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2024.6.9 주일오전예배설교> 현실과 실상 (출1:21-2:10)

박선준목사 2024. 6. 15. 09:25

현실과 실상

성경에 애굽은 오늘날 이집트입니다. 고대 시대 때 애굽은 세계 최대 강국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당시 이스라엘민족이 극심한 가뭄을 피해 애굽으로 이주해서 삽니다. 처음에는 70명의 이스라엘사람이 애굽에 들어가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400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이스라엘민족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이제는 이스라엘사람들이 애굽사람보다 더 많게 된 것입니다.

애굽왕은 이스라엘사람들이 급속도로 많아지자 두려움을 느낍니다. 더 많아지면 통제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이스라엘 인구 억제 정책을 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백성 중에 아들이 태어나면 나일 강에 던져서 죽이라는 것입니다. 나일 강에 던지면 악어나 물고기의 밥이 되겠지요. 이 악한 명령은 이스라엘백성은 아기를 갖지 말라는 명령과 같은 것입니다. 아기를 낳았다가 아들이 나오면 죽을 텐데 누가 아기를 가지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애굽의 잔혹한 탄압 가운데 레위집안에 한 사람이 레위 여자에게 장가를 들어 임신하여 아들을 낳습니다.

이 부부는 어찌하여 이런 시기에 아기를 가진 것일까요? 지혜롭게 아기를 갖지 않도록 조심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이 부부가 아기를 가진 것은 결코 실수이거나 어리석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한 것입니다. 그것을 히11:23이 증거합니다.

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모세가 태어난 것은 믿음으로 낳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모세의 부모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모세를 가졌고 낳은 것입니다. 부모가 낳은 아기를 보니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이것은 아기의 외모만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내면도 아름답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부모가 낳은 아기를 보면서 이 아기는 하나님이 주신 아기임을 확신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석 달 동안 아기를 숨겨서 키우는데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아기를 지켜주실 것을 믿은 것입니다.

히브리서11:1에 보시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실상은 실체, 확증 그런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 확증이라는 것입니다.

현실은 아들을 낳으면 죽는다 이지만 그러나 이 부부는 그 현실을 믿음으로 넘은 것입니다. 이 부부의 믿음은 아들을 낳으면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이라는 확증을 가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부부는 현실적으로는 앞이 보이지 않고 암울할 뿐이지만 그러나 믿음으로 하나님 뜻을 따라 아기를 가졌고 낳은 것입니다.

성도는 어떤 현실의 상황에서도 결코 절망하거나 낙심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성도에게는 실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실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완전하게 지켜주신다는 것이죠.

오늘 본문에 아들을 낳으면 죽인다는 절망적인 현실의 상황에서 부부는 결혼을 하여 아기를 가졌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 부부가 그렇게 한 것은 그들에게는 현실은 넘은 믿음의 실상, 즉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현실의 상황대로 죽었을까요? 아뇨 죽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이 아기는 살았을 뿐만 아니라 훗날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애굽의 손에서 살려내는 구원자가 됩니다. 이 아기의 이름이 무엇일까요? 예 모세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부부의 믿음 즉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해나갈 때, 현실 상황만 보고 판단하고 결정한다면 여러분은 결코 하나님의 뜻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것이 실상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 현실을 넘어 하나님을 뜻을 따라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가나안 땅을 앞두고 12명의 정탐꾼들이 40일간 가나안 땅을 정탐을 하고 돌아옵니다. 12명의 정탐꾼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가나안 땅은 참 살기 좋은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10명의 정탐꾼들은 우리는 그곳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족속은 우리보다 키도 크고 힘도 세고 더군다나 그들의 성은 크고 견고해서 우리는 절대로 그들을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말은 현실적으로는 맞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눈으로 보이는 현실 상황만 보고 판단 한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현실만 보고 실상은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두 정탐꾼인 갈렙과 여호수아는 저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우리가 이길 것이다. 당장에 들어가자라고 말합니다. 왜 이런 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요? 그것은 갈렙과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실상을 가지고 가나안 땅을 정탐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저 가나안 땅 족속들은 우리의 밥이라는 것이죠.

여러분 결국 어느 정탐꾼의 말이 맞았습니까? 현실만 보고 정탐한 정탐꾼들의 말이 맞았습니까? 믿음의 실상을 가지고 정탐한 정탐꾼들의 말이 맞았습니까? 예 믿음의 실상을 가진 자들이 맞았죠. 훗날 이스라엘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해 버리죠.

여러분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없습니다. 만약 이 부부가 현실만 생각할 줄 아는 자들이었다면 아기를 갖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 모세라는 존재는 없었겠죠.

여러분 지금 어떤 절망의 상황에 있습니까? 혹시 현실만 보고 낙심하고 절망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결코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현실이 어떻든지 간에 실상은 하나님이 당신을 지켜주고 계시고 당신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이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전진해 나가십시오.

 

앞이 보이지 않고 전진하면 죽을 것 같더라도 실상을 붙잡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면 나아가지 않을 때는 보이지 않던 길이 믿음으로 나아가면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현실은 지금은 아기를 가지면 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이죠. 그러나 부부가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아기를 낳자 아기가 죽지 않을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그래서 부부는 3개월 동안 아기를 숨어서 키웁니다.

그런데 아기가 점점 커지자 아기의 존재를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상태가 돼버립니다. 이제 아기가 발각이 되면 이 아기는 나일강에 던져져 악어의 밥이 될 것입니다. 또 길이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께서는 아기 부모에게 나아갈 또 다른 길을 보여주십니다.

