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2023.9.24 주일오전예배설교> 육체를 따라 난자와 약속으로 난자 (갈4:21-31)

박선준목사 2023. 9. 27. 14:51

육체를 따라 난자와 약속을 따라 난자

우리의 신앙이 기분이나 감정, 상황, 환경에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이 나와 항상 함께 하시는 것은 내가 잘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말씀을 잘 따르고 기도를 많이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하니까 하나님이 나를 자녀삼으시고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 앞에서 잘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계획하는 모든 것이 악할 뿐이고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이 다 죄일 뿐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일을 한 적도 없고 착한 일도 많이 했으니 나는 어느 정도 하나님 앞에서 잘한 것 같은데요,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이라는 거울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보면 나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임이 드러납니다.

마태2235에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큽니까? 라고 묻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고민하지 않으시고 단번에 대답하십니다.

22: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22: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22: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예수님은 이것이 율법의 가장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신 것인데, 이 의미는 이것이 모든 율법의 기본 정신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율법을 지킬 때 반드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킨다고 육일동안 하던 일을 멈추고 하나님 앞에 나와 제사를 드렸습니다. 안식일을 잘 지킨 것이죠. 그런데 그 마음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그것은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3장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해도 그것은 소리는 나는 구리요 울리는 꾕과리 같은 아무 의미없는 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 모든 것이 다 죄라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 마음 속에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우리 속에 이런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이고 이웃과 단절되어 있습니다.

시펴142절에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하고 보신즉 있었을 까요? 없었을 까요? 3절에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인간의 상태를 로마서3:23이 말하죠.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잘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모두가 다 죄인일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어떻게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주신 것이죠? 예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하신 것이죠.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값을 치루시고 율법을 완전히 지키셨습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완전히 지키셨다는 것은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의 증거는 바로 십자가이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심은 바로 하나님을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신 것이고 이웃을 내 자신같이 사랑하신 것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아 의롭다고 여겨졌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시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무엇을 잘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이 기분이나 감정, 상황, 환경에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오늘은 기분이 안좋아, 오늘은 기도를 안했어, 말씀도 안읽었어, 선한 일도 안했어 오늘은 하나님이 나를 별로 안좋아 하실 거야, 하나님이 안도와 주실 거야 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것이죠. 그 반대로 오늘은 기분이 좋아, 기도도 많이 했고, 말씀도 많이 읽었고 착한 일도 했으니 하나님이 나를 좋아하실 거야, 하나님이 특별히 나를 도와 주실 거야

이렇게 기분이나 감정 상황에 따라서 하나님이 나를 좋아하고 싫어하고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잘하나 못하나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나를 변함없이 사랑하시고 함께 하시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 사실을 굳건히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바울은 갈라디아 지역에 교인들을 향하여 21절에 보시면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라고 말씀합니다.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한다는 것은 내가 잘해서 하나님께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교인들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자신들이 의롭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임을 알면서도 또다시 자기를 율법 아래에 두어서 율법을 잘 지킴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의 정죄로부터 갈라디아 성도들을 자유롭게 하셨는데, 그들이 다시 율법의 종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베드로후서2:22이 말하는 것처럼 개가 토하였던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씻었다가 다시 구덩이에 뒹구는 것과 같이 어리석고 비참한 것입니다.

갈라디아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얻었으면서도 왜 다시 율법의 종이 되려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거짓선생들의 속임에 넘어간 것도 있지만, 그것이 인간의 타락한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타락한 본성은 내가 뭔가를 잘해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십일조도 드리고 헌금도 많이 했고 교회를 위해서 이만큼 헌신했으니 하나님이 나를 인정해주시고 나에게 특별한 은혜를 부어주시겠지 하고 자기의 의를 세워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죄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우상시하는 우상숭배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홀이 여김을 당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갈라디아 성도들을 향해서 아주 엄중한 경고의 말씀을 하십니다. 21절 끝에 보시면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입니다. 율법 아래에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느냐 그런 말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두 가지 상징을 들어서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설명합니다. 두 가지 상징으로 아브라함이 낳은 두 아들을 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하나는 여종 하갈이 나은 아들이고, 또 하나는 주인인 사라가 나은 아들입니다. 이들은 둘 다 아브라함의 아들들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달라지면서 이들의 신분은 하늘과 땅 차이로 갈라집니다.

여종 하갈이 낳은 아들은 종의 신분이 됩니다. 그리고 주인인 사라가 낳은 아들은 아브라함의 기업을 이을 상속자가 됩니다.

21:8에 보시면 여종 하갈이 낳은 아들이 이제 갓태어나 엄마의 젓을 뗀 주인 사라의 아들을 놀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본 사라가 남편인 아브라함에게 즉시 말합니다.

