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38년 동안 병을 고치지 못하고 앓아누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병세가 점점 악화되어 이제는 침상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죽을 날만 기다리는 신세입니다. 그런데 이런 병자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십니다. 그 순간 병자의 병은 깨끗이 나았고 그는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38년 된 병자를 낫게 하신 예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병자에게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게 하였다고 해서 예수님이 옳지 못하다고 박해를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이번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부르면 자기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잖아요. 이것은 하나님과 자기를 동등하게 삼은 것으로 신성 모독 죄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옳지 못하다고 하며 박해를 합니다. 이런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자기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십니다.
먼저 예수님 자신이 옳은 이유는 자기가 한 일은 자기가 임의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기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는 것은 자기 주관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아버지가 원하시는 일만을 행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를 고치시고, 고침을 받은 병자에게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한 것은 다 하나님이 그렇게 할 것을 보여주셨기에 자기는 그대로 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는 옳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둠이 없으신 빛 자체이십니다. 항상 옳으십니다.
야고보서 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래서 하나님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그대로 하는 자기는 항상 옳다는 것입니다. 2절에 보시면 하나님아버지는 아들인 자기를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신다 하였습니다. 하나님아버지가 아들인 예수님을 사랑하사 이것은 완전한 친밀함을 말하는 것인데, 하나님아버지와 아들인 예수님은 막힘이 전혀 없는 완전한 소통을 이루심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것을 다 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 행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19,20절을 읽고 가겠습니다.
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행한 수많은 일들은 모두 다 자기 임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아버지께서 보여주신 그대로를 한 것이기에 자기는 옳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요한복음 14:6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단 한 번도 틀림이 없는 항상 옳은 진리 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옳지 않다고 하는 유대인들은 틀렸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은 곧 누가 틀렸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예 하나님이죠.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대로 하셨기 때문인 것이죠.
하나님은 틀림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항상 옳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의심하지 말고 예수님만 따라가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하자 유대인들이 예수가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했다고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한 것은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말하는 것은 예수 너는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 하지 절대로 하나님과 동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19절 서부터 보시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자기가 하나님과 동등한 하나님의 친 아들임을 증명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내 아버지, 아빠 아버지, 이렇게 거침없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아버지와 자기는 본질에 있어서 동일한 하나님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본질에서 동일합니다. 부모님과 자녀인 나는 본질에서 동일하잖아요. 우리는 다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 것과 같이 하나님아버지를 내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님은 자기가 하나님아버지와 동일한 하나님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신성모독이라고 말하며 예수님이 옳지 못하다고 하는데 예수님은 이것이 옳은 것임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하나님아버지의 친 아들로써 하나님아버지와 본질에서 동등한 하나님임을 증명하시기 위하여 두 가지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생명을 살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심판하심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진리는 유대인들에게는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이 그 사실을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신명기 32:39이 말씀하죠.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
생명을 살리는 것은 참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예수님은 자기가 그것을 한다는 것입니다.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어떻게 예수님은 하나님아버지와 같이 죽은 자들을 살릴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은 하나님아버지와 동일한 생명의 원천이시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인 우리가 가진 생명과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가진 생명은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피조물인 우리의 생명이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은 생명의 원천인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중단하면 그 즉시 피조물인 우리의 생명은 끊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안 계시면 단 1초도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인 우리는 하나님 앞에 절대로 교만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고 자기가 잘나서 사는 것처럼 떠들어 대는데, 그것은 정말 무지의 소치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는 것은 그가 생명의 원천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예 예수님도 하나님아버지와 동일한 생명의 원천임을 말씀합니다. 26절에 이런 말씀을 합니다.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이 구절을 가지고 이단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은 피조물이라고 말을 하는데, 이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었다는 것은 창세 전에 아버지 속에 아들이 함께 계셨는데,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나오신 것을 말합니다. 아버지에게서 나오심을 26절에 “아버지 속에 생명을 아들에게도 주어 그 속에 생명이 있게 하셨고” 라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생명과 아들의 생명은 동일한 생명으로 모든 만물의 생명의 원천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에게서 나오신 것은 하나님아버지가 예수님을 이 땅에 메시야로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메시야의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아버지의 뜻에 그대로 순종한 것입니다. 이것은 빌2:8절에는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그 죽은 예수그리스도를 3일 만에 부활시키십니다. 예수님이 부활생명으로 다시 살아나심으로 인해 빌2:10에 보시면 “모든 입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만유의 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으로써 원래부터 만유의 주셨습니다. 모든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죽은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살리심으로 모든 입이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게 하였다는 것은 예수님이 부활 생명의 주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부활 생명의 주가 되셨다는 것은 29절에 생명의 부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지 않았어도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부활합니다. 왜냐하면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지 않았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심판의 부활로 부활 되어서 영원한 지옥에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심으로 그분은 부활 생명의 주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원하는 자를 생명의 부활로 살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성부하나님보다 성자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더 큰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죽은 자를 생명의 부활로 살리는 성자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입니다. 그래서 20절에 보시면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셨다는 것은 아들을 통하여 죽은 자를 생명의 부활로 살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자기가 하나님아버지와 같이 자기가 원하는 자를 살릴 수 있는 동일한 하나님이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은 어떤 사람을 생명의 부활로 살리기를 원하실까요?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자이죠.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나의 구주이심을 믿는 자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부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내 말을 듣고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 다는 것이죠. 그 영생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부활생명을 자기와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했는데, 이것은 완료형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은 자는 구원을 잃을 수 없고 사망할 수 없는 자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께 부활생명을 받은 자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써 하나님아버지와 동등하신 분임을 나타내는 것은 모든 심판을 예수님께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심판 주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함면 하나님이 선과 악의 기준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선하다 하는 것은 선한 것이고 악하다하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심판만이 완전히 공의롭습니다. 그래서 심판주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아버지께서 모든 심판을 예수님에게 맡기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아버지와 동일한 하나님이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하나님아버지와 본질에서 동일한 하나님이 아니라면 절대로 심판권을 예수님께 맡길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부하나님은 모든 심판을 주관하시고 성자하나님은 심판을 시행하신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 왜 하나님아버지는 모든 심판을 예수님께 맡기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이 죽은 자가운데서 살아나셔서 부활생명의 주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생명의 주이시기에 그가 원하는 자는 그와 같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는 그가 원하지 않는 자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지 않는 것이죠.
이렇게 부활생명의 주이신 예수님은 죽은 자를 부활시킬 수 있는 권능이 있기에 하나님아버지께서 그에게 모든 심판권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원하는 자는 생명의 부활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은 어떤 사람에게 생명을 주어 부활하게 하실까요? 예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입니다. 여기서 듣는 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뿐 아니라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는 살아납니다.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지금 예수님의 말씀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습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는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나 듣지 않는 자는 영원히 죽습니다.
그럼 오늘날에는 예수님이 어떻게 말씀하고 계시죠? 예 전도자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가서 예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 우리의 입술이 예수님의 입술이 되고 우리의 음성이 예수님의 음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포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는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듣지 않는 자는 영원히 멸망합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원하는 자를 살리기도하고 죽이기도 하실 수 있는 생명의 주이시며 심판 주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말씀을 듣는 자가 되어 생명의 부활로 나오는 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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