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2023.8.20 주일오전예배설교>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 (갈2:11-21)

박선준목사 2023. 8. 23. 10:47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의 의를 가지고 하나님께 인정받아보려고 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부지런하니까, 지식을 많이 쌓았으니까, 가난한 사람들 많이 도왔으니까, 나라를 위해 충성을 하였으니까, 가족을 위해 희생했으니까 등등 우리는 끊임없이 이런 자기의 의를 가지고 자기를 평가하고 또 다른 사람을 판단합니다. 그래서 내가 다른 사람보다 좀 잘나 보이는 것이 있으면 내가 너보다 의로워하고 자기를 의롭게 여깁니다. 그러다가 나보다 잘나 보이는 사람을 만나거나 자기의 일이 실패할 때 나는 못났어하고 자괴감에 빠집니다.

이런 것들은 다 자기 주관으로 의롭다 의롭지 못하다를 판단하는 상대적인 의로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서든지 자기 의를 세우기 위하여 지식을 많이 쌓고, 선행을 하고, 새벽기도를 열심히 하고, 가족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재산을 많이 쌓아놓고, 사치를 부리고 업적을 남기는 등 갖가지 행위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다 인간들 사이에서 내가 잘났냐, 니가 잘났냐 하는 상대적인 의로움입니다.

사실 우리 머릿속에는 이 상대적인 의로움이라는 고정관념이 박혀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다른 사람보다 약간이라도 잘나 보이면 거기서 자기를 의롭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자기가 의롭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자기 의를 세우기 위해서 가난한 자를 돕는다든지, 새벽기도회를 한다든지, 일을 열심히 한다든지 그런 행위로 자기 만족을 이루어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합니다.

이런 고정관념은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자기의 의롭게 하려고 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고 할례를 행하고 가나한 자를 구제하고 등등 613가지의 율법을 잘 지켜서 의롭다함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철저하게 율법 교육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율법을 지키는데 열심이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고 뛰어난 유능한 능력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를 의롭다고 생각했고 또 실제로 그는 보통 사람들 보다 훨씬 의로운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깨달은 결론은 16절 끝에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바울은 어떻게 이런 깨달음에 이른 것일까요? 그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의를 비추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 다른 사람들과 자기를 비교해 보았을 때는 내가 그래도 저 사람보다 나으니까 나는 괜찮은 사람이네하고 상대적인 의로움 가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완전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의 앞에 자신을 비추어 보니 자기는 너무나도 더럽고 추악한 죄인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마치 어둠가운데 있을 때는 내가 더러운지 깨끗하지 모르지만, 밝은 빛가운데 나아갔을 때 자기의 더러운 실체를 보게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나를 의롭다고 하는 것은 단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 우리 선준이 착해, 선준이는 법없이 살 사람야이런 사람들이 나를 의롭다고 인정해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럼 누구에게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것이 진짜일까요? 하나님이시죠. 왜냐하면 하나님이 바로 우리를 심판할 심판 주이시고 그분이 가진 의만이 절대적인 기준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 앞에 섰을 때,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노력이나 힘으로는 절대로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그냥 심판을 받아 지옥에 떨어져야 하는 것일까요?

그렇게 되면 안되죠. 그럼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 비결을 16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가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의로움은 나의 어떤 행위로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이 그 믿음을 보시고 나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거기서 믿음도 내가 잘나서 믿는 것 아닙니다. 그 믿음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엡 2:8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임을 말씀합니다.

내가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고 여김을 받은 자들임을 믿습니다.

 

이렇게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우리들은 이제 더이상 자기의 의를 세워서 자기의 구원을 이루려고 하는 헛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의 의를 세워서 구원을 이루려는 자는 아직도 자기가 누구인지를 전혀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자기 자신을 의로워 질 가능성이 있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힘으로 선을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것은 착각에 불과합니다. 우리 안에는 선이 없습니다. 우리는 선을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다 악할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면 그냥 죄인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았지만 우리들 안에는 자기 의라는 고정관념이 있어서 늘 거기로 다시 돌아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로 나의 의를 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내가 좀 더 잘하고 또 잘나 보이고 그런 상대적인 의를 자기 의로 삼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외식하고 가식하게 됩니다. 좀 잘하면 우쭐하게 되고 좀 못하면 침체되는 것이죠.

오늘 본문에 베드로가 그런 잘못에 빠졌습니다.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잘못을 져지르며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죄인임을 깨달았고 또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목격하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이 구원임을 예루살렘 공회 앞에서 증거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베드로가 예수그리스도의 전적인 은혜를 망각하고 또 율법의 행위로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외식하는 죄를 져지릅니다.

안디옥에서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다가 예루살렘교회에서 어떤 할례자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워하여 식사자리를 떠납니다. 베드로가 떠나자 그 식사자리에 있던 다른 유대인들도 바나바까지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어 버립니다.

이런 그들의 행동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유에서 떠나 다시 율법의 종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하는 것이죠. 그러나 사실 베드로는 율법적으로 볼 때 이미 죄를 져지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방인들과의 교제를 금하는 유대인의 율법을 이미 범하였기 때문인 것이죠.

그럼 베드로의 이방인들과 식사하는 이 행동이 죄가 된다면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은 헛된 것이죠. 그러나 결코 그럴 수 없죠. 그것이 17절인데요.

2: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움을 얻었다고 믿었는데, 그 믿음으로 율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믿음으로 행했는데 그것이 죄인이 된다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하는 꼴이 된다는 것이죠. 그런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베드로의 외식적인 행동은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정죄에서 완전히 자유를 얻었는데, 다시 율법의 지배를 받아 율법의 종이 되어 죄를 지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18절 말씀입니다.

2: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이렇게 말하는 것은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은 전적인 예수그리스도로 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자기의 어떤 행위로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죄짓게 하시는 분으로 만드는 것이고 자기를 율법의 정죄를 받는 죄인으로 만드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끊임없이 자의 의를 세우려는 세상입니다. 우리도 얼마 전에는 그런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죄의 종의 자리로 돌아가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자기 의 같은 것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율번을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난 자들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예수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입니다.

나의 의라는 것은 없고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의만이 있을 뿐입니다.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가 사는 것은 오직 나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들입니다.

 

혹시나 상급은 나의 의가 아니냐고 하는 분이 계신데, 여러분 그것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를 위해서 충성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우리에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 밖에 없습니다.

훗날 하나님이 잘하였다 충성된 종아 하고 의의 면류관을 씌워주신다고 해도 우리는 그 면류관을 벗어서 하나님께 드리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릴 뿐입니다.

나의 의, 나의 자랑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만이 있을 뿐입니다.

2: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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