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2023.4.30 주일오전예배설교> 바벨의 저주를 풀라 (창11:1-9)

박선준목사 2023. 5. 5. 08:47

바벨의 저주를 풀라

인류가 한 번 완전히 멸망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언제였을까요? 예 노아시대 홍수심판이죠. 그 당시 인류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여 그 생각하는 모든 것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하나님이 물로 인류를 멸망시키셨습니다. 땅속에 깊음의 샘들이 터지고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비가 쏟아지는데 40일 동안 밤낮으로 쉬지 않고 계속 내렸습니다. 그래서 땅에 모든 높은 산이 다 물에 잠겨 버렸습니다. 그리고 물이 계속 더 불어서 높은 산보다 7.5m 정도 더 높이 물이 산을 덮어 버렸다라고 창7:20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해발 5000,6,000 되는 높은 산에서 조개와 같은 해조류 화석이 발견되는 것이 그런 이유인 것이죠.

이 홍수 심판으로 땅에 코로 숨쉬는 생물은 다 죽었습니다. 이때 모든 인류가 멸망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홍수 심판을 피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이 누구냐면 노아와 노아식구들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주 오랜 세월동안 방주를 만들어 홍수를 대비하였습니다. 홍수심판이 시작될 때 노아와 그의 아내 그리고 세 아들들 셈,,야벳과 세 며느리들 그리고 여러 동물들은 방주 안에 들어감으로 홍수심판을 피합니다. 이들은 물이 완전히 줄어들기 까지 방주 안에서 1년을 생활하고 밖으로 나옵니다.

이전에 인류는 완전히 멸망했고 노아로부터 새로운 인류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가 인류의 시조인 것이죠. 노아와 그의 아들들 샘,,야벳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직접 경험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방주에서 나와서 땅을 개척해나가는데 얼마되지 않아서 이들의 죄성이 나타납니다.

어느날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서 옷을 훌라당 벗고 장막에서 잠을 잡니다. 그런데 노아의 아들 함이 장막에 들어왔다가 아버지가 술에 취해 발가 벗은 채로 자고 있는 것을 봅니다. 함은 이런 아버지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았으면, 얼른 아버지의 수치를 가려주어야 하는 것이죠. 그러나 함은 그것을 보고 낄낄거리며 웃고 다른 두 형제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서 아버지의 수치를 더 드러냅니다. 이런 행동은 마치 마귀와 같습니다. 마귀는 늘 참소하고 정죄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잘못을 져지르면 그것을 들추어내고 정죄하여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함이 아버지의 잘못을 비웃고 조롱하고 들추어내는 이것은 마귀의 짓인 것이죠.

홍수심판으로 인류가 멸망하고 새로운 인류가 시작되는 마당인데 벌써부터 죄가 나타나는 것이죠. 그런데 인류의 죄는 계속해서 더 커져갑니다. 노아, 노아의 아들 함, 함의 아들 구스, 그리고 구스의 아들로 니므롯이라는 자가 나오는데, 니므롯은 10:8에 보면 세상에 첫 용사라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용사라는 말은 싸움을 잘하고 힘이 쎈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9절에 니므롯을 좀 더 설명하는데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다 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다는 이 말씀은 좋은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은 여호와를 무시하는 힘쎈 사냥꾼이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니므롯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힘을 믿고 의지하며 사는 자였다는 것이죠. 그런데 10절에 보시면 이 니므롯이 시날 땅에 그의 나라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니므롯이 자기의 힘으로 세력을 만들어 자기가 왕이되어 나라를 세웠다는 것이죠. 이것은 완전히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불신의 나라를 세운 것입니다. 여러분 니므롯의 할아버지가 누구입니까? 예 노아의 아들 함입니다. 홍수 심판을 직접 경험한 함인데, 불과 3대 만에 완전히 불신의 나라가 세워진 것이죠. 아마도 니므롯이나 그 당시 사람들은 할아버지 함 때 하나님이 이 세상을 물로 심판했다는 것을 익히 들어서 알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실제 삶에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인간의 죄성이 뼈속까지 박혀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2절에 보시면 노아의 후손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에 만나 거기에서 정착했다는 것입니다. 많은 무리가 시날 평지에 모여 살게 된 것이죠. 그런데 이 시날 평지에 모인 무리들의 우두머리가 아마도 니므롯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이 모여서 의논을 하는데 큰 성읍을 만들어서 높은 탑을 만들자고 합니다. 탑의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서 우리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으로 흩어지지 말게 하자 합니다. 이것은 죄악입니다. 탑의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내자, 이것은 교만이고 우리 이름을 내자 이 말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마음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신 것인데, 그 창조의 목적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이죠. 그리고 온 지면으로 흩어지지 말게 하자 이 말은 우리끼리 안전하게 행복하게 살자인데 이것도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온 땅에 퍼져나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모든 사람이 다 같이 잘살도록 하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들은 자기끼리만 모여서 잘먹고 잘살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나의 삶의 계획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은 없고 오직 나를 위한 것 밖에 없다면 그것은 죄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교 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결혼하고 돈을 많이 벌어서 집을 사고 우리 가족끼리 행복하게 살아야지

