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주일오전설교>십자가에 못박히는 왕(요19:4-16)

박선준목사 2019. 4. 18. 10:34




십자가에 못박히는 왕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18:38 보시면 18:38 빌라도가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또 오늘 본문인 19:4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19:6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을 하면 할수록 예수님에게는 아무 죄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재판관으로써 죄가 없는 예수를 풀어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빌라도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서 소식을 전하는데, 자기가 오늘 꿈을 꾸었는데, 저 예수라는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내의 이런 소리는 빌라도의 마음에 새겨졌을 것입니다. 남편들의 마음에 가장 큰 울림을 주는 소리는 아내 소리거든요. 빌라도는 아내의 말을 듣고 예수를 더욱 풀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며 대화를 나누는 중에 예수님이 자기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하고 어떤 하늘에 왕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어떤 신비한 느낌을 받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래서 197절에 보시면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여하는 이유를 말하는데,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빌라도는 8절에 보시면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빌라도는 자기가 심문하는 이 예수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느낌을 확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9절에 보시면 다시 관정으로 들어가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너는 어디로 부터냐그러니까 너는 누구냐? 너의 정체는 무엇이냐? 그런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아무 대답도 안하시죠. 그러니까 빌라도가 총독으로써 죄수가 자기 말에 아무 댓구도 않하고 그냥 씹어버리니까? 아마도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10절에 19:10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하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권한을 과시합니다. 내가 너를 풀어줄 수도 있고 십자가에 못박을 수도 있어, 그러자 예수님이 또 신비스러운 말씀을 하십니다. 11절에

19: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이렇게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고 아내의 충고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강력한 느낌을 받았기에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아주 거세게 반발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그냥 풀어주었다가는 유대인들이 반발하고 자칫 민란이 일어날 수도 있고 민심이 빌라도에게서 멀어지기가 쉽상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대인들의 말대로 십자가에 못박아 죽일 수도 없고, 그래서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반발을 사지 않고 예수를 자연스레 풀어줄 수 있는 방법들을 강구합니다.

그것이 유월절이면 죄수 한 사람을 풀어주는 전례가 있는데, 이 때 빌라도가 바라바와 예수 둘 중에 누구룰 풀어 줄까? 합니다. 바라바는 민란을 일으키고 살인을 거침없이 져지는 폭도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칩니다.

빌라도는 이번에는 예수님을 데려다가 심하게 채찍질 하게 합니다. 그래서 191절서부터 보시면 군인들이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고 이 당시 채찍은 아주 무섭습니다. 그 채찍 끝에는 뼈조각같은 날카로운 물질들이 치렁 치렁 매달려 있습니다. 채찍으로 사람을 칠 때는 옷을 베끼고 맨살에다 치는데, 채찍으로 한 번 후려 치면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채찍에 맞다가 정신을 잃는 것은 다반사이고 죽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데려다가 채찍질을 하는 것은 빌라도가 예수를 죽이지 않고 풀어주려고 하는 강구책입니다. 이렇게 예수가 잔인하게 당하는 것을 보고 유대인들이 예수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어 그 정도면 되었소 그렇게 나오기를 바랬던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아주 잔인하게 채찍질을 당하시고 군인들이 예수님이 머리에다가 가시관을 씌워 머리를 상하게 하고 자색옷을 입혔다 했습니다. 그리고 3절에 보시면 군인들이 그 앞으로 가서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예수님을 놀립니다. 3절 끝에 보시면 손으로 때리더라했는데, 이것은 아주 모욕적인 행위입니다. 예수님을 뺨을 때리든지, 주먹으로 후려 갈기던지 14:65 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예수님이 이렇게 잔혹하게 당하시는 것은 빌라도가 유대인의 민심을 잃지 않으면서 예수님을 풀어주기 위한 꾀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꾀는요, 아무런 소득을 거두지 못합니다. 도리어 유대인들은 더욱 난폭해지고 교묘한 방법으로 빌라도를 압박하여 빌라도가 꼼짝없이 예수의 사형선고를 내리도록 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진리는 비진리와 타협하는 꾀로 절대로 세워질 수 없습니다. 인간의 꾀로 진리를 세워가려고 할 때,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꼬이고 도리어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듭니다. 여러분 진리는 절대로 인간의 꾀나 인간의 방법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어떤 일을 성취하려고 할 때, 인간의 얕은 꾀를 동원하여서 일을 성취하려고 하면 그 일은 어떻게 이룰 수 있을지 모르지만, 반드시 또 다른 부작용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문제를 더욱 꼬이게하고 힘들게 만들게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시면서 한 번도 자기 뜻을 앞세우지 않으십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아버지의 뜻만을 그대로 따르십니다. 예수님이 체포당하실 때 옆에 있는 베드로가 칼을 들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의 귀를 떨어뜨립니다.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26: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26: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26: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예수님은 얼마든지 자기를 대적하는 무리들을 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의 뜻이나 방법을 절대로 앞세우지 않으십니다. 오직 하나님아버지의 방법과 아버지의 뜻을 따릅니다. “아버지여 내 원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 속에서도 내 생각, 내 뜻, 내 방법을 다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나의 삶 속에 진리가 세워지고 나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자기의 꾀로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했지만, 도리어 그 빌라도의 꾀로 인해 예수님은 더 큰 해를 당하시죠.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손을 대지 않으려고 꾀를 부렸다가 도리어 예수님의 몸을 갈기 갈기 찢어 놓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그를 십자가에 못박도록 내어주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은 교회사 수천년 동안 예수그리스도에게 사형선고를 한 악인으로 정죄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만일 빌라도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그대로 믿고, 세상이 뭐라고 소리치고 압박하든, 예수는 무죄임을 선포하고 예수를 그냥 풀어주었더라면 아마도 그는 니고데모나 아리마대 요셉과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믿고 따른 믿음의 사람으로 기록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빌라도의 꾀로 인해 예수님의 몸이 찢겨지고 온갖 수욕을 당하게 되셨는데,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700여년전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하나님 말씀의 성취였던 것이었습니다.

