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이루었다
예수님이 숨을 거두시기 직전에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인생을 마칠 때 다 이루었다라고 말한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 하신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성취하신 것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구원의 길을 여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드시는 것이죠.
만약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지 않았다면 아무도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아담서부터 태어난 모든 인류는 하나님께로 나가지 못하고 영원한 지옥에 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임을 말씀하시죠.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이 일은 오직 예수님만 이루실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존재도 인류가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는 길이 되어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존재는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완전한 인간이어야 하고 죄가 없어야 합니다. 동시에 능력이 무한한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음으로 죗값을 치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인간이고 죄가 없는 의인이고 동시에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을 수 있는 전능자여야 합니다. 그런 분은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자기 전부를 이 일에 바칩니다. 그리고 끝내 그 일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 완성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의 몸을 대속물로 바친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 이 말씀은 언제 하셨나면 죽기 바로 직전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시각은 금요일 오전9시입니다. 마가15:25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제삼시는 유대인의 시간 법인데 여기에 6을 더하면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로마식 시간이 됩니다. 오전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온갖 모욕과 희롱을 당하십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며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우리가 믿겠노라 하며 비웃고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도 같이 욕을 합니다.
그리고 3시간이 흘러 제육시가 되는데, 우리 시각으로 정오12시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합니다. 정오12시부터 오후3시까지 어둠이 임합니다.
마15:33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눅23:44에는 해가 빛을 잃고라고 표현합니다. 어둠은 하나님의 크나큰 저주의 표시입니다. 출애굽기10:21에 보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애굽에 캄캄한 어둠이 임하죠. 그러나 이스라엘백성이 있는 고센 땅에는 밝은 태양이 그대로 떠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둠은 종말에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의미합니다. 아모스8:9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에 내가 해를 대낮에 지게 하여 백주에 땅을 캄캄하게 하며“
그날에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여 사람들이 슬피울며 통곡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상태에서 어둠이 임하였다는 것은 인류에게 무서운 저주와 심판이 임하는데 그 모든 저주를 예수님이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계신 것입니다. 큰 위기입니다. 만약 인류에게 쏟아지는 맹렬한 저주와 심판을 예수님이 짊어지지 못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온다면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는 일은 실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 모두가 망하는 것입니다. 어떤 누구도 죄에서 구원 받을 수 없고 모두가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위기 감도는 어둠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끝까지 내려오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제9시가 되었을 때, 우리 시각으로 오후3시죠. 갑자기 예수님이 큰 소리를 지르십니다.
마태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ㄴ)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이것은 성부하나님과 성자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성부하나님이 인류의 죄를 짊어져 죄인이 된 예수에게 하나님의 저주를 쏟아부으신 것입니다. 성부하나님과 성자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언제나 함께하셨고 완전한 소통을 이루는 일체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가 성부하나님과 성자하나님의 한몸을 찢으신 것입니다. 이 고통은 피조물인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그 고통이 너무도 컸기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를 외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고통의 소리는 하나님 말씀의 성취가 됩니다. 1000여년 전에 다윗이 성령의 감동가운데 시편을 기록하였는데 그 말씀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죠.
시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예수님은 이런 마지막 절규를 하시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목마르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심이었다는 것입니다. 본문28절
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ㄴ)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왜 예수님이 내가 목마르다 하시는 것이 하나님 말씀의 성취가 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이 목마르다 하시자 29절에 로마 군명이 그 소리를 듣고 신 포도주를 해면에 적셔 우슬초에 매여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을 응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성경이 시69:21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69:21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
로마군병이 입에 대준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다 이루었다“ 하시고 숨을 거두십니다.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은 세상 죄의 대속을 완전히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지난 수천년 동안 짐승의 피로 드려져 왔던 속죄의 제사들이 이제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완성이 된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속죄의 제사같은 피의 제사는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다 이루었다“ 하며 사명을 완전히 감당하실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완전한 순종입니다. 30절을 다시보면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이 표현은 예수님의 죽음이 예수님의 자율성에 있었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것을 이사야53:12이 뒷 받침해주죠.
12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입니다. 예수님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그가 죽기까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마지막에 ”다 이루었다“ 라고 사명 감당함을 말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 완전한 순종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죽기까지의 순종은 우리에게 극심한 고난에도 주를 따르는 것을 어렵지 않게 하십니다.
여러분 어떤 고난이 있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고 하나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십시오. 그럼 여러분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복된 자가 될 줄을 믿습니다.
이렇게 사명을 감당한 예수님을 하나님이 철저하게 지켜 보호하십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던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고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합니다.
다리를 꺾으라는 것은 안식일이 되기 전에 죽여서 시체를 치우기 위함입니다. 다리를 꺾으면 체중을 받치던 것이 무너지면서 금새 사람이 죽어 버립니다.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달린 시체를 치우려고 하는 것은 신명기에 나오는 율법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신21;22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답시고 시체를 치워달라고 하는 모습이 너무 가증스럽습니다. 이것은 마치 하루살이를 걸러내면서 자기들은 깨끗하다고 하면서 낙타는 통째로 삼켜버린다는 말씀과 같은 것이죠. 조금 전에 아무 죄없는 자의 생명을 빼앗는 무서운 죄를 져지른 것은 생각지 못하고 시체를 치워서 안식일을 거룩히 지킨다고 야단 법석을 떠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가증스런 유대인들의 요구를 통해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의 증거는 더욱 확실해집니다. 왜냐하면 군인들이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힌 두 강도의 다리는 꺾지만 예수님의 다리는 꺾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두 강도는 아직 살아 있어서 다리를 꺾어 죽음을 재촉하게 하였지만 예수님은 이미 죽은 것입니다. 로마 군인은 예수님도 다리도 꺾어야 맞지만 이미 죽은 것을 보고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피와 물이 쏟아지는 것을 보고 죽음 확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예수님의 뼈를 보호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출애굽할 때 유월절 어린양의 뼈를 하나님이 꺾지 말라고 말씀하신 말씀의 성취였던 것입니다.
민수기 9:12 아침까지 그것을 조금도 남겨두지 말며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아서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이니라
유월절 어린양이 이스라엘 백성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하는 제물이었던 것처럼 예수님은 세상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는 대속제물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로다 라고 외치죠.
하나님의 보호아래 예수님의 뼈가 보호되면서, 로마 군인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르는데 그것은 스가랴12:10의 말씀의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10 그들이 그 찌른 바 1)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이제 로마 군인들이 시체들을 끌어내려 땅에 묻어 버리면 끝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이자 공회원이었고 부자였던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말하여 예수님의 시체를 자기가 가져다가 장사를 지내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아리마대 요셉의 변화입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는 그는 예수님을 믿었지만 그러나 자기 믿음을 드러내지 못하였습니다. 세상의 부귀를 잃을까봐 예수님을 증언하지 못하였죠.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그는 자기의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하고 예수님의 시체를 자기가 사놓은 자기 무덤에 장사를 지냅니다. 이 무덤은 아무도 장사 지낸 적이 없는 새 무덤이죠. 이 때 바리새인이요 관원이었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져오는데 엄청나게 비싼 재료를 가져와 장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이들의 이 변화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통해 이루어진 것이죠. 한 알의 밀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힌다는 말씀의 성취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체가 새 무덤에 묻힘으로 인해 [이사야 53:9]의 말씀을 성취합니다.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여러분 하나님 말씀에 완전히 순종하십시오. 그럼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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