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2023.9.17 주일오전예배설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라 (갈4:8-20)

박선준목사 2023. 9. 22. 07:32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라

그리스도의 형상은 무엇인가?

종 노릇하지 않는 자유자

받아주고 사랑으로 품는것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다 세상의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우상들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가짜 신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만들어낸 것을 신이라고 여기며 믿고 사는 것이죠. 이 세상에서 돈도 큰 우상 중에 하나입니다. 돈이 나를 지켜줄 것을 믿고 사는 것이죠. 신을 믿지 않는다고 하는 무신론자들도 결국에는 자신의 신념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자기 신념이 우상인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 무신론자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입니다.

우상 숭배자들의 공통된 특징은 자기의 의를 세워 구원을 받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도를 닦는다든가 선한 일을 한다든가 열심히 일을 한다든가하여 자기 의를 세우는 것입니다.

불교는 열심히 도를 닦아서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죠. 이슬람은 착한 일을 많이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힌두교도 선을 행하고 제사를 잘드리고 그러면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입니다.

우리들도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을 믿게 되면서 세상의 가짜 신이 아니라 진짜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가장 큰 변화는 자기의 의를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열심히 노력해서 자기 의를 세우는 것이 잘하는 것인 줄 알고 자기의 의를 세우는데 힘을 쏟았는데, 예수님을 믿고 나서는 자기의 의를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도리어 거역하는 것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왜 자기 의를 세우는 것이 도리어 하나님의 의를 거역하는 것이 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자기 의를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오로지 자기의 영광을 위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과 딱 들어맞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오로지 자기를 높이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영광 이런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영광 어쩌구 저쩌꾸 떠들어댈지 모르지만 진짜 속마음은 오로지 자기의 영광만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상숭배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과 딱 들어맞는 종교 활동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기 의를 세워 자기를 높이려는 것을 성경은 천박한 초등학문이라고 말합니다. 수준이 유치하고 부족투성이라는 것이죠. 성경이 이것을 초등학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런 자기 의를 가지고는 절대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대를 통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잣대를 갖다 대면 자기 의라는 것은 죄악 덩어리일 뿐인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자기의 의를 완전히 버리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절대로 자기 의를 버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가 옳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로 자기 의를 버릴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자기 의를 버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만나는 것밖에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만나면 자기 의를 버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이 바로 나의 죄때문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깨달음은 내가 죄인임을 진심으로 고백하게 해줍니다. 나의 의로는 절대로 천국에 갈 수 없고, 나는 죄인 중에 괴수요 죽어서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한 자임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그런 죄인인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서 아무 죄없는 예수그리스도가 나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신 것이죠. 이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면서 자기 의를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의로 삼고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여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여도 우리 안에 있는 자기의 의를 세우려는 죄악된 본성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대로 있습니다. 다만 이제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자기 의를 세우려는 것이 죄악임을 알고 날마다 자기 의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태16:24에 예수님이 나를 따르는 자는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 하였던 그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려면 날마다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에도 우리 자신이 계속해서 자기 의를 세우려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갈라디아교인들도 그런 죄에 빠진 것입니다. 처음 바울이 갈라디아지역에 들어와 예수님을 전할 때 많은 사람들이 우상숭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영접하므로 갈라디아지역에 교회가 생겨났습니다. 처음에 예수님을 믿을 때 에는 갈라디아성도들의 신앙이 아주 순수하고 뜨거웠습니다.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자기 의를 버리고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갈라디아 교인들이 자기 의를 세우려는 죄의 본성을 따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게 된 것은 율법주의자들이 교회 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이 들어와서 예수님을 믿을 뿐만아니라 날도 지키고 달도 지키고 절기도 지키고 안식년도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우상숭배를 통해 자기 의를 세우려고 했는데, 이제는 율법을 지킴으로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이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할례를 받아야 한다,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 하며 행하는 모습이 뭔가 있어보이고 그럴 듯 해보이는 것이죠. 그런 것을 지키면서 신앙생활하니까 뭔가 내가 이룬 것 같고 자부심도 생기고 좀 그럴 듯해보이는 것이죠. 그러나 그런 것은 전에 우상숭배를 하며 자기 의를 세우려했던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려는 미련함입니다.

우상숭배나 율법을 지킴으로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는 순간은 우리는 그것들의 종노릇하게 됩니다. 내가 그것들을 잘 지키면 내가 잘난 줄 알고 또 그것을 잘 지키지 못하면 나를 정죄하고 자기를 비하해 버립니다. 그러므로 자기 의를 세우려는 자들은 자유가 없습니다. 늘 종노릇합니다. 자기 의를 세워야 하기에 늘 불안한 것입니다.

