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 2024.10.13 주일오전예배설교 >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시22:1-21)

박선준목사 2024. 10. 13. 16:25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시편22편은 다윗이 쓴 시로 그가 사울왕에게 쫓김을 당할 때 쓴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최고 권력자는 단연코 사울왕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사울왕에게 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전쟁에 나갈 때마다 대승을 거두고 돌아오자, 점점 다윗의 인기가 높아져, 백성들이 사울왕보다 다윗을 더 높이는 것입니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하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닙니까, 사울은 이 소리를 듣고 이제 다윗이 차지할 것은 왕밖에 더 있느냐 하며 그때부터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다윗은 하루아침에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사울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군대까지 동원하고 나라를 샅샅이 뒤집니다. 다윗은 죽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도망을 칩니다. 다윗은 사울왕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서 블레셋에 투항을 합니다. 블레셋이 어떤 나라입니까? 다윗이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나라입니다.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요 할 때 그 만만은 블레셋 군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다윗이 블레셋 군인을 많이 죽인 것이죠. 그런데 그런 다윗이 블레셋에 투항한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상황이 얼마나 급박하고 곤궁했는지를 알게 해주는 것이죠. 다윗은 급한 마음에 블레셋에 투항 했지만 그러나 금새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선택임을 깨닫고 블레셋 왕 앞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미친 척을 하여 겨우 블레셋에서 빠져 나옵니다. 이렇게 최고 권력자에게 쫓기는 다윗은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잠을 하루도 제대로 자지 못했을 것입니다.

20172월에 말레시아 쿠알라룸프르 국제공항에서 북한의 김정은의 형 김정남이 독침을 맞고 죽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김정은은 형 김정남이 자기의 권력 유지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여 사람을 말레시아까지 보내어 죽인 것입니다. 김정남은 이 사실을 알고 김정은을 피해 도망다니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암살자들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죠.

다윗은 이런 김정남보다 훨씬 더 두려운 상황입니다. 언제 사울이 보낸 자객이 자기를 죽일지 모르는 상황인 것이죠. 늘 처소를 옮기며 도망 다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다윗이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러웠는지를 오늘 본문 시편22편을 나타나고 있습니다.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7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12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13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으며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여러분은 이런 두려움이나 고통을 당해 본 적이 있나요?

다윗은 11절에 환난이 가까운데 나를 도울 자 없나이다 합니다.

어느 누구도 다윗을 도와 줄 수 없습니다. 다윗을 도와주었다가는 자기도 목숨이 위태롭게 되죠. 아무도 다윗을 도울 수 없는 것입니다. 다윗은 혼자서 얼마나 외롭고 두려웠을까요?

우리도 나에게 환난이 닥쳤는데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너무도 외롭고 두려움이 나를 덮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럴 때 많은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외롭다, 나는 도저히 살아나갈 힘이 없다, 하며 자신을 비관하고 자포자기하고 결국 목숨을 끊는 것이죠.

이것은 너무 너무 너무 어리석은 것이죠. 하나님이 주신 너무도 귀한 목숨을 자기 마음대로 끊는 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악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면 아주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럼 다윗과 같이 환난 가운데 아무도 나를 도울 자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 위기를 극복해 나갈까요?

하나님을 계속 찾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나를 도울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가 어떻게 하나님을 찾았는지 1,2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2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다윗이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윗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다윗이 내 하나님이라고 부르짖는 것은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내 하나님임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입니다.

이 부르짖음은 1000년 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하신 외침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도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시죠. 이것은 하나님은 나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시는 내 하나님이라는 확신입니다.

그러면서도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부르짖지만 그 내면에는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는다 라는 신뢰가 깔려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면 계속해서 하나님을 찾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운명하기 직전에 또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부탁하나이다하고 운명하십니다. 예수님이 끝까지 하나님을 찾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듣고 계시고 나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실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하나님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면서 하나님을 계속 찾습니다. 2절에 보면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하나님을 찾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듣고 계시고 반드시 응답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런 믿음이 없다면 몇 번 부르짖다가 하나님이 어딨어하고 기도하기를 포기하였을 것입니다.

다윗도 예수님도 모든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습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도울 수도 없습니다. 철저하게 혼자 싸워나가야 하는 것이죠. 그러나 그들은 절대로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하나님은 나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시는 분임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환난 가운데서도 계속해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여러분 환란 가운데 있고 아무도 나를 도울 자가 없습니까? 결코 낙심하지 말고 계속해서 내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십니까? 왜 아무 응답이 없으십니까? 왜 나의 신음소리를 듣지 않으십니까? 하고 여러분의 비통한 마음을 다 쏟아 놓으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을 절대로 버리지 않으시고 여러분의 부르짖음을 단 한 말도 놓치지 않으시고 다 듣고 계십니다.