53: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빌라도는 온갖 채찍질과 희롱을 당한 예수를 유대군중들 앞으로 데리고 나오게 합니다.

빌라도가 군중을 향해서 큰 소리로 말합니다.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알게 하려 함이라합니다.

예수님은 심한 채찍질로 아마도 잘 걷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고 옷은 자색옷을 입고 사람들 앞으로 나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이 처참한 모습을 보고 유대인들의 원성이 잦아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웬걸요, 도리어 반대현상이 나타납니다.

군중들은 예수를 보자 더욱 큰 소리를 지릅니다. 6절입니다.

19:6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그러니까 빌라도 화가나서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주려고 힘썼지만 그러나 유대인들은 더욱 반발하며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칩니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은 빌라도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을 수 밖에 없는 결정적인 펀치를 날립니다.

19: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가이사는 로마황제입니다. 이 당시 로마는 세계 최대강국으로 온 세계를 지배하던 거대 제국이었습니다. 가이사는 거대제국을 다스리기 위해서 자신의 왕권에 어느 누구도 도전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왕권에 도전하는 자는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이는 등 능지처참을 면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가이사는 자신을 신격화 시켰습니다.

이런 것을 이용하여 유대인들은 빌라도를 압박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자기를 왕이라고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아주 간교한 마귀의 궤술입니다. 여러분 마귀의 간교는 어느 누구도 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오직 말씀과 기도로 나가야만 합니다.

예수를 풀어주는 것이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라 말하니 빌라도는 꼼짝 못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 줄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고 유대인들을 비아냥 거리듯 말합니다.

14절 중간 쯤에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소리지릅니다.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그러자 빌라도가 다시 말합니다.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19:16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합니다.

로마 총독인 빌라도는 예수님을 보고 유대인의 왕이라고 말하고 유대인들은 가이사만이 자기들의 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따를 것인가? 가이사를 따를 것인가? 예수그리스도를 따를 것인가? 가이사를 따르면 세상의 부와 귀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면 십자가를 짊어 져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를 왕으로 모시고 살겠 습니까?

세상의 왕인 가이사입니까? 아니면 예수그리스도입니까?

누구를 왕으로 모시든 그 사람은 자기의 왕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고 오직 그 분만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제는 죽어도 예수님을 위해 죽고 살아도 예수님을 위해 살 뿐입니다.

우리의 왕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죄가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그 분은 피흘리기까지 죄와 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임당하셨습니다.

우리가 따라야 할 길입니다. 피흘리기 까지 죄 싸우며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기꺼이 하늘의 영광을 포기하셨고 낮고 낮은 이 땅에 오셔서 평생을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으시고 섬기시고 고난당하시고 끝내는 자기 목숨을 내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십자가 지고 따라야 합니다. 이제는 나의 영광은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영광만을 위할 뿐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 왕의 자리를 내어 드리라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 삶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워놓으셨습니다. 교회는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을 따릅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그리스도이기에 교회는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따는 것이죠. 그러므로 여러분 교회를 벗어나지 마시고 늘 교회 중심적으로 사십시오. 교회는 아버지의 집입니다.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십시오. 주일 오전예배, 주인 저녁예배, 수요예배를 소중히 여기십시오. 예배의 신실한 참석은 주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피곤하다고 해서 예배를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새벽기도회 금요기도회 모두가 주님을 따르는 발걸음입니다. 힘써 모여 기도할 때 주님을 만나게 되고 거기에서 자기 부인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등한시하면서 자기를 부인하며 살아가겠다. 그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등한시 하는 것은 곧 주님을 등한시 하는 것이고 그 사람은 주님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이 가까오면 올수록 더욱 모이기를 힘쓰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권면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힘써 모여서 기도하시고 찬송하시고 예배하시고 거룩한 성도들과 교제하시고 그 삶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며 주님을 따르는 삶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