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2022.7.16 주일오전예배설교>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벧전5:1-11)

박선준목사 2023. 7. 13. 13:16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어떻게 하는 것이 겸손한 것인가?

겸손해야 순종한다.

겸손해야 모든 염려를 맡긴다.

겸손해야 고난을 견딘다.

 

여러분 목사는요 교회 성도들을 돌보는 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목사에게 맡겨주신 사명입니다.

21:15절에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베드로야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러자 베드로가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그러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내 어린양을 먹이라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또 베드로에게 물으십니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러자 베드로가 이번에도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그러자 예수님이 내 양을 치라하십니다. 그런데 또 세 번째로 예수님이 물으십니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이렇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같은 질문을 세 번씩이나 하니까 베드로가 근심이 되어서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그러자 예수님이 내 양을 먹이라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렇게 세 번씩이나 물으신 것은 얼마 전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했기에 그런 잘못을 다시는 져지르지 말라고 강조하시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시고 계십니다. 무슨 사명일까요? 예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예수님의 양을 돌보라는 사명을 주고 계신 것이죠. 그런데 이 사명은 예수님이 베드로에게만 주신 사명이 아닙니다. 그럼 어떤 사람들에게 주신 사명일까요? 교회의 모든 지도자들에게 주는 사명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그 지도자를 장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도 장로중에 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절이죠.

벧전 5: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여기서 베드로가 말하는 장로는 오늘날 교회들을 담임하는 목사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2절에 보시면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는 장로들이 교회 안에서 맡고있는 성도들을 말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장로들이 교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인 성도들을 돌보는 일을 한다는 것이죠. 이것은 오늘날 목사들이 하는 일이죠. 그러므로 1절에 장로는 목사를 말하는 것이죠.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주신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의 사명은 교회의 모든 목사들에게 주어진 사명인 것이죠.

여러분 목사는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그리스도의 대리자들인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께서 자기 양을 목사들에게 맡긴 것입니다. 목사들은 예수님의 양들을 맡은 자들로써 양들에게 말씀을 먹이고 돌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목사가 이 일을 할 때는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해야 합니다. 이 자원하는 마음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목사는 어느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목자의 일을 억지로 하지 않고 자원함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예수님의 양들을 돌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목사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 목사가 예수님의 양들을 돌보는 이유는 그저 자기의 이득을 위한 것이죠. 만약 양들을 돌보는 일이 자기에게 이득이 되지도 않고 힘들고 어려우면 그 목사는 언제든지 양들을 버리고 떠나 버릴 수 있는 것이죠.

김방호목사는 1950310일에 전라도 염산군에 위치한 염산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합니다. 그런데 6.25가 터지면서 공산군이 이곳에 진입하면서 피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교회당과 목사관을 강제로 빼앗기게 됩니다. 그러나 김 목사는 교인들의 가정을 전전하며 비밀 예배를 계속 드립니다.

그 해 107일 기삼도라는 당시 성경학교 학생은 죽창에 찔려 교회가 불타는 가운데 순교 당했고, 동료 노용길 등 3명은 새끼줄에 굴비처럼 묶여 돌멩이를 매단 채 교회 옆 바다에 수장당했다. 그리고 다음 날은 노병재 집사 부부 및 어린 자녀들을 포함 9명이 똑같은 방법으로 목에 돌멩이를 매단 채 수장되었고 두 동생 가족도 모두 수장되어 22명의 일가족이 굴비처럼 엮여서 수장되었다. 13일에는 허 상 장로 부부가 가까운 산골짝에서 죽창에 찔리고 스데반처럼 돌무더기에 깔려 숨졌다.

이 후 공산군은 이 지역 어린아이들까지 무참히 죽창으로 찌르고 몽둥이로 때리고 수장시켰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박해속에서도 어른들 뿐만아니라 어린아이까지 신앙의 정조를 굽히지 않고 당당하게 순교를 당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피바람이 부는 박해 속에서도 김방호목사는 성도의 가정에서 비밀리 계속해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던중 김방호 목사도 1027일 공산군들에게 잡혀서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몽둥에 맞아 죽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일가족 모두 몽둥이에 맞아 순교를 당합니다.

김방호목사가 성도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예배를 드린 것은 그가 진심으로 예수님을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님께서 맡겨주신 양무리들을 끝까지 돌본 것입니다. 만약 그가 자기의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목회를하는 자였다면 진작에 예배를 중단하고 양들을 버리고 어디론가 숨어 버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세 번씩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치라 먹이라 하신 것은 예수님의 양들을 네 목숨보다 더 사랑하며 끝까지 돌보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목사는 예수님이 자기의 양들을 맡기기 위해 세운 자들입니다. 그들은 자기 목숨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들로써 예수님께서 맡겨주신 양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를 한 자들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양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먹이고 그 말씀대로 살도록 돌보는 일을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교회에 세워져 있는 목사들을 예수님이 세우신 예수님의 대리자들임을 믿고 그들의 말에 순종해야 합니다. 5절 말씀 같이 읽어 봅시다.