갈라디아교인들이 율법을 받아들임으로 율법에 종노릇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을 헛되게 하는 것이죠. 11절에

4: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그래서 바울은 처음에 갈라디아교인들이 자기를 뜨겁게 사랑하였던 때를 기억하며 다시 복음으로 돌아오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12절에 너희가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한다라고 말합니다.

4: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율법으로 자기 의를 세우려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전에 율법으로 자기 의를 세우는데 열심이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으로 자기 의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임을 너무도 잘 아는 것이죠.

바울은 예수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율법의 종노릇하는 것을 청산하고 이제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의로 사는 자가 된 것이죠. 갈라디아서2:20에서 고백하죠.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라 이제 내가 사는 것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산다라고 말고 있죠. 이런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헛된 것에 종노릇하지말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자기 의를 버리고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의로 살아가는 자로써 점점 예수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되어있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그리스도가 살고, 나는 없고 예수그리스도만 있기에, 살아도 죽어도 예수그리스도를 위하는 삶을 살기에 결국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이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바울은 이것을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이라고 말하면서 갈라디아교인들이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자기는 다시 너희를 위해 해산의 수고를 하겠다고 고백합니다.

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여러분 우리도 우리 속에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겉모습은 다 달라요, 생긴 모습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취향도 다 다르지만 그러나 속은 다 예수그리스도로 같아지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 모두가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을 온전히 이루는 복있는 사람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럼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은 무엇일까요?

종이 아니라 자유자입니다. 우리가 자기의 힘으로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하면 종노릇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힘으로 자기 의를 세워야 하기 때문에 늘 의를 세우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두려움 속에 살아갑니다. 자유가 없습니다. 또 자기가 의롭게 살고 있다고 생각이 되면 자기처럼 의롭지 못한 사람을 정죄하고 밑으로 내려보게 되는 것이죠. 그럼 평생 외식과 가식으로 살고 정죄당할 까봐 두려움 속에 살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예수그리스도 안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힘으로 나의 의를 이루기 위해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미 예수그리스도 안에 의로운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의를 이루지 못할까봐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예수그리스도가 나의 의이신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나를 정죄할 수 없는 것이죠. 그리고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이기에 실패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내 힘으로 살 때는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 망하면 어떻게 하지 그런 두려움에 시달리며 살았는데, 이제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것이기에 결국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을 확신하기에 모든 상황에서 자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사업이 망할까봐 두렵습니까? 직장에서 잘릴까봐 두렵습니까? 시험에서 떨어질까봐 두렵습니까?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 그리스도인은 망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고후 6: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고후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자들입니다. 내 힘으로 사는 자들이 아니에요. 그러므로 실패할 수 없고 망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자기 하나밖에없는 아들을 내어주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아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승리케 하실 줄을 믿습니다. 그러니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하심을 믿으시고 모든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담대하십시오. 예수님 안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기를 축복합니다.

이렇게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며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입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은 끝까지 받아주는 것입니다.

처음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에 들어간 것은 복음을 전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아픈 몸을 쉬기 위해 들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아픈 몸으로 또 복음을 전하였는데 성령의 역사로 갈라디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사람들이 시험 받을 만한 것이 바울에게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울의 병입니다. 바울이 앓고 있는 병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많은 신학자들이 뇌전증, 간질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간질은 뇌 신경세포가 갑자기 이상을 일으켜 과도한 흥분상태가 유발되면서 발작 같은 증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뒤로 넘어지면서 발작을 일으킨다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런데 갈라디아교인들이 그런 바울을 업신여기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고 기꺼이 받아주었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바울을 하나님이 천사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형상입니다.

여러분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제가 부족하고 허물이 보이더라도 업신여기지 않고 받아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이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을 온전히 이루어갑니다.

여러분 목회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함부로 교회를 떠나지 마십시오. 그것은 예수님의 형상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가 부족한 것이 보이면 기도하시면서 부족한 것을 채워나가 주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은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가게 됩니다. 목회자 뿐만 아니라 다른 성도들의 허물과 부족한 것이 보일 때 그것을 품고 기도하고 그를 받아줄 때 여러분은 점점 더 예수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도 율법주의 빠져 바울을 비방하는 갈라디아교인들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품고 해산의 수고를 하겠다고 말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은 자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끝까지 형제자매를 받아주며 사랑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