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서 살아나야 하는 예수님
예수님 시체를 내려서 무덤으로 가져가서 장사를 지냅니다. 그런데 예수님 시체를 빌라도 총독에게 달라고 해서 가져온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가족이 아니라 놀랍게도 바리새인이며 산헤드린 공회원인 아리마대 사람 요셉입니다. 산헤드린 공회원이면 우리나라에 국회의원보다 더 큰 권위를 가진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높은 관리가 예수님의 시체를 자기가 가져다가 장사를 지내겠다고 한 것입니다. 당시 산헤드린 공회에서 예수를 하나님을 모독한 신성 모독자로 사형 선고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주동하여 로마 총독 빌라도를 압박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입니다.
이런 예수를 공회원인 요셉이 그의 시체를 자기가 가져다가 장사를 지낸다고 하고 더군다나 자기의 새 무덤에 예수를 장사지내 준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한 죄인을 위한다는 정죄를 받아 요셉도 큰 해를 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숨어있는 상태인데 공회원인 요셉이 직접 나서서 예수님의 시체를 장사 지내는 것은 큰 위험을 감수한 행동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는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자기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인 것을 숨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을 보고 그는 자기의 비겁함을 회개하고 마가복음에 보면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아리마대 요셉은 죽으면 죽으리이다 라는 비장한 신앙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죽으면 죽으리이다 라는 각오로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공회원이고 부자였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자기의 새 무덤에서 장사를 지낸 것은 [이사야 53:9]의 말씀을 성취입니다.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그러니까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자기의 무덤에서 장사를 지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이 요셉을 사용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려서 자기 무덤으로 가져다가 장사를 지내는데 그 뒤를 따라 오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갈릴리에서부터 줄곧 예수님을 따랐던 여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오후3시에 돌아가셨는데, 이제 오후6시부터 안식일이 시작되기 때문에 그 안에 빨리 예수님을 장사를 지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시체에 충분한 향품 처리를 제대로 못 하고 그냥 세마포로 싸서 무덤에 넣어둡니다. 미이라처럼 천으로 예수님 시체를 둘둘 둘러 감은 것이죠.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예수님은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시체를 세마포로 싸서 무덤에 누인 것입니다.
아무도 예수님이 다시 살아날 것을 생각지 않았습니다. 죽으면 절대로 살아날 수 없다는 고정관념 때문입니다. 예수님 시체를 무덤에 넣어두고 안식일이 되어서 모든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집으로 돌아가서 안식일을 지킵니다. 안식일이 지나고 다음 날 새벽에 여자들이 향품과 향유를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으로 갑니다. 급하게 예수님 시체를 장사지내는 바람에 시체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을 여자들을 압니다. 그래서 그들은 안식 후 첫날 새벽에 향품과 향유를 가지고 예수님 무덤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체 처리를 좀 더 온전하게 하기 위함이죠. 그런데 여자들은 무덤으로 가면서 걱정합니다.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누가 치워주나??
그런데 여자들이 무덤에 도착하자 이게 웬일입니까?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이 저만치 치워져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무덤 안에 예수님의 시체가 없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예수님 시체가 없어진 것을 보고 ”어떡하나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어“ 하고 근심을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빛나는 옷을 입은 두 천사를 봅니다. 여자들은 너무 두려워서 얼굴을 땅에 대고 떨고 있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여자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어찌히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 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였느니라” 합니다.
7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 대
우리가 오늘 주목해서 보려고 하는 부분은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입니다. 영어로는 must라는 동사가 쓰였는데, 이 동사는 ‘반드시~해야 한다’는 뜻으로 강한 의무의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반드시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must 동사는 ‘살아난다’는 동사에만 적용된 것이 아니라 7절 보시면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와 ”십자가에 못 박히고“에도 적용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반드시 죄인의 손에 넘겨져야 하고 반드시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고 반드시 다시 살아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체포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다시 살아나는 것이 모두 하나님이 확정하신 계획에 따라 일어난 사건들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실 때 제자들에게 세 번씩이나 반복해서 이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면 사람들에게 붙잡혀 해를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이고 삼 일만에 살아날 것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막상 죽자 예수님 다시 살아나리라는 말씀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자 그들은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그 말씀을 기억했다면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낙심하지 않았을 것이고 또 예수님의 시체를 처리하려고 무덤을 찾는 헛수고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을 보고 도리어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고 기뻐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이 두려워서 숨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므로 그들은 낙심했고 예수님의 시체를 찾으려고 무덤으로 달려가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왜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살아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한 것일까요? 예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말씀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믿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그냥 끝이라고 단정을 짓고 말았던 것입니다.
천사들이 무덤에서 예수님의 시체를 찾는 여자들을 꾸짖듯이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하자 여자들은 그제서야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을 기억해 냅니다.
여자들은 무덤에서 돌아가 사도들을 비롯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달려가서 이 사실을 알립니다. 그러나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여자들의 말을 허탄하게 여깁니다. 11절이죠.
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하면 막상 현실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환난이 닥치면 하나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고 불신자들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다고 근심하고 걱정하고 낙심하는 여자들과 같이 어리석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지시고 환란이 닥쳐왔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타협하지 않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절대로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왜요? 자기가 죽임당하면 반드시 살아나야 할 것을 믿었고 그래서 잊지 않고 꼭 기억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밤에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함께 기도하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더 나아가서 땀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간절히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이 너무도 싫고 부담스러우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도를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며 담대하게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십니다. 예수님은 온갖 희롱과 조롱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며 십자가에 못 박히지만 양처럼 침묵하시며 모든 고난을 다 받으십니다. 대낮인데 갑자기 캄캄한 어둠이 임하면서 하나님의 저주가 예수님에게 부어집니다. 모든 고통을 참고 있던 예수님이 갑자기 소리치십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세상 죄가 예수님에게 전가되면서 하나님의 저주가 부어지고 예수님은 하나님께 버림을 당한 것입니다. 그 고통은 예수님에게는 너무도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기에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소리치며 절규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까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고 모든 저주를 다 받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 하시고 숨을 거두십니다.
예수님은 온갖 조롱을 당하고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버림을 당하면서도 왜 끝까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고 거기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자기가 반드시 살아나야 할 것을 기억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눅24장에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운명하셨던 것입니다. 히12:2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은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기꺼이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 일에 다시 살아나야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반드시 살아나야 할 것을 기억하셨기에 십자가의 모든 고통을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죽었다가 반드시 살아나야 했던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자들도 죽으면 반드시 살아나야 하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확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부활의 첫 열매로 삼으셨습니다. 그 부활의 첫 열매가 부활하셨기에 이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도 예수님처럼 반드시 부활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고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에게 환란이 닥치고 죽음이 덮칠 때, 나는 반드시 살아나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을 위해 충성을 다십시오. 우리 믿는 자들은 기쁨으로 환난을 당하고 기쁨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반드시 승리케 하실 것이고 반드시 다시 살려내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낙원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설교 강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 2026.4.19 주일오전예배설교 >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 (말4장) (0) | 2026.04.26 |
|---|---|
| < 2026.4.12 주일오전예배설교 >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눅5:1-11) (0) | 2026.04.12 |
| < 2026.3.29 주일오전예배설교 > 다 이루었다 (요19:28-42) (2) | 2026.03.29 |
| < 2026.3.22 주일오전예배설교 >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고전2:1-13) (2) | 2026.03.22 |
| < 2026.3.15 주일오전예배설교 > 둘로 하나를 만드심 (엡2:11-22) (1) | 2026.0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