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을 미리 차단하라
어떻게 불행을 미리 차단하나요?
1. 하나님과 약속한 것을 지키라 - 야곱
2. 세상풍습을 좇지 말라 - 디나
3. 원수 갚는 것 하나님께 맡기라(혈기) - 시므온, 레위
성경은 우리의 삶이 예정되어 있음을 말씀합니다. 예정이라는 말은 미리 정해져 있다는 말입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오늘 아침에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미리 정해져 있었다는 것이죠. 우리의 모든 삶이 이렇게 이미 정해져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언제 죽을지 까지 이미 다 정해져 있는 것이죠. 이것을 예정론 이라고 하는데요, 성경은 곳곳마다 이런 예정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별과 같이 많아질 것이고 가나안 땅을 차지할 것을 예정하시죠. 당시 아브라함은 100세가 되도록 본처에게서 자식이 없었고 땅도 한 평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정대로 아브라함의 자손은 별처럼 많아지고 가나안 땅을 완전히 차지합니다. 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의 자손들이 이방 나라에서 400여년 동안 붙잡혀 괴롭힘을 당할 것을 예정하시는데, 이 예정대로 약 3-400년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 붙잡혀 400여년 동안 노예생활을 합니다. 이스라엘백성이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타락할 것이 이미 예정되어있었습니다. 그 예정대로 타락하죠. 사울이 이스라엘에 왕이었을 때, 하나님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예정하십니다. 이 사실을 안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10년 동안 좇아다니지만 결국 사울은 전쟁에서 죽고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이스라엘의 나라가 두 쪽으로 나뉘어질 것이 예정됩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왕국으로 나뉘어진다는 것이죠. 이 사실을 안 솔로몬왕은 이것을 막기 위해 여로보암을 죽이려고 하지만 여로보암은 애굽으로 도망쳐 목숨을 부지하죠. 나중에 솔로몬이 죽고 나서 르호보암이 왕이 되는데, 르호보암의 교만으로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어지게 됩니다. 이 때 예정대로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타락의 길을 걷는데,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이 예정됩니다. 이 예정대로 bc722년에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고 남유다는 bc586년 바벨론에 멸망하고 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백성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올 것을 예언하는데, 그 예언대로 포로귀환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스라엘을 구원할 그리스도의 탄생을 수천년동안 예언하였고 그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오늘 날 이 땅위에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교회들이 생겨나고 성도들이 있는데, 이것도 다 예정되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예정되어진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엡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우리가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 것이 다 하나님의 예정하심이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우리의 삶 모든 것이 예정된 것임을 말씀합니다.
엡 1: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 세상 모든 일이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된 것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우리의 삶 전부가 하나님의 계획하심 가운데 예정되어 있다는 것은요, 우리에게 너무나도 좋은 것이고 안심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허락하시는 분이 아니시고, 우리를 향한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고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너무 너무 사랑하신다는 것이죠. 우리의 삶이 그런 하나님이 계획하심 가운데 있다는 것이 너무도 감사한 것이죠.
그럼 우리의 삶은 다 예정되어있으니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반대입니다. 예정론과 운명론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성경은 예정을 말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선택을 말씀을 합니다.
신 11:26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 앞에 복과 저주를 둔다는 것은 복의 길을 갈지 저주의 길을 갈지는 너희가 선택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 말씀을 따르면 복의 길을 갈 것이고 반대로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면 저주의 길을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택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복의 길을 갈 것인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저주 길을 갈 것인지,,,
이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백성은 당연히 복의 길을 갔을 것 같잖아요. 그러나 여러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는 저주의 길을 갔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이죠. 그것은 물론 하나님의 예정이었지만, 동시에 이스라엘의 전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 앞에도 복과 저주가 놓여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복의 길을 갈지 저주의 길을 갈지 이미 예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은 전적으로 우리 각자가 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 모든 저주를 차단하고 복의 길을 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 제목을 “불행을 미리 차단하라” 로 잡았습니다. 이 말은 우리의 삶 속에서 밀려오는 불행을 우리는 차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저주의 길을 선택하지 말고 복의 길을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떻게 불행을 미리 차단할 수 있는 지를 본문을 통해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먼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서원이라는 것은 거룩한 약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약속하는 것입니다. 가령 직장에서 승진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여서 하나님 제가 이번 주에 헌금을 100만원을 드리겠습니다. 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럼 그것이 서원한 것입니다. 그 서원한 것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오늘 야곱의 집안에 불행한 사건이 터집니다. 그것은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이라는 마을에 구경을 갔다가 거기서 세겜의 추장에게 강간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사건으로 야곱의 가족들은 큰 슬픔과 분노에 휩싸이게 됩니다. 특히 디나의 오빠들은 진노를 참지 못하여 복수의 칼을 들어 세겜마을에 남자들을 모두 죽이는 끔찍한 살인이 벌어집니다. 야곱은 이 일로 인하여 주변에 이방족속들이 연합하여 자기 가족들을 몰사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여 큰 두려움에 떱니다.
