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2023.8.27 주일오전예배설교> 믿음으로 받는 복 (갈3:1-14)

박선준목사 2023. 8. 27. 15:23

믿음으로 받는 복

 

갈라디아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두 번씩이나 말하고 있습니다. 1절에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3절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두 번씩이나 어리석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왜 갈라디아 사람들을 두 번씩이나 어리석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자기의 힘으로 이루려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가 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로지 우리가 잘되기를 바랍니다.

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잘되기를 얼마나 바라시냐면 자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기까지 바라십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사람들이 자기들이 잘되는 것을 자기의 힘과 노력으로 이루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두 번씩이나 말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힘으로는 절대로 우리를 잘되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헤엄을 쳐서 태평양을 건너는 것보다도 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헤엄을 쳐서 태평양을 건너갈 수 있다고 하니까 어리석다고 말하는 것이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인정해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인정해 주신 것은 그가 어떤 공로를 세우고 착하고 그래서 의롭다고 인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6절에 나오죠.

3: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은 창세기15:6절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연합군에게 포로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서 길리운자 318명을 데리고 수백 킬로를 쫓아가서 연합군을 쳐부수고 롯을 구출해서 무사히 돌아옵니다. 그런데 롯은 다시 소돔 땅으로 떠나 버립니다. 아브람은 자식이 없는 자기에게 롯을 자기의 상속자로 삼을까 했는데, 롯이 삼촌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소돔으로 가 버린 것입니다. 다시 혼자가 된 아브라함에게 큰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그 두려움은 아마도 자기에게 패한 연합군이 복수하러 올 것이라는 두려움이었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환상 중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방패란 말은 내가 너를 지켜 주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는 것에요. 이것은 내가 너를 높여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창12:2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죠.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내가 너를 대적으로부터 지켜 줄 뿐만 아니라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고 너를 복덩이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은 자기가 진짜 원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자식을 주지 않으셔서 저의 집에서 길린 종이 저의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하고 아브라함을 밖으로 나오게 하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별을 보아라 모든 별을 네가 셀 수 있겠느냐 보라 내가 네 자손을 이와 같게 할 것이다그때 아브라함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그것이 창15:6인데요, 제가 읽어 드릴게요.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었다는 것이죠. 그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여기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었죠? 아브라함이 잘되는 것입니다. 대적이 아브라함을 해하지 못하게 하고 그 이름이 창대하게 되고 그의 자손이 별처럼 많게 되며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브라함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으로 되는 것입니다. 다만 아브라함은 그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는데, 시간이 가면서 불안해집니다. 자꾸 나이는 많아지는데 자식이 생기지 않는 것이죠. 하나님이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라고 했는데, 아내 사라는 75세가 넘어가고 자기는 85세가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러다가 자식도 못 낳고 재산은 모두 남에게 넘어가고 노년에 불행해지는 거 아냐이런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 슬그머니 들어오는 것이죠. 그래서 아브라함과 사라는 자기들의 힘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합니다. 자기 힘으로 자기를 잘되어 보려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사라는 자기 몸에서 아기를 갖는 것을 포기하고 남편에게 자기 몸종인 하갈과 동침하여 우리의 아기를 갖자고 합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자고 믿음이 약한 사라를 붙잡아 주어야 하는데, 도리어 아브라함도 믿음이 약해져서 사라의 말대로 몸종인 하갈과 동침하므로 아들을 낳게 되는데 그가 이스마엘입니다.