이 생각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그저 평범한 삶의 모습이죠.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이 보실 때는 패역하고 악한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웨스트민스트 교리문답 1문에 잘 나와 있죠.

사람의 가장 중요하고 고귀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분을 영원히 마음을 다하여 즐거워하는 것이다

인간의 창조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오직 하나님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려고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그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때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이름을 내고 자기 끼리 잘먹고 잘살자 이것은 창조의 목적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이죠.

 

사람들이 시날평지에 모여서 큰 성읍과 높은 탑을 쌓자고 의논을 하고 이들이 흙을 구워서 벽돌을 만들어내고 역청을 발라서 성을 쌓아 나갑니다. 이 지역은 돌은 귀하고 흙이 많아서 흙을 구워서 벽돌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개발한 것입니다. 뜨거운 불로 구원낸 벽돌은 햇빛에 말린 벽돌보다 훨씬 내구력이 강한 벽돌인 것입니다. 그리고 벽돌을 역청을 발라서 쌓아 올렸다는 것입니다. 이 역청을 헬라어 번역본에는 아스팔트로 번역을 했습니다. 이 천연 아스팔트가 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상당히 많았습니다. 이 천연 아스팔트를 채취하여 펄펄 끓임으로 접착력을 더욱 강하게 한 것입니다. 이 아스팔트로 접합된 벽돌은 쉽게 떨어지지 않으므로 높은 건축물을 쌓아 올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이들이 바벨탑을 쌓는데 얼마나 정성을 기울였는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들이 자기들의 계획대로 일을 착착 진행해 나갑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아주 어리석고 무지한 것입니다. 아무리 고대시대 때 기술이 발달했다고 해서 이들의 계획대로 탑을 하늘에까지 닿게 할 수 있을까요? 어림도 없는 소리죠. 지금은 문명의 발달로 비행기, 인공위성, 우주선 같은 것을 하늘로 쏘아 올려서 하늘이라는 것이 끝이 없이 높다는 것을 알죠. 어떤 과학자는 우주의 크기가 120억 광년이라고 말하는데, 120억 광년이라는 말은 빛의 속도로 땅 출발해서 120억년을 달려야 우주의 끝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빛이 얼마나 빠른지 아시죠? 빛이 1초에 지구를 7바퀴 반을 돕니다. 그 빠르기로 120억년을 가야 하늘에 닿는다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거리인 것이죠.

그런데 높은 탑을 쌓서 하늘에까지 닿게 하자는 것은 정말 택도 없는 소리인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4절에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자 이 말은 자기들이 하나님처럼 높아지겠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생각은요 높은 탑을 쌓아서 하늘에까지 닿게 하자는 것보다 더 불가능한 것이고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절대로 창조주 하나님처럼 될 수 없습니다.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다가 망한 사례들이 성경에 나오죠. 첫째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으므로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였죠. 그러나 그들은 선악과를 먹으므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을 뿐아니라 평생 죄의 종을 살다가 죽어버리는 비참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아담의 범죄로 인류 전체가 죄로 타락하고 사망아래에 있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사14:12부터 나오는 바벨론제국의 교만이죠. 이것은 사탄이라고 하는 신학자도 있습니다.