야곱의 집에 이런 큰 불행의 사건이 터지게 된 것은 디나가 세겜마을에 구경을 가서, 세겜추장이 정욕에 사로잡혀서 등등 말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런 불행한 사건이 터지게 된 더 근본적인 이유는 야곱이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갚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20여년전에에서 형을 피하여 외삼촌이 있는 밧단아람으로 길을 떠납니다. 그 때 야곱은 벧엘에서 잠을 자면서 그렇게 서원합니다. 하나님이 제가 다시 아버지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게 해주시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이곳에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제단을 쌓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드리겠습니다. 라고 서원을 합니다.
그런데 야곱이 20년 만에 고향땅으로 무사히 돌아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많은 소와 양떼 종들과 대가족을 이루어서 돌아옵니다. 야곱은 서원대로 벧엘에 가서 먼저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 것이죠. 그러나 야곱은 그렇게 하지 않고 세겜에 주저앉아 버립니다. 야곱이 세겜에 주저앉은 것에 대해서 여러 이유를 말할 수 있습니다. 거느린 떼가 많아서 쉽게 움직일 수 없고, 나중에 좀 더 안정이 된 다음에 벧엘에 가서 제단을 쌓겠다고 등등-
야곱이 고향에 돌아왔을 때 아마도 디나가 7,8살 정도 되었다면 세겜에 한 10년 정도 그냥 머물러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는 사이에 야곱은 하나님께 서원한 벧엘의 서원을 잊어버리게 된 것이죠.
그리고 세겜에 그냥 정착해 버린 것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야곱의 집에 불행한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만약에 야곱이 고향 땅에 돌아와서 서원대로 곧바로 벧엘로 올라가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정성껏 예배 하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갔다면 이런 불행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서원을 하였으면 그것을 지키라는 것이 하나님 말씀입니다.
전 5:4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매한 자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전 5:5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
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서원을 할 때는 주로 급한 마음이나 뜨거운 마음으로 합니다.
아까 예에서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승진을 한 것입니다. 승진이 된 것이 너무도 감사하여서 뜨거운 마음에 하나님 제가 100만원 헌금하겠습니다. 한 것이죠. 그런데 주일날이 되어서 막상 100만원 헌금을 드리려고 하니 아까운 마음이 드는 것이죠. 또 집에 애들 학원비도 내야 하고 또 이 번달에 장모님 칠순이 되셔서 잔치도 치루어야 하고 자동차도 고쳐야 하고 등등 돈 쓸때가 많은 것입니다. “아 이번 달엔 돈 쓸데가 많으니까 다음 달에 해야겠다” 하고 미룹니다. 다음 달이 되었는데 갑자기 무슨 일이 터져, 그 다음 달로 미룹니다. 그러다가 어떻게 되겠어요? 예 흐지부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결국 서원한 것을 갚지 않고 넘어가 버리는 것이죠. 여러분 하나님은요 만홀히 여김을 당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만홀히 여긴다는 것은 가벼이 여김을 당하는 분이 아니시라구요.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고 가볍게 여겨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시고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관자이십니다. 그리고 만왕의 왕이십니다. 우리가 서원한 것을 하나님은 절대로 잊지 않고 기억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가벼이 여기고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야곱은 자신이 서원한 것을 흐지부지 함으로 집안에 큰 불행을 맞은 것입니다.
집안에 그런 큰 불행을 격고 나서야 비로써 야곱은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부랴 부랴 이삿짐을 싸가지고 모든 가축과 종들 가족들을 데리고 벧엘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갚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 그것을 받지 못해서 아쉬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서원을 한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서원을 하고 그냥 흐지부지 했는데도, 아무런 일이 발생이 되지 않아요, 그럼 우리 마음에 하나님을 경홀이 여기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이죠. 필요할 때가 하나님을 찾고 필요없으면 잊어버리는 마치 하나님을 우상처럼 여기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처음 서원할 때 뜨거운 마음으로 결정한 것이 참 순수하고 좋은 마음입니다. 그것을 그대로 행할 때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인간적인 계산이 들어가고 이 눈치 저 눈치 살피게 되고 나면 우리의 순수한 마음은 혼탁하게 되어 좋은 마음을 잃게 되고 좋은 선택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서원한 것을 꼭 지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서원한 것이 있다면 갚으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에 불행을 차단하는 것이고 복의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 불행을 미리 차단하는 것은 세상 풍속을 좇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디나가 강간을 당하게 된 것은 물론 야곱이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잊고 세겜에 머물므로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가지 이유는 디나가 육신의 정욕으로 가득찬 세상을 좇았기 때문입니다. 1절에 보시면
창 34:1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더니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더니 했습니다. 여기서 보러의 단어는 주목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디나는 세겜의 여자들을 부러워하고 그것을 세련되게 여기고 그것을 따라 하기를 원했던 것이죠. 아마도 디나는 보호자 없이, 가까운 여종하나 데리고 나간 것으로 보여집니다. 2절에 보면 창 34:2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그 땅의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했는데, 이 동사들이 다 계속법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행동들이죠. 이것은 디나를 보호해주는 어떤 보호세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추장 세겜은 거침없이 디나를 강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디나가 이런 변을 당한 것은 물론 세겜족속이 음란하고 죄악이 가득한 족속이기에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디나의 섣부른 행동이 불행을 불러드린 것이죠.