이 일로 인해 사라는 몸종인 하갈에게 하대를 받는 큰 고통을 겪게 되고 아브라함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 사랑하는 아들 이스마엘을 떠나보내야 하는 큰 고통을 겪는 등 가정 안에 큰 혼란이 생겨나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 훗날 이스마엘의 자손들은 약속의 자녀 이삭의 자손들에게 대적이 됩니다. 오늘날 중동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번창해 있는 이슬람교도들이 바로 이스마엘의 후예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약속의 자녀가 이삭이 아니라 이스마엘이라고 믿으며 오늘날 교회를 박해하는 큰 대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힘으로 이루려고 한 잘못의 악영향이 수천 년이 지난 지금 까지도 흐르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힘으로 절대로 이룰 수 없고, 이루려고 덤벼들면 상황은 더 어렵게만 될 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불신으로 86세에 이스마엘을 낳았는데, 그로부터 13년이 더 흐른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네 아내 사라가 내년 이맘때에 아들을 낳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럼 아브라함의 나이는 100세이고 사라는 90세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웃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어째서 사라가 웃으면서 내가 늙었는데 어떻게 아들을 낳을 수 있겠는가?” 하느냐 나 여호와에게 불가능한 일이 있겠느냐? 내년 정한 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하십니다. 그리고 정말 90세의 사라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습니다. 그 아들이 이삭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을 별처럼 많게 하겠다고 하신 약속을 이룰 그 자녀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을 낳게 하신 것은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하는 의지나 노력을 완전히 포기시키기 위함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하는 의지나 노력을 완전히 포기시키기 위함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힘으로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사람들이 처음에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았음을 고백해놓고서는 이제는 자기의 의지나 노력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통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얻으려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입니다. 이스마엘을 통하여서는 별처럼 많은 자손을 이루고 모든 민족이 복을 받는 하나님의 뜻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스마엘은 자기 자신조차도 복되게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에게서는 썩어질 육체만 나올 뿐입니다. 거기에는 아무런 소망도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많은 성도라는 자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의 의지나 노력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려는 어리석음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은 믿음으로 살다가 자기들이 원하는 만큼 변화가 신속히 오지 않으면서, ‘내가 이것 밖에 안되는 구나이런 자기가 초라하게 느껴지는 육신의 생각이 들어옵니다. 그럼 나를 구원하신 예수그리스도로 만족하지 못하고 나를 더 온전케 해줄 다른 어떤 것을 구하게 됩니다. 자기의 노력을 보태어서 자기를 돋보이고 온전하게 보이려고 시도하는 것이죠. 그때부터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의지나 노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려고 하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약해지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형식적이 되어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힘으로 산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의롭게 되는 것은 내가 율법을 잘지키고 내가 잘해서 되는 것이라고 여겨지기에 하나님이 중심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점점 하나님의 은혜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가 되어 버립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느냐라고 말씀합니다.

3: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을 받은 것을 말하는 것이죠. 성령을 받음으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는데, 그런데 다시 전에 죽은 육체로 돌아가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의 힘으로 구원을 이루려고 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된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어리석음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자기의 힘으로 자기를 의롭게하려는 자는 다 실패하고 영원히 멸망당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본질상 죄인이고 우리에게서는 절대로 선한 것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의 짊을 대신 짊어지고 우리 대신 죄의 저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는 것은 율법의 정죄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더 이상 죄인이 아니고 의인입니다. 이들에게 성령이 임하셨고 성령은 이들과 영원히 함께 하시면서 영생이 되어주십니다.

그리고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늦더라도 변화가 없어보이더라도 나의 힘, 인간의 방법, 다 내려놓고 두손을 들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 내 안에 선한 것이 전혀 없음을 인정하고 완전히 나를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오직 믿음으로, 성령의 능력으로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아들을 얻음으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욱 온전케 됩니다. 아들 이삭이 10대 소년으로 자랐을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합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아무소리 안하고 그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이 지시하신 모리아산으로 갑니다. 그리고 이삭을 번제로 바치기 위해 칼을 들어 이삭을 찌르려는 순간 하나님이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하십니다.

22: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22: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22: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아브라함은 오직 믿음으로 사는 자가 된 것이죠. 그래서 그는 하나님에게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사는 자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3: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속량하셔서 우리가 모든 죄의 저주에서 해방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저주는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담대하게 믿음으로 살아가십시오. 나는 이미 예수와 함께 죽었습니다. 이제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십시오. 그럼 여러분을 통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고 여러분의 믿음의 자손들이 별처럼 많게 될 것이고 여러분은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는 승리자가 될줄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