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2023.4.2 주일오전예배설교> 죽임당한 예수님 (눅23:44-56)

박선준목사 2023. 4. 2. 15:11

죽임당한 예수님

예수님의 죽음은 어떤 교훈을 주는가?

생명의 귀중성을 알게 됨. 끝까지 충성을 다하라

생명을 맡길 곳이 있다는 진리

 

오늘이라는 날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렇게 살고 싶어 했던 날입니다. 오늘 내가 이렇게 살아 있다는 자체가 감사한 것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9:4에 보면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라고 말씀합니다.

죽은 것에서 무슨 소망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사자가 아니라 사자 할아버지라도 죽었으면 아무것도 아니죠. 그러나 살아있다면 소망이 있는 것이죠. 작은 개 한 마리라도 살아서 멍멍 짓고 있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죠. 제가 전도하러 가면 이 집 저 집 방문하며 문을 두들깁니다. 가능하면 한 집도 빼놓지 않고 다 두들기며 방문을 하려고 하거든요. 그런데 어떤 집은 개 한 마리가 묶여져 있는 것에요. 그럼 그 집은 들어가기가 좀 껄끄럽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 집을 들어가려고 하면 그 개가 가만있지 않기 때문이죠. 분명 멍멍 짖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개 한 마리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왜요? 살아 있기 때문이죠. 만약 그 개가 죽어있으면 별 의미 없는 것입니다. 살아있기 때문에 집을 지키고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의미가 있고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은 나에게 소망이 있고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있다는 그 자체가 나의 아내, 자식들, 형제, 친척, 이웃에게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죽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죠. 아무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죽으면 의미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은 세월이 지나면 아무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직 살아있는 나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살아있다는 그 자체가 소망이고 거기에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숨을 크게 쉬면서 ! 내가 살아있구나 나에게 소망이 있어한 번 해보세요.

그런데 여러분 죽으면 모든 소망이 끊어집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못하고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9:5 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그들이 다시는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니라

죽음은 우리에게 모든 의미를 잃게 만들어 버립니다. 죽은 자에게는 아무런 소망을 찾을 수 없고 세상의 모든 것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죽음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원치않는 죽음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죽음은 늘 우리 가까이 있고, 그 죽음이 언제 우리에게 덮칠지는 모르죠.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음은 우리 곁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사람들은 죽어 나가고 있습니다. 조만간 나의 차례도 올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예수님이 죽습니다. 예수님이 죽었다는 것은 이제 모든 소망이 끊어지고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크게 슬퍼하고 낙심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처럼 자기들도 죽을까봐 꼭 꼭 숨어있습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는 제자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무리에게 예수님은 소망이 되셨고 또 강력한 의미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자 모든 소망이 끊어지고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에게 소망을 걸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죽음은 큰 슬픔이고 낙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죽었으니 예수님은 자기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아무 의미없는 존재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며 숨어지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은 제자들과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죽음처럼 모든 소망이 끊어지고 산 사람들에게 의미가 없는 존재가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진정한 소망을 주고 예수님이 살아 있을 때보다 더 강력한 의미를 주었습니다.

왜 예수님의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소망이 되고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죽음 가운데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사망 아래에 있는 모든 인류에게 소망입니다. 죽음이 끝이 아님을 보여준 것이죠. 그리고 영원한 생명에 대한 분명한 소망을 갖게 한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다 죽기 때문입니다. 그저 죽음만 기다리는 신세인 것이죠. 그리고 죽은 후에는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는 두려움 속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죠. 그런데 죽은 후에는 죄의 심판을 받아 곧바로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멸망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모든 인류에게 절망인 것이죠. 그러나 예수님이 죽었다가 살아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믿는 모든 자들도 살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렇게 예수님의 죽음은 오히려 모든 인류에게 부활의 소망을 갖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에게 큰 의미를 줍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까요?

먼저는 우리의 생명이 얼마나 귀중한 것임을 알게 합니다. 예수님은 한 생명의 가치가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십니다.

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천하를 다 준다고 해도 내 목숨하고는 바꿀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기꺼이 자기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너무도 처참하고 비참한 죽음이죠. 예수님의 비참한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임을 나타내는 반증입니다.

예수님이 왜 죽으셨습니까? 예 바로 우리를 살리기 위함인 것이죠.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예수님이 죽으신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자기가 죽으면서까지 우리를 살리려 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 생명이 귀하기 때문입니다.