14: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4: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14:15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여러분 피조물은 절대로 창조주 하나님처럼 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려고 하면 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교만이 죄로 타락한 인간 마음에 다 잠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속에도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하는 교만의 마음이 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요, 우리가 뭔가를 좀 잘하면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벽돌과 역청을 만들어 탑을 쌓는게 자신감이 생기니까 아 탑을 계속 쌓아서 하나님처럼 높아져야지 그런 생각에 사로잡힌 것처럼 내가 하는 일이 좀 잘되면 자기가 잘난 줄 알고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공부를 잘한다든가, 돈을 잘 벌게 되었다든가, 권력을 잡았다든가 그러면 금새 교만해져서 자기가 하늘에 까지 닿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런 차원에서 우리 모두는 각자 바벨탑을 쌓아 하늘에 닿으려고 하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인간은 절대로 하나님처럼 될 수 없고 그런 마음을 품은 순간 멸망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들이 교만해져서 벽돌로 성읍을 쌓고 탑을 쌓아가자 그것을 보려고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왔다라고 말씀합니다.

11: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하나님께서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셔더라 이런 표현은 하나님이 진짜 무엇을 보려고 하늘에서 구름타고 내려오셨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되고요 이것은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이해를 쉽게하려고 하나님을 인간처럼 표현해 놓은 문학적 기법입니다. 하나님은 우주에 충만히 계신 분이십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이 아니계신 곳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다 보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를 져지를 때 하나님이 그것을 눈여겨 보신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높이려는 욕심에 성읍과 탑을 쌓자 하나님이 그것을 주목해서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6절이죠..

11: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이것은 하나님이 무능력해서 이들이 죄짓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죄를 짓는 자유의지를 하나님이 강압적으로 막지 않으시고 존중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이 후로 이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수월하게 죄짓는 일을 하는 이유를 이들이 한 족속이고 언어가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들의 언어를 혼잡게 해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십니다.

이때 하나님이 인간의 언어를 혼잡게 하심으로 인간의 언어가 서로 다르게 된 것입니다.

언어학자들이 현재 세계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조사해 보았는데, 몇 개의 언어 이 세상에서 사용되고 있을까요? 7117개 라고 합니다. 한 개의 언어를 쓰고 있었는데 언어가 혼잡하게 된 것이죠. 여러분 이 지구상에 이렇게 수많은 언어로 혼잡하게 된 것은 인간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저주입니다.

서로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성읍과 탑을 쌓던 일은 중단되고 그들은 온 땅으로 흩어져 버렸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땅에 충만하라고 한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졌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언어의 혼잡은 인간의 단절입니다. 그런데 이 단절의 뿌리는 인간의 죄입니다. 죄로 인해 인간은 단절의 저주 가운데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며 시기 질투의 관계이며 원수된 관계입니다. 이 단절의 저주는 이 세상 어떤 것으로도 풀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고독속에 죽어 갈 뿐입니다. 서로 사랑하며 하나가 되면 정말 행복할텐데 그러나 단절의 저주를 절대로 풀 수 없는 것이죠.

 

그런데 그 단절의 저주를 풀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죠? 예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셔서 아담서부터 흘러오던 이 단절의 저주를 끊어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한 언어를 사용하고 한 민족이고 아담의 한 몸에서 나온 하나됨을 회복하셨습니다. 그것을 위해 예수님은 자기 몸을 찢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습니다. 그것은 세상 죄값을 자신의 죽음으로 치루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죽음으로 죄의 문제 해결되면서 단절의 벽이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모든 죄가 사함을 받고 예수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들은 이제 한 몸된 공동체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단절의 벽을 뛰어 넘습니다. 언어의 벽, 민족의 벽, 신분의 벽, 피부색의 벽, 나라의 벽, 원수의 벽까지 다 뛰어 넘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다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의 백성이고 예수님 안에서 한 몸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때 실제로 언어의 단절이 회복되었죠. 예수님의 120명정도의 제자들이 한 곳에 모여 기도하는데 성령이 강림하면서 그들이 일제히 각국 나라의 언어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때가 오순절이라가서 각국에서 살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여있던 때 였는데, 이들이 깜짝 놀라죠.

2:7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2: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2: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2: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2: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이 세상에 흐르고 있는 단절의 저주를 풀어 버려야 합니다. 나의 죄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생각하며 이제는 나의 이웃을 허물을 용서하며 원수까지도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바벨에 임한 단절의 저주가 우리에게 풀어져 버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