 

그럼 왜 하나님은 지금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지금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에는 하나님의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을 건져내시고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다윗의 기도는 하나님이 10년 만에 응답하십니다. 다윗을 쫓던 사울왕은 죽고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을 하죠. 그리고 다윗은 이스라엘에 가장 위대한 왕이 됩니다. 그가 그런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10년 동안 환란통해 철저히 연단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예수님이 죽은 다음에 응답이 됩니다. 하나님은 죽은 예수님을 3일만에 부활시키시고 예수님을 모든 이름 위에 가장 뛰어난 이름으로 높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으로 세상 죄를 대속하시고 예수님의 부활시킴으로 그를 믿는 자는 누구나 영생을 얻게 하십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해 가시는 것이죠. 이렇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응답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환란 가운데 있습니까? 아무도 나를 도울 자가 없습니까? 절대로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기도를 다 들으시고 가장 적합한 때에 응답해주십니다.

 

그리고 환난 가운데 아무도 나를 도울 자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 위기를 극복해 나갈까요? 하나님을 찬송하십시오.

찬송은 곡조있는 기도입니다. 찬송을 부르십시오. 찬송을 부르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찬송하는 중에 하나님이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22: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러 갈 때 하나님은 유다지파를 앞세워 가라고 하십니다. 유다라는 이름을 하나님을 찬양하다라는 뜻입니다. 찬양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하시기에 하나님을 앞세워 전진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도 내 곁에 없고 나를 도울 자가 없더라도 하나님을 찬송하면 그 찬송 가운데 우리는 나와 함께 하고 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시들은 영혼이 다시금 소생케 됩니다. 찬양을 통해 하나님은 나를 지키시는 분이시고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이시고 나의 아픔을 아시고 나를 절대로 떠나지 않으시는 나의 하나님이심을 알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시편기자는 찬송을 부르는 중에 하나님이 구원의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게 됩니다.

22:4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22:5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찬송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를 건지시는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는 구원을 얻고,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함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찬송은 그 가사가 정해져 있습니다. 그 가사는 하나님 말씀이고 또 하나님 말씀에서 나온 고백을 곡조에 담은 것입니다. 그래서 곡조를 따라서 찬송을 부르게 되면 나는 싫든 좋든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게 되는 것입니다. 찬송은 물론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지만 동시에 내 영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명령하는 것입니다.

찬양하라(감사하라, 기뻐하라) 내영혼아 찬양하라(감사하라, 기뻐하라)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찬양하라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함이요, 내가 주의 큰복을 받는 참된 비결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내 평생소원 이것뿐 주의 일하다가 이 세상 이별 하는 날 주 앞에 서리라

이렇게 찬양을 부르면 찬양 중에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내 입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고백하게 됨으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견고해집니다.

마귀는 늘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낙심하게 해서 하나님 찾지 않게 하는 것이죠. 그래서 마귀는 늘 하나님에 대한 의심을 불어넣으려고 합니다.

7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를 하나님이 구원한다며,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니까 너를 건지신다며 그 하나님이 어디있어, 너는 지금 도망자 신세고, 너는 이제 사울왕에게 붙잡혀서 곧 죽게 될 텐데, 무슨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고 건진다는 말이냐, 하나님이 너를 버렸어, 하나님은 너에게 관심도 없고, 너를 기뻐하지도 않아, 하나님이 있기는 어디있어 하며 갖은 공격으로 다윗을 넘어뜨리려 합니다.

그때 다윗은 이런 의심을 하나님 말씀으로 물리쳐 버립니다.

9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10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하나님이 나를 택하심에 대한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11절에 하나님 나를 멀리 하지 마옵소서,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하며 계속해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윗은 하나님이 나를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계속해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찬송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선포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환란을 극복하고 승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다윗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하나님이었던 것처럼 바로 나의 하나님입니다. 나의 하나님은 나를 절대로 버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떠나지 않으시고 나의 기도를 다 들으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왜 나를 버리십니까? 왜 나를 돕지 않으십니까? 왜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않으십니까? 하며 낮에도 밤에도 하나님께 부르짖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찬송하십시오.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 나를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그럼 여러분도 다윗처럼 모든 환란을 극복하고 승리하게 될 줄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