우리 믿는 자들이 세상을 부러워하고 세상을 따라 하려는 것은 위험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정도는 괜찮아 하고 세상을 어느 정도 즐기고 세상을 따라하려 할 때, 어느새 우리는 세상에 물들고 세상의 종이 된다는 것입니다. 불행은 언제 어떻게 우리를 치고 들어올지 모릅니다. 세상은 결코 우리에게 참 만족과 행복을 줄 수 없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해보이고 뭔가가 있을 것 같지만 그 속에 들어가 보면 허무하고 더욱 우리에게 갈증만 일으킬 뿐입니다.
그래서 롬12장2절은 세상 풍속을 따르 말라고 말합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는 이 세상 풍속을 따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세상 풍속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세상을 좀 체험해야 한답시고 술도 마셔보고 음란싸이트도 들어가 보고 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강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야곱의 딸 디나와 같이 아주 약합니다. 우리 자신을 죄악에 노출시키는 것은 마치 아무 힘도 없는 디나가 음욕으로 가득찬 세겜으로 들어가는 것과 똑같습니다. 세겜이 디나를 집어 삼키듯이 세상이 우리를 집어 삼킬 것입니다.
여러분 인터넻사이트를 검색할 때에 주의 하십시오. 나는 괜찮아 하고 마구 들어갔다가는 그곳의 미혹의 영이 여러분을 사로 잡아 버릴 것입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매일 삼킬 자를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아주 단호하게 죄와 싸우며 죄의 단초부터 끊어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 안에 우리가 거할 때, 가장 행복하고 가장 평안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 때문에 피흘리시고 죽임당하셨음을 기억하고 예수님 바라보시고 예수님을 위하여 살아가십시오. 세상은 썩어질 것을 따르지만, 우리 믿는 자들은 영원한 것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에 불행은 없습니다.
전 8:5 명령을 지키는 자는 불행을 알지 못하리라 지혜자의 마음은 때와 판단을 분변하나니
그리고 우리의 삶에 불행을 차단하려면 따라합시다.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디나가 세겜 추장에게 강간을 당하자, 특별히 크게 분노한 사람들은 디나의 친오빠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이 그것도 이방 족속 남자에게 무참하게 강간을 당한 것을 알고 분을 삯히지를 못합니다. 물론 여동생이 이방 남자에게 강간을 당한 것은 정말 진노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겼어야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동생이 세겜추장에게 강간을 당하였습니다. 가서 칼로 죽일 까요? 어떻게 할 까요? 하고 하나님께 엎드려야 하는 것이죠.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자기의 손으로 원수 갚을 것을 결단합니다.
추장 세겜 디나를 강간하고 나서 디나를 더욱 좋아하게 되어서 디나를 아내로 데려오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추장 세겜이 야곱에게 찾아와서 디나를 자기의 아내로 달라고 간청합니다.
아내로 주기만 하면 아무리 큰 혼수나 예물을 청할지라도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디나의 오빠들이 추장 세겜을 속입니다. 우리는 디나를 너에게 줄 수 없다, 왜냐하면 너희는 할레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기에 우리에게 수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 중 모든 남자가 우리와 같이 할레를 받아 우리와 같이 되면 우리 딸을 너희에게 주며 너희 딸을 우리가 데려와 한 민족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할레를 받는다고 해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들과 한 민족이 될 수 도 없는 것입니다. 할레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시이지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세겜 추장은 속히 세겜 성읍사람들에게 가서 우리가 할레를 받자고 제안합니다. 우리가 할레를 받으면 야곱의 사람들과 한 민족이 되어서 야곱의 모든 소유물이 우리의 것이 된다고 말합니다. 자기가 야곱의 딸 디나를 얻기 위함인 것은 말하지 않습니다. 탐욕이 많은 세겜 사람들은 야곱의 많은 양떼, 소떼 재물들이 우리의 것이 된다는 말에 혹해서 모두 할레를 받기로합니다. 그래서 모든 남자가 할레를 받는데, 할레를 받으면 너무 아파서 남자들이 잘 움직이지 못합니다. 이 때를 틈타 디나의 오빠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들고 가서 세겜의 남자들을 모두 죽입니다. 추장 세겜과 그이 아버지 하몰도 다 죽이고 디나를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다른 오빠들도 와서 돕고 세겜의 가축들을 약탈하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디나의 강간에 대한 복수로 수많은 사람을 살인을 져지르는 끔찍한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불행이 더 큰 불행을 불러들인 것입니다.
여러분 원수 갚는 것을 내가 갚으려고 덤벼들 때 더 큰 불행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자들을 하나님 손에 다 맡기십니다. 도리어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아버지여 저들이 알지 못하여서 그럽니다.
우리는 원수 갚는 것을 철저히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하면서 용서하며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으십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 속에 또 다른 불행들이 발생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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