그것은 갈대 상자를 만들어서 나일강 갈대 사이에 아기를 띄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3절에 보시면 갈대 상자를 만듭니다. 3절에 보시면

3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갈대를 가져다가 정성껏 상자를 만듭니다. 그리고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도로에 아스팔트를 깔 때 쓰는 도료로 방수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상자 안에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 조치입니다. 이것은 아기를 살리려고 하는 부모의 진한 사랑의 마음인 것이죠.

그런데 이 갈대 상자는 노아의 방주를 연상케 합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를 대비하여 방주를 만들게 하는데 그때도 나무로 방주를 만들고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역청을 나무 안팍으로 칠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홍수 때가 되어 방주에 노아의 가족과 동물을 태우고 방주는 망망대해에 띄워집니다.

그와 같이 갈대 상자에 아기를 넣고 갈대 상자를 나일 강 갈대 사이에 띄웁니다. 아기의 부모는 아기를 담은 갈대 상자를 나일 강에 띄울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절망적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실이 너무도 어두웠기 때문이죠. 갈대 상자의 아기를 악어나 다른 맹수가 발견하면 그것들의 밥이 되는 것이고, 또 사람이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히브리 남자아이는 죽이라는 애굽 왕의 엄명이 떨어졌기에 아무도 그 아이를 가져다가 키우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천사가 내려와 아기를 하늘로 데려가지 않는 이상 아기가 살아날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없는 것이죠. 그러나 아기의 부모는 절망하지 않고 갈대 상자를 나일강 갈대 사이에 띄웁니다. 그들이 절망하지 않는 것은 아기를 강에 띄운 것은 아기를 하나님께 맡긴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것입니다. 앞으로 모든 일은 하나님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하고 모든 결과는 하나님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갈대상자를 최선을 다해 만들고 아기를 태워서 나일강에 띄우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입니다.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믿음이라는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할 때 참 자유를 얻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제 더 이상 나를 연약한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되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내 인생을 책임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기를 태운 갈대상자는 나일 강 갈대 사이에 둥둥 떠있고 그의 부모는 그 자리를 떠납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 아기의 누나가 멀리서 그 갈대 상자를 지켜보고 있는 것입니다. 누나가 갈대 상자를 지켜보고 있는 것은 그의 부모가 시켜서 일 수도 있고 아니면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갈대상자를 지켜보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애굽 나라의 공주가 목욕을 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공주의 시녀들이 먼저 나일 강가를 거닐며 공주의 안전을 도모합니다. 그런데 그 시녀들은 갈대상자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만일 시녀들이 먼저 갈대상자를 발견하고 아기를 보았다면 틀림없이 아기를 버렸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아기를 살려두었다가는 애굽왕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 되어서 자기 목숨이 날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갈대상자를 공주가 먼저 발견합니다. 5절에 보시면 두 종류의 시녀가 나옵니다. 우리 한글 성경에는 시녀라는 말로 똑같은 시녀로 기록하고 있는데 다른 종류의 시녀입니다. 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5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 그랬습니다. 이 시녀들은 공주의 직속 시녀들이 아니라 공주를 보호하고 공주의 품위를 가르치기 위한 왕에게 속한 시녀들 입니다. 만약 이 시녀들이 갈대상자의 아기를 발견했다면 공주의 의견과 상관없이 즉시 아기를 제거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공주가 갈대상자를 먼저 발견하고 5절 끝에 보면 한 시녀를 보내어 갈대상자를 가져오게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시녀는 왕에게 속한 시녀들과는 다른 자입니다. 우리 말로하면 공주의 몸종입니다. 그러니까 이 시녀는 왕의 말보다는 공주의 말에 움직이는 시녀인 것이죠. 공주의 몸종이 상자를 가지고 와서 열어보니 아기가 우는 것입니다. 그 순간 공주는 아기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고 히브리 사람의 아기인 것을 압니다.

이 상황을 멀리서 지켜보던 아기의 누나가 즉시 공주에게 다가와 말합니다. ”제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젓을 먹이게 하리이까 합니다. 이 말을 들은 공주는 여자아이에게 가서 데리고 오라고 하자 여자아이는 가서 아기의 엄마를 불러옵니다. 공주는 그에게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젓을 먹이라 내가 삯을 주리라 합니다. 이에 아기 엄마는 아기를 데려다가 궁중에서 젓을 먹이고 키웁니다. 아기가 어느 정도 자라매 공주는 그 아기를 자기 아들로 삼고 그 이름을 모세라고 짓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합니다.

이래서 모세는 왕궁에서 엄마의 젓을 먹으며 안전하게 무럭 무럭 자랍니다.

현실은 무엇이었습니까? 아기는 죽는다 였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아기는 살았습니다. 살았을 뿐만아니라 가장 안전한 왕궁에서 살고 이스라엘백성을 구원하는 구원자로 자라 갔습니다.

어떻게 이런 믿음의 실상이 현실이 된 것일까요? 예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은 하나님이 주관하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입니다.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갈대상자를 만들고 강에 띄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갈대상자를 보호하시고 지키십니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 있더라도 절대로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현실은 너는 끝났다 라고 소리칠 지라도 실상은 결코 끝나지 않았습니다. 끝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너를 지키실 것이고 반드시 너를 구원해 낼 것입니다. 8:38이 말씀합니다.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기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내어주신 분이 우리를 위하여 자기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겠습니까

실상이 무엇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너를 지키니 너를 해할 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로 당신을 위하고 계십니다.

절망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지금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 나아가십시오. 그럼 하나님이 전부를 책임지십니다.

잠언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