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2023년3월5일 주일오전예배설교> 하나님의 마음 (창22:1-19)

박선준목사 2023. 3. 5. 14:42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신 것일까?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려고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려고

하나님의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아브라함은 지금으로부터 4000여년전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고조선이 4300여년 전에 세워졌으니까 아브라함은 우리의 시조 단군할아버지하고 동시대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내는 사라라는 여자인데요, 그런데 사라에게서 아기가 생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래전에 아브라함에게 너의 자손을 하늘에 별처럼 많게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사라가 아기를 낳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간절히 기다립니다. 그러나 아기가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흘러 아브라함과 사라가 점점 늙고 사라의 경수도 끊기자 아기를 갖는 것을 포기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자손을 별과 같이 많게 하리라는 약속도 희미해져 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나이 99세때 나타나서 말씀하십니다. 내년 이맘때에 네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 말을 잘 믿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100, 사라 90세 되던 해에 정말 사라의 몸에서 아들이 태어납니다. 경수가 끊어진지 오래된 90세의 할머니 사라가 아들을 낳은 것이죠. 이것은 기적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얻게 된 아들이 바로 이삭입니다.

사라가 이삭을 낳으려고 해산의 수고를 할 때, 아브라함은 얼마나 애가 탔을까요? “할멈이 애낳다가 죽으면 어떻게 하나, 아기가 잘 태어날 수 있을까?” 온갖 걱정 속에서 애를 태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응애 응애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이죠. 그 소리를 들은 아브라함은 얼마나 기뻤을까요? 아기를 낳은 사라의 기쁨은 더 컸을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삭을 키우면서 기쁨이 넘쳐났을 것입니다. 눈에 넣어도 안아픈 귀한 자식인 것이죠. 이삭은 이런 부모의 큰 사랑을 받으며 무럭 무럭 자랍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아브라함아하십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은 너의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의 제물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그를 번제로 드리라는 것은 이삭을 죽여서 불태워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을 죽여 제물로 드리는 인신제사를 금하셨습니다. 이것은 이방의 우상숭배자들이 하는 행태였습니다. 모압의 그모스나 암몬의 몰록같은 우상에게 사람을 잡아서 제물로 바치는 일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아주 가증스러운 죄악인 것이죠.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사람의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브라함의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것이죠.

이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에게 이런 명령을 내리는 것일까요?

따라합시다. 아브라함을 위해서입니다. 지금은 도저히 이해가 안되죠. 아들을 줄 때는 언제고 이제는 아들을 다시 바치라고?? 그것도 불에 태워 번제로 바치라니---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명령인 것이죠.

여러분도 하나님 말씀을 따르다가 도저히 이해가 안되고 순종하기 어려운 말씀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내 생각, 내 지혜, 내 지식 다 내려놓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런 명령을 하시는 것은 순전히 우리를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3장에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데 쓰다 남은 찌꺼리기 같은 것 가져오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치지 않자 크게 꾸짖습니다. 이런 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럼 그가 기뻐하고 너희를 받아주겠느냐 하며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임을 말씀하고 이것을 하나님께 바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그 당시 이스라엘백성들 사정이 어렵습니다. 이방 땅에서 포로 생활하다가 고국으로 돌아와 황폐해진 땅을 일구며 정착해나가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하루 하루 먹고 사는 것조차도 빠듯한 상황인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은 소득의 십일조와 봉헌물을 바치라고 아주 강하게 명령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어려운 이들에게 십일조를 바치라고 명령하시는 것일까요? 제사장들 먹여살리려고, 성전을 수리하려고, 그런 것들은 다 부차적인 것이구요, 진짜 이유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복을 부어주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하나님께 바쳐야 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치지 않고 자기 입에 털어 넣는 것은 결코 그것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부어주실 복을 가로막는 저주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시험해 보라하십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성전 제단에 드려보라는 것에요 그럼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십니다.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여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헌신을 요구하는 것은 다 우리를 위하는 것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번영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기 위하여 자기 하나 밖에 없는 아들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셨습니다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여러분 하나님은 오직 우리를 위하시는 것 밖에 없으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어떤 헌신을 요구하시든지 그것을 피하려 하지 마시고 기쁨으로 순종하십시오. 그럼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큰 은혜가 부어질 줄을 믿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본문에 아브라함에게 이런 믿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야이 믿음이 아브라함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면 하나님이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즉시 순종합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바치라고 한 그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아들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땅으로 갑니다. 아마도 아내 사라에게 말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여러분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즉시 순종하십시오. 우리의 마음은 언제 회까닥 바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즉시 순종하지 아니하고 끌면 마귀가 별에 별 생각을 불어넣어서 결국에는 순종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지정하신 모리아 땅까지 가는데는 3일이라는 시간이 걸립니다. 3일이라는 시간은 아브라함에게 큰 시험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3일 동안 제대로 잠을 잘 수 있었을까요? 자기 손으로 아들을 죽여서 불태워야 한다는 이 기가막힌 현실 앞에 아브라함은 밤잠을 설치며 두렵고 무섭고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계속해서 모리아 땅으로 나아갑니다. 드디어 삼일 뒤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모리아 산이 멀리서 보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면 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멈추지 않습니다. 두 종에게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고 합니다.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너희에게 돌아오리라하고 이삭만 데리고 모리아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갑니다. 두 종을 데리고 올라가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자기가 아들을 잡으려 할 때, 이들이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브라함을 저지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직까지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마음이 굳건한 것이죠.