벧전 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여기서 젊은 자들은 말 그대로 나이가 어리고 젊은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로들은 나이가 많은 연장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이가 어린 젊은이들은 나이가 많은 연장자들의 말에 순종하며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1-4절의 문맥의 흐름에서 젊은 자들을 양무리로 보고 장로들을 그들을 돌보고 다스리는 목사들로 보아도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신들의 영혼을 돌보는 목사들에게 순종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들은 성도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성도들을 돌보라고 세운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목사에게 순종해야 하는 결정적 이유는 예수님께서 자기 양들을 먹이라고 목사들에게 말씀의 꼴을 주기 때문입니다. 목사는 예수님이 주시는 말씀의 꼴을 그대로 성도들에게 전하는 것이죠. 그 말씀은 성도들에게 생명의 양식입니다. 성도들은 그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자기들이 어디로 가야할지를 알게 되고 예수님이 인도를 따라 걸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성도가 목사를 나보다도 어린 것이, 나보다도 못배운 것이, 나보다도 아는 것이 없는 것이이런 식으로 목사를 무시하면 그 사람은 그 목사를 통해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고 예수님이 인도를 따라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요 겸손해야 합니다. 마음을 낮추어야 합니다. 그래야 목사들이 전하는 말을 예수님의 말씀으로 들을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설교는 목사의 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에 관해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예수님 자신입니다. 5절에 보시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겸손으로 허리를 동인다는 이 말은 원래 노예들이 일할 때 자기의 옷을 더럽히고 헤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옷 위에 앞치마 같은 것을 두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작업복을 입는 것이죠. 그러므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인다는 것은 겸손의 작업복을 입고 자신을 낮추고 섬기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에서 겉옷을 벗고 수건으로 허리를 메고 대야에 물을 떠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자기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것입니다.

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자기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것입니다. 이런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 목사들이 전하는 말을 하나님 말씀으로 알아들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6절에 보시면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라고 되어있는데요. 여기서 하나님의 능하신 손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 아래 겸손하라는 것은 나라는 존재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알고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키가 크다고 자랑을 합니다. 내가 키가 2m, 그런데 8,848m 에베레스트산 앞에서 내가 키가 커 이런 말하면 우수은 것 아닙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내가 힘이 쎄 이런 것은 더 우스운 것이죠. 여러분 인간은 하나님이 안도와 주시면 단 1초도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아래 겸손하라 이 말씀의 의미는 나라는 존재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님을 알고 늘 겸손하라는 것인데, 이것을 좀더 알게 쉽게 말하면 나의 전부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전능하신 하나님께 나의 전부를 의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겸손한 자들은 목사가 설교단에서 하나님 말씀을 선포할 때, 그 말씀을 믿음으로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들은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그것이 바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인 성도입니다. 그런 성도는 믿음이 쑥쑥 자라갑니다. 왜냐하면 삶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아 하나님이 보호해주셨어, 하나님이 인도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이런 고백이 나오게 되는 것이죠. 이런 고백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기에 그 사람 삶 속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므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점점 자라가는 것이죠.

 

그래서 겸손한 성도는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손에 자기를 완전히 의탁하는 것이죠. 그리고 겸손한 성도는 자기 생각 자기 고집 다 버리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그 삶을 철저하게 지키시고 돌보시는 것이죠. 7절 말씀 같이 읽어봅시다.

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16장에 보시면 빌립보에서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 말씀을 전하다가 사람들에게 붙잡혀 많은 매를 맞고 깊은 감옥에 갇힙니다. 그들은 아마도 매를 맞다가 정신을 잃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한 밤중이었습니다. 그들이 정신을 차려보니 캄캄한 감옥 안이었고 그들의 발과 손에는 착고가 채워져 있었습니다. 온 몸은 매를 맞아 피투성이이고 안 아픈 곳이 없는 것이죠. 이제 이들은 깊은 감옥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이들을 덮는 것이죠.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그 캄캄한 감옥 안에서 무엇을 했을까요?

예 기도를 하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이들이 한 밤중에 감옥 안에서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니까 모든 죄수들이 잠을 깨어 그 소리를 듣는데,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감옥문이 다 열리고 모든 죄수들이 매인 착고들이 다 벗어지는 것입니다.

간수가 자다가 깜짝 놀라서 올라와 보니까 옥문들이 활짝 열려있는 것입니다. 간수는 죄수들이 다 도망간줄 알고 칼을 빼어 자살을 하려고 합니다.

그때 바울이 크게 소리를 질러 네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죠.

그 날 밤에 간수와 간수의 모든 가족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바울과 실라는 그 다음 날 상관들이 풀어주라고 해서 풀려납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이었죠. 이런 하나님의 돌보심을 체험한 것은 그들이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성도는 이렇게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김으로 하나님의 돌보심 가운데 있기 때문에 그들은 대적 마귀를 쳐부수게 됩니다. 마귀는 겸손한 자들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귀가 아무리 핍박하고 공격을 퍼부어도 겸손한 자들은 더욱 하나님께 자신을 의탁하기에 도리어 그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더욱 체험하게 해주게 해주는 것이죠. 그래서 마귀가 핍박하며 할수록 그들은 더욱 견고해져 갑니다. 사실 그것은 하나님이 성도를 견고하고 온전케 하기 위한 방법중에 하나입니다.

벧전 5: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그래서 겸손한 성도는 고난 가운데 더욱 온전해지고 굳건해지고 강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 지도자들의 말을 하나님 말씀으로 받으시고 그대로 순종하는 겸손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때가 되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권능이 세세 무궁토록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