21:10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이렇게 해서 하갈은 자기 아들과 함께 그 집에서 쫓겨납니다. 여기서 중요한 메시지는 여종 하갈이 나은 아들은 아브라함의 기업을 물려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아들이 아니라 종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갈이 나은 아들도 아브라함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브라함의 기업을 이어받지 못하기에 그를 아들이라 하지 않고 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24절에 그것을 말씀합니다.

4: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하갈이 시내산을 상징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하갈이 낳은 자가 종임을 말씀합니다. 하갈이 나은 자를 아들이라 하지 않고 종이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 그는 기업을 이어받지 못할 존재이기 때문이죠. 그럼 시내산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율법이죠. 그러니까 하갈은 율법을 상징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율법으로부터 나온 자는 종이고 그들은 기업을 이어받지 못할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주인은 사라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26절에 나와있죠.

4: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사라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위에 있다는 것은 하늘을 말하는 것으로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이라는 것입니다. 25절에 하갈은 시내산으로 땅에 있는 예루살렘임을 말씀하였는데, 사라는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임을 말씀하는 것이죠. 그럼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요한 계시록에 나오죠.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계시록에서 말하는 하늘에 있는 새예루살렘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예 예수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2장에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유대인들을 향해 예수님이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하십니다. 그때 유대인들이 이 성전은 사십육년동안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심으로 이루게 될 성전으로 예수님의 몸이 성전임을 말씀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은 예수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라에게서 난 자는 아들인 것입니다. 왜요? 기업을 이을 자이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부터 나오는 자는 아들이고 그들은 기업을 이을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23절에 보시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4:23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다 했습니다. 육체를 따라 났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면 인간의 힘으로 났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왜 여종 하갈에게 들어가서 아들 이스마엘을 낳게 된 것이죠. 예 본처인 사라에게서 자식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죠.

아브라함 나이가 85세이고 아내 사라는 75세 이제 경수도 끊기고 더 이상 아기를 낳을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죠. 그래서 아기를 갖기위해서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여종 하갈에게 들어가서 아기를 낳은 것입니다. 이 아기는 인간의 힘으로 이룬 아기인 것이죠. 이것을 두고 23절에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까 여종하갈은 무엇을 상징한다고 하였습니까? 율법이죠. 율법으로부터 나온 자는 아들입니까? 종입니까? 종이라고 했죠. 왜요? 기업을 잇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여기서 중요한 진리가 나옵니다. 인간의 힘으로 사는 자는 아들이 아니라 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기업을 잇지 못할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23절에 자유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을 따라 난다는 것입니다. 약속을 따라 난다는 이 말은 인간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나는 것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고 사라가 90세가 되는 때,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들 사이에서는 절대로 아기가 나올 수 없는 상태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사라도 아기 낳을 것을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사라의 몸에 아기가 생겨서 아기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약속을 따라 난 것입니다.

그런데 자유자인 사라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입니까? 하늘의 예루살렘 즉 예수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이죠. 하늘의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자들은 종입니까 아들입니까? 아들이죠. 왜요? 기업을 이을 자이기 때문이죠.

여기서 또 하나의 진리가 나오죠. 기업을 잇는 아들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사는 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들입니까? 종입니까? 질문을 바꾸어서 하면 여러분은 자기의 힘으로 사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자입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사는 하나님의 자녀인 줄을 믿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두 아들이 다 누구에게서 나온 아들입니까? 아브라함에게서 나온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는 종이고 하나는 아들이라는 것이죠. 아브라함에게서 나왔다고 해서 다 기업을 잇는 아들이 아니라는 것이죠. 오직 약속을 따라 난자만이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교회를 다니면서 아직까지 자기 힘으로 살려고 하고 자기가 잘해서 하나님께 인정받으려고 하고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하는 자가 있습니까? 이 사람은 아들이 아니라 종인 것입니다. 그 사람은 훗날 하늘의 기업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섰을 때 예수님이 내가 너를 도무지 모르겠다 이 자를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내 힘, 내 생각, 내 욕심 다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로만 사는 자들이 있습니까? 그 사람은 약속을 따라 난 자들이고 하늘의 기업을 이어받을 자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려고 하면 인간의 힘으로 사는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게 될 것입니다. 29

4:29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이 말씀은 종인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이 주인인 사라가 낳은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염두해둔말씀입니다. 육체를 따라 난 이스마엘이 약속을 따라 난 이삭을 희롱하는 것 같이 인간의 힘으로 사는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 은혜로 사는 하나님 백성들을 핍박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직장에서나 어디서든지 여러분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 세상의 핍박을 받을 것인데 결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은 결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자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결국은 약속을 따라 난 자들이 승리하게 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죠. 16:3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계속해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시기기를 바랍니다. 그럼 반드시 승리하게 됩니다.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