그런데 6절에 번제 나무를 아들 이삭에게 지웠다 하였습니다. 아마도 이 번제나무는 두 종이 짊어지고 왔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런데 두 종이 짊어지던 나무를 이삭이 짊어진 것이죠. 이것은 나무 꽤 많았다는 것이고 이것을 이삭이 짊어질 수 있었다는 것은 이삭의 몸이 상당히 자라있었다는 것입니다. 100세가 훨씬 넘은 노인정도는 얼마든지 밀쳐낼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이죠. 아브라함은 나무는 이삭에게 지게하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같이 올라 갑니다. 그런데 이삭이 아버지를 부릅니다. “아버지합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아들아 왜 그러느냐이삭이 묻습니다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있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이삭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 것은 번제의 제사를 잘 알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평상시에 하나님께 늘 번제의 제사를 드렸었던 것이죠. 이삭은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아버지를 도왔던 것이죠. 이삭의 이 질문은 아브라함의 마음을 너무 너무 아프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무척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너를 어린 양 대신 제물로 쓸거야이렇게 말하면 이삭이 도망갈 것 같고 알 것 없다하면 무책임한 대답이고 그런데 아브라함이 아주 지혜롭게 말합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이렇게 해서 드디어 두 부자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장소에 도착합니다. 아브라함은 도착하자마자 지체하지 않습니다.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나무를 벌여 놓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눕게 합니다. 이삭은 그때 알았을 것입니다. 바로 자기가 제물이라는 사실을요, 그런데 여러분 이삭을 밧줄로 꽁꽁 묶었다는 것은 이삭이 순종했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이삭이 거부했다면 아브라함은 이삭을 결박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삭은 나무 두 짐을 넉넉히 지고 산 정상까지 올라 올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 있었기 때문이죠. 100살이 훌쩍은 넘은 늙은 아브라함 정도는 얼마든지 물리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이삭이 그대로 결박을 당하여 제단 위에 눕혔다는 것은 그가 아버지에게 그대로 순종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손에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고 합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은 칼을 그 어느 때보다도 아주 날카롭게 갈았을 것입니다. 왜요? 예 이삭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함이죠. 단 한번에 이삭을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심장을 찔러야 하는 것이죠. 아브라함은 평상시에 많은 번제 짐승을 잡고 또 많은 가축을 도살하면서 칼을 다루는 솜씨가 아주 능숙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삭의 고통을 최소하며 단번에 죽일 수 있는지를 알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손에 칼을 잡고 이삭의 심장을 겨누어 힘차게 찌르려는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부터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합니다. 아브라함의 이름을 두 번 부른 것은 아브라함의 재빠른 행동을 저지시키려는 아주 급한 부름입니다. 만약 아 브 라 함 아 ~아 브 라 함 아이렇게 천천히 불렀다면 이미 아브라함은 이삭의 심장에 칼을 꽂았을 것입니다. 급한 부름으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하자 아브라함이 찌르려던 것을 멈추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하죠. 하나님이 보낸 사자 말합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여기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왜 이삭을 바치라고 했는지 알 수 있죠?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는 지를 알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만드신 분으로 아브라함이 자기를 진심으로 경외하는 줄을 아십니다. 그러나 이런 명령을 내린 것은 그 마음이 순종을 통해 표현되게 하신 것입니다.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경외함이 온전케 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행함을 통해 나타나고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만약 나는 하나님을 믿어요 하고 말로는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 삶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죠.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는다면 반드시 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순종하는 것을 보시고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 순종을 보신 후에 아브라함에게 복을 맹세하십니다.

22: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22: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22: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네 자손이 하늘 별과 바닷가의 모래 같이 많게 되리라, 그리고 네 씨가 대적을 이기고 승리하리라, 그리고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복을 주시는 것이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고 한 것은 결코 아브라함을 불행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복을 부어주어 온 세상이 복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죠. 만약에 아브라함이 이삭 바치는 것을 거부하고 이삭을 움켜잡고 있었다면 아브라함에게 부어질 만복은 다 날라가 버리는 것이죠.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어떤 헌신을 요구하든지,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복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임을 믿으시고 기꺼이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헌신을 요구하는 것은 순전히 우리를 위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의 심장을 겨누어 칼로 찌르려고 할 때, 아브라함의 심장은 터질 것처럼 쿵쾅 쿵쾅거렸을 것입니다. 아마 이 시간이 짧지 않고 조금만 오래 지속된다면 아브라함은 심장마비로 죽었을지 모릅니다. 아들의 심장을 찌르는 그 아버지의 심장은 터지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그 순간에 또 다른 분의 심장이 아브라함의 심장처럼 터질 것처럼 쿵쾅거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누구일까요? 예 하나님 아버지이죠. 왜 이삭을 죽이는 상황을 지켜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심장이 뛰는 것일까요?

예 그 이유는 2000년 후에 동일하게 하나님 아버지가 자기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죽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바치라는 이런 무지막지한 명령을 내린 것은 하나님이 자기 제사를 준비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찌르려는 순간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아브라함의 손을 멈추게 하십니다. 이것은 너의 역할은 거기 까지라는 것에요.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죽이는 제사를 준비하는데,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 아들 이삭을 제물로 죽이는 것이 필요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훗날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세상의 속죄제물로 죽이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손이 멈추고 눈을 들어 살펴보니 한 숫양이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숫양을 가져나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립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합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라는 의미입니다. 결국 이삭을 대신해서 하나님이 준비해놓으신 숫양이 죽은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이 제물로 준비한 이 숫양은 그로부터 2000년 후에 바로 이 장소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삭은 마땅히 죽어야 할 죄인입니다. 그러나 숫양이 대신 죽으므로 이삭이 살아난 것이죠. 그런데 우리도 이삭처럼 반드시 죽어야 할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우리 대신 죽임으로 우리가 살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마음은 순전히 우리를 위하는 마음밖에 없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