마태8장에 예수님이 산에서 수많은 무리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고 은혜로운 말씀에 감동이 되어서 예수님을 따릅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마치고 산에서 내려오는데 구름떼처럼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무리들과 함께 내려오시는데, 한 나병환자가 예수님의 길을 막더니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하고 자기의 나병을 치유해달라고 간절히 구합니다. 그 당시 나병환자는 하나님께 저주 받은 자요, 사람 취급 받지 못하는 사회였습니다. 나병환자 따위가 길을 막아 하며 나병환자를 모른 채하고 갈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예수님은 발걸음을 멈추시고 나병환자에게 집중하십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 나병환자의 몸에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그 나병환자의 생명은 사람들에게는 하찮게 느껴지는 것이죠. 나병환자가 죽든 살든 전혀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나병환자의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그 생명을 살리기 위해 오신 것이기 때문이죠. 그 생명이 너무 귀하기 때문에 기꺼이 그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생명 한 생명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수많은 병자들을 일일이 손을 얹어서 치료하실 때 많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여러분 한 생명 한 생명을 귀중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발걸음이 나병환자에게 멈추어섰던 것처럼 예수님은 나의 생명에 집중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왜 예수님은 나병환자 같이 미천한 나에게 집중하실까요? 예 나의 생명이 귀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은 바로 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죽은 것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엎드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하였던 것처럼 여러분의 아픔을 예수님께 고하십시오. 예수님은 여러분의 작은 신음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손을 얹으시고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의 생명이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주어진 생명임을 알고, 우리는 나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다시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말고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고후 5: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나의 이 귀한 생명으로 내 몸둥아리를 위해 살아가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훗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이렇게 책망하실 것입니다. 25:26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여러분 나에게 주어진 이 귀한 생명을 이제부터는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예수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을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내 욕심을 버리고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어서 섬김을 받으려고 하지마시고 섬기며 살아가십시오. 예수님이 자기 목숨을 버리기까지 세상을 섬기셨던 것처럼 여러분의 손과 발이 다 닳도록 섬기는 삶을 사십시오. 그리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입을 열어서 예수님을 전하십시오. 예수님이 이 세상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살아나셨음을 담대히 전하십시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음을 증거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있는 생명을 귀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10: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10: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자는 훗날 하나님께 인정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여러분 나에게 주어진 생명이 예수그리스도의 죽음 값으로 얻은 귀한 생명임을 명심하시고 썩어질 것을 위해 살지 마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알게 해주는 진리는 나의 영혼을 맡길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외치십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하고 숨지십니다. 이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은 하나님이 자신을 버림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영혼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확신의 외침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하나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바로 영혼을 구원하는 믿음입니다. 우리도 죽는 순간에 이런 믿음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 믿음 죽은 나를 하나님이 살리신다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죽으시면 이런 믿음의 본이되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을 삼일만에 살리셨습니다. 할렐루야!!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죽을 때 나의 영혼을 맡아 줄 분이 계시다는 것은 엄청난 은혜입니다.

제가 전에 필리핀에 영어를 좀 배우려고 간 적이 있는데, 그런데 처음에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필리핀 마닐라를 향해 가는데 좀 두렵더라구요, 영어도 못하고 길도 모르고 필리핀에 아는 사람도 없고 막막한 것이죠. 그러나 제가 안심하고 필리핀 마닐라에 내린 것은 나를 픽업해줄 사람이 공항에서 나를 기다린다는 약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닐라 공항에 내려서 나오는데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 박선준 이 푯말을 들고 서있드라구요. 그래서 그 사람의 안내를 받고 무사히 숙소로 갔었는데요.

이와같이 여러분 어느날 우리 앞에 죽음이 왔을 때, 우리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가야하는데 그 길에 나의 영혼을 맡아줄 분이 계시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안심하며 우리는 죽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확신가운데 죽으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런 확신 속에 세상을 떠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살리셨던 그 하나님이 우리도 살리실 줄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에게 있는 생명은 우리 주님께서 자기 목숨을 버리면서 주신 생명임을 명심하시고 하찮은 것에 그 생명을 쓰지마시고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사용하십시오. 그렇게 주를 위해 충성을 다하다가 숨을 거두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죽으면 천국에 먼저 가 계신 예수님이 우리를 맞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의 믿음을 말해주실 것입니다. 이 누구누구는 썩어질 것을 위해 살지 않고 평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충성을 다하다가 온 영혼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이런 칭찬을 받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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