 깨달았습니다. 제 이웃의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가 교인들도 많아지고 점점 잘 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소식이 저에게 기쁨이 되어야 하는데 결코 기쁘지 않더라구요. 물론 그 목사님 앞에서는 아휴 잘되었네요, 하고 웃고 기쁜 척 했지만 그러나 제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악독과 투기와 가증스러움과 미워하는 마음이 이글거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제 마음을 보고 나에게는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 더 나아가서 이웃을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7:9은 인간의 마음의 부패를 분명히 말씀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사람의 마음은 부패되어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며 더 나아가 이웃을 미워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부패된 본성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듯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사람도 서로 사랑하는 존재였습니다. 아담이 하와를 보고 이는 내 뼈중에 뼈요 살중에 살이라고 고백하는데 이것은 이웃에 대한 사랑의 고백입니다. 처음 아담 마음 속에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타락하고 맙니다. 그러면서 타락한 아담의 죄성은 그에게서 나온 모든 인류에게 그대로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응애하고 아기가 태어나면 죄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아기 속에는 이웃을 미워하는 죄성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는 것은 우리의 본성입니다. 우리는 이 본성에 따라 평생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며 살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면 영원한 형벌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나와서 묻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입니까?

그러자 예수님이 분명히 말씀해주십니다. 첫째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 중에 가장 큰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는 자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습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식입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과 이웃을 미워하는 것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같은 마음입니다.

두 개의 꾸정물이 있습니다. 하나는 말 그대로 새까만 꾸정물입니다. 그런데 하나는 깨끗해 보입니다. 왜 그럴 까요? 예 꾸정물이 밑에 가라앉아 있는 것이죠. 젓가락으로 휘저으니까 밑에 있던 꾸정물이 올라오면서 똑같이 까만 꾸정물이 되는 것이죠.

그와 같이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이웃을 미워하는 마음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큰 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내가 정말 이웃을 사랑하고 있나? 이것을 정말 심각하게 물어야 합니다. 이웃에게 시기와 질투의 마음이 느껴질 때, 우리 성도들은 가슴을 찢으며 통곡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진실하게 회개하고 그 시기, 질투의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이웃을 미워하는 마음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는 것은 우리의 본성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이 본성을 결코 거스릴 수 없습니다. 산속에 들어가서 30년 도를 닦고 나오면 이웃을 미워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느껴지지 않는다고 그 마음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밑에 그대로 깔려있습니다. 누군가 35년 도를 닦은 사람이 있다고 하면 금새 그 시기의 마음이 고개를 쳐들고 나타납니다. 절대로 그 죄의 본성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이웃을 미워하는 마음을 극복하고 사랑할 수 있을 까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셨죠? 하나 밖에 없는 자기 아들을 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은 내가 뭐 착하고 잘나고 똑똑해서가 아닙니다.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냥 놔두면 죽을 수밖에 없고 영원히 멸망 받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심으로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불쌍하다고 해서 우리를 그냥 구원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죄의 댓가를 치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죄의 댓가도 치루지 않고 우리를 그냥 구원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불법을 져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신데 그럴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서 자기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내어주셔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의 값을 치루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의 죄값을 치루기 위해 자기 아들을 희생시키시는 것일 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을 받아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셨듯이 나의 이웃도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그 이웃을 내가 사랑하지 않고 미워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무참하게 짓밟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내어주기 까지 나를 사랑하셨는데, 어떻게 그 사랑을 내가 짓밟을 수가 있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혹시 이웃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나를 향한 하나님의 큰 사랑을 기억하고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불쌍히 여기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에 대한 미움을 극복하고 사랑하려면 따라 합시다. 내가 죽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는 마음은 우리의 본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죄악된 마음을 극복하려면 이웃을 미워하는 죄의 본성을 죽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 죄의 본성을 죽이는 길은 오직 내가 죽어야 합니다.

죄의 본성을 가진 내가 죽을 때 죄의 본성도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죽으면 끝이잖아요. 그럼 안되니까,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요3장에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거듭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 거듭남을 오늘 본문은 중생의 씻음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중생이라는 말은 다시 태어난다 라는 의미로 거듭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중생의 씻음은 사람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죽고 다시 태어날 수 있는가?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비밀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 죄를 대속한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무슨 죄가 있으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죄를 대속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우리의 죄도 함께 못박힌 것입니다. 이 죄는 바로 우리의 죄의 본성이요, 더나아가 죄악된 우리의 자아입니다.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에는 나의 죽음이 포함된 것입니다. 그래서 갈2:20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는 나의 옛 자아, 죄의 본성을 가진 나는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하고,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할 때 내가 죽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가령 내 이웃 목사님 교회가 잘되어지고 부흥하는 것입니다. 그 때 내 자아가 그것을 시기하고 질투하려고 할 때, 나는 죽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것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은 내가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살려고 하는 것, 내가 높아져야 하고 내가 이겨야 하고 내가 나타나야 하고 그 자아가 바로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이웃을 미워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들은 이미 자아가 죽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높아지고 내가 나타날 것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것은 죽은 시체를 살려보려고 하는 헛된 짓거리입니다.

내가 죽었음을 시인할 때, 내 이웃이 잘되어지고 높아지는 것을 진정으로 축하하고 이웃을 사랑으로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예수님안에서 죽었습니다.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입니다. 이제는 살아도 주를 위해 살 뿐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을 뿐인 것입니다.

이웃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겨날 때, 나는 죽었음을 선포하십시오. 그리고 과감하게 그 이웃이 더욱 잘되도록 이웃을 위해 기도하시고 힘껏 헌신하시고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웃을 미워하는 것을 극복하려면 내가 하늘의 상속자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계속 점검하는 것입니다. 나의 소망이 이 땅에 있다면 우리는 이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나의 소망을 오로지 저 하늘에 두고 산다면 우리는 이웃을 위해 기쁨으로 헌신할 수 있습니다. 오리를 가 달라는 이웃을 위해 십리를 가줄 수 있습니다. 겉옷을 달라는 이웃을 위해 속옷까지 벗어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저 하늘에 나의 본향이 있으며 저 하늘에 나의 보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11:6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이 상주시는 이심을 믿는 자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우리의 썩어질 욕심을 버리고 진심으로 내 이웃을 섬기고 사랑할 때 하나님이 상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저 하늘에 소망을 두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기업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 하늘에 있습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3:7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나는 저 하늘을 기업으로 물려받을 자임을 기억하시고 이 땅에 욕심을 배설물처럼 여기시고 가슴을 넓게 열고 기쁨으로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오직 우리를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그 분은 한 번도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뜻과 이웃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새로운 자아로 다시 태어난 자들입니다. 이제는 예수님만이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의 상을 예비해 